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구원이 있습니까?
저자: 짐 혼버거 장로 : 미국 몬타나 시골에 살면서 가정 회복 미니스트리에 전념하고 있음
나와 아내는 5일간에 걸친 집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우리는 이번 집회가 얼마나 잘 되었는가에 대해서 말하였는데, 특히 우리 중의 한명이 모세의 죄에 대해서 진지하게 설교했을 때,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에 역사하셨던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모세의 죄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반석에게 명하라” 고 말씀하셨는데, 모세는 지팡이로 바위를 내리쳤던 것만이 아니었다 (민수기 20:8). “패역한 너희는 들으라. 우리가 이 바위에서 물을 나오게 해야만 하겠느냐?” 라고 말했던 것 역시 모세가 범한 죄였다. 성경은 모세의 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모세가 자기 입술로 경솔하게 말하였도다.” 시편 106:33. 물을 바위에서 흘러나오게 하셨던 분은 하나님이신데, 모세는 “우리가 물을 나오게” 라고 말하는 죄를 범하였다. 하나님께로만 돌아가야 할 영광 속에 자신을 포함시키는 죄를 범하였다. 그는 마치 자신이 무슨 공이라도 세운 것처럼, 백성들 앞에서 자신을 과장하고 높이 들어 올렸다. 그는 잠시 부주의 함으로써, 백성들의 주의와 관심을 하나님께만 돌리지 않고, 자기에게도 돌렸던 것이다. 역사를 통하여, 이러한 일들이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의 믿음을 예수 그리스도께만 두도록 하지 않고, 인간에게 두도록 하기 때문에 이러한 잘못이 발생되는 것이다. 모세는 이러한 죄로 인해서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번 집회에서, 내가 이러한 말씀을 들었을 때, 성령께서 나에게 질문하시기를, “짐, 너는 최근에 있었던 성공적인 집회의 영광 중에서 얼마를 네 자신에게 돌렸니?” 라고 하셨다. 나는 모세가 범했던 죄를 위해서 변명할 수 없으며, 나와 여러분들의 죄를 위해서 변명할 수도 없다. 형제 자매 여러분들이시여,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행하였던 것을 우리 자신의 영광으로 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물론 이번 집회에서, 나와 내 아내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개심하게 되었지만, 모든 영광과 모든 명예와 모든 능력은 하나님께로만 돌려져야만 한다. 나는 성령께서 내게 하셨던 말씀으로 인해서 얼마나 심한 책망을 받았는지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용서하시면서, 하나의 중요한 교훈을 내게 보여주셨는데, 그것은 우리가 높여야 할 것은 말씀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전달하는 말씀이라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부주의하고 영적으로 민감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육신이 되신 말씀, 즉 그리스도께만 믿음을 두지 않고, 사람이나 사람이 만든 기관에 믿음을 두기가 얼마나 쉬운가! 때때로 말씀과 기별을 전하는 사람이 주의하면서 지혜롭게 처신한다고 할지라도, 사람들은 은연 중에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신뢰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패역한 너는 이제 들으라” 고 내게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나의 부주의함으로 말미암아, 나의 설교를 들었던 어떤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끌지 아니하고 내 자신에게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우리 자신에게로 이끄는 일을 매우 자연스럽고 겸손하게 보이는 방법으로 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러한 모습을 위험스럽게 보신다. 사도 베드로가 이스라엘의 위정자들, 지도자들, 서기관들, 그리고 안나스와 가야바 앞에서, “그러므로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라” 고 외쳤던 것은 하나님의 진리이었다 (사도행전 4:12). 하나님께서는, 내 자신이 먼저 투명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과, 모든 장소에서 그리고 언제나, 각 사람들을 능력으로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라는 것을 나타내야 한다고 경고하셨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투명한 도구가 되어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수를 직접 마실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0:4에서 말했던 것처럼, 영적 반석을 가리켜야 한다. “모두 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랐던 그 영적 반석에서 나온 것을 마셨으며, 그 반석은 그리스도셨느니라.”
생수가 나왔던 반석은 그리스도이셨다. 반석은 모세도 아니며, 이스라엘 백성들도 아니고, 목회도 아니며, 어떤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교회도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반석이셨으며, 그분께서 생명수 이셨고, 남은 무리의 구원자가 되셨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인도하실 것이다. 우리의 눈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지지 말아야 하며, 도구들을 사용하시는 분께 맞추어져야 한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모든 세대들을 위한 인도와 경고로써 기록된 것이다. 유대 교회는 세상 사람들의 주목과 존경과 영예를 자기 자신에게 돌리고자 하였으며, 백성들로 하여금 교회 안에서의 안전을 추구하도록 교육시켰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과 시도는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들의 그러한 태도와 노력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구세주를 거절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자신들을 하나로 묶어서 “우리”라는 태도를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철저하게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스도께 모든 영광을 돌리기 보다는 자신들에게 더 많은 것을 돌림으로써, 백성들을 깊은 기만에 빠지도록 만들었다. 그들은 그러한 자신들의 태도를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였지만, 그들은 완전히 잘못된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었다. 유대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조상인 모세의 죄를 그대로 답습함으로써, 스스로를 높였다. 그들은 자신들을 높이고 존중하는 것이 하나님을 높이고 존중하는 것이라고 백성들을 교육시켰다. 그들이 그러한 죄를 회개하지 않음으로써, 결국에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게 된 것이다. 그들은 백성들의 믿음을 예배 제도 자체에 두도록 잘못 인도하였다. 유대 지도자들은 하나님과 자신들을 하나로 묶는”우리”라는 태도를 가짐으로써, 이스라엘의 멸망을 촉진시켰다. 그들은 사람들의 믿음을 참된 해결책보다는 “도구”에 두도록 함으로써, 자신들을 높이도록 유도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를 높일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신 그리스도를 높이는 그리스도인만이 마지막 시대에 살아남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만을 높이는 대신에, 그분과 나를 함께 묶어서 “우리”라는 태도를 보일 때, 그분께서는 “패역한 너는 이제 들으라”라고 경고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백성들의 시선을 어떤 사람이나 어떤 기관이나 어떤 조직이나 어떤 제도로 이끌지 말고, 그리스도께만 이끌어야 한다. 우리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 때, 그분께서는 우리를 패역한 무리로 간주하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마지막 날에 다음과 같은 선언을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하자. “그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2-23.
어떻게 이런 사람들에게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실 수 있을까? 그들이 행했던 모든 일은 “그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인도한 사람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였는가? 아니면 자신들에게로 인도하였는가? 나는 미국에 있는 텔레비젼 방송 목사들의 추문을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모두 “그의 이름”으로 사업을 하였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사람들을 그 자신에게로, 그들의 사업으로, 그들의 교단으로 이끌지 않았는가? 그들은 사람들에게 진리를 던져준 상태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하도록 유도하는 대신에, 그들 자신들을 신뢰하도록 유도하였다.
형제자매들이시여, 이것은 오늘날 심각한 문제이다. 나는 이것을 “잘못 놓여진 믿음”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신뢰를 “교회”, 또는 목회 사업, 자신들이 믿고 있는 교리나 개혁, 또는 자신의 생애에 감화를 끼친 어떤 사람에게 두게 될 때, 믿음은 잘못 놓여지게 되며 그리스도는 소외당하게 된다. 이것이 잘못 놓여진 믿음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 한 분만을 보도록 인도하지 않고, 하나님과 자신을 함께 보도록 인도한 죄를 범하였다. 모세는 하나님의 진리가 통과하는 투명한 도구였지, 빛의 근원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교회나 어떤 선교 기관도 하나님의 투명한 도구가 되기를 기도해야지, 백성들의 존경과 믿음을 교회나 선교기관 위에 두도록 해서는 안 된다. 백성들의 믿음을 하나님께만 돌리도록 하자.
“당신의 능력으로 창조하셨던 나무를 저주하신 그리스도의 처사는 모든 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고가 된다” 시대의 소망, 영문 584. 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선택함을 받은 유대민족을 상징하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을까?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그 무화과 나무에서 그럴듯하게 무성한 잎 외에는 아무 것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유대교회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모습을 보셨기 때문이다. 그 무화과 나무는 잎이 무성하여 사람들에게 생명을 줄 수 있을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생명이 없었고, 그럴듯한 잎사귀들만이 매달려 있었다. 만일 교회가 교인들에게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대신에, 교회 자체를 따르도록 유도한다면, 물론 겉으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겠지만, 실제에 있어서 그러한 태도와 느낌을 교인들에게 주면서 그리스도의 자리를 차지한다면, 교회는 은혜의 도구가 되는 대신에 저주의 대상이 될 것이다. 교회가 교인들을 교회 그 자체로 이끌어서, 조직의 유지, 조직에 대한 충성, 조직 안에 있는 안전감 위에 백성들의 초점을 맞추도록 인도한다면, 교회 그 자체가 백성들에게 저주가 되게 된다. 지금까지 사람을 구원한 어떤 조직이나 제도나 교회가 없었다. 유대 교회, 재림 교회, 아니 어떠한 교회 안에서도 구원은 발견될 수 없다. 다음과 같은 경고의 말씀을 잊지 말자. “유대인들은 그들의 구원의 희망을 그들이 이스라엘과 연결된 사실에 근거를 두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내가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과 연결되었다고 해서 너희들이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 그분의 약속의 상속자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나를 통하여서만 영적 생명을 받을 수 있다.” 시대의 소망, 영문 675.
예수께서는 “나를 통해서만 영적 생명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교회는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투명한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 이론적으로만, 또는 말로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유대교회가 그렇게 되었듯이, 재림교회 역시 패역한 교회가 될 것이다.
사람들에게 약속된 메시아인 그리스도를 가리켜야 할 유대 교회가 자신의 조직과 조직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 그리고 교회 자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구세주께로 돌아가야 할 교인들의 충성을 중간에서 빼앗아 버리는 교회가 되었다. 교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십자가에 매달리신 그리스도를 소개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구세주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선동하였다. 이 얼마나 슬픈 역사인가! 이와 동일한 위험이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세계 어디를 가든지 이러한 소리를 듣게 된다. “조직을 강화하라. 조직에 충성해야 한다. 조직을 떠나지 마라. 조직 안에 구원이 있다.” 이러한 말과 글은 교인들의 믿음의 초점을 사람들 위에 두도록 유인하는 것이 된다. 백성들의 믿음을 잘못 두도록 하지 말라. 모세의 죄를 답습함으로써, 하나님께로부터 패역한 자라는 선고를 받지 말라.
그대들이 다니는 교회는 그대들을 교회로 이끄는가? 아니면 그대들을 시험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능력있는 구세주께로 이끄는가? 내가 그대들에게 호소하는 바는 그대들에게 교회를 포기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대들 가운데 존재하는 교회의 실질적인 주인되신 예수께 접붙인 바 된 자들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깨우고 부흥시킬 수 있는 것이다. 교회를 저주하지 말고, 교회 안에 존재하는 악으로 인하여 통곡하자.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보시면서 우셨던 것처럼…. 우리가 진리를 버릴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교회를 버릴 수 없다. 모세에게 아무런 능력이 없었던 것처럼, 교회 그 자체에는 아무런 능력도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아무런 능력이 없는 것처럼,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아무런 능력이 없다. 세상에 있는 모든 기계에서 엔진을 뜯어낼 경우, 그것들은 아무런 쓸모가 없어지게 된다. 어떤 기계가 엔진과 연결되어 있다면, 그것은 결코 자신이 움직이는 능력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리지 않고 그리스도이신 엔진에게만 돌리게 될 것이다.
동일한 위험이 자양선교기관에도 존재한다. 사람들의 믿음을 기관 자체로 이끌 수 있다. 몇 해 전에 텍사스 웨코에서 있었던 사건은 지지자들의 마음을 어떤 사람이나 목회로 이끌어 갈 경우에 생기는 비극이었다. 독립 미니스트리를 운영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나, 모두 이 점을 주의해야 한다.
교회와 자영선교단체들 모두 참 복음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어떤 교회와 어떤 자영선교기관은 복음 이외의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데리고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로 끌고 온다. 참된 복음만이 영혼들을 하늘을 위해서 준비시킬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사도 바울의 말씀을 기억하자.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디모데후서 3:5.
형제자매들이시여, 이 글을 통하여 나는 모세의 품위를 실추시킨 것이 아니며, 교회나 자영선교기관을 버리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신 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와 모든 선교기관이 사람들의 믿음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놓을 수 있도록 인도하자고 호소하는 것이다. 모세의 죄를 기억하자. “우리가 할 수 있는 바를 모두 한 다음에, 우리는 자신을 아무 유익도 주지 못한 종으로 여겨야 한다.” 성경주석, 5권, 1122. 모든 영혼들의 눈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데에만 총력을 기울이자.
그리스도의 말씀과 율법을 어깨에 매고 있는 사람들은 매 설교마다, 매 글마다,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야 한다. 아울러 영혼들이 그리스도께로 인도되는 통로는 오직 진리뿐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도록 하자.
모든 세대와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라는 초청장이 보내어졌다 (이사야 55:1).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에서 “서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요한복음 7:37). 거룩한 성경 말씀이 종결되는 요한계시록에서, 이 은혜로운 초청은 다시 한번 더 울려 퍼지고 있다.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요한계시록 22:17.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시여, 우리를 초청하는 분은 교회도 아니며, 자영선교기관도 아니며, 어떤 사람이나 조직도 아니다. 우리를 초청하시는 분인 예수 그리스도께만 우리의 믿음과 마음을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