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의 성격과 영향력
엘렌 지 화잇
증언들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믿음을 약화시키는 것이 사단의 계획이다. 사단은 공격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는 사업의 선두에 서 있는 자들에 대하여 시기와 불만을 일으키기 위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역사한다. 그 다음에는 은사들이 의심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물론 그 은사들의 비중은 감소되고, 이상을 통하여 주어진 교훈은 경시된다. 그 다음에는 우리의 믿음의 요긴한 점들, 곧 우리의 위치를 지탱해 주는 기둥들에 관한 회의심이 따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성경에 대한 의심이 생기게 되고, 따라서 멸망으로 향한 내리막 길을 걷게 된다. 한때 믿었던 증언들을 의심하여 버리게 되면 그 속임을 받은 자들이 여기서 머무르지 않을 것을 사단은 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노력을 배가시켜 마침내 불치의 상태가 되어 멸망으로 끝나게 되는 공공연한 반역으로 그들을 몰아넣는다. 하나님의 사업에 관하여 의심과 불신을 용납하고 회의심과 잔인한 시기의 감정을 품음으로써, 그들은 완전한 기만에 빠질 준비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그들의 잘못에 관하여 말해주고 그들의 죄악을 견책하고자 하는 자들에 대하여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지고 일어난다.
1880년에 처음으로 출판된 어떤 젊은이들에 대한 증언은 이 문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은 증언들에 관한 일반적인 회의심이 계속적으로 증가하는 중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젊은이들은 증언들의 정신과 능력과 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의심과 회의심을 제거해 버리기는커녕 오히려 그것들을 조장하고 있다”(증언4권, 437)
나는 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영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증언들의 가치나 그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손을 입술에 대고 땅에 엎드려 있어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유익을 위하여 주신 증언들에 대하여 경솔하게 말하고 그 증언들을 판단하여 그들의 의견을 제시하고 이러쿵저러쿵 평가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영에 대하여 아는 바가 너무 적으므로 증언들의 참뜻을 분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대들이 증언들을 믿는 확신을 잃어버릴 것 같으면, 그대들은 성경의 진리에서 떠나게 될 것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고 회의심을 품는 위치에 서게 될 것을 염려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그대들의 영혼을 염려하는 괴로움 마음으로, 나는 그대들에게 경고하는 바이다. 몇 사람이나 그 경고에 유의할 것인가? 그대들이 지금 증언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한 증언이 그대들의 진로를 가로막고 그대들의 잘못을 견책한다면, 그대들은 그 증언의 어떤 부분 혹은 전체를 받아들이거나 거절하는 것이 완전한 자유라고 생각되는가? 그대들이 받아들이고 싶지 않는 것이 바로 그대들에게 가장 필요되는 증언이다.
나의 형제들이여, 악한 불신의 마음을 경계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제한하는 데 있어서 분명하고 엄격하다. 그것은 그대들의 이기적 방종을 용납하지 앟는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의 증언들은 그대들의 주의를 성경으로 집중시켜 주고, 그대들의 품성의 결함을 지적해 주고 그대들의 죄를 책망한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그 증언들에 유의하지 않고, 그 대들의 육신적이요 안일을 좋아하는 생애를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그 증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만일, 그대들이 그 교훈에 순종하게 되면, 그대들은 그 증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그대들의 불신이 증언들의 진실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만일 그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면 오래 견딜 것이다.
나는 경고와 격려와 견책의 증언들에 대한 불신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빛이 비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것을 보았다. 불신이 눈을 가리고 있으므로, 그들은 자신들의 참 상태에 대하여 무지하다. 견책하는 하나님의 영의 증언이 그들에게는 불필요하거나 무의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그들의 영적 지식의 결함을 깨닫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영적 식별력이 가장 필요하다.
진리에서 떠나간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취한 길이 증언들을 믿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든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정죄하시는 우상을 버릴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그릇된 방종의 길을 계속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이 좋아하는 바로 그것을 견책하기 위하여 주신 빛을 거절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들에게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내가 자아를 부인하고 나의 죄를 견책하기 위하여 주신 증언들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 증언들이 나의 죄를 책망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거절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증언들이 완전히 받아들여지고, 죄와 방종이 끝나고, 하나님께서 주신 빛에 따라 즉시 개혁이 시작된다. 다른 경우에는 죄악적 방종이 자행되고, 증언들이 거절당하고, 사실이 아닌 많은 변명들이 그 증언들을 거절하는 이유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제시된다. 그러나, 참된 이유는 제시되지 않는다. 참 이유는 도덕적 용기, 곧 하나님의 영으로 강화되고 지배되어 해로운 습관들을 버릴 의지력의 결핍이다.
사단은 의문을 품도록 암시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분명한 증언에 대한 반대를 고안해내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불신을 일으키고 질문과 변명을 늘어놓는 것을 그들에게 있는 하나의 덕성, 곧 지성의 표라고 생각한다. 의심하고자 하는 자들은 그렇게 할 여지가 많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불신의 기회를 완전히 제거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겸손한 마음과 배우고자 하는 정신으로 주의 깊이 살펴야 할 증거들을 주시므로, 모든 사람들은 증거의 비중에 의하여 결정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솔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믿을만한 충분한 증거를 주신다.
그러나, 자신의 유한한 이해력으로 분명히 밝힐 수 없는 몇 가지 것들이 있다고 해서 증거의 비중에서 돌아서는 자는 냉랭하고 차가운 불신과, 의심하는 회의심 속에 묻히게 되어 믿음의 파선을 당하게 될 것이다.
견책을 주어야 할 의무
만일 당신의 백성들 간에 그릇된 것이 있음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종들이 그러한 잘못들에 대하여 무관심한 채 지나친다면 그들은 실제로 그러한 잘못을 저지른 죄인들을 옹호하면서 옳다고 하는 것이며, 그들 스스로가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께 불쾌히 여기심 받게 될 것이 확실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죄를 지은 사람의 죄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때문이다. 계시 가운데서 나는 하나님의 종들이 그들 가운데 존재하고 있는 잘못들과 죄들을 취급하는데 등한함으로 그분의 불쾌히 여기심을 받고 있는 많은 경우들이 있음을 지적받았다. 이런 잘못들에 대해 변명해 온 이들을 백성들은 매우 상냥하고 사랑스러운 종들이라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단순히 그들이 명백한 성경상의 의무에 눈을 꼭 감아버린데 기인한다. 그 일이 그들의 느낌에 맞지 않으므로 그들은 피해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영의 탐색하는 증언은 교회의 부패를 막기 위해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방법대로 전쟁에 참여하는 이스라엘로부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분리해 낼 것이다. 잘못은 잘못으로 불려져야만 한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분께로 더 가까이 나와야 한다. 그때에 그들은 참 빛 가운데서 죄를 보게 될 것이며, 그 죄가 하나님의 목전에서 얼마나 가증한 것인지를 인식하게 될 것이다. 명백하고도 곧바른 증언이 교회 안에서 살아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던 것처럼 당신의 백성들 위에 임하게 될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충실한 경고와 견책들이 필요되는 때가 전에는 없었다. 사단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큰 능력을 가지고 내려왔다.
그는 세상을 귀를 즐겁게 해주는 우화들로 홍수를 이루게 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에게 부드러운 것들을 말해주기를 원하고 있다….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몰려드는 흑암을 더욱 확고하고도 결정적인 노력으로 저지해야만 할 것을 보았다. 하나님의 성령의 면민한 사업이 이전 어떤 때보다 지금 더욱 요구된다.
나는 소녀시절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업을 받아들였으며, 강력한 도움이 되시는 그분으로부터 특별한 도움을 받으리라는 약속도 함께 받았다. 또한 내게는 친구든 적이든 차별이 없이 주님의 기별을 충실하게 전달하라는 엄숙한 책임도 주어진 바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사람도 차별을 두지 않으신다. 빈부나, 계급의 고하, 학식이 많거나 적거나 간에 사람들을 다룰 때 주님의 사자에게 주어진 신성한 책임을 회피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만 한다.
아무도 내가 어떤 개인들이나 백성에게 대하여 어떤 명백한 증언하기를 머뭇거리거나 거절한다는 생각을 품지 못하게 하라. 만일 내가 어떤 잘못을 범하였다면 그것은 죄를 더욱 결정적이고도 단호하게 책망하지 않은 데 있다. 형제들 중 어떤 이들은 내 사업을 비난하는 책임을 짊어지면서 잘못을 교정하는 더 쉬운 방법을 제시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당신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을 택합니다. 내가 증언이나 견책에서 말하거나 기록한 것이 아직 그리 명백하게 표현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말하라고 주신 예리한 견책의 효력을 어떠한 방법으로든 감소시키는 자들은 심판의 날에 그들의 한 일이 어떠했는지를 심판 받을 것이 틀림없습니다….나를 견책할 책임을 맡았다고 하며, 자신들의 유한한 판단력으로 더 현명해 보이는 방법을 제시하는 자들에게 나는 거듭 말합니다. 나는 당신들의 노력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나로 하나님과 함께 있도록 하라. 그리고 그분이 나를 가르치시도록 하라. 나는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들을 백성들에게 말할 것이다. 나는 모든 자들이 견책을 받아들여서 자신들의 생애를 개혁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항상 내게 맡겨주신 의무를 수행해야만 한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행할 것이며, 시간과 영원을 위해서 나의 일을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내게 주신 일을 내 형제들에게 맡기지 않으셨다. 내가 공적으로 견책을 주는 태도가 다른 사람들을 예리하고 비판적이며 혹독하게 되도록 이끌었다고 말들을 한다. 만일 그렇다면 그들은 주님과 함께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지 않으신 책임을 지고, 그분이 택하신 비천한 도구를 통하여 친절하고, 잘 참으며 관용하도록 그들에게 거듭거듭 주신 훈계들을 무시한다면 그들은 그 결과들에 대하여 반드시 답변해야만 한다. 슬픔의 부담에 눌림 마음으로 나는 감히 견책하지 않으므로 나 자신을 즐겁게 하려 하지 않으며 나의 가장 사랑하는 친구들, 심지어 남편에게 까지도 달갑지 않은 나의 의무를 수행해 왔다. 그들이 듣든지 듣지 않든지 간에 나는 다른 이들을 경고하는 일에 덜 충실한 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백성들 앞에서 말할 때 나는 미리 생각해보지 않은 것들을 많이 말한다. 주의 영이 빈번히 내게 임하여 나는 마치 나 자신으로부터 들어올려져 멀리 옮겨지는 것 같이 보이며, 각기 다른 사람들의 생애와 품성이 내 마음 가운데 분명하게 제시된다. 나는 그들의 잘못과 위험들을 보며, 내 앞에 전개된 것들을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나는 감히 하나님의 성령을 저항하려 하지 않는다.
견책을 거절함
지금 많은 사람들이 증언 가운데 주신 하나님의 충실한 견책을 멸시한다. 나는 장차 언젠가는 이스라엘의 사악한 왕이 했던 것처럼 견책과 경고가 기록된 말을 불태우는 일가지 있을 것을 보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고게 대한 반대가 그 경고에 대한 처벌을 경감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 선택하신 도구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그분의 말씀에 반항하는 것은 결국 반항하는 자에게 확실한 파멸을 불러일으킬 그분의 노를 격발시키기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견책의 기별을 전달하기 위해 선택하신 도구에 대항하여 죄인의 마음에는 종종 분개심이 불붙을 것이다. 전에도 그래왔으며,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핍박하여 투옥했던 동일한 정신이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내가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나는 잘못을 여지없이 바로잡기 위해 명백하게 지적하는 증언을 했으며, 그 때에 내 증언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사람들은 나의 사업의 감화력을 파괴시키기 위해서 채 완성도 안된 반죽을 덕지덕지 붙이면서 부드러운 것들을 말하는 방침을 따랐다. 주님께서는 견책의 증언을 하도록 나를 움직이셨으며, 그때 여러 사람들이 나의 증언이 효력을 발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나와 백성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견책이 필요 되는 거의 모든 경우에 주님의 영을 슬프시게 하며, 그분의 사업에 욕을 돌린 사실을 완전히 간과하는 사람들이 있게 될 것이다. 그들은 개인적인 감정이 손상당한 때문에 견책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을 동정할 것이다. 이런 모든 성화되지 못한 동정심은 그런식으로 동정하는 자들을 견책받는 자들의 죄를 함께 분담하는 위치에 두게 된다. 어떤 사람이 견책을 받았을 때 자신이 잘못을 범했다는 느낌 가운데 있게 되면 그는 자신의 잘못들을 보고 십중팔구 그 잘못들을 고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참견하기 좋아하는 성화되지 못한 동정자들은 견책한 사람의 동기와 견책한 내용의 속성을 완전히 그릇되게 해석하여 잘못을 행한 사람을 동정함으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참으로 가혹한 대접을 받은 것으로 느끼게 한다. 그러면 그는 격한 감정으로 단지 자신의 의무를 수행한 견책자에 대항하여 반역을 꾀하기 위해 일어선다. 하나님께서 주신 책임감 아래 자신들의 달갑지 않은 의무들을 충실히 수행한 자들은 그분의 축복을 받을 것이다.
이 마지막 시대에 다음과 같이 말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부드러운 것을 말하며, 거짓을 예언하시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나의 사업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그분의 백성들을 위한 견책자로서 지정하셨으며, 내게 무거운 부담을 얹혀주신 것이 틀림없다. 그분은 이 기별이 주어지는 사람들이 그 기별을 어떻게 취급하는지에 따라서 그들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실 것이며, 그분의 사업을 멸시하는 자들은 그들의 행위에 따라 보응을 받을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하여 이 달갑지 않은 사업을 선택하지 않았다. 이 사업은 나로 사람들의 호의나 칭찬을 받도록 할 사업이 아니다. 이 사업은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감사하게 될 사업이다. 그러나 오해와 질투어린 의심과 불신으로 나의 수고를 두배나 더 어렵게 만들며,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 편견을 일으켜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증언들을 반대하며 내 사업을 제한하는 자들은 그 문제를 하나님과 함께 해결하도록 놔두고 나는 섭리와 내 형제들이 내 앞에 길을 열어주는대로 앞으로 전진할 것이다. 나의 구속주의 이름과 힘을 의지하여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것이다…나의 의무는 나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할일을 주신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내게 당신의 백성들에게 전할 기별을 주셨다면 사업에 있어서 나를 방해하며 그 기별이 담고 있는 진리에 대한 믿음을 감소시키는 자들은 도구인 나를 대항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대들이 업신여기고 모욕하고 잇는 것은 도구가 아니라 그대들에게 이러한 경고들과 견책들을 말씀하신 하나님이시다.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도록 지정하신 도구들을 멸시하거나 거절하는 것보다 하나님께 더한 모욕을 주는 것은 없다.
“증언들”을 등한히 함
위험한 처지에 있는 자들은 증언들을 공공연하게 거절하거나 증언들에 관하여 의심을 품는 자들만이 아니다. 빛을 등한히 하는 것은 빛을 거절하는 것이다.
그대들 중 어떤 사람들은 말로는 견책을 인정하나 마음으로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대들은 전과 다름없는 길을 걷고 있으며, 다만 하나님의 영의 감화력에 덜 민감해질 분이며, 점점 더 눈이 멀어져 지혜와 자제와 도덕력이 감소되고, 종교적 활동을 위한 열성이 식어지고 취미를 상실하고 있다. 그러므로 회개하지 않으면, 그대들은 마침내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손을 완전히 놓아 버릴 것이다. 책망을 받을 때, 그대들은 생애에 있어서 결정적 변화를 이루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그대들의 품성의 결함과, 그대들의 생애와 그리스도의 생애와의 큰 차이를 보고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대들의 마음속에서 불의를 소중히 여기고 잇는 동안, 그대들의 기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철저한 변화를 이루지 않을 것 같으면, 그대들은 미구에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책망에 대하여 싫증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들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등을 돌리는 배교자가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경계와 책망과 경고에 관한 빛과 지식을 알려주는 책들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신 빛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오류를 기록한 책들과 정기 간행물들이 나라의 전역으로 보급되고 있는 동안, 세상의 염려와 유행에 대한 애착과 신앙의 결핍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처럼 은혜롭게 주신 빛에서 주의를 돌리게 되었다. 회의론과 불신 사상은 도처에서 증가되고 있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오는 매우 귀중한 빛은 말 아래 감춰져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등한히 한 것에 관하여 당신의 백성들에게 책임을 지우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앞길에 비춰 주신 모든 빛의 광선에 대하여, 그 빛이 거룩한 사물에 있어서 우리가 전진하는 데 이용되었거나 우리의 경향을 따르는 것이 더욱 마음에 들기 때문에 거절되었거나 간에 우리는 하나님께 회개해야 한다.
예언의 신에 속한 책들(각 시대의 대쟁투 총서의 초기판 4권을 말함-편자 주)과, 또한 증언들은 안식일을 준수하는 모든 가정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하여, 형제들이 그 책들의 가치를 깨닫고 그것들을 읽도록 권유를 받아야 한다. 이 책들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교회에 한 질만 두는 것은 가장 현명한 계획이 아니다. 이 책들은 매 가정의 서재에 비치되어 거듭거듭 읽혀져야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질 수 있는 곳에 이 책들을 비치해 두라.
목사들과 일반 교인들은 복음의 진리가 구원하지 않을 때는 굳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빛을 거절하면, 사람들이 포로가 되고 암흑과 불신의 사슬에 묶여진다. 날마다 자비의 초청 듣기를 거절하는 영혼은 가장 긴급한 호소를 자신의 심령을 일깨우는 아무런 감동도 없이 미구에 곧 듣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더욱 열렬한 경건과, 자아를 적게 높이는 일이 필요하다. 자아를 높이면 높일수록, 하나님의 영의 증언들을 믿는 믿음이 더욱 감소될 것이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신뢰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의 증언들에서 하나님을 점점 더 적게 발견하게 될 것이다. (교회증언 5권, 672~681,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