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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과 구원의 관계

로웰 스카브로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하여 당신의 계명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시는가? 하나님께서 순종을 요구하신다고 믿는 사람은 자신의 순종을 구원을 얻는 공로로 생각하는가?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명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신다면 무엇 때문에 그것을 요구하시는 것일까? 나는 이러한 질문들이 온당한 질문들이요 영감의 글로부터 간단한 대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1844년 이후에, 우리의 개척자들이 예수님께서 십계명이 담긴 법궤가 있는 지성소로 들어가셔서 하늘 성소에서 당신의 심판사업을 시작하셨다는 것을 이해했을 때에 그들은 크게 감동되었다. 2000년 훨씬 전에 주어진 예언의 성취의 순간에 도달했다는 생각은 그들로 하여금 그 사실을 전파하는데 추진력을 가져다 주었다. 더 나아가서, 그들이 심판이 시작되었고, 계 12:17과 계 14:12의 남은 교회에 대한 확실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과 또한 세 천사의 기별을 이해했을 때에 그들은 이루어야 할 한 위대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러한 성경 절들을 통한 놀라운 빛을 깨닫고 나서, 그들이 구원의 기별을 전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율법의 준수에 대한 요구를 포함하기에 주저치 않은 사실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주장하는 설교와 가르침으로 나아갈 때에 많은 교회 조직들이 그들을 그리스도의 온전하신 값없는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신랄하게 비판하였고, 그들이 행함으로 구원 얻는다고 믿으며, 그들의 순종을 공로를 내세우는 것이라고 비난하였다.

 1844년 이후에 여러 시대가 오고 갔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 백성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하여 순종을 요구하시지 않으며, 이러한 가르침은 율법주의요 행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비평자들과 동의하고 있는 형편이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심에 있어서 당신의 계명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신다는 신조는 우리 교회 안에서 크게 회피되고 있는 주제이다. 한 목사는, 우리가 그런 식의 말을 우리 교회의 책들 가운데서 발견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내가 우리 교회의 많은 책들을 읽은 후에 엘렌 지 화잇의 책들을 제외하고는 그러한 언급을 발견할 수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 그 결과로 많은, 아니 대부분의 우리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순종을 요구하시는지 요구하지 않으시는지 알지 못하며 진정한 확신이 없는 것이다. 한 안식일 학교 과정 공부 반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나왔다.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명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십니까?” 그 반에 15명의 교인들이 있었는데, 그 중 단 한 사람만 긍정적인 대답을 하였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르는 상태에 있었다. 얼마 후에 같은 질문이 다른 교회의 안식일 학교 과정공부 반에서 제기되었고, 그 결과는 거의 비슷한 것이었다.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에 있어서의 하나의 중대한 문제로부터 흘러 떠내려가는 시조가 이미 많은 곳에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였다. 우리 가운데 아무도 장차 일어날 일의 반도 보지 못한 채 있는지 모른다.

 다음의 연구에서, 우리는 구원의 조건들이 행함으로 구원 얻는다는 율법주의와 정반대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 조건들을 추적해 볼 것이다.

 요한복음 3장에 서로 상반되게 보이는 두 가지 성경 절이 나온다. 요한복음 3:5에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다. 성령으로 난다는 것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하여 우리 속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은 구원에 대한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다. 거의 같은 시간에 요 3:6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이 말씀이 모든 성경 절 중에서 가장 사랑을 받는 가장 아름다운 성경 절일 것이고, 이 말씀 하나만 본다면 구원에 아무런 조건들이 없고 그저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모순에 대한 해답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태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요 7:38,39, 갈 3:3, 엡 1:13, 요일 5:1을 보라. 그때에 요 3:16 안에서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에 의하여 구원의 조건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그분을 구세주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이 무슨 뜻인지 발견하게 될 때에 구원의 조건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로마서 5:5에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라고 하셨다. 신 30:6에는 하나님께서 그로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 이 사랑으로 사람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말씀되어 있다. 눅 10:25~28에는 한 법관이 그리스도께 그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느냐고 질문한 사건이 나온다. 그리스도께서 그 법관에게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느냐고 물으셨다. 법관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요약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올바른 대답을 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살리라” 로마서 8:2은,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2의 “생명의 성령의 법”은 무엇인가? 시대의 소망 1권 14쪽에는 생명의 법이란 하나님의 백성들이 반드시 가져야 하며 그것이 구원의 조건을 이룬다는 분명한 이해를 제시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비치는 영광의 광채는 자아희생적 사랑의 영광인 것이 드러날 것이다. 갈바리에서 비치는 빛으로 자아희생적 사랑의 법칙이 이 세상과 하늘의 생명의 법칙이 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영광을 구치 아니하고” (요 8:50, 7:18)

이 말씀들 가운데는 우주의 생명의 법칙이 되는 대원칙이 표시되어 있다.

사랑과 순종

 참으로 거듭나는 경험은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기록하며, 그것은 마음에 율법을 기록하는 것과 같은 것이요 새 언약을 성취하는 것이다. 히 8:10을 보라. 우리가 눅 10:25~28을 마 19:16~17과 비교해 볼 때에, 예수께서 구원의 조건으로서 사랑과 순종 사이에 아무런 구별도 하지 않으신 것을 볼 수 있다. 눅 10:25에 율법사가 예수께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예수께서 그에게 율법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고 물으셨고, 그 율법사의 율법에 대한 요약은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살리라”하셨다. 그렇다면 성령으로 태어나고 인도함을 받음으로 말미암은, 율법 속에 나타난 사랑이 신자들을 위한 영원한 생명의 법칙인 것이다.

 마 19:16~17에서 그 법관은 눅 10:25~28에 있는 율법사가 한 똑 같은 질문을 예수께 하였다. 예수께서 그에게, 영생을 얻기 위하여 계명을 지키라고 하셨다. 눅 10장에서 예수께서는 율법사에게 영생을 얻기 위하여 율법에 표현된 사랑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주께서 그 법관에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야 한다고 하셨다. 결론은 너무도 분명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구원의 조건으로서 사랑과, 구원의 조건으로서 계명들에 대한 순종과의 사이에 구분을 두지 않으셨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요 14:21)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킴으로써만 우리가 그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다. (요 15:10을 보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롬 13:10).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요일 3:24) 성령은 중생의 경험과 계명을 지키는 일을 구원을 얻는 조건으로서 분리하지도 않으며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천사들과 인간들이 둘 다 성령의 전이 되는 것이 한결 같은 하나님의 계획이시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이 주관하는 능력이 되는 이 생명의 법을 그들 가운데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시대의 소망 1권, 204를 보라. “영세 전부터 광명하고 거룩한 스랍 천사를 위시하여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께서 내재하시는 성전이 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었다.”

순종을 요구 하시는 하나님

 “보라 내가 오늘날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신들을 쫓으면 저주를 받으리라” (신 11:26~28). 부디 신명기 11장 전체를 읽어보라.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을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신 30:15,16)

 “네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자여” (단 9:4)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12)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 5:9)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롬 2:13)

예언의 신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영생이 약속된 조건들은 분명히 제시되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들어갈 자들은 점이나 주름이 없는 자들이어야 한다고 요구하신다. 내 계명들을 지키라. 그리하면 살리라가 하나님의 요구하시는 바이다.” (R&H vol. 4, 331)

 “율법은 당신의 뜻의 표현이요, 그 법을 순종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을 당신의 아들과 딸들로 받으신다고 제안하신다.” (R&H Vol.2, 263)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들에게 전파하여야 할 복음은 영생을 얻기 위한 조건이 순종이라는 명확한 진리를 제시하고 있다.” (7 SDABC, 972)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곧 품성이다.” (실물교훈 67)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요구를 감소시키지 않으신다. 그 율법을 지키는 것이 영생을 얻는 조건임을 오해할 수 없으리만큼 분명히 말씀하신다.” (실물교훈 410)

 “장차 심판 날에 그대에게 물을 오직 한가지 질문은 ‘너는 나의 계명을 좇아 순종하였는가?’하는 것이다.” (복음사역자 313)

 구원은 자원하는 순종에 의하여 얻어지는 것이다. (실물교훈, 110페이지를 읽어보라.)

 “오늘날 신속히 토대를 구축하고 있는 현대적 교리, 곧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더 이상 지킬 의무가 없다는 교리는 그리스도교계에서 받아들인 가장 큰 오류로서 그것보다 하나님의 권위를 더욱 담대하게 공격하는 것이 없고 그것보다 이성의 명령을 더욱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은 없으며 그 결과보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없다.” (대쟁투 하권, 434)

 마지막 인용구문에 의하면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가르침보다 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가르침이 없다고 했는데, 그 결과가 치명적이란 말은 분명히 그 영혼들이 멸망 당한다는 뜻이다. 심각한 일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왜 순종을 요구하시는가?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자들을 구원하시기까지 사랑하시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리스도께서 불순종하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불순종을 고집하는 자들을 구원하지 않으시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죄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증하여 주신다(나훔 1:9 참조).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순종하거나 불순종할 수 있는 위대한 자유 선택의 특권을 안겨주셨다. 그분의 계획은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 동산에서 명료하게 제시되었다(창 2:16,17). 그들에게 제시된 것은 순종하면 살고 불순종하면 죽는다는 것이었다. 역사를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과 세우신 하나님의 언약은 동일하게 남아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놀라운 자유선택의 선물을 폐지하시고 사람의 마음을 조작하여 구원할 수 있을만한 자로 만들려 하지 않으신다. 만약 그렇게 하신다면 모든 사람들을 다 구원하시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이 될 것이다. 다음의 인용구절을 유의하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이 은혜의 기간 동안에 꼴 짓는 대로 영원을 통하여,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죽음이 육체를 와해시키지만, 성품은 전혀 변경시키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오심이 우리의 성품들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그것은 단지 성품을 영원히 변치 못할 것으로 고정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다.” (5T, 466)

 위의 인용구문에서 은혜의 시간이 끝나면 영원을 통하여 똑 같은 성품으로 남아있게 된다는 사실을 주목해 볼 수 있지 않은가? 이 진리는 은혜의 시간의 마침을 언급하는 계 22:11이 명백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이 시점에서 하나님의 영은 불순종하기로 선택하는 자로부터 거두어짐을 당하는데, 왜냐하면 그가 결코 더 이상 나은 상태로 변화될 수 없고 오히려 더 악화되는 생애의 스타일로 머물러 있기로 선택해 버렸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자의 마음을 조작하여 구원하기에 합당하게 만들어 버리신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의 값을 지불하기 위하여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오신 모든 일들을 무효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칭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을 가지게 될 때에는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 때에 주께서는 저들을 하늘 가족을 구성할만한 자들로 인정하시게 된다.” (실물교훈, 327)

 “하나님의 율법은 성품이 측정되어야 할 표준이며, 그의 생애가 그 법과 조화되는 자는 신뢰하기에 합당한 자일 것이다.” (R & H Vol.3, 181)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하여 순종을 요구하시는가? 왜냐하면 우리의 자유선택에 의하여 구원하기에 믿을만한 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건대 우리가, 왜 그리스도께서 순종을 요구 하시는가에 대해 분명한 강조를 해오지 않았다. 만일 우리가 이 일을 여러 해에 걸쳐 올바로 강조해 왔더라면 우리가 행하므로 구원받음을 믿는다고 고소하는 많은 비난들을 가라앉혔을 것이요, 더 나아가서 이 문제에 관하여 우리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동요들을 잠재웠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