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게 파송된 자를 돌로 치는 자여
강병국
“지금 해야 할 사업은 이 마지막 자비의 기별을 타락한 죄악 세사에 경고해 주는 일이다. 새로운 생명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로잡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 안에 분열이 있을 것이다. 두 무리가 형성될 것이다. 알곡과 가라지는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된다”(가려뽑은 기별 2권, 139).
지금 세상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교회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알곡과 가라지들이 분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일들입니다. 진리를 알고 체험하지 않은 자들은 자신이 가라지로 익어가고 있는지 조차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교회의 흔들림은 곧바른 증언 즉, 표준을 높이고 백성들의 마음에 호소하여 진리에 매달리도록 이끄는 증거 때문에 이르러 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슬픈 사실은 이러한 곧바른 증거의 말씀들이 전하여질 때, 교회의 운명이 달린 이 엄숙한 기별이 완전히 등한시 되거나 경솔히 평가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러한 현실이 눈앞에서 이루어져가는 것을 보면서 하늘을 향하여 탄원하게 될 뿐입니다.
마지막을 통과하기 위하여 귀중한 빛으로 주신 예언의 신을 자세히 읽으며 개인적으로 얻은 진리에 대한 확신 가운데 서지 않은 자들은 결국 다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자기의 구원을 남에게 의존해온 자들은 그들과 함께 멸망당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외치며, 다가오는 멸망을 경고하던 하나님께로부터 파송된 종들은 항상, 분리주의자요, 이단설을 가르치는 자요, 교회를 파괴시키고 불필요하게 소요를 일으키는 자들로 지목 당해 왔습니다.
교회에 종교개혁을 부르짖는 일이 생겨나면 언제나, 교회의 조직과, 평안하고 안정된 분위기를 방어하기 위하여 교회의 충성파(?)들이 일어나 곧바른 증언들을 대항하여 싸워온 사실을 우리는 교회역사를 통하여 배워 왔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꼭 알고 지나가야 할 사실은 그 충성파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그는 이방 나라가 아닌 유대 백성들에게, 그것도 하나님의 집인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기별을 전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생각해보십시다. 예레미야 26장 1절부터 8절은 우리에게 놀라운 역사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유다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의 즉위 초에 여호와께로서 이 말씀이 임하니라 가라사대,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여호와의 집에 와서 경배하는 자에게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게 한 모든 말을 고하되 한말도 감하지 말라.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떠나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인하여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내 법을 행치 아니하며 내가 너희에게 보내고 부지런히 보낸 나의 종 선지자들의 말을 이미 듣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가 만일 다시 듣지 아니하면 내가 이집을 실로같이 되게 하고 이 성으로 세계 열방의 저주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집에서 이 말을 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듣더라. 예레미야가 여호와께서 명하신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고하기를 마치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그를 붙잡고 이르되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실로는 옛날 예루살렘 성전을 짓기 전에 벱궤를 보관해두었던 성소가 있던 자리로서 엘리 제사장과 그 두 아들들의 죄로 인하여 블레셋에게 완전히 멸망되었을 뿐만 아니라, 블레셋 군대에게 법궤까지 빼앗기는 수치를 당했던 장소였습니다. 엘리는 신사였습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백성들에게 죄를 회개케 하는 곧바른 하나님의 증거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부드러운 자요 좋은 아버지였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도자로서 죄를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에게 미움 받기를 두려워하는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망하게 하는 자들이었음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성전에서 외치자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합세하여 잡아 죽이려 했습니다. 그것도 너무 분노하고 급하여 끌어낼 틈도 없이 성전 마당 안에서 죽이려 하였습니다.
분명히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안정을 위하여 예레미야를 죽이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성전 마당에서 그를 붙들어 죽이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철저하게 마귀의 기만에 빠져서 오류를 가지고 백성들을 오도하며 진리를 전하는 예레미야를 오히려 없애려 했으니 얼마나 큰 죄악이었습니까?
예레미야는 7장 8~10에서 그 당시 교회를 타락시킨 잘못된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폭로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 도다.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함이로다”
다시 말해서 죄를 지으면서도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는 가르침입니다. 오늘날의 현실과 얼마나 흡사합니까? 물론 죄를 지어도 좋다고 가르치지는 않지만, 우리가 타고난 죄의 본성 때문에 우리는 죄를 다 이기고 완전해 질 수 없다고 가르치는 것은 같은 종류의 거짓 교리인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이 우리 교회를 이렇게까지 타락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 8:11).
큰 환란과 위기를 앞두고 있는 교회를 향하여 외치는 “네게 파송된 자들을” 향하여 우리가 “돌로 치는 자(마 23:37)”들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합니다. 참으로 두려운 사건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교회를 향하여 울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겸손히 하나님께 부복하십시다!
옛날 이스라엘의 역사가 우리에게 다시 반복될 것이라는 예언이 제발 이루어지지 않기를 위하여 기도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