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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이름은 라오디게아

저자: 마샬 그로스볼 목사

완전히 세상으로 갈까?  아니면 반쯤은 교회에 걸쳐 놓을까?

    우리가 예수께서 가버나움과 소돔을 비교하여 말씀하신 것을 믿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믿음이 요구됩니다. 더욱이 자녀를 가진 부모들이 그 말씀의 영적 의미를 믿는 데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완전히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 보다는 차라리 반 만이라도 교회에 남아있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럴 바에는 오히려 그들이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우리의 자녀들을 세상으로 내보내야 된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만일 그들이 그들의 마음을 반 만 교회에 걸쳐 놓은 채 뜨듯 미지근한 신앙에 만족해 버린다면 그것은 그들의 구원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의 어중간한 믿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스스로 만족하고 자위한다면 이 얼마나 엄청난 기만입니까?

모른 척 할까? 아니면 중간에 서 있을까?

    왜 하나님께서는 라오디게아 사람들을 토해 내치실 것이라고 말씀 하셨을까? 왜냐하면 그들이 중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다른 어떤 죄 보다도 혐오하시고 미워하시는 한가지 죄가 있다면, 그것은 위급한 때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신앙적 위기의 때에 주의 백성들이 나타내는 무관심과 중립을 지키려고 애쓰는 태도는 하나님께 고통을 안겨주는 죄가 되며 하나님 자신에 대하여 가장 악한 적의를 드러내는 것으로 간주된다.” 3T 281. 하나님께 대한 가장 악한 형태의 적의는 중립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구들 이시여!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 가운데서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지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 받으면서 중간에 서 있으려고 하는 우리의 신앙적인 태도가 아닙니까? 우리는 오늘날 교회 안에 다양한 사상을 허용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서 우리는 모든 것을 인정하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매 이슈 마다 중간적인 입장을 취하게 됩니다. 화잇 부인은 리뷰 앤 헤럴드(1902년 2월 25일) 에서 “중간적 입장에 있는 사람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께 대한 공공연한 원수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교회 안에 들어온 축하 형식의 예배에 대하여 쉬쉬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만든 “축하 할 때가 아님” 이라는 소책자와 테입을 여러분들의 교우와 형제들에게 보내어 주십시오. 오순절 파로부터 들어온 가짜 성령 운동에 대한 예언이 지금 성취되고 있습니다. 예배 의식 중에 연주되는 격렬한 하드록 음악은 사단으로부터 직접 온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약간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개 그들은 “어떻게 교회 안에서 이러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을까?” 라고 의아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을 아십니까? 중간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 축제식 예배에 몰입되어 있는 사람들 보다 더욱 악한 죄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 . 그렇습니다. 축제식 예배 운동에는 참여하지 않을지라도 우리가 중간적인 입장을 지키고 있다면 우리는 그들 보다 더욱 악한 자들 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지지하던지 아니면 반대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중간에 있는 자들을 토해 내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백성들의 도덕적 용기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것은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나와 내 가족은 그것을 은근하게라도 지지하지 않을 것이며 “그 정도는 괜찮다” 라고도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화잇 부인은 부드러운 설교를 하는 목사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가장 위험한 설교는 누구나의 눈에 쉽게 띄는 잘못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드럽고 건전하게 들리지만 거기에는 아무런 의미도 능력도 없는 것입니다. 화잇 부인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하나님의 신실한 설교자들은 침례 요한 보다 훨씬 더 예리한 증언을 해야만 한다. 책임있고 중요한 사업이 그들 앞에 놓여 있다. 하나님께서는 부드러운 것들을 말하는 자들을 그분의 목자로서 인정하지 않으실 것이다. 거짓 목자들 위에 무서운 화가 놓여져 있다.” 1T 321. 또한 5T 210,211 에서는 하나님의 인을 받을 자들과 받지 못할 자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구별하여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들은 현존하는 악 위에 망토를 뒤집어 씌우며 모든 곳에 만연되어 있는 엄청난 악함을 변명하고자 할 것이다.” 그러나 “영혼들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의 명예를 위한 열심을 마음속에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지지 또는 호의와는 상관없이 그들 영혼의 평안함을 유지할 것이다.”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교회 안에서는 두 그룹이 형성될 것입니다. 한 그룹은 사업적 수완이 좋은 사람들로서 그들은 모든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애쓸 것이며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악에 대해서 변명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매우 관대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 그룹은 그들 마음 속에 있는 평화가 자신들에 대한 평판과 지지도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으며 죄를 죄라고 부르는 데에 있어서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둘 중에 어느 그룹이 교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느 그룹이 이 교회를 다스리는 세력을 얻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엘렌 화잇은 이렇게 답변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온 악에 대하여 근심하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불법의 급류를 저지시킬 힘이 없으며 이로 인해서 그들은 슬픔과 경각심으로 고통 당하게 된다. 그들은 큰 빛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의 본거지 (중심지) 에서 조차 멸시되는 신앙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애통해 한다. 그들은 자존심, 탐욕, 이기심 그리고 거의 모든 종류의 기만들이 교회 안에 상존함으로 인해서 슬퍼하며 그들의 영혼이 괴롭힘을 받는다. 교회에서 사단의 종들이 승리하는 동안에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영은 그들의 발아래 짓밟히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불명예스럽게 되며 진리는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들 자신들의 영적인 타락에 대해서 슬픔을 느끼지 못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 애통해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인이 쳐지지 않게 될 것이다.” 상동
   
어떤 목사들은 하나님께서는 너무 자비하셔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바로 그런 말을 하는 목사들에게 임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 ‘평안하다. 안전하다.’ 라는 거짓 기별이 백성들의 죄와 야곱 집의 죄를 나팔 같은 목소리로 고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발해 질 것이다. 짖지 않는 벙어리 개들은 분노하신 하나님의 복수를 당하게 될 것이다.” 상동, 211.

    우리는 오늘날 부드러운 설교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는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목사님의 설교 가운데서 어떠한 잘못도 찾을 수 없습니다. 비록 그분이 우리의 현대 진리를 전하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분의 설교에는 오류가 없습니다. 그분은 중립적인 입장에 서있는 목사님 입니다. 정말 다행이지요?” 형제들이시여, 그것은 다행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명백한 오류를 가르치는 목사를 가지고 있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잘못된 것들에 대한 백성들의 슬픔의 저항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견책과 경고의 기별을 위하여 그분의 종들과 선지자들을 부르셨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부르심을 받았던 사람들은 그때 마다 그들의 생명을 하나님의 부르심에 걸어 놓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분께서는 구체적인 행동과 투쟁을 위한 부르심을 모든 교인들과 설교자들 그리고 평신도들에게 보내고 계십니다. 여기 두 개의 놀라운 예언의 신의 말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번째 말씀은 “진리를 가르치나 진리에 의해 성화되지 못한 사람들과 말씀과 교리를 지도하지만 성화되지 못한 지도자들을 받아들이고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선언되어 있는 무서운 재난이 있다.” 1T 261,262. 부드럽고 일상적인 설교를 하며 매 주 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화를 선언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러한 화가 그 사람들에게만 선언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중에서 많은 이들이 다음과 같이 생각하며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 나에게 책임을 묻지 마세요. 내가 한것은 그저 매주 마다 교회에 나온 것 밖에 없습니다. 나는 이 배도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나는 평범한 교인일 뿐 입니다.” 주님께서는 배도의 주역들과 그들을 무책임하게 허용하고 지지한 사람들을 똑같이 취급하십니다.

    두 번째 말씀은 ” 만일 진리를 가르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르치는 말씀에 순종치 않는다면, 깨끗지 못한 손과 순결하지 않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성결한 사업을 하는 그들에게는 더욱 큰 재난이 내려질 것이다. 성화되지 않은 마음과 생애를 살면서 진리를 가르치는 자들에게 화가 선언된 것처럼, 어떠한 위치에 있기에도 자격이 없으며 성화되지 못한 사람들을 지지하고 허용하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화가 선언되어 있다.” 2T 552. 교인들의 계속적인 지지와 후원이 없이는 성화되지 못한 사람들이 목회를 계속적으로 할 수 없으며 잘못되고 부당한 행위를 할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엘렌 지 화잇 여사가 스폴딩과 매간, 117페이지에서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항의하고자 합니다.” 라는 말씀으로 시작되는 그분의 말씀을 알고 있습니까? 나는 여기서 그분이 어떻게 항의 했는지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여러분에게 어떠한 종류의 반란을 촉구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점에 있어서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며 주님께서 주의 종을 통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나는 단순히 예언의 신의 말씀을 여러분들께 알려드리는 것일 뿐 입니다. 나는 여기서 제시한 말씀들이 오늘을 사는 재림 교인들에게 분명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 합니다. 나는 내 자신에게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내리기를 원치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원하십니까? 나는 이런 말씀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리 자신들에게 적용하고 실행하여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분명히 믿는 것은 하나님의 모든 요구 사항과 계명들은 우리가 지키고 따르기에 모두 가능한 것들 이라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사람들, 그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사람들이며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향해서 부르짖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선하고 회개한 사람들 이라고 간주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수에게 협력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이 원수에게 협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형제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아량과 관대함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평판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하나님의 명예보다도 중요시 여긴다. 그들은 교회의 개혁을 갈망하지만 하나님께로부터 개혁자로서 부르심을 받기는 원치 않는다. 바로 이것이 라오디게아 사람들이 모든 의롭거나 의롭지 못한 일에 있어서 무저항적이고 관대하며, 심지어는 신앙적으로 위기의 때 일지라도 “관망하고 기다리는”(wait and see) 태도를 취하게 되는 이유이다. –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