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시대의 교회
저자: 마샬 그로서볼
“ 이스라엘 나라의 제사 제도의 기초가 되신 그(예수 그리스도)가 그 제도의 원수와 파괴자로 취급 받게 되었다.” 시대의 소망, 영문 111. 당시 교회의 조직을 관장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을 교회라고 생각하였으며, 그들이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허용한다면, 그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직책과 위치를 잃어버리게 될 것을 알았는데,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의 원수요 파괴자로 만든 이유였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교회라고 공언하는 교회 안에 비슷한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한 분명하고도 영감적인 권면이 있다. 그러나 엘렌 지 화잇 여사의 권면 중의 많은 부분이 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지적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분의 그러한 증언들을 위험한 것으로서 간주하며 심지어는 교회를 파괴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훈계 받고 양육 받을 때에만 당신의 축복이 임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의 조직에 관한 원칙들은 교회의 가장 젊은 교인으로부터 대총회에 이르기 까지 모든 면에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성경과 예언의 신에는 교회의 조직에 대한 많은 말씀들이 있는데, 그 말씀들은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평신도들을 위해서도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지나간 역사를 통해서 볼 때, 교리 및 가르침이 부패될 때마다 조직 역시 부패되었다. 사실 성경의 요한 계시록에는 하나님께서 잘못된 교리와 가르침에 대해서 걱정하시고 있는 만큼 잘못된 조직에 대해서 염려하시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있다. 화잇 부인의 증언의 말씀 가운데에는 교리와 가르침에 관한 글도 많이 있지만, 우리가 다루기를 꺼려하는 교회 조직에 대한 수 많은 말씀들이 있다. 우리가 교회 조직에 관해서 정직한 마음으로 토로하기를 두려워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는 만일 우리 중의 어떤 사람이 교회 조직에 대한 화잇 부인의 인용구절을 읽기만 하여도 그 사람은 교회를 비난하는 자로 고소 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침례 요한의 용기를 소유해야 할 때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겸손하게 읽으며, 읽은 말씀에 대한 우리의 의무의 이행을 위해 기도하면서 그분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성령을 퍼부어 주셔서 그분께서 고대하시는 사업을 끝마칠 수 있도록 우리들 자신을 낮추어야 할 때이다.
고린도전서 1:2 는 우리에게 신약 시대의 교회는 어떻게 조직되었는지를 말해준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고 부르심을 입은 자들.”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교회를 등록된 교회로서 소개하고 있지 않다. 그들의 조직이나 모이는 장소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물론 그들이 건물에서 만났고 또 어떤 조직을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은 바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고린도에 있던 교회는 거룩하여지고 하나님의 성도라도 불리웠던 고린도의 사람들이었다. 교회는 조직되었지만 조직 자체가 교회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교회였다. 그 사람들은 서로간에 조화를 이루면서 일할 수 있었는데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 속에 거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함께 모여서 일하였고, 선교사를 파송했으며, 연금을 거두었고, 하나님의 사업을 진척시킬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그들이 조직을 가지고 그토록 많은 일을 하였을지라도 그러나 교회는 여전히 사람들이었다. 바로 이것이 지금까지 항상 존재해온 교회이다.
어떤 면에 있어서 교회는 하늘의 녹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 히 12:22-23. 교회, 하나님의 참된 교회는 하늘의 생명 책에 기록되어 있는 사람들로서 구성된다.
이와같은 개념은 우리에게 매우 흥미있는 상황을 보여주게 된다. 누가 교회의 교인이 되는 자격을 결정하는가? 교황이 그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가? 만일 교황이 아니라면 교회의 직원회인가? 그들이 결정할 수 있는가? 한 교회의 교인들이 그러한 결정을 할 수 있는가? 우리가 구원받는 자와 구원받지 못하는 자 그리고 하늘에 누구의 이름을 기록하거나 기록되지 않도록 하는 결정을 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을 교인으로 등록하는 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해야할 일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늘의 책에 기록한 사람들을 인정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기록한 사람들을 우리는 이 땅에서 기록하는 것이다. 그분께서 우리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의 이름을 하늘의 책에서 제하셔서 그들을 출교시키셨다고 가정해보자. 그들은 여전히 교회의 교인인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이 지상의 녹명책에 남아있다고 하면 이것은 매우 흥미있는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지상에 있는 녹명책이 하늘에 있는 녹명책과 조화를 이루게 될 때, 교회는 정결케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에게 누가 교인이 되고 안되고를 정할 수 있는 권위를 부여하지 않으셨다. 우리는 그분께서 받아들이거나 거절한 사람들을 단순히 인정할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곳 지상에 당신의 교인들을 소유하고 계시며, 우리는 당신의 사업을 돕기 위한 조직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분의 지방 교회의 총본부는 지상에 있는 합회나 대총회가 아닌 하늘인데 그곳에는 오직 거룩한 자들만이 기록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개념은 사람들을 혼돈케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믿는다.
어떤 지방 교회나 합회에 정치적인 선거운동으로 인해서 문제가 발생하여서 그리스도와 성령에 의해서 인도함 받지 않는 사람들이 직위와 직책을 위임받았고 그들에 의해서 어떤 사람들이 부당하게 출교당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출교당한 사람들은 더 이상 교인이 아닌가? 아니다. 그들은 교인이다. 이와 반대로 전혀 개심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지방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고 가정해보자. 단지 그들의 이름이 지상의 녹명책에 씌여졌다고 해서 그들이 교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결코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당신의 교회가 인간들의 정치적인 꾀에 의해서 조작되고 어려움을 당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으신다. 그분께서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공언하는 교회를 흔들어서 뒤집을 때가 다가오고 있다. 그때에는 하나님의 참 교회가 항상 존재해 왔던 그대로 하늘 책에 기록된 사람들로서 구성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교회를 가지고 계신다. 그것은 커다란 건물도 아니고, 국가적인 설립 기관도 아니며, 여러 각종 교파들도 아니다. 교회란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20. 그리스도께서는 초라한 몇 사람들 중에 계시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이다. 왜냐하면 영원토록 거하시는 높고 거룩하신 분의 임재만이 교회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를 향하여 바라봄, 영문 315.
바울이 안수받았을 때, 그는 교회를 세우도록 안수를 받은 것이다. 새로운 교회를 시작하고 인정하는 권리는 하나님만이 소유하고 있는 권리가 아니다. 우리 모두 교회를 세울 수 있다. 그러나 그대와 내가 그분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 교회를 세운다면, 아무리 합회가 그것을 승인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교회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원토록 거하시는 높고 거룩하신 분의 임재만이 교회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동. 만일 하나님의 임재가 교회의 중심에 거하시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합회의 인준 여부에 상관없이 하나님 당신 자신에 의해서 그분의 교회로 인정받지 못한다.
신약 시대 때에 교회는 부르심을 받아 거룩하게 된 사람들이었다. 바울이 가서 소수의 사람들을 개심시킬 때마다 그는 다른 어떤 인가를 받지 않은 채 그곳에서 그들을 하나의 교회로 조직하였다. 단지 그는 그들이 교회라는 사실을 인정했을 뿐이다.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그분 자신의 계획은 모든 교회들이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새로 세운 교회 위에 당신의 축복을 부어주시기 전에 반드시 선결되어야 할 것들 중의 하나는 교회가 처음에 가지고 있었던 옛 가르침과 교리의 부활뿐만 아니라 성경적인 원래의 조직의 부활이다. 신약 시대의 교회에 있어서 권위는 거룩한 생애, 성경에 대한 명확한 지식,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재능에 의해서 부여되었으며, 행정가적인 기질이나 정치가적인 수완에 의해서 주어진바 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는 세상에서 빌려온 조직과 사상들에 의해서 고통당하며 파괴당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섬기는 직책에 취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이 지방 교회들에 대해서 왕과 같은 직위에 올라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늘에는 왕과 같은 직위가 없고 다만 봉사의 직분만이 있을 뿐이다.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행 20:17.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가 교회의 장로 한명을 부른 것이 아니라 장로들을 부른 점을 주목하라. 또한 바울은 장로들에게 다음과 같은 간절한 부탁과 호소를 한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하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돌보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쫓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행 20:28-31.
바울은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서 흉악한 이리로부터 교회를 보호할 것을 부탁했다. 화잇 부인은 교회증언, 5권 영문 77에서 그녀의 경험을 서술하고 있는데 그녀는 사단에 의해서 지도받고 있는 사람들이 교회를 장악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바울도 동일한 염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장로들을 불러서 이리들로부터 교회를 지켜줄 것을 부탁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리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내려왔을 경우이다. 장로들이 그 이리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는 막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왔는걸요?” 함께 이 문제에 관해서 신약 성경에서 가장 흥미있는 성경절을 찾아보도록 하자. “게바(베드로)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베드로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갈 2:11-12. 바울은 우뚝서서 베드로를 책망하였으나 그는 베드로를 책망하는 일에 있어서 기꺼워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 교회에는 여러명의 장로들이 있어서 응당 그들이 베드로를 견책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지방 교회에 지도자들을 두어서 그들로 하여금 교회를 보호하도록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베드로를 책망하다니 … 그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왔으며 그리스도 교회의 기둥이고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잘 아는 분입니다. 베드로를 책망하다니 안될 말이죠! 그 사람들은 새롭게 믿음을 받아들인 이방인에 불과 합니다. 당신은 불과 몇해 전에 그리스도 교를 받아들인 이방의 갈라디아 사람들에게서 베드로를 책망하는 일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베드로가 누구인데요.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주역이며, 일평생 동안 유대인으로 지냈고, 그리스도의 제자인 걸요. 그리고 바울이 사도였다는 사실을 잊으셨어요? 그는 사도였으니까 견책할 수 있었겠지요.” 우리 모두 바울이 베드로를 견책하는 일을 무척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도록 하자.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로 하여금 진리에 불순종하도록 꾀더냐?” 갈 3:1 (영문 성경 참조).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 5:1. 어떤 사람은 또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 성경절들은 할례에 관한 것들 아닙니까?” 물론이다. 그러나 할례와 이방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문제가 포함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러한 것들이 이슈(issue)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베드로가 갈라디아인들로 하여금 잘못을 범하게 한 것인데, 그들에게 내려와서 잘못된 신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온 베드로라 할지라도 그들은 진리 가운데서 굳건히 서 있어야 했다.
주님께서는 반석되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교회를 세우셨으며, 당신 자신이 교회의 머리이시다 (엡 1:22-23). 마틴 루터 시대의 개혁 사업에 있어서 쟁점은 누가 교회를 다스리느냐는 것이었는데, 즉 예수 그리스도이신가? 아니면 교황인가? 라는 것이었다. 존 웨슬리의 시대에 있어서도 쟁점은 그것이었고, 1888년 당시의 문제도 결국에는 그것에 귀결된다. 우리가 1888년에 화잇 부인께서 교리적인 문제에 대해서 얼마나 적게 말씀하셨는지 알게되면 놀랄 것이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던 존스와 와그너 목사의 문제는 그들이 기별을 전할 때에 “적당한 통로”를 이용하지 않았다는 점과 “적당한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는 데에 있었다.
다음의 글은 화잇 부인이 당시의 대총회장인 버틀러 목사에게 보낸 편지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이 스스로 자신의 마음과 양심을 사용하도록 계획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그림자의 역할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생각을 말하도록 계획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가운데에 이러한 잘못이 들어오려고 하는데, 그것은 소수의 사람들이 모든 하나님의 일꾼들을 대신하여 그들의 마음과 양심과 판단의 기준이 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기본 정신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1888년 재료, 112. 여러분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가 된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가? 화잇 부인 자신이 그것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하시고 계시는 것처럼 사람은 개별적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응답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어떤 사람의 마음이 사람들의 마음을 주관하고 지배해서는 안된다.” 상동. 하나님께서만이 어떤 것이 의로운 것인지를 결정하실 수 있으며, 사람이 만든 위원회가 그것을 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 규칙과 법칙을 만드시며, 사람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원칙들을 따라갈 뿐이다. 성경만이 우리의 신조가 되어야 한다.
목사에게 보내는 권면을 보면 1888년 이후의 지도자들과 사업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다루고 있다. 그 책의 많은 부분은 교회의 권위에 대한 원칙들에 대해서 교훈을 주고 있다. “사람을 신격화 하는 입장에 둠으로써 강한 압력을 가하는 힘이 증가되었다. 그것은 나를 두렵게 하며 또 두려워해야 한다. 그것은 어디에서든지 또한 어떤 사람에 의해서 실행될 때에 저주가 된다.” 목사에게 보내는 권면, 334. “군림하고자 하는 정신이 우리의 대회장들에게 까지도 나타나고 있다. 만일 사람이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낙관적이고 그의 형제들 위에 군림하기를 추구하면서 그의 권위를 다른 사람들을 주관하는 능력으로 삼는다면 그를 위한 최선의 방책은 큰 해가 끼쳐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를 그 자리에서 밀어내는 것이다.” 상동, 335. 화잇 부인의 이러한 사상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인기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러한 사상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가르치기 전에 먼저 배워야 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수년 동안 사람을 첫째로 높이고, 하나님을 둘째로 하는 교육이 백성들에게 주어져왔다. 백성들은 베틀크릭에 있는 몇 사람들 앞으로 모든 것들을 가져와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아왔다.” 상동, 302. 이것은 심각한 문제인데 왜냐하면 이러한 행습은 첫째 계명을 어기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방대회들과 교회들로 하여금 그들의 신뢰를 사람에게 두며 혈육을 그들의 무기로 삼는 일을 그치도록 호소하는 바이다.” 상동,352.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가 되신다”는 기별은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서 실제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예수께서 우리의 실제적인 왕이 되실 때에 연합과 평화와 사랑은 자연스럽게 깃들게 된다. 이 기별은 결코 조직을 해하거나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이 기별이야말로 경직되어 있는 조직을 활성화시킬 것이다. 우리 모두 직위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의 계획이 제시될 때, 누구도 특정한 직책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서로 서로를 위해서 봉사하려고 애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과 신앙을 지배하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위해서 좀더 많이 기도해주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교회로 보고 계시며, 어떠한 조직을 기대하시고 계신지를 분명하게 이해해야 한다. 또한 조직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종의 직분을 떠맡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진리를 따라갈 때에 우리가 반드시 통과 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흔들림이다. 지금은 흔들림의 시기이다. 흔들리는 교회 안에는 우리를 혼돈시키는 여러가지 잘못된 개념과 가르침이 있으며, 우리에게 압력을 가하는 군중심리가 있어서 우리가 대다수의 군중을 따르지 않고 진리를 따르기로 결정할 때, 우리는 외로움과 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수 많은 재림교인들이 가시적인 교회와 맹목적으로 연합함으로써 안락함과 안정감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지만 그리스도와의 분리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성령께서 우리 모두의 영적 안목을 밝혀주셔서 신약시대의 초대교회가 어떠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간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