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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자영 선교 기관을 인준하셨는가?

저자: 쟌 그로스볼 목사

    하나님께서 교회로부터 행정적 재정적으로 독립하여 선교 사업을 하라고 명하신 일이 있는가? 하나님께서 독립 선교 기관의 활동을 제정 하셨는가? 독립 자영 선교 기관의 제도는 아주 오래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저 몇 년밖에 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 시대에도 독립 자급 선교인들이 있었다. 독립이라는 말은 혼자 떨어져나가 자기 자신의 일을 한다는 의미로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결코 독립한 일이 없다. 우리는 독립이란 말을 잘 이해해야 한다. 마태복음 24:3-4에 보면 제자들이 주님께 이렇게 물었다.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니까?” 무엇이라고 주께서 대답하셨는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것이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첫번째 대답이었다. 성경은 우리 중에 많은 안전한 교사들도 있을 것에 대해 말하였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는 피차 권면하였다. 그들은 주께서 인도하시는 분들과 상담하고 함께 일하였다. 하늘 나라에서도 그러한 방법으로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하늘 천사들은 아주 조직적으로 일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모든 일도 잘 짜여 있다. 만일 우리가 짜임새 있게 일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일 하실 수 없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 대로 성공할 수 없다.

    내가 “독립”이라고 말할 때는 어떠한 교단에 의한 지배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독립 자영 목회를 허락하셨는가? 마태복음 21:23절을 보면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가로되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묻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누가 당신들에게 이런 일을 할 권한을 주었는가?” 라든가 “당신들의 집회는 허가를 받은 것인가?” 혹은 “당신들의 목사는 신임서가 있는 목사요?” 아니면 “모여서 성경 공부하라는 허락을 얻었는가”라는 등의 질문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당신이 하려고 하는 일이 인가를 받은 일인가? 당신들의 직원들 가운데 대회의 대표가 있는가? 당신들은 대회의 인준을 받았는가? 대회의 인준을 받지 못했으므로 때때로 당신들을 교회를 대적하는 자들이라고 결론 짓는다.

    그리하여 마침내 “만일 당신들이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면 출교를 시킬 수 밖에 없다”고 하거나 혹은 “당신의 목사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하거나 “당신들은 이제 더 이상 이 교회의 일원이 아니요”라는 최후의 통고를 받게 된다.

    마태복음 21:23을 다시 읽어 보자. 그들은 “무슨 권세로”라고 물었다. 예수께서 산헤드린의 인준을 받으셨던가? 아니다. 그런 일이 없다. 다른 어떤 학교의 졸업장을 가지셨던가? 아니다. 침례 요한은 어떤가? 그도 역시 인가도 졸업장도 없었다. 예수님이나 침례 요한은 자기들이 하는 일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통로”를 통해 허가를 받으신 일이 없다. 그분들은 인준을 받지 않은 자들이었다. 집회도 허가 받지 않은 집회였다. 그분들의 목회는 인준을 받지 않았었다. (시대의 소망 132-133, 참조)

    친구들이여, 나는 여러분들이 이 주제가 현재 얼마나 큰 문제가 되어 있는지 깨닫게 되기 바란다. 나는 지금 1991년 3월 30일에 발간된 한 문서를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는 사람들이, 다른 어떤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지 혹은 않아야 할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에 대한 열가지 질문이 기록되어 있다. 그 세번째 질문은 “당신은 대총회 위원회의 인준을 받았습니까?”라는 질문이다. 예수님께서 사시던 당시처럼 만일 여러분들이 “예수의 말을 들으러 갔었지요?” 또는 “침례 요한의 말을 들으러 가지 않았어요?”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생각해 보자. 아니 좀더 거슬러 올라가 이사야의 시대로 올라가 “이사야에게 갔다 왔죠?” “엘리야의 말을 듣고 왔습니까? 엘리사의 말을 들으러 갔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생각해 보자. 이런 질문이 그들에게 메시아를 거절하게 하고, 가장 위대한 선지자를 거절하게 하였다면 오늘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을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겠는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우리가 질문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급 선교 기관을 인준하셨는가?”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분의 권위에 도전을 받으셨다.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가르칠 권한을 누가 주었는가? 성전에 와서 공중 앞에서 말할 권한을 어디서 받았는가?” 이 때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대답하셨는지 주목해 보시기 바란다.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요한의 침례가 어디로서 왔느냐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저희가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만일 하늘로서라 하면 어찌하여 저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만일 사람에게로서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마 21:24-27).

    여기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를 주목해 보라.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 그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침례 요한에게 나타났던 하나님의 섭리 속으로 인도하셨다. 그 분은 말씀하시기를
    “요한의 침례가 어디로서 왔느냐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그들이 올바른 대답을 할 수도 있었다. 그들은 그 대답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이 진실을 말하면 곤란할 것으로 생각했다….

    유대 사람들이 요한의 권세가 하늘로부터 왔음을 인정했었더라면 예수님의 권위가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답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진실한 대답이 하기 싫었던 관계로 거짓말을 하였다. 하나님께서 독립 자영 목회 사업을 인정하셨는지에 대한 대답은 예수님 당시와 같다. 그 때와 같이 과거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로 돌아가 하나님께서 무엇을 인준하셨고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여러분들은 천주교회와 개신교회의 차이점을 아는가? 개신교회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최고의 권위였다. 모든 것이, 교회의 권위까지도 그 권위 아래 있었다. 엘렌 지 화잇은 말하기를 예수님은 개신교도이셨고 자기도 개신교도이며 재림교도들도 모두 개신교도이며 우리도 개신교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로마교회는 교회의 권위가 최고의 권위이며 성경 말씀의 권위까지도 교회의 권위 아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천주 교회와 개신교회의 다른 점이다.

    1888년 우리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단은 큰 위기를 당한 일이 있었다. 그 당시 무슨 일이 있었던 지는 “목사에게 보내는 권면”에서 읽어 보기 바란다. 근본 문제 중에 하나는 당시 재림 교회가 연약한 인간을 하나님의 위치에다 놓음으로 천주교회가 범하고 있는 똑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유한한 인간이 동료를 지배하려고 노력하는 일은 성령께서 맡으신 일을 가로채는 것임으로 조심하여야 한다… 그들의 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 아닌 것임을 깨닫게 해주며, 내 마음속 깊이 느끼게 하는 것은 그들이 다른 동료 인간을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른 사람들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시지 않았다. 주제 넘게 동료 인간들을 다스리려 하는 자는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업무에 그들의 손을 대는 것과 같다.”

    “미네아폴리스에서 혼란을 일어나게 한 그 정신을 계속 품고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 대항하는 자들이다. 베틀크릭의 우리 출판소에서 오랫동안 나타내온 정신에 온 하늘이 분노하고 있다.” 목사들에게 보내는 편지, 76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하는 일로 인해 온 하늘이 분노하는 그러한 일을 하기를 원하는가? 1880년대의 우리의 사업에서 그러한 일이 있었다. 그래서 1888년 미네아폴리스에서 그러한 위기를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유한한 인간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사업을 다스리고 조종하려는 정신 때문에.

    “자신들이 거짓 선지자임과 기만자임을 그의 품성과 생애로써 증명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거나 용납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은 세상에 알려진 사람 중 가장 훌륭한 교사를 정죄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던 바리새인과 같아질 수 있다. 오늘날도 어떤 이들은 그와 꼭 같은 일을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배우게 하시기 위해 고안해 놓은 공과를 배우려는가? 우리는 우리의 동료 인간의 양심에 어떠한 것도 강요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만일 그대가 베틀크릭에서 여러 해 동안 해온 그러한 일을 위한 위원회의 위원으로 임명되었다면 사임하도록 하라. 그리고 무한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미네아폴리스 총회에서 그리고 그 이후 줄곧 가졌던 생각과 같은 그러한 위치에 그들을 놓으시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이 동료들의 양심이 되어주려 하는 사실에 대해 깊이 우려하는 바이다.” (상동, 294-295) 이것이 대총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렇다면 지방 교회나 대회는 어떨까?

    “이상한 것이 우리 교회 안에 들어왔다. 그들의 동료 사역자들에게 지혜로운 조력자가 되어야 할 자들이 교회 안에서 왕과 통치자로 세움을 입은 양 착각하고 어떤 형제에게는 이것을 하시오 라고 명하고 또 다른 형제에게는 다른 것을 하도록 명령하고 또 다른 형제에게는 이러 이러한 방법으로 일하시오 라고 말한다. 어떤 곳에서는 사역자들에게 높은 책임을 맡은 사람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면 대회에서 주는 봉급을 보류할 것이라고 말한 일이 있다 한다.” (상동, 477)

    “내가 이렇게 적나라하게 기록하는 이유는 목사들과 신자들이 더욱 더 유한한 인간의 지혜를 신뢰하고 혈육을 그들의 능력으로 여기도록 유혹을 당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대회장들과 또한 다른 책임을 맡은 사람들에게 줄 다음과 같은 기별이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 차꼬와 멍에를 풀어주라. 그대들에게는 ‘모든 멍에를 깨어버리라’는 말씀이 주어졌다. 그대들이 사람이 사람에게 복종하도록 하는 일을 그치지 않는 한, 그대들의 마음을 겸손히 하여 어린 아이와 같이 주님의 길을 배우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업에서 그대들과 결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상동, 480-481)

    오, 친구들이여, 나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업을 하시는데 있어서 나와 결별하시기를 원치 않는다. 여러분들은 원하는가? 이 세상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나는 우리 주님을 잃을 수는 없다.

    이 문제가 미네아폴리스에서는 해결되지 않았다. 1888년 미네아폴리스에서 위기에 봉착했었으나 거기서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미네아폴리스에서 편만해 있던 편견과 논란들이 어떤 의미로도 아직 근절되지 않았다. 거기서 어떤 이들의 마음에 뿌려진 씨앗이 이제 생애 속에 움터서 열매 맺고 추수하기에 이르렀다. 윗둥치는 잘렸지만 뿌리는 제거된 일이 없다. 그것들은 아직 거룩하지 못한 열매를 맺어, 판단에 해를 끼치고 개념을 곡해시킨다. 또한 그것들은 그대들이 접촉하는 사람들을 기별과 기별자들에 대해서 소경이 되게 한다. (상동, 467)

    교회 지도층 인사들의 이러한 독선적 편견과 지배하려고 하는 정신 때문에 어떤 신실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인들은 이 교파의 조직하에서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사업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딜레마가 오늘날 소위 말하는 독립 자양 선교 기관을 낳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교육 사업이 제일 먼저 자급 기반으로 개혁되었다. 써들랜드 (Sutherland) 와 매간 (Magan) 이라는 두 교수들이 교육에 관한 예언의 신의 권면을 따르려 하였으나 도무지 불가능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테네시주 메디슨에서 자급 사업이 시작되었는데 그 이유는 교육 사업에 있어서 우리 교회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방법을 기록한 예언의 신의 권면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캘리포니아나 다른 여러 곳에서 우리의 사업에 어려움이 생기게 된 것은, 책임 맡은 사람들이 동역자들을 부리고 다스리는 데 대한 자기 역할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직분을 위탁 받은 자가 자신의 직위를 그것을 맡겨 주신 자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큰 권한을 가진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야기되는 것이다.
단순한 조직과 질서가 신약 성경에 잘 나타나 있다.” (폴슨 증언 모음, 298)

    만일 여러분들의 교회의 조직이 신약 성경의 제도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그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 아니다.
    갈라디아서에 있는 사도 바울의 기록은 세계 교회 본부에 보내는 것인가 아니면 갈라디아 교회의 신자들을 위한 것인가? 그는 그것을 지방 교회를 위해 쓰고 있다 (갈라디아 1:2를 보라). 그 사람들에게 무엇이라고 했나?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다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유명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명한 이들은 내게 더하여 준 것이 없고” (갈 2:4-6) 신약 성경의 가르침은 어떤 이가 여러분들의 교회에 와서 어디서 왔는지 간에 진리에 부합하지 않는 말을 하면 우리는 반대하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8) 바울은 하늘의 천사라도 진리에 반대 되는 것을 말하면 그리스도와 같은 태도로 그것에 대항해야 한다. 이것이 신약 성경의 입장이다.
    내가 여러분들이 깨닫게 되기를 원하는 것은 지도자들의 올바른 지위에 대한 주님의 말씀이다. “교회에서 책임을 맡은 자는 마땅히 (1) 지도하는 자, (2) 충언하는 자, (3) 권면하는 자, (4) 도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상동)

    그러나 지도자들이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일군을 명령하고 분부하도록 임명하시지는 않으셨다. 주께서는 당신의 유산인 당신의 백성들 위에 계신다. 만일 백성들이 주님을 떠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지 않은 권력을 행사하는 데까지 간다면 주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실 것이다. 지위가 사람에게 결코 제왕과 같은 권한을 주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겸손은 타락한 세상에 주신 훌륭한 교훈이다. 위대한 교사에게서 이 겸손을 배우면 사역자들은 그리스도와 같아질 것이다.” (상동, 298-299)

    왕과 같은 권력을 행사하려 하고 지배가 아니면 멸망이라는 원칙과 남을 주관하려는 생각 때문에 야기되는 문제로 인해 화잇 부인은 자영 선교 사업을 격려하고 메디슨 가까운 곳에 자영(自營) 학교를 설립하는 일에 협조하셨다. 화잇 부인은 그 학교를 재단으로 만들고 대총회 산하에서 독립을 유지하라고 권면하셨다. 이 기본 원칙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써들랜드와 매간은 대총회로부터 크게 반대를 당하였는데 특히 대총회장으로부터 큰 반대를 당하였다. 당시의 대총회장은 그들에게 결코 대총회를 벗어나서 일할 수 없으며 대총회의 지배를 받지 않고, 대총회가 문제를 결정할 수 없는 사업에 대해서는 결코 재림 교인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요구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그것이 문제였다. 1907년 5월 4일 캘리포니아주 로마린다에서 화잇 부인이 매간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하였다. “나는 당신과 당신의 동역자들이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하라고 맡겨 주신 사업이라는 확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대의 정신과 여러분들 중에 있는 어떤 사람들의 무관심은 당신의 일을 필요 이상으로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당신이 많은 격려의 말을 듣지 못하지만 쉽게 실망하지 않는 당신을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생각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메디슨 학교가 대총회에 소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자금이 그토록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에게 자금 호소를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즐겨워하고 재미있어 합니다. 이러한 정신은 시정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정으로 들어온 자금을 분배하는 데 있어서 주님의 지시에 조화되는 다른 사업들을 운영하기 위해 자금의 일부를 배당받는 것과 꼭 같이 당신도 자금 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스풀딩-매간 증언 모음, 411)

    “주께서는…사업에 어떤 한계를 정하시지 않는다. 써들랜드와 매간 형제는 저들의 사업에서 불필요한 방해를 받고 있다. 메디슨 학교의 조직과 경영 방법이 대총회의 지배하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자금이 지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나는 왜 이 학교가 대총회 산하에 있지 않고 대총회의 지배를 받지 않는지에 관해 잘 알고 있다.” (특별 증언, 시리즈B, No.11, 31,33)

    1907년에는 하나님께서 독립 자영 기관을 인준하셨는가? 한 교회로서 우리가 당하는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양심을 지배하려 하는 자들을 따를 수도 없고 주님의 권면을 따르자니 조직에 속해 있는 형제들에 의해서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다. 자신의 양심에 대해서 솔직한 사람들이라면 아무도 이 사실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거기서 이루어진 그 사업은 하나님께서 인가하신 사업이다. 이러한 노선의 사업을 분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 (상동) 친구들이여 이 말씀은 강력한 말씀이다. 여러분들은 이 문장의 후반부를 읽어 보았는가?

    메디슨이 조직되었을 때 화잇 부인은 그 기관을 지도하는 사람들에게 대회의 관할 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하기를 “이러한 노선의 사업을 분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글쎄, 대회의 간부 중에 한 사람이 당신네들의 이사진 중에 들어가지 않는 한 당신들을 인정할 수가 없소”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본다. 이러한 권면은 하나님의 계획에 정면적으로 반대되는 것이다.

    “주께서는 그들이 주님의 권면에 순종하는 한 언제까지라도 그들의 사업을 축복하시고 유지하게 하실 것이다.” (상동) 강조되어야 할 것은 여러분들이 누구와 더불어 일 하느냐가 아니고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권면을 따르느냐 또는 진리의 말씀을 따르느냐에 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입장이기도 하다.

화잇 부인은 메디슨 학교의 소유권과 경영권에 대해 아주 강경하였다.

    P.T. 매간이 1904년 8월 8일에 쓴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가 “W.C. 화잇과 오전 중에 기사(記事)를 수집하고 내쉬빌의 학교 법인 조직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오후에 대총회장 다니엘스 목사님과 대총회 서기인 프레스캇 목사님과 그랙씨와 와시번과 버드와 W.C. 화잇을 만나서 학교 법인 조직 문제에 대해 의논 했는데 다니엘스 목사님이 그것을 좋지 않게 생각했다.”

    이것에 대해 우리는 좀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예언의 신이 인가한 계획을 다음의 구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총회장이 반대하였다. “프레스캇은 우리가 너무 많이 떠나왔다고 생각했다. 다니엘스 목사님도 마찬가지였다. 버드는 다른 선생들이 우리의 독립을 부러워하여 자신들도 그렇게 하려 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날, 1904년 9일, “화잇 부인과 W.C. 화잇과 우리의 법인 문제를 이야기 했다. 그때 화잇 부인은 우리가 남부 연합회의 지배 아래 들어가서는 안된다고 하였다”고 기록하였다.

    1906년 4월 14일: “다니엘스 목사님과 오전 동안 함께 했다. 나는 왜 우리 학교가 자립해야 하며 진설병을 먹어야 하는지에 관해 설명했다.” 여기서 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진설병을 먹어야 한다는 뜻이 무엇인지 아는가?

    1907년 5월 7일, 파라다이스 벨리: “우리에 대한 대총회의 태도에 대해 화잇 부인과 이야기 했다. 사라 맥엔터퍼 부인과 릴리안이 거기 있었다. 우리가 대회 산하 기관으로 들어 가지 않는 한 우리는 사업을 진행할 권한도 자금을 보조받을 권한도 가지지 않았다고 행정자들이 생각한다고 말씀드렸다. 화잇 부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당신은 그들이 하는 일의 두배를 하고 있습니다. 기부금을 얻을 수 있는 데까지 얻도록 하십시오. 그 돈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지 그 사람들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취한 입장은 하나님의 입장이 아닙니다. 남부 연합회는 당신들을 소유할 수도 다스릴 수도 없습니다.’ “

    1907년 5월 14일: “나는 화잇 부인에게 대총회 산하의 기관이 아니면 돈을 줄 수 없다는 대총회의 입장을 이야기 하였다. 화잇 부인은 ‘다니엘스 목사와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이 문제에 대해 가지는 입장은 하나님께서 이 문제에 관해 가지시는 입장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기록해 둔 것이 있는데 지금 찾고 있는 중이라고 하였다.” (스폴딩-풀슨 증언 모음, 411 페이지)
1907년 5월 23일 세인트 헬레나: “오전 중에 W.C. 화잇씨와 같이 있었는데 화잇 부인이 다니엘스 목사에게 보내는 편지를 나에게 주었다. 그는 나에게 모든 자금이 자기네들의 손을 거쳐서 나가야 된다는 와싱톤 행정부의 고집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가 꼭 대회의 다스림을 받아야 된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907년 1월 19일에 화잇 부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오늘 나는 마음 속에 무거운 짐을 지고 다녔다…. 그대는 테네시주 매디슨에 있는 학교에 용기를 주어야 한다.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그곳의 일군들과 손을 잡고 사업을 지원하고 용기를 주고 모든 업무를 이행할 권리를 주어야 한다. 매디슨 학교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지급하여야 한다 — 앞으로 수고하는 교사들의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도록. (스폴딩-매간 증언 모음, 395-396)

    여기서 나는 몇가지 질문을 하고 싶다. 벌써 일세기 전에 시작된 이 자영 학교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의 학교인가? 그렇다. 여기 대총회가 소유하지도 운영하지도 관리하지도 않은 학교가 있는데 그 학교는 재림 교회의 학교였다. 그 학교는 다른 교단이 소유한 학교가 아니었다. 그 사람들은 재림 교회 교인들이었다. 그들이 메디슨에서 병원을 시작했는가? 그것이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의 병원이었는가? 그것은 합회가 운영하고 소유했었는가? 아니다. 자영 기관이었다. 합회로부터 독립해 있었지만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의 것이었다. 그 후 그들은 인쇄 사업을 시작하지 않았던가? 메디슨 법인체는 미 전역에 자영 학교와 요양소와 인쇄소를 시작했는가? 그렇다. 그 기관들은 합회가 운영하거나 소유하지 않았다. 그들은 재림 교인들이었는가? 물론이다.

새로운 교회의 출범?

    지방 교회가 합회의 통제를 받지 않는 자영 교회가 된다면 그 교회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가 될 수 있을까? 그 대답은 너무 분명하다. 나는 교인들이 합회 소속 교회로부터 분리하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많은 교인들이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그들 가정이 영적인 안정을 저해하는 영향을 계속해서 받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써들랜드와 매간이 자영 학교를 설립하였을 때 새로운 교회를 시작했었는가? 아니다. 그들은 권면의 말씀을 따르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인이고 싶었다. 만일 어떤 교우가 축제식으로 예배하는 교회에 다니기는 싫고 집 주위에는 그 교회 외에 다른 교회가 없어 가정 예배소를 차렸으나 아직 인정 받지 못했다면 그들은 재림 교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렇다. 그들도 재림 신자임이 틀림 없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권리를 주셨는가? 주셨다. 하나님의 사업의 어떤 분야에서라도 비록 자영 기관이라 하드라도 재림 교인일 수 있으며, 합회의 통제를 받거나 관련을 가지지 않아도 재림 교인일 수 있다. 1991년 3월 30일자 한 재림 교회의 출판물에 게재된 글 중 이 문제에 대한 한가지 질문을 떠오르게 한다. “모든 진실된 자영 선교 기관들은 자신들을 도와주는 후원자들에게 십일금과 헌금을 합당한 통로를 통해 바치도록 격려해야 할 것이다.” 이 언급의 유효성을 검토해 보자.

    경제적인 측면을 거론하지 않고 자영 선교 기관에 대한 문제를 올바르게 토의할 수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오늘날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양하기 위해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시지 않는다. 어쨌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지침을 주시고 어떻게 당신의 사업의 운영 방침을 주셨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업의 운영 방침이나 그 사업을 이루기 위해 고안된 방안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이러한 것을 알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성취하시려는 모든 종류의 사업에는 어떻게 유지하여야 한다는 계획이 수립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목회자들을 어떻게 부양해야 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 그렇다. 가지고 계신다. 요양원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하는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 그러면 이제 우리가 이런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지시한 방법을 따르지 않고, 우리의 방법을 고안해 본다면 어떻겠는가? 정말 안전할까?

개인의 책임

    영감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업을 유지함에 있어서의 우리의 임무에 관해 엄숙한 권면의 말씀을 주셨다. “만일 진리를 전파하도록 부르심을 받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화를 내리게 하실 것이다. 또한 깨끗한 손과 정결한 마음을 가지지 않고 이 거룩한 사업을 행하는 자들에게 엄중한 벌이 내릴 것이다. 마음과 생애가 성결하지 못하면서 진리를 전파하는 자에게 화가 이르는 것처럼 성결치 못한 자가 앉을 수 없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 그들에게도 화가 미칠 것이다.” 교회증언, 2권, 552

    “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저들의 눈을 뜨기를 호소한다. 그대도 알다시피 그대가 진리와 의와 조화되지 않는 자들의 결정을 시인하거나 실행하였을 때 그대의 믿음은 연약해지고 하나님과의 교제의 즐거움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목사들에게 보내는 권면, 95-96
    모든 글쓰는 사람들을 합회나 그들의 저서로 모든 이익이 나오는 출판 기관으로 돌아오라고 촉구하였으나, 화잇 부인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우리 개개인이 그분의 청지기가 되게 하셨다. 각자는 이 경비를 우리 스스로 투자해야 할 중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자금을 어디다 사용해야 할지에 관해 합회에 물어 보거나 또는 어떤 사람의 권고를 따라야 할 책임을 지워주시지 않으셨다. 그대가 빈곤한 도시나 마을의 복음 사업을 위해서 또는 가난한 지역의 사업을 위해 합당하다고 생각되면 사용하도록 하라”고 했다 (Phamplets In The Concordance, 2권, 467).

    메디슨 학교가 시작되었을 때, 일기의 언급에서 본 바와 같이 대총회와 메디슨의 사람들과의 가장 중심된 논쟁점은 바로 금전 문제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감의 말씀은 모든 경비는 한 조직을 통해서만 취급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모든 경비는 단 한 사람의 대리인이나 한 조직을 통해서만 취급될 수 없다. 어떤 테두리 내에서 경비를 모으는 것을 금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는 합회의 직원에게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이 문제에 관해 나에게 거듭거듭 보여 주셨다. 여기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증언을 전한다. 그대가 어디에 있든지 그대의 금할 수 있는 권한을 거두어 들이라. 하나님의 사업이 그렇게 속박을 받아서는 안된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훌륭한 책임의 짐이 자신들에게 지워졌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런 임무를 주신 일이 없다.” 스폴딩-매간 증언 모음, 421-422

    “그대는 내가 속해 있는 부서가 거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입장에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주님을 신뢰하라. 남부 지역 사업의 안정을 위한 열려진 길이 있다. 사람들에게 호소하라. 이것이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그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여기의 형편을 우리 출판물을 통해서 보내지 말라. 그러면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에게 직접 보내라. 하나님의 방법이 꼭 사람의 방법과 반대되는 것은 아니다. 크거나 작거나 간에 도와줄 자금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자금이 그대의 포도원의 결핍된 부분으로 직접 들어 오도록 하라. 자금이 꼭 통해야 되는 특별한 통로를 하나님께서는 한번도 지정하신 일이 없다.’ ” (상동)

    이렇게 간단명료(簡單明瞭)한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지 못할 것이다.

    일어난 일 때문에, 만연한 배도 때문에 하나님의 사업을 끝마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자영 선교 기관을 인준하셨다. 아무도 여러분들에게 합회의 인준이 없는 자영 기관들은 재림 교회의 기관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라. 자영 학교가 재림 교인일 수 있고 자영 요양원이 재림 교인일 수 있고 자양 출판소가 재림 교인일 수 있고 자영하는 지방 교회가 제칠일 안실일 예수 재림 교회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갈라디아서 2장의 사도 바울의 말씀대로 사업을 시험해 보는 것이다: 진리에 부합하는 것인가? 만일 영감의 말씀에 부합되는 것이라면 신임해도 좋다.

    어떠한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이제 곧 진리가 승리하게 될 것이다. 진리가 승리할 때, 나는 진리의 편에 있기를 원한다. 여러분들도 원하시는가? 어떤 일이 닥쳐올 지라도 진리에 충성하기 위해 기도로써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