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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인가, 아니면 반역인가?

저자: 콜린 스탠디쉬(Colin Standish)

    이토록 아름다운 장면을 바라보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저는 우리가 이 주말에 사랑의 하나님께 더 가까이 이끌려진 바 되었으며, 가장 적절하고도 유익한 야영회를 가졌다고 믿습니다. 이 안식일이 여러분들에게 복된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우정과 교제와 쉼과 영적인 성장의 거룩한 안식일을 또 한번 지내시게 될 것인데 그 거룩한 날이 어떨지 상상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저는 우리 모두가 이 날을 거룩하게 지키는 자들에게 주시마고 약속하신 갑절이나 되는 그분의 축복을 소유하게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늘 왕국으로 구속함을 받아 가기 전에 이 땅에서 몇번이나 더 안식일을 지키게 될까요? 저는 여러분 가운데서 소년들과 소녀들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저기 몇번의 안식일 밖에 지키지 못한 어린 아기들도 보입니다. 또 젊은 청년들, 중년이신 분들, 또 이 땅에서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여행을 하고 계신 노인 분들도 계시는데, 그분들 중 70년 혹은 80년간 안식일을 지켜오신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님이시요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매 안식일을 영원토록 지키게 되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이 될런지요!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들, 그때는 멀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늘 저녁 여러분들께 꼭 여쭤봐야겠다고 느끼는 몇몇 질문들을 드림으로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거수로서 제 질문에 응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첫번째 질문은 매우 간단한 것입니다. 여러분 중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이었다가 자원해서 이름을 지워달라고 하신 분들이 계시면 손들어 주시겠어요? 한분도 없으시군요. 제가 이 질문을 드린 것은 사단이 갖가지 기만적인 소문들을 퍼뜨려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중에 하나는 슬프게도 Hope International과 다른 여러 자영 선교기관들이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로부터 남녀들을 불러낸다는 것입니다.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우리가 남녀들을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이 놀라운 교회, 그분께서 그분의 눈동자라고 하신 이 교회로부터 끄집어 내고 있다는 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영원히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또 다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곳에 모인 여러분들 중에 이 야영회에서 공적 혹은 사적으로 여러분들을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를 떠나도록 권고한 것을 들으신 분들이 계시면 손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한분도 안 계십니다. 하나님을 찬양하십시다!

    세번째 질문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이 야영회 동안에 이 교회가 남은 교회이며, 우리는 시온에 있는 죄인들이 흔들려 떨어져 나가는 동안 이 교회에 남아서 이 교회를 지지해야만 하며, 성도들은 하나님께와,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교회에 대해 충성을 다할 것이라는 말을 설교자들로부터 들으신 분들은 몇분이나 되십니까? 주님을 찬양합시다. 제 생각에는 손을 안 들으신 분이 없으신 것으로 압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시여, 우리는 아주 엄숙한 상황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매년, 실제적으로 수천명이 하나님의 남은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두렵게도 그들 중 대부분은 다시는 의의 길로 들어서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 각처에서 남녀들을 일으키고 계십니다. 어쩐지 우리는 이 사람들 앞에 그분의 진리와 그분의 의에 대한 영광스러운 기별을 전해야 할 부담을 지고 있습니다. 저는 세상과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교회의 지도자들이 알기를 원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때를 위해 마련해 놓으신 위대한 개혁의 기별을 전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 모인 우리 모두가 반역자들이 아닌 개혁자들이 되도록 부르시고 계십니다. 바로 그것이 오늘 저녁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릴 제 설교의 주제입니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전형적인 성경 장이 하나 있다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이사야 58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저와 함께 펴 보십시다.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마음과 생애 가운데 갖고 있는 죄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알고 있지 않는다면 우리가 성령님께 이끌리어 회개의 경험을 가질 수 없을 것을 알고 계십니다. 12절입니다.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무엇을 한다고 했습니까?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시여, 만일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며, 여러분들이 우리 주요 구세주이신 분의 것이면 여러분들은 허물어뜨리는 일을 할 것이 아니라 세우는 일을 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저녁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며, 여러분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하여 여러분들의 교회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과 구원하는 진리 안에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들이 되시도록 강력히 호소합니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오늘날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를 떠나고 있는 이유는 이 세상 곳곳에 흩어져서 남녀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더 가까이 이끌고 있는, 크게 외치며 목소리를 아끼지 않는 충실한 증인들 때문이 아닙니다. 반대로 남녀들이 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이 지구 역사의 마지막 엄청난 순간에 그들에게 도전해오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들은 아무 중요한 의미도 없으며, 적합하지도 않은 기별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기별이 전파될 때 거기에는 무언가 여러분들을 흥기시키는 것이 있습니다.

    영혼들이 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 것은 우리 주위의 모든 것 가운데 반역의 기미가 서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해 몇마디 드리기 전에 2년전 8월에 있었던 흥미진진한 사건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버지니아주에서 한 형제에게 편지를 한통 썼습니다. 그는 제게 하틀랜드 대학에서 편집하는 안식일 학교 교과 해설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도움을 주고 있는지에 대해서 쓴 다음에 이렇게 말을 이었습니다. “최근에 저는 제 집사람과 제 딸과 저는 우리 이름을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녹명책에서 제거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더 이상 자신이 다니던 교회에 남아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같은 편지들을 받을 때 저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도록 기회를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도 사단이 이 교회에 대해 엄청난 공격을 가하고 있는 것을 안다고 하며, 그런 일이 있을 때 놀라지 말아야 하는데, 이는 주의 종이 마지막 때의 배도가 점점 증가될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때에라도 아직 그분의 성도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것을 명백히 했다는 것을 설명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그런 후에 저는 그가 한 결정을 다시 고려해 보도록 탄원했습니다. 저는 그후에 그 일에 관해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보름 전에 저는 그 사람에게서 한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2년 전에 제게 편지를 썼다고 했는데, 제가 서류철을 찾아보니 2년 전에 그가 보낸 편지와 제가 한 답장의 복사판이 들어 있어서 그때의 상황을 다시 기억나게 해 주었습니다. 그는 편지 말미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제 아내와 제 딸과 제가 이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로 되돌아 온 것을 당신이 알면 무척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는 자신과 가족들이 돌아온 것이 대부분 Amazing Facts, Hope International, Hartland Institutes의 미니스트리의 결과였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갑자기, 우리 교회 안에 존재하는 악을 가리거나 외투를 뒤집어 씌우지 않는 하나님의 충실한 기별자들의 가치를 다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형제들이시여, 우리가 문제들이 있는 것을 인정하고 진리를 적극적인 방법으로 제시할 때 백성들은 눈이 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격려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교회 안에 있는 문제들을 알기 위해 목사가 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 사이에서 아직도 일하고 계시며, 당신께로 오는 모든 자들을 능히 구원하실 수 있으시고, 계속 그들을 부르고 계신다는 소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엘렌 화잇은 가려뽑은 기별 2권, 68에서 우리들이 호흡하고 있는 그 공기 가운데 반역과 배도의 정신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믿음으로 우리의 가련한 영혼을 그리스도께 붙잡아 매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가련한 영혼을 그리스도께 붙들어 매는 예수의 믿음이 바로 1888년의 기별입니다. 우리가 만일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영혼을 믿음으로 예수님께 붙들어 매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호흡하고 있는 반역과 배도의 기운에 압도당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사람들이 그토록 쉽사리 잘못 인도되어 진다면 사단이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이적들을 행할 때 그들이 어떻게 설 수 있을까요? 오늘날에 있는 기만은 이 지구역사의 최후의 순간에 있을 기만과 비교해 보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엘렌 화잇은 반역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완전한 배도에도 구제할 길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가려뽑은 기별 2권 502).

    우리가 여기 이렇게 모여서 야영회를 하고 있는 것은 반역이 아니라 개혁입니다. 북미와 유럽, 아시아와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아프리카와 중미 및 남미에 있는 교회에서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일은 반역이 아닙니다. 아니, 구태어 반역이란 말을 붙인다면 그것은 죄에 대항한 반역이요, 배도에 대항한 반역이요, 세속주의에 대항한 반역입니다. 그것은 교회 안에 들어온 사단의 불법 침입에 대항한 반역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령의 능력과 예수 그리스도의 지도하심 아래서 남녀들을 그분께로 더 가까이 이끄는 개혁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하나님의 사업의 결과에 대하여 절대적인 승리를 거둘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제가 보고 있는 모든 상황들과 사건들을 저는 예언의 신에서 미리 읽었습니다. 비록 제가 미래에 많은 우리 백성들에게 닥칠 일에 대해서 두려워하지만 신실한 자들에 대해 펼쳐질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 제 마음은 기쁨으로 부풉니다.

    반역의 모든 근원은 죄와 이기심 입니다. “사람들은 죄악의 방종으로 인하여 사단을 저들의 마음에 접근하게 한다. 그리고 저들은 악의 한 계단에서 다른 계단으로 나아간다. 빛의 거절은 정신을 어둡게 하고 마음을 완고하게 해서 죄의 다음 단계를 취하는 것이 저들에게는 쉬워지고 더 밝은 빛을 거절하게 되어 마침내 저들의 행악의 습관은 굳어진다. 죄는 저들에게 죄스럽게 보이기를 그친다.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전함으로 저들의 죄를 선고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자주 저들의 증오를 초래한다. 저들은 개혁에 필요되는 고통과 희생을 당하기 원치 않으므로 주의 종을 적대시하고 그의 책망을 쓸데없고 가혹하다고 공공연히 비난한다”(부조와 선지자 하권 539)

    여러분들이 이곳에서 한 증언들을 들으셨을 때에 여러분들이 하나님 아래서 그 기별들에 대항하지 않게 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기별들은 지구 역사의 마지막 순간에 다다를 때 더욱 노골적이고도 요점을 지적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엘렌 화잇은 계속합니다. “저들은 고라와 같이 백성에게 잘못이 없고 모든 재난을 일으키는 것은 책망자라고 선언한다. 이런 기만으로 저들의 양심을 진정시켜서 질투하는 사람들과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불화의 씨를 뿌리는 데 연합하여 교회를 세우려는 사람들의 손을 약하게 한다”(상동).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는 그 예언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순결하고 의로우신 주장들을 제시하는 자들이 이스라엘을 참으로 괴롭게 하는 자들이라는 주장을 함으로 사업을 무너뜨리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사랑은 너무나 순결하여 자복하지 않은 죄를 덮을 수는 없다”(사도행적 545). 참된 사랑은 너무나 무엇하다고 했습니까? 너무나 순결하여 자복하지 않은 죄를 덮을 수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영혼들을 사랑해야 하는 반면에 죄악과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요한이 영혼을 멸망시키는 오류들을 반대한 것처럼 이 시대의 당신의 백성에게 의를 위하여 세상에 대해 확고부동하게 서기를 요구하신다”(상동).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시여, 바로 그것이 크게 외치고 목소리를 아끼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사랑은 다음과 같이 말할 용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 아들, 내 딸, 내 젊은 청년 남녀들아, 나는 너희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온 이 견책과 수정하시려는 말씀을 너희에게 전하지 않을 수가 없단다” 라고요.

    만일 우리가 반역의 상태에 머무른다면 우리는 기만으로 그 끝을 맞게 됩니다. 부조와 선지자 하권, 330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나 당신의 성령의 책망과 경고를 경시하는 것은 위험한 계단을 딛는 것이다. 사울처럼 유혹에 굴복하여 마침내 죄악의 진정한 성격에 대하여 눈멀게 되는 자들이 많다. 그들은 저희가 어떤 좋은 목적을 계획하였고 여호와의 요구에서 떠나는 잘못을 범하지 않았다고 혼자 속으로 믿고 있다. 이리하여 그들은 은혜의 성령을 멸시함으로 마침내 성령의 음성을 그 이상 더 듣지 못하고 저희가 선택한 기만에 빠지게 된다”

    반역은 하나님과 그분의 계명들과 그분의 말씀에 대항하는 반역입니다. 제가 오늘의 설교를 준비하고 있었을 때 저는 본교 성경주석 1권, 1114에서 다음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만약 진리에 대한 지식을 가진 남녀들이 위대한 영도자이신 주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배도의 큰 수령인 마귀를 저들의 지도자로 삼고 그를 가리켜 우리의 의가 되는 그리스도라고 부르게 된다면….” 여러분들은 이 문제에 대해 상상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진리에 대한 지식을 가졌으나 예수님에게서 분리된 남녀들이 배도의 큰 수령되는 자를 따르며, 그를 그리스도 우리의 의라고 부를 것입니다. 제가 이 글을 읽을 때, 저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단을 가리키고 있는 줄을 모르면서 그 놀라운 존재를 그리스도 우리의 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니, 아마 지금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사단이 예수 그리스도처럼 가장하고 나타날 때 그를 환영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분리되고,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계속 죄를 지으며 살 수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사단을 그리스도 우리의 의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아,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여러분들 중 많은 분들이 엘렌 화잇의 계시를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가신 후 많은 신자들은 아직도 어디에 있었습니까? 성소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서 지성소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때 갑자기 누가 그들 앞에 나타납니까? 사단이 대 제사장의 옷을 입고 하나님의 남은 교회의 교인들을 위해 예수님의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두 예언들이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 간에서 성취되고 있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참으로 두려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 안에는 자신들이 사단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면서 그를 그리스도 우리의 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소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들이 그리스도로 알고 있는 자에게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단을 경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증언 8권, 80페이지에 있는 엄숙한 증언에는 우리 교회 안에 많은 신들이 있게 될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순간마다 죄를 이기는 완전한 승리의 경험을 주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을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계속 죄를 지으며 살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자들과 동일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으로 혼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열왕기상 18장에 있는 엘리야의 말을 좀 살펴보기로 하십시다. 여러분들은 열왕기상 18: 17에서 그가 악한 왕후의 영향력 하에서 배도한 사악한 왕이 그를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로 부른 것을 기억하고 계십니다. “(아합이) 엘리야를 볼 때에 저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하자 “저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오늘날 현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더 이상 우리 구세주의 품성이 새겨진 사본으로서 보지 않는 자들이요, 하나님의 율법은 불변한다는 개념을 부인하는 자요, 우리가 옳고 그른 것을 결정하는 것은 그 시대의 사회적 윤리와 개인적 존재로서 하는 평가에 의해 하는 것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진리와 오류, 선과 악, 옳은 것과 그른 것 사이를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을 이미 설정해 놓으신 것 때문에 그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여기에 모인 분들이 그러한 이해를 가지게 되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오늘날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내에 있는 진정한 반역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선지자와 왕, 425페이지에 있는 다음의 이야기를 잘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 끝날까지 사람들은 참 하나님의 대표자들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중에 혼란과 반역을 일으키려고 일어날 것이다. 거짓을 예언하는 사람들은 사람들로 죄를 가벼운 것처럼 바라보게 할 것이다” 오늘날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내에 있는 반역자들은 누구라고 하였습니까? 사람들로 죄를 가벼운 것처럼 바라보게 하려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오늘날 하나님의 보배로운 교회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참된 반역이 무엇인지 여러분에게 밝히고 싶습니다. “저희 악한 행위의 무서운 결과가 나타날 때에 그들은 할 수만 있다면 마치 유대 백성들이 저희 비운에 대하여 예레미야를 비난하였던 것처럼 저희 어려움을 저희에게 충실히 경고한 사람에게 책임지우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여호와의 말씀이 고대에 분명히 옹호를 받았던 것처럼 오늘날도 당신의 기별들의 확실성이 입증될 것이다”(상동). 만일 우리가 예언의 신을 멀찌감치 놓거나 태만히 한다면 우리는 교회 안에 있는 반역하는 무리 가운데 속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가벼운 것으로서 취급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오늘날 이 교회 안에서 반역하는 부류에 속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극단 이상으로 조심스러워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옆으로 제쳐진 바 되지 말아야만 합니다.

    예레미야, 이사야, 에스겔, 침례 요한, 엘리야, 혹은 근대로 와서 루터와 칼빈 등등, 이 모든 사람들은 반역자로 지목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반역자와 개혁자 사이에는 완전히 구분되는 차이가 있습니다.

    개혁자는 남녀들을 위에 계신 아름다우신 구세주께로 돌아가도록 합니다. 개혁자는 남녀들을 하나님의 거룩하고 성결한 율법을 존중하도록 이끌며, 회개와 율법을 범하는 것을 극복하는 승리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구하도록 합니다. 진정한 개혁자는 자기 형제들이 영원한 파멸을 향하여 달려가는 것을 보고 팔짱을 끼고 앉아 있지 않고 오히려 권면하고 애원하며 경고를 발합니다. 진정한 개혁자는 영혼의 구원을 무한히 가치있는 것으로서 여길 것입니다.

    우리가 만일 마지막 시험을 견디려고 한다면 거기에는 부흥과 개혁이 반드시 있게 될 것이라고 주님의 종은 말합니다. “모든 사람은 지금 주님을 찾아 구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부흥과 개혁이 없다면 시험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7T, 285). 부흥과 개혁이 없이는 마지막 시험을 견딜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진정한 개혁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정로의 계단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한 회개와 개혁이 없는 자복은 하나님께 받으시는 바 되지 못한다. 반드시 생애에 확실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 거리끼는 것은 무엇이든지 반드시 버려야 한다. 이 일은 죄를 진정으로 슬퍼하는 결과로 될 것이다” 저는 우리가 진정으로 죄에 대해 슬퍼하는 느낌을 갖고 있는지 의아해 합니다. 그 죄들은 우리의 보배로우신 구세주의 손을 갈바리 십자가에 못 박았으며, 그분의 허리를 찌르고, 그분의 이마의 가시관을 꽉꽉 짓누른 것입니다. 바로 그 죄들이 로마 군인들이 그분을 채찍질 할 때 그분의 등에 자국을 낸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예수님을 어떻게 했는지의 빛 가운데서 죄짓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죄의 흉악함과 적의와 반역적 성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대해 얼마나 몸서리쳐지는 것이겠습니까!

    저는 여러분들이 반역의 반대가 되는 개혁에 대해 살펴 보시기를 원합니다. 치료봉사, 117에서 우리는 개혁의 진정한 발단이 무엇인지를 보게 됩니다. “개혁의 발전은 기본적 진리를 가장 분명히 깨닫는 일에 좌우된다” 개혁의 발전이 기본적 진리를 가장 분명히 깨닫는 일에 좌우된다고 하였습니다. “편협한 인생관과 딱딱하고 냉랭한 정통주의에 위험이 잠재해 있는 한편, 또한 무관심한 자유주의에도 큰 위험이 있다”(상동).

    여기 계신 분들 중 무관심한 자유주의 때문에 타격을 받게 되실 분은 많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딱딱하고 냉랭한 정통주의를 주장하는 분들은 좀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전 세계를 다니면서 이 기별을 전할 때 스피어 목사님과 그외의 다른 우리 강사들은 우리를 아주 감동케하는 경험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저를 당혹케하는 문제들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이 기별을 들을 때 열광하면서 아멘을 연발하며 그 기별을 믿고, 소뇌 속으로는 받아들이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에 이 기별이 전해질 때 그저 그 기별을 내버려 둡니다. 우리가 진리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령을 통해서인데, 이는 성령께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 진리를 머리에만 머물도록 하면 우린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진리를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 진리를 가르쳐 온 많은 사람들, 진리를 설교하던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바 될 것입니다. 이번 주 동안 이곳에서 설교하는 우리들에게 대한 얼마나 심각한 경고입니까? 저는 그러한 경고를 필요로 합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그러한 경고를 받을 필요가 있는데, 이는 성령께서 우리가 지성적으로 받아들인 지점에서 떠나가 버려서는 절대로 안되는 때문입니다.

    그 진리는 머리로 받아들여져서 반드시 마음에 적용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가 믿고 받아들여질 뿐만 아니라 생애를 변화시키도록 허용될 때 그것은 얼마나 큰 차이를 가져오는 것입니까! 또한 우리에게 모든 진리를 가르쳐 주시는 동일하신 성령님께서는 마음의 변화까지도 책임지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 속에 심겨질 때 성령에 의해 심겨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심겨져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진리를 위협하는 자들이 될 것이며 전세계에 흩어진 하나님의 교회에서 설교하도록 부름을 받은 이 미니스트리의 위대한 개혁의 기별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 장애물이 될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진리를 제시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 중 하나가 이와 같은 집회에 와서 마음으로는 그 진리의 기별을 받아들이나 그것을 그저 거기다 놔두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진리를 가르쳐 오신 성령을 떠나 가시도록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해 그들의 생애를 변화시켜 주시는 동일한 성령의 필요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형제 자매들이시여, 우리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도록 해야만 합니다. 죄로부터의 자유요, 씁쓸함과 원한과 적의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도록 하는 모든 역한 감정으로부터 자유케 되는 것 말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생애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가 거하시도록 한다면 우리는 우리 원수들을 사랑하며,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며, 우리를 모욕하고 교묘하게 이용하며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한 명도 미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저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 보십시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고 기도하신 예수님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친히 권면하시고 지시하신 대로 당신 자신의 생애를 사신 것을 보면 얼마나 놀랍습니까!

    만일 우리가 여기서 무엇인가를 할 필요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오늘밤 진정한 개혁자들인지를 확실히 하는 것입니다. 개혁자들은 진리를 믿을 뿐만 아니라 진리에 의해서 성화된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인 교육의 기초, 432에서 우리가 결코 오류에 의해서 성화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다시 주의깊게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오류는 결코 성화시키지 않으며, 오직 진리만이 성화시키는 일을 합니다.

예언의 신이 진정한 개혁자들과 개혁이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살펴보기로 하십시다.

1. “개혁은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에 기초하여 세워집니다. (영문 대쟁투, 595)
2. 개혁자들은 그리스도의 품성을 옹호합니다. (영문 선지자와 왕, 675)
3. 진정한 개혁자들은 그분의 모든 길 안에서 행합니다. (영문 대쟁투, 291)
4. 개혁자들은 자신들을 개혁시켜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6T, 154)
5. 개혁은 올바른 정신, 즉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 안에서 일어나야만 합니다. (4T, 569)
6. 개혁자들은 가장 많이 사랑하고 사랑할 만한 그리스도인들이어야만 합니다. (영문 복음전도, 303)
7. 개혁자들은 단호해야만 하며, 동시에 온유해야만 합니다. (6T, 151)
8. 개혁자들은 말하는 데 있어서 조심스러워야만 합니다. (영문 실물교훈, 337)
9. 개혁자들은 가장 비이기적인 사람들입니다. (영문 치료봉사, 157)
10. 개혁자들은 향상시키는 말들을 합니다. (영문 가려뽑은 기별 1권, 159)

“개혁이 따르지 않는 회개는 참된 회개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의는 자복하지 않고 버리지 않은 죄를 덮는 가면이 아니다”(시대의 소망 2권, 373).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부르시고 계십니다. 그분은 이 교회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오늘밤 특별히 이 거룩한 성회에 모인 우리 각자들이 진정한 개혁을 이루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진리를 듣기 원하여 이곳에 오신 것으로 압니다. 또한 저는 여러분들이 이곳에서 들으신 진리로 채워진 설교들과 강의들을 얼마나 고맙게 여기는 지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말하는 것을 들을 때 제 마음 속에 있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진정한 개혁이 우리 생애 가운데서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지식도 아무런 차이를 만들어내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워싱톤 주에 있는 이 교회들이 하나님의 영께서 역사하시는 가운데 개혁되기를 원합니다. 오레곤주와 캘리포니아주와 텍사스주와 아리조나주와 네바다주와 아이다호주와 몬타나주와 또 여러분들이 오신 다른 모든 주의 교회들에서도 같은 개혁의 운동이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날 어떤 교회들은 신신학과 세속주의와 자유주의 및 모든 다른 “주의” 의 오류들이 너무 뿌리깊게 자리를 잡고 있고 있어 다른 방법으로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논쟁이나, 혹은 성경과 예언의 신으로 증명하는 것을 통해서는 되지 않으며, 단지 여러분이 살고 있는 놀라운 생활을 통하여 그들을 이끄는 길만이 그 유일한 방법입니다. 결국 그 길만이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들은 나침반의 바늘이 남북을 가리키듯이 원칙에 충실하며, 뇌물에 의해서나 위협이나 아첨에 의해서 매매될 수 없는 남녀들을 필요로 합니다. 이런 종류의 남녀들을 하나님께서는 찾고 계시며, 그들은 예수님께서 사랑하셨던 것처럼 사랑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곳을 떠나신 후 아무도 “우리가 들었던 기별은 사랑의 기별이 아니었다” 고 말하는 분이 없게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저는 이 기별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기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랑과 거룩한 생활을 하도록 성화시키는 진리의 기별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