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독자적인 미니스트리
제프 라이히
오늘날 우리는 「독자적인 미니스트리들」에 관해 많은 것들을 듣고 있다. 「독자적인 미니스트리들」에 대해서는 교회 안팎에서 자주 논의되고 있는데, 어떤 이들은 그들의 활동을 위협적인 것으로 바라보며, 다른 이들은 훌륭하고도 충격적인 영적 양식의 근원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이들 중 어떤 미니스트리들은 건전한 판단력이 결여되며, 신학적인 가르침에 있어서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완연히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 내게는 의심할 바 없는 사실로 여겨진다. 그러나 어떤 미니스트리들이 좀 치우친 주장을 한다고 해서 모든 독자적인 미니스트리들을 치우치다고 밀어붙이는 것은 공정한 일이 아니다. 어떤 지방 교회들이 오류를 가르치고 있다고 해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전체가 오류를 가르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공정치 못한 것과 같이 일부 독자적인 미니스트리들이 오류를 가르친다고 해서 독자적인 미니스트리 전체가 오류를 가르친다고 판단하는 것도 또한 공정치 못한 일이다.
여기, 독자적인 미니스트리들이 가르치는 서로 다른 기별들을 한번 쭉 훑어보기로 하자;
1. 어떤 이들은 교회가 지금 바벨론이 되었으니 분리되어야만 한다고 가르친다.
2. 어떤 이들은 재림교회의 선구자들이 고수했던 재림신앙을 옹호한다.
3. 어떤 이들은 지독하게 비판적이며, 교단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배도를 집요하게 파헤친다.
4. 어떤 이들은 예언의 사건들을 미래에 적용하는 것을 가르친다.
5. 어떤 이들은 교단에 의해 수용되며, 일반 개신교회들이 가르치고 있는 것들만 가르치고, 양떼들이 필요로 하는 현대진리는 더 이상 가르치지 않는다.
6. 어떤 이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이상한 교리들만을 가르치느라고 모든 정력을 다 소모한다.
7. 어떤 이들은 백성들로 하여금 이 세상과, 혹은 자신들이 속한 지방교회의 거센 주장과는 반대될지라도 성경과 예언의 신에 나타난 진리의 원칙들을 고수하도록 격려하며 균형진 현대진리를 가르치려고 애쓴다. 여러분들은 어떤 독자적인 미니스트리를 위에 열거한 어떤 부류 가운데 집어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가진 힘의 비결
1980년대 이후로 이런 미니스트리들은 신속하게 증가돼 왔다. 그들의 신속한 성장으로 인해 재림교단은 어떻게 그들을 대해야 할지 당혹케 되었다. 우리는 그에 대한 교단의 반응이 어떠한지를 보아왔다. 1988년에 북미지회의 년말 회의에서 용인이 가능한 독자적 목회를 위한 지침이 통과를 보게 되었다. 여러 미니스트리들이 이 11개의 지침에 의문을 표했는데, 대부분의 독자적인 미니스트리를 하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이들 지침들은 양면성이 있는 것이어서 더 명확한 정의나 지침들이 있어야 하며, 어떤 부분들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들로 생각된다.
1989년 12월 7일자 어드밴티스트 리뷰(Adventist Review)지에는 독자적인 목회와 재림교회 평신도들로부터 받는 그들의 경제적 지원에 관해 다룬 4번에 걸친 기사들중 첫 번째 것이 실렸다.(번역된 기사는 2월~5월호 미주 교회지남에 게재됨-편자 주).
독자적인 미니스트리들에 대하여 상표도용(본지, 15호, 6 참조), 출교, 용인 가능한 독자적 목회를 위한 지침 등을 통한 위협이나 혹은 4회에 걸친 어드밴티스트 리뷰지의 기사들이 다루어지면서도 한가지 명확하게 언급되지 않은 질문은: 왜 독자적인 미니스트리들이 번영하며, 왜 그리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는가? 이다. 이런 질문들에 대해 공정하고도 타당한 방법으로 답하지 않고 이런 미니스트리들을 다루려는 시도는 그것이 어떤 것일지라도 그 상황의 복합된 문제들을 풀기에는 불가능한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모든 조치가 그에 대한 반응조치를 초래하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이미 언급한대로 다음의 두 가지 질문이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1. 왜 독자적인 미니스트리들이 증가하는가? 2. 왜 사람들이 그들을 지원하는가?
진리를 수호해야 하되 이 사업은 예수님의 정신을 가지고 수행해야 한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이 화평과 사랑의 정신이 없이 일한다면 저들은 다시 회복할 수 없는 큰 손실을 보게 될 것이다
독자적인 미니스트리들이 존재하게 된 이유들은 꽤 많다. 그 기본적인 이유는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셋째 천사의 기별이 확산되는 것 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여러 해동안 우리는 정체된 물과 같이 가만있어 왔다. 독자적인 미니스트리들은 종종 여러분 자신과 같이 활동적으로 그리스도를 위한 사업을 하는데 가담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이들 미니스트리들이 생겨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한 교회로서 우리의 타락한 현재 상태 때문이다. 이런 슬픈 상채는 어떤 개인들로 하여금 독자적인 반작용들이 생겨나도록 했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반응으로서 이곳 저곳에서 생겨난 여러 미니스트리들이 서로 다른 동기와 존재 이유들을 표명하게 된 것이다. 어떤 이유가 있든 간에 평신도들은 셋째 천사의 기별이 더 널리 전파되는 것을 보기 위한 소망으로 그룹들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우리 교회 역사상 이같은 평신도 운동이 일어났던 때는 이전에 결코 없었다.
물론 어떤 미니스트리들은 교회의 상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여 백성들의 환심을 사서 돈을 끌어들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매우 정당한 활동을 벌여 나가는 다른 미니스트리들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미니스트리들은 그리스도 중심의 성경 공부를 시키는 방법, 매일의 생애에서 죄를 이기는 방법, 성소기별의 중요성과 그 외의 교리들을 가르친다. 그들은 어떻게 책과 전단을 발간하여 보급하는지를 알도록 사람들을 훈련시키며, 해외로 책자들과 전도지들을 보내고, 가정에서 실행될 수 있는 진정한 의료선교사업을 위해 사람들을 훈련시키며, 이 마지막 세대에게 있어서 건강기별이 얼마나 중요한지와 그 기별의 실제적인 적용을 가르친다. 그들은 또한 여러 해동안 우리 가운데로 살금살금 기어들어온 교묘한 오류에 대해 교회 안에 있는 백성들에게 경고를 보내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의 필요는 그들이 다니는 지방 교회들에서 충족되지 않는다. 사실, 우리가 한 백성으로서 할 필요가 있는 사상들이 제시될 때 그 사상들은 많은 교인들과 목사들에 의해 종종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들에게 주신 바로 그 진리가 우리 교인들에게는 주어질 수 없고 세상에만 주어져야 한다고 한다. 물론 교회마다 목사와 교인들의 사상에 따라 상황이 다르다. 어떤 교인들이 다른 교회 교인들이 그릇된 원칙 위에 서있는 것과, 우리가 받은 권면의 빛에 비추어 옳은 것을 설교하고 실행하지 않는 것을 볼 때 좌절과 실망과 낙담이 오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
어떤 독자적인 미니스트리들은 진리가 전진하는 것과 이 진리가 교인들 간에 살아있는 실재가 되는 축복을 누리게 하는 것이 되는 것 보기를 무척 원한다. 그래서 그들이 이 때를 위해 세상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진리를 전파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독자적인 미니스트리들은 한 교회로서 우리가 취해왔던 지난 40년간의 방향에 대한 반응으로서 생겨난 것이다.
충실한 거울인가 아니면 산산조각난 상인가?
어떤 독자적인 미니스트리들은 교인들이 다른 곳에서는 들을 수 없는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교인들에게 알려준다. 이 문제들은 교회에 의해서 널리 알려져야 하는데, 이는 우리가 교회이며, 몸의 어떤 부분이 영향을 입으면 몸 전체가 영향을 입는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독자적인 미니스트리들이 교인들에게 알려준 정보로 인해 교회의 많은 지도자들이 그들을 좋게 보지 않는다. 그들은 비판적이라느니 교회를 허물려 한다느니의 말을 듣게 된다. 그런 말이 어떤 미니스트리에겐 적용될 수 있으나 독자적인 미니스트리들 전부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어떤 이들은 사랑으로 경고하고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의 예언적 사명을 옹하고 설명하기를 원한다.
마틴 루터가 그의 당대에 했던 것처럼 교회 안에 들어오고 있는 오류를 지적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 동기와 태도는 자기가 의롭다는 정신과 보복하려는 정신에서 벗어난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잘못된 태도들이 소위 곧바른 증언을 한다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편만해 있는 태도들이다.
심지어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오류에 대해 백성들에게 경고하는 어떤 미니스트리가 균형진 태도를 갖추고 있을 때에라도 그러한 경고들을 읽는 사람들이 이러한 오류들을 대할 때 종종 과도히 행동하거나 그릇된 태도를 보인다. 이러한 반응은 불행하게도 그 경고를 처음으로 준 미니스트리가 곤란을 당하게 한다. 동시에 이 때를 위한 진리는 모든 교회에서 들려져야 한다. 시간은 짧다.
많은 이들은 우리의 잠자는 교회를 깨우기를 원하는데, 이는 교회가 이 세상이 목격했던 것 중 가장 큰 위기를 향하여 착실하게 돌진하고 있는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의 모든 불미스러운 일들을 발표함으로 잠자는 교인들을 깨워 흔들림이 있게 하고, 그렇게 하여 큰 외침이 시작되도록 하려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소식을 전하는 많은 뉴스레터(Newsletters)와 잡지들에는 자기가 의롭다는 어조가 과잉 표현된다. 만일 우리가 각 교인들 간에 진정한 부흥과 개혁을 보고자 한다면 이러한 류의 곧바른 증언 이상의 것이 있어야만 한다. 만일 우리가 백성들이 확실히 자르는 진리를 듣게 되기를 기대한다면 우리에게 겸손과 동정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만일 미니스트리들이 문제들을 지적하려 한다면 그들은 또한 그 문제들에 대한 실제적인 해결책들도 지적해 주어야만 하는데, 그렇게 하는 미니스트리들은 매우 매우 적다.
나는 하나님께서 이들 중 어떤 미니스트리들을 일으켜 세우셔서 교회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오류에 관하여 백성들에게 경고의 음성을 발하는 시온의 성벽 위에 선 파수꾼들로 삼으셨다는 것을 믿는다. 물론 그런 파수꾼들이 있어야 한다. 목사들의 책임은 양떼들을 돌아보아 그들을 오류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그들은 백성들이 자기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서 모든 교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시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어떤 목사들이 우리 재림교회의 선구자들이 옹호하던 재림신앙이 오류라고 지적하며 양떼들을 그런 오류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하는 때에 이르고 말았다. 진정 우리는 혼돈의 시기에 살고 있다.
엘렌 화잇은 교회 안에 있는 두 그룹에 대해 말했는데, 그녀는 그들을 자유주의파와 보수주의파로 부르지는 않았다. 이는 두 그룹 모두 자신들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때문이다.
독자적인 미니스트리에 있는 일꾼들이든 교단 내에서 일하는 목사들이든 논의되는 문제들을 다룰 때 올바른 정신을 나타낼 필요가 있다. 바로 이 점이 나자신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쓰러지는 부분이다. 다음의 권면을 기억하라.
“진리를 수호해야 하되 이 사업은 예수님의 정신을 가지고 수행해야 한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이 화평과 사랑의 정신이 없이 일한다면 저들은 다시 회복할 수 없는 큰 손실을 보게 될 것이다”(복음전도, 173).
“죄를 미워하고 책망하면서 동시에 죄인에 대한 동정과 친절을 나타내는 것은 어려운 재능이다”(사도행적, 494).
대부분의 “곧바른 증언”을 내가 읽거나 들을 때 그리스도는 그 속에서 빠진 것처럼 느껴지는 때가 많다. 우리는 많은 사실들을 파낼 수 있으나 만일 이 사실들이 그 해답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중심되어 있지 않다면 그들의 미니스트리와 일꾼들은 그들의 사명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된다. 나는 여러분들이 서로 다른 여러 미니스트리들을 점검해 볼 때 그리스도를 그들의 기별의 중심되는 주제로 취급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보게 될 것으로 믿는다. 우리는 영광의 소망 되신 그리스도께서 현대 진리와 분리될 수 없으신 분임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적에서 친구로
죠 엥겔케마이어(Joe Engelkemier)가 어드벤티스트 리뷰지(1989년 12월 7일자)에 쓴 기사에서 “ASI(재림교회 평신도 산업 봉사회; Adventist-Laymen’s Services ane Industries) 같은 조직은 교회의 영혼구원 사업을 크게 강화시킨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기사에서 언급되지 않은 것은 자급선교기관들이 현재 그러한 추앙을 받게 되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교단과의 사이에 가졌던 여러해를 거듭한 투쟁에 관한 것이다.
자급선교 사업은 시초부터 대회에게 있어서는 골치 아픈 것이 되어 왔다. 매디슨 대학의 역사나 제임스 에드슨 화잇이 주도했던 남부사업을 회고해보면 슬픈 사연들이 엮어져 있음을 발견케 될 것이다. 대회와 자급선교사업간에 있었던 갈등은 지난 몇 년간 극심한 것이었다. 자급선교사업은 대회와 가까이 머물면서 일하려 했고, 이제 교회는 그 사업을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고 있다. 여러해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표준을 낮추고 대회의 권위에 굴복하는 기관들은 교단의 총애를 더 많이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묵시(계시)가 없으면……
교회가 왜 독립 미니스트리들이 존재하며, 왜 백성들이 그들을 지원하는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면 현재의 추세를 멈추게 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이 미니스트리들은 교회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많은 교인들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나는 여러 사람들이 자기들의 지방 교회의 안식일 학교에 참석한 후에 “내가 왜 갔는가?”라고 하는 말들을 들어왔다. 목사는 리더스 다이제스트나 유명한 스포츠 지에 나오는 말들을 인용한다. 동시에 우리는 예언의 신은 강단에서 인용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사실, 엥겔케마이어 씨는 어드벤티스트 리뷰 지에 독립 미니스트리들이 성경보다 예언의 신을 더 많이 사용한다고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기사에서 반은 성경, 반은 예언의 신을 인용했다.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의 어떤 교인들보다 예언의 신을 받아들일 준비가 더 잘 돼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영적 혼돈의 시기에 우리를 지도하고 인도하기 위해 예언의 신을 선물로 주셨다. 예언의 신은 원수의 공작을 명확하게 간파하도록 주어진 것이다.
“사단은…진리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거짓된 것을 밀고 나가고 있다. 사단의 최후 기만은 하나님의 영의 증언을 무력하게 만드는 바로 그러한 성질의 것이 될 것이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멸망하리라)’(잠 29:18). 사단은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참된 증언에 대한 신뢰심을 동요시키기 위하여 온갖 방법과 종류가 다른 매개물들을 통하여 교묘하게 활동할 것이다.
“증언들에 대한 혐오감이 일어날 것인데 이것은 사단에게 속한 정신이다. 증언들에 대한 교회의 신앙을 동요시키는 것이 사단의 책략이 될 것인데 그 이유는 이렇다. 만일 하나님의 영께서 주시는 경고와 견책과 권고들을 귀담아 듣는다면 사단은 자기의 기만술을 펼 수 있는 길을 마련할 수 없으며 자기의 기만 속에 영혼들을 묶어둘 수 없기 때문이다”(가려 1권, 55).
한 이름, 두 개의 교회
지금은 한 개의 교회 이름 하에 두 개의 교회가 있는 셈이다, 양쪽을 다 만족시키려 노력하는 것은 결국 교단 전체 조직의 영적 및 물리적 붕괴를 야기시키게 될 것이다.
교회 안에 있는 이 둘의 대립되는 영향력은 박수를 치며 노래부르거나 들뜬 사교회를 한다거나 흥분을 자아내는 어떤 다른 인간적인 고안물을 교회 안에 들여온다고 해서 충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들은 진정한 연합을 가져오지 않는다. 한 목사는 자신이 한 안식일은 보수주의적인 설교를 하고 그 다음 안식일은 자유주의적인 설교를 할 것이라고 내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이런 식의 합리화가 마지막 시험을 위해 한 백성을 준비시키는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엘렌 화잇은 교회 안에 있는 두 그룹에 대해 말했는데, 그녀는 그들을 자유주의파와 보수주의파로 부르지는 않았다. 이는 두 그룹 모두 자신들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때문이다. 예언의 신이 두 그룹을 어떻게 분류했는지를 살펴보자:
“주님께서 교회 안에 진정으로 회심한 자들을 불러들이시는 동안에 사단은 회심하지 않은 자들을 교회 안으로 불러들인다. 그리스도께서 좋은 씨를 심고 계시는 동안에 사단은 가라지를 심고 있다. 서로 반대되는 두 영향력이 끊임없이 교인들에게 발휘되고 있다. 한 영향력은 교회의 정결화를 위해 역사하며, 다른 한 쪽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부패를 위해 역사한다”(TM, 46).
예레미야의 시대는 우리의 시대와 매우 유사하다. 우리는 그 당시의 역사를 연구하여 현재 시대에 적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진정한 연합과 행복은 오직 성령님의 개별적인 임재와 진리 안에서 발견되는 성령님을 통하여 올 수 있다. 교회는 교회가 가지고 있는 예언적 사명을 인식할 필요가 있으며, 제 궤도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지금 수침자의 숫자를 늘이려는 숫자놀음으로부터 발생된 태풍을 거두고 있다.
이 기사는 엥겔케마이어의 기사 가운데 그가 지적한 것을 생각나도록 해준다. 그는 우리가 수침자의 숫자가 늘어나지 않는 미니스트리들을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Adventist Review, 1989,12,7; 미주 교회지남 2월호).
우리는 다음의 말을 듣는다: “주님께서는 지금 많은 영혼들이 진리 가운데로 들어오도록 역사하지 않으신다. 이는 전혀 회심해보지 않은 교인들과 전에 회심의 경험을 가졌으나 타락한 교인들 때문이다. 이들 헌신하지 않은 교인들이 새로 회심한 자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주겠는가? 그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전하도록 주신 기별이 아무 효력이 없는 것으로 하지 않겠는가?”(6T, 371).
이 경고는 1890년대에 쓰여진 것이다. 오늘날 그 경고의 적용은 얼마나 더 절실한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양보다는 질에 더 관심이 있으시다. 나는 온 세계를 통하여 씨를 뿌리는 위대한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안다. 뿌린 씨에 물을 주거나 추수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씨를 뿌리는데도 많은 힘이 든다. 우리의 문제는 씨를 뿌리거나 물을 주는 것이 없이 추수해 왔던 것이다. 그에 대한 좋은 예를 지난 주 오클라호마 주에서 우리에게 온 한 편지에서 볼 수 있다:
“저는 대총회가 독립 미니스트리들을 반대한다는 것을 당신이 알고 있을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러나 우리 중 많은 이들을 깨워준 것은 당신의 기사나 잡지와 잡지에 실린 것 같은 기사들을 통해서였다는 것을 당신이 부디 알기를 바랍니다. 지(교단에서 발간하는 어떤 잡지)는 목마르고 배고픈 우리 라오디게아의 잠자는 영혼들을 먹여주지 않았습니다.”
이 편지는 우리가 하는 미니스트리와 또한 유사한 일을 하는 다른 미니스트리들에게 전달돼 온 많은 유사한 편지들의 사연을 반영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나는 이곳 북서부에 있는 한 교회에서 설교하게 되었는데, 11시 설교 예배를 위해 등단하기 전 장로님들과 함께 기도실에 들어갔을 때, 그중 제일 나이 많은 장로님께서 눈에 눈물이 글썽한 채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제프,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소. 나는 내 생애의 50년 이상을 이 교회에 바쳤는데, 처음에 내가 들어왔을 때와는 딴판의 교회가 되었소. 대단히 많이 변했소. 더 악화되고 말았단 말이오.” 그 다음에 그분은 우리 교회가 전에 전하던 진리와 지난 50년간 우리가 얼마나 그 진리에서 멀리 떨어져 방황해 왔는지를 말씀하셨다. 내가 결코 잊을 수 없을 참으로 슬픈 순간이었다.
누구에게 돈을?
엥겔케마이어 씨는 기록한다:
“독자적 미니스트리에 자금과 연금을 기부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당신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우리는 목사도 그 열매로 평가한다. 우리는 행정가나 교사, 그리고 피고용인도 이렇게 시험한다. 그러면 자금과 연금을 호소하는 자들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Adventist Review, 1989,12,7일자, 11페이지; 2월호 미주 교회지남, 13).
이점에 있어서 제안된 지혜는 참으로 훌륭한 것이다. 우리는 독립기관이든 교단이든 자금을 호소하는 자들의 열매를 시험해봐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지원하는 미니스트리들이 정말로 신뢰할만한지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거기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오직 교단만이 우리의 돈을 보내야 할 유일한 “통로”이며 창고라는 말을 들어온 것이다. 만일 그것이 진실이라면 엥겔케마이어 씨가 우리에게 돈을 보내야 할지 평가해봐야 한다는 제언이 있고, 우리 교단이 우리가 평가하는 기준에 미달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돈을 거기에다 보내야 한다. 교인들이 어떤 목사나 교회 행정가를 지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선택할 수 있을까? 만일 그들이 하는 미니스트리가 지원하는 자의 확신과 조화되지 않으며, 특별히 교회만이 자금이 유통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고 할 때도 말이다. 교단과 독립기관들 사이에 그 점에 있어서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돈과 권위에 관한 문제이다.
어떤 이들은 교단에서 발간하는 지면들에서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발간하는 지면에서 다음과 같은 표제를 보게 될 때 대회를 지원하는 것이 어려워짐을 느낀다:
“재림교인들 세계 교회 협의회(WCC)에서 친구들 발견하다”(카나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공중문제 담당인 더글라스 데브니히 박사, The Canadian Union Messenger, 1983, 9, 5일자).
“부활절 부활 행렬극단 그리스도의 희생을 경축하다-로마린다 대학 2학년에 재학중인 롸버트 스코렛츠 예수님 역을 담당함. 라씨에라 캠퍼스 교목인 스티브 에일리 연출”(The Recorder, 1988, 7, 18일자, 22).
“최근에 있었던 라씨에라 대학의 경력 기념 제전(Career Fair)에서 텔레비전 영화 ‘별다른 세계(A Different World)’의 영화배우인 도온 류이스(Dawnn Lewis)가 학생들에게 유흥을 위한 매체에서의 경력에 관해 학생들에게 강연함”(상동)
“하와이에 있는 조그만 교회가 상호사용을 이유로 재림교회와 접전중-1981년에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대총회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Seventh-day Adventist)’라는 이름을 미국 특허권 협회와 상호담당국을 통해 상호로 등록했는데……(재림)교단은 하와이에 있는 11명의 교인을 가진 교회를 상대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을 이유로 고소했다…. 적어도 6개의 재림교회 독립기관들의 간행물이 코나의 교인들을 지지하는 자료들을 출간해 내보내고 있다. 또한 이의를 제기하는 자들이 교단본부에 기소를 중단하라는 한 청원서를 제출하였는데, 교단 본부는 그 사건을 위해 교인들로부터 거출된 십일금 10만불을 거뜬히 사용할 수 있었다”(로스 앤젤스 타임스 지, 1988, 12, 5일자).
“현미경 아래있는 재림교회의 자금”-헨리 로케 기록. “기소자들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교단 내에서 점증되고 있는 문제의 일부로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레이크 리죤 대회(Lake Region Conference)가 아마 1,000만불에 이르는 자금을 횡령했거나 오용한 것에 대한 자료를 제공하며 보고 해오고 있다”(Chicago Defender, 1987, 2, 18), 수요일).
“봄 회기 때 재림교회 건강 시스템 행정가들(Adventist Health System Administrators)의 봉급을 (년봉) 7만 5천불에서 14만불로 올리기로 결의함”(대총회 회계 봉사; General Conference Auditing Service, 1987, 4, 17).
이런 식의 얘기는 계속 늘여갈 수 있다. 여러분 중 많은 이들이 재림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을 잘 알고 있다. 그 문제들에 대해 반대하는 말을 해온 자가 누구인가? 우리는 모래 속에다 머리를 파묻고 모든 것이 잘되고 있으며, 이 교회는 이 상태 그대로 항구에 안전히 입항할 수 있다고 얘기해야 할까? 독립기관들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을 잠잠케 하기를 원하는 이들이 있는데, 우리는 왜 그런지 안다.
예레미야의 시대는 우리의 시대와 매우 유사하다. 우리는 그 당시의 역사를 연구하여 현재 시대에 적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그렇게되면 살육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곡읍하리로다.”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예레미야 6:14-15; 9:1; 17:5.
결정적인 변화가 반드시 있어야만 함
만일 교단이 교인들이 독립 미니스트리들을 지원하는 것을 멈추는 것 보기를 원하며 결정적인 변화가 있어야만 한다. 나는 우리 교회가 자신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함으로 더 이상 독립 미니스트리들이 있을 필요가 없게 되기를 얼마나 원하는지! 아아, 교회가 하나님께서 하라고 맡기신 일을 두말 않고 수행한다면 얼마나 얼마나 기쁠까!
그러나 침례교 목사들이 우리 교회들에 와서 우리 백성들 가르치고(1989, 12, 7일자 The Atlantic Union Gleaner, ?페이지를 보라), 우리가 복음주의 교회들에 가서 어떻게 하면 우리 교회의 예배가 오순절 파 교회의 예배를 더 닮을 수 있을까를 배우며, 자금들이 하나님의 뜻과 조화되지 않는 계획들에 사용되고, 목사들이 연상법이나 적극적 사고 방법(견고한 토대 16호: 1990년 4월호 참조)과 같은 테크닉들을 배우고 있는 한 독립 미니스트리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라고 맡겨주신 일들을 수행할 것이다. 문제는 독립 미니스트리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 지도층들이 지나 40년간 해왔던 결정의 일반적 추세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손으로 친히 고삐를 취하셔서 이 사업을 마치실 것이며, 우리는 이 일이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수행될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TM, 300을 보라.
교회의 현재 상태는 하나님께서 이들 독립 미니스트리들 중 몇몇(전부가 아닌)을 일으켜 세우실 필요가 있도록 했다. 우리는 우리가 이들 독립 미니스트리들을 지원하기 전에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안왔는지를 시험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만일 우리가 이곳에서 하고 있는 사업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신속히 우리가 하고 있는 사업을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해 왔다. 다른 이들도 그런 기도를 해왔을 것임을 나는 안다.
주님께서는 이 운동의 기초가 되는 기둥들을 세우셨으며, 이 기둥들로부터 이 세상에 심판을 가져오고, 우리 세대에 죄와 사단의 지배가 끝장나도록 할 더 밝은 빛이 비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토록 자비롭게 우리에게 주신 빛 가운데서 충실히 걸어야만 한다. 우리는 그분을 신뢰할 수 있으며, 그분께서 그분의 은혜와 빛을 증가시키실 것을 믿음으로 안다. 사업은 마쳐질 것이다!
형제 자매들이여, 여러분들이 어드밴티스트 리뷰 지에 있는 기사들을 읽으실 때 이러한 사실들을 명심하기를 바란다.
* 필자는 아이다호에 있는 우편주문 서적 센타와 평신도 미니스트리인 평신도 미니스트리 뉴스(Laymen Ministry News)의 책임자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