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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를 거절하였던 유대인의 역사는 반복될 것인가?

저자: F.C. 길벌트 목사 : 1867-1946 사이에 재림교회를 위해서 봉사하셨던 목사님으로써, 특별히 유대인들을 위한 전도활동에 헌신하셨으며, 자신 또한 개종한 유대인이었다.

    “왜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거절하였는가?”라는 질문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자주 반복되고 있는 질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유대국가가 어떻게 해서, 그리고 왜 구세주이신 메시아를 거절하였는가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구약 성경 속에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으로 가득 차 있고, 세상에 오실 메시아를 상징하는 각종 표상들은 너무도 분명한 것들이 아니었는가! 특히, 어떻게 해서 유대인 석학들의 집합체인 산헤드린이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던 이유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극히 드물다. 영감적인 사도들은, 만일 유대 백성들이 예수를 올바로 이해했더라면, 그들은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메시아의 고귀한 생명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무지로 인하여 희생되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 바리새인들, 즉 모세가 앉았던 자리에 앉아있는 지도자들이 어떻게 예수를 거절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은 언제나 해결할 수 없는 난제로 남아있다.

    그 당시의 유대인들은 정직하였으며, 열심이 있었고, 진지했었다는 증거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로마서 10:2. 바울은 자신이 구세주를 받아들이기 훨씬 이전의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디모데전서 1:12-13.

하나님의 뜻을 좇기를 소원하였던 유대인들

    70년 동안의 바벨론의 포로 생활 중에서 겪었던 쓰라린 경험으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들은 다시는 하나님의 권면하시는 말씀을 거절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이스라엘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은, 그들이 참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갈 때, 그들에게 이르러 올 심각한 결과들을 두려워하였다. 에스라서에 기록되어 있는 다음과 같은 말씀은,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일을 행하는 족속들과 연혼하오리까? 그리하오면 주께서 어찌 진노하사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 에스라 9:14.

    그리스도의 초림 2세기 전에 기록된 “부조들의 윤리”라는 유대인들의 책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글을 발견하게 된다. “심판에 대해서 생각하라. 많은 수련생들을 훈련시켜라. 그리고 법을 지키라.” 이스라엘 가운데서 지혜가 있던 사람들은 법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들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바를 좀더 잘 이해토록 하기 위해서, 각종 주석과 설명과 규칙을 만들었으며, 여러가지 종교적인 도움들을 백성들에게 제공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성경에 나타나 있는 요구조건들을 백성들에게 교육시키는 일에 있어서, 그들은 커다란 돌에 걸려 넘어지게 되었다.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이 이스라엘의 대제사장 얏두아의 영접을 받아서 이스라엘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린 사건으로 인해서, 그리스와 이스라엘 사이에는 우호관계가 발전되었다. 그런데 알렉산더 대왕의 휘하에 있던 장군들은, 그들이 스코퍼스 산에서 그를 만났을 때에, 그들의 대왕이 대제사장인 얏두아를 죽이는 대신에 우호적으로 대하는 것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자신이 마케도니아에 있을 때에 보았던 계시에 대해서 그의 지휘관들에게 말해 주었다. 계시 가운데서 알렉산더 대왕은 얏두아를 보았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의 성전에 들어가서 얏두아의 하나님을 경배하기를 원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스는 자신들이 유대국가와 참된 우호관계를 가짐으로써, 유대 나라의 강력한 후원자가 되고자 하였다. 그들은 히브리 사람들의 하나님에 대해서 더 많은 지식을 소유하게 되기를 원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숫자의 유대 랍비들이 알렉산드리아로 건너가서, 거기서 유대인의 성경을 그리스 언어로 번역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스의 학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세련된 문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모든 정보와 지식을 얻고자 하였다. 또한 그리스는 이스라엘의 똑똑한 청년들을 알렉산드리아로 초청하여 그리스의 발전된 철학과 과학과 지식을 그들에게 교육시켰다.

    이스라엘의 많은 지도자들은 이러한 상황이 초래하게 될 결과에 대해서 두려워하였다. 지혜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이방인들의 관습과 문물을 받아들인 결과로서 받았던 고통과 슬픔을 기억했다. 그들은 젊은 사람들이 그리스의 교육과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경고하였다. 그러나 적극적이면서도 총명하고 활력있는 젊은이들이 그리스의 학교에 들어가서, 유대 종교의 위대한 진리를 그리스의 철학자들과 학자들에게 전파하여서,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유대교를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굉장히 바람직한 것이 아니냐는 논쟁이 발생하였다. 이스라엘의 나이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생각에 반대하였다. 그들은, 젊은이들을 그리스로 보내어 이방의 문물을 배우도록 허용한다면, 유대국가의 장래는 파멸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스 사람들은, 이스라엘 청년들은 유대교의 표준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유대 지도자들을 설득하였다. 이스라엘의 교육과 어긋나지 않는 교육을 그리스에서 받을 수 있으며, 그리스의 교육을 받은 이스라엘의 청년들은 단지 그리스 학자들의 지혜와 지식을 받아들이면 된다고 설명하였다. 만일 이스라엘 청년들이 당대에서 가장 위대한 그리스 국가의 교육을 받게 된다면, 유대 청년들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적 유익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대다수의 이스라엘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의 설득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이 진실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호하실 것이며, 유대의 학교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더 높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제 유대 학자들은 자신들이 도달해야 할 또 하나의 목표와 동기를 갖게 되었다. 젊은이들은 지식과 영향력과 명성을 얻을 수 있게 되었으며, 그들이 더 많은 지식을 얻을수록, 더 높은 지위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점차적으로, 이스라엘의 학교들은 졸업생들에게 학위를 수여하기 시작하였다. Rav, 랍비, Tana, Gayon, Sadi, Rabbon 과 같은 등급들이 생기게 되었다. 랍비학교의 졸업생들은 다른 의복을 입음으로써, 자신들의 등급을 표시하게 되었다. 학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독특한 옷과 모자를 써야만 하였다. 조금씩 조금씩, 귀족적인 교육이 생성되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을 산헤드린이라고 불렀다. 산헤드린이라는 말은 그리스어이며, 히브리 이름은 Beth Din Hagodol 로서 위대한 법정이라는 뜻이다.

영성의 쇠퇴

    이스라엘의 종교 학교들이 계속해서 운영되었지만, 영성과 능력이 눈에 뜨이게 쇠퇴하였다. 해마다, 철학과 문화에 대한 교육과정이 증가됨에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연구는 줄어들었다. 랍비 학교의 교육과정이 지성주의에 의해서 영향을 받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사람이 높여지게 되었으며, 하나님은 낮아지게 되었다. 학식있는 랍비들이 칭송받게 되었으며,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무시당하게 되었다. 깊은 신앙은 사라져 갔으며, 형식과 예식이 증가하였다. 랍비 중심의 교육에 관한 수많은 법들이 통과되었지만, 여전히 학생들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라는 권면이 장려되고 있었다.

    “부조들의 윤리” 라는 책에서, 랍비들이 다음과 같이 가르쳤던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5살에는 성경을 연구해야 하며, 10살에는 미스나(Mishna), 15살에는 저머라(Germara) 를 공부해야 한다.”

    미스나는 매우 두꺼운 성경 주석책이었으며, 저머라는 미스나를 주석하는 책이었다. 그리하여 학생들의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서, 지성적인 면만이 개발되었다. 학생들은 위로 올라갈수록,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점점 덜 연구하게 되었으며, 인간의 글에 대해서는 점점 더 많이 연구하게 되었다.

지성주의에 의해서 가려진 영감

    어떤 사람이 유대 회중들을 가르치는 자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그는 랍비 학교의 교육과정을 마쳐야 하였다. 그러한 과정을 마치지 못한 자들은 산헤드린에 의해서 밀려나게 되었으며, 대중들에게 아무런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랍비 학교를 졸업한 자들은 그들의 복장에 의해서 인지되었다. 랍비의 자격을 얻는 것은 아브라함의 자녀로 인정받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침례 요한과 예수께서 유대 땅에 태어났을 때, 이러한 분위기가 유대 나라를 뒤덮고 있었다. 시대의 소망, 영문 28-29에는 다음과 같은 적절한 설명이 나와 있다. “바벨론에 사로잡혀 감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을 숭배하는 일로부터 효과적으로 벗어나게 되었다. 수백 년간 저들은 이방의 대적들의 압제로 곤란을 받았는데, 그 결과로서 그들의 번영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 데에 달렸다는 신념이 그들의 마음에 박히게 되었다….

    “그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온 후에는 종교적인 교훈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국내 각처에 회당을 세우고 거기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율법을 해석하였다. 그리고 학교들도 세워졌으며 예술과 과학과 아울러 의의 원칙들이 가르쳐졌다. 그러나 이런 기관들이 부패하게 되었다 … 그들은 여러 면에서 우상 숭배의 풍습을 따랐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에게서 떠나자, 제사 제도에 대한 교훈을 많이 잊어버리게 되었다. 이 제사 제도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이었다 … 유대인들의 의식 가운데 있던 영적인 생명이 상실되었고, 그들은 죽은 형식만을 좇았다 … 제사장과 랍비들은 저희의 잃어버린 것을 보충하기 위해서 저들 자신들이 만든 여러 요구 조건들을 늘리었다. 규칙들이 더욱 엄격해 질수록,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더욱 적게 나타났다. 그들의 성결함을 의식의 다과로 측정하였으며, 마음은 자만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떠나가자, 신앙은 희미하게 되었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은 사라져 갔다. 선지자들의 말씀은 그들에게 이해되지 않게 되었다.”

    침례 요한과 예수께서는 랍비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그들의 선생으로서의 권위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기별을 주셨으며, 성령의 거룩한 능력으로 채우셨다. 그러나 침례 요한과 예수께서 자신들의 존재와 나타남이 성경에 예언으로 기록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침례 요한의 기별을 받아들이는 일에 실패하였으며, 구세주의 기별을 받아들일 만큼 준비되어 있지 못했다. 랍비들은 “이 사람이 배우지 않았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고 논쟁하였다 (요한복음 7:`15).

    예수 그리스도의 가족들은 회당에 대한 믿음이 충성스러웠으며, 그의 형제들은 그를 메시아로 믿지 않았다(4-5절을 볼 것). 왜냐하면 학식에 대한 표준이 산헤드린에 의해서 결정되었으며, 랍비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는 어떤 사람도 인정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구세주께서 하나님의 계시의 보관자들인 유대인에게 나타났을 때, 그들이 모세와 선지자들이 예언하였던 표상의 성취를 깨닫지 못한 이유는 이해하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철학과 뒤섞음으로써, 교사들과 백성들이 영성을 잃게 되었으며, 그들의 생애 속에서 살아있는 능력을 찾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적인 분별력을 잃어버렸다. 그리스의 철학과 알렉산드리아와 아테네의 문화는 이스라엘의 영적인 힘을 빼앗아가 버렸다. 이방 종교 교육의 영향력은 모든 계층의 사람들로 하여금 구세주를 알아볼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것들을 취하시기 위해서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들은 그분을 영접하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하늘의 거룩한 것을 이야기 하셨지만, 백성들은 땅에 있는 세속적인 것들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늘과 땅은 전혀 조화될 수 없었다.

    그분께서 공중 봉사를 시작하실 때,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바리새인들은 그분을 귀신들린 사마리아인이라고 고소하였다. 죄로 인하여 눈이 멀어졌고, 인간의 지식과 랍비의 전통에 취해있었기 때문에, 백성들의 영적인 통찰력은 마비되었다. 결국, 그들은 그들의 유일한 희망을 거절하였으며, 구원을 위한 유일한 통로를 스스로 막아 버렸다. 그들이 아무리 열심을 내고, 정직하고, 진지하다고 할지라도 자신들을 죄로부터 구원할 수는 없었다. 세상의 빛이고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들을 구원하실 수 있으셨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그리스의 문화와 지식에 의해서 쇠뇌당하여 명예와 영향력을 얻기에 급급하였다. 그들은 경건한 조상들이 자신들에게 물려준 오래된 표준을 고집스럽게 집착하는 것보다는, 세상의 교육 표준을 수용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임무를 더욱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영향력을 잃어 버리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참된 종교적 명예를 포기하게 되었고,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메시아 구세주를 거절하게 되었다. 높은 지식과 학위와 명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해서, 그들은 영성을 잃어버리게 되었으며, 또한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리게 되어서, 구세주를 보았고 만졌으며 말씀을 들었을지라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서 구세주를 못박아 죽여야만 하였다. 메시아를 거절하였던 유대인들의 역사는 반복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