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밖에 서 있게 될 처녀들
저자: 마샬 그로스볼 목사
“그 때에 천국은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명의 처녀와 같으니라. 그들 가운데 다섯은 현명하고 다섯은 어리석더라. 어리석은 처녀들은 등을 가졌으나 등과 함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였고, 현명한 처녀들은 등과 함께 기름통에 기름을 가지고 있더라. 신랑이 늦어지므로 모두 졸려서 잠이 들었는데, 한밤중에 소리가 나기를 ‘보라 신랑이 오니 나가서 맞으라’하더라. 그때 그 처녀들이 모두 일어나서 각기 자기 등을 조절하는데, 어리석은 처녀들이 현명한 처녀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등불이 꺼졌으니 너희 기름을 좀 달라’고 하더라. 그러나 현명한 처녀들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우리와 너희에게 충분하지 못하니 차라리 장사꾼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고 하더라.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으니 준비하였던 처녀들만 그와 함께 혼인식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더라. 그 후에 나머지 처녀들도 와서 말하기를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라고 하더라. 그러나 그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마태복음 25:1-12.
주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재림 교인이었다. 그들은 모두 동료였고, 그리스도께서 이제 곧 오시니 모두 준비하라고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빛을 환하게 비추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주께서는 그들이 기대했던 만큼 속히 오시지 않았다. 시간이 지체됨에 따라 그들은 여러 가지 선한 일들 속으로 깊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갖가지 교회 활동, 가족을 부양하는 일, 은퇴 후의 계획을 준비하는 일, 등등…. 그들은 주님께서 그토록 오랫동안 지체하실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서 처음에 그들이 가졌던 열정과 열심을 잃어가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여전히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정신과 생활은 그들의 명칭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만큼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주말에는 교회를 나갔고, 주중에는 그들이 먹고 살며, 다른 사람들 만큼 윤택하게 잘 살기 위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였다. 그들 모두에게서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들은 비슷한 모양으로 졸고 있었다. 그들은 점차로 세상에 깊이 들어가게 되었는데, “이제는 정말 예수께서 오실 때가 되었으니 준비해야겠는데!” 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건들이 갑자기 그들의 눈 앞에서 전개될 때까지 그들 중의 대부분은 자신들에게 즐거움과 안락함을 주는 좋은 일들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하였다. 예를 들면 집을 조금 더 아름답고 편하게 늘리고 고치는 일, 여름 휴가를 재미있고 보내기 위해서 준비하는 일, 맛있는 빵을 만드는 방법을 생각하는 일, 채식을 통하여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 ……
그들은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깨닫고 깜짝 놀라는 가운데 일어나서 재림을 선포했는데, 그들이 들고 있던 등잔 중의 어떤 것들은 환하게 빛나기 시작하였으며,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들어야 할 모든 기별을 듣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그저 교회에서 열리는 야영회에 참석하고, 성경 통독반에 가입하며, 기도회에 자신의 이름을 등록함으로써 자신들이 잃어버린 능력을 다시 얻게 되기를 소원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말하기를 이 땅에 기근이 올 날이 있을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낼지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아모스 8:11-12.
근래에 나는 이 성경절이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성경절은 라오디게아 교인들을 위한 말씀이다. 이 말씀은 백성들이 어떤 사람들의 말을 들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될 것을 증거하고 있다.
능력을 원하지만 능력을 얻지 못하는 무리는 기름을 찾으러 나가는 미련한 처녀들로 상징되고 있다. 그들은 그저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이쪽 바다에서 저쪽 바다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뛰어 다니고, 각종 야영회에 참석하여 설교자들의 말씀을 들으며, 진리를 가르치는 것으로 인정되는 사람들에 의해서 쓰여진 글만을 읽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만 진리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말씀의 기근이 극심함으로 인해서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 미련한 처녀들은 “저 사람들은 틀림없이 여호와의 말씀을 전할거야”라고 믿어지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들으러 갔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그들의 설교는 그들을 믿고 찾아간 처녀들의 생애를 변화시킬만한 능력을 포함하고 있지 못했다.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랐으며, 누구에게 가야 할지를 몰랐다. 그러나 그들이 알고 있는 분명한 한가지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인정되고, 승인되지 않은 장소에는 결코 가지 말아야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교회가 더 이상 “신실하고 확고하며 진실한 설교자”들을 소유하지 못할 때가 임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이 사랑하는 기만 가운데 그대들을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성실하고, 확고하고, 진실한 설교자들이 우리의 배은망덕한 교회들에게 평화의 복음을 전해주게 될 마지막 사람들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멸망시키는 자들은 이미 사단의 손에 의해서 훈련을 받고 있으며, 몇 사람의 기수들이 더 떠나가면 그들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주님께서 평안이 없다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평안, 평안’을 부르짖는 거짓 선지자의 음성이 들릴 때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교회증언, 5권, 영문 77.
엘렌 화잇 자매는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비상한 역사를 지상에서 행하실 때, 거룩한 손들이 법궤를 더 이상 나르지 않을 때, 사람들에게 화가 임하게 될 것이다.” 상동. 이때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징조를 사람들이 보게 될 때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 각종 사건들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사람들은 깨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등잔에는 기름이 없다. 그들은 북쪽과 남쪽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기름을 구하기 위해서 뛰어 다닌다. 그들은 신뢰할만한 곳에서 출판되어 나오는 책들만 골라서 읽으며, 신뢰할만한 야영회만 찾아서 다닌다. 그리고 신뢰할만한 설교자들의 설교만 골라서 듣는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의 기근 속에서 바쁘게 방황하고 있을 뿐이다. 화잇 자매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놀라운 증언을 계속하고 있다.
“경건의 누룩은 그 힘을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았다. 교회의 위험과 침체가 가장 클 때, 빛 가운데 서 있는 적은 무리는 땅에서 자행되는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더욱 특별히 그들의 기도는 교회를 위하여 드려질 것이다.
“이 성실한 적은 무리들의 열렬한 기도는 허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 복수하시는 자로 나오실 때, 그분께서는 순결한 믿음을 그대로 보존해오고 스스로를 세상에서 더럽히지 않고 지켜온 모든 자들의 보호자로 나오실 것이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실지라도 당신께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의 원한을 갚아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은 이때이다.” 상동, 209.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가증한 죄들에 대해서 울며 탄원하는 사람들은 소수의 무리이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인이 쳐질 것이라고 하였다. 대다수의 교인들은 점점 더 세속적으로 자신이 입장을 결정하고 있다. 우리는 너무나 적은 무리가 하나님의 인을 받을 것이며,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짐승의 표를 받게 될 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요한계시록 13:16.
엘렌 화잇은 이 작은 무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이 탄식하고 부르짖는 자들은 생명의 말씀을 설교해 왔었다. 그들은 책망을 하고 권면을 하고 탄원을 하였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던 어떤 자들은 회개하고 그분 앞에서 그들의 마음을 낮추었다. 그러나 여호와의 영광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갔다. 비록 수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형식은 여전히 지속하고 있을지라도 그분의 능력과 임재는 결핍되어 있었다.” 상동. 매 안식일 마다 종교적 행사가 진행되고, 교회의 모든 기능이 수행되며, 교회 학교와 병원들이 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주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갔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 가운데에 임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주님의 영광 없이 종교적인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는 악을 가리우기 위해서 외투를 뒤집어 씌우고, 도처에 팽배한 큰 악을 변명하고자 애쓰는 동안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성과 영혼들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서 침묵을 지키지 않을 것이다.” 상동. 우리는 교회 안의 문제들에 대해서만 우리의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문제가 있는 심각한 현실을 무시하려고 한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함으로서 자신들을 관대하고 포용력 있는 중간적인 위치에 놓으려고 한다. “우리에게 실수와 연약함이 있지만 교회를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맙시다. 그대신 서로를 사랑함으로써 연합합시다!” 우리가 어떤 문제를 다루려고 할 때, 어떤 이들은 사람들이 비난의 정신에 빠질 것에 대해서만 걱정하는 듯 하다. 그들은 교회의 진정한 부흥과 개혁에 대한 부담보다는 교회를 문제없이 안정되게 유지하는 일에만 골몰하고 있다. 그들은 교회가 표준을 낮춤으로써 악을 위한 문을 활짝 열어놓는 것에 대한 염려보다는, 교인들이 성경의 원칙 위에서 자기 주장과 소신을 분명히 하게 될 때에 야기될 수 있는 시끄러움(?)에 대해서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러나 형제 자매들이시여, 우리 모두는 진정으로 염려해야 할 것에 대해서 먼저 염려하고 걱정해야 한다. 우리 사이에 어떠한 감정적인 갈등이 생길 여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곧바르게 말해야 할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들은 거센 악의 물결을 막을 힘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의 슬픔과 염려는 충만해진다. 그들은 큰 빛을 받은 자들의 가정에서 신앙이 멸시당하는 것을 보고 탄식한다. 교만과 탐욕과 이기심과 거의 모든 종류의 기만이 교회 안에 있기 때문에 그들은 탄식하고 자신이 영혼을 괴롭게 한다.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영은 발 아래 짓밟히고 사단의 종들은 승리를 거둔다. 하나님은 모욕을 당하시고, 진리는 효력을 나타내지 못하게 된다.” 상동. 지난 몇 년을 뒤돌아 볼 때, 우리는 마치 무너진 댐으로부터 쏟아져 내리는 듯한 오류와 악을 보게 된다.
“신실한 자들이 탄식하고 부르짖는 가증한 일들은 모두 유한한 사람들의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하고 순결한 질투를 자극하는 가장 최악의 죄들은 드러나지 않았다.” 상동.
교회가 모든 종류의 흔들림을 통과하며 지나는 동안, 모든 사악한 죄들은 떨어져 나가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죄를 고집했던 사람들이 남기고 떠나간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바벨론으로부터 들어온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실한 사람들과 연합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은혜의 시간이 끝날 것이다. 하늘은 그들에게 늦은비를 보낼 것이고, 순결하고 영광스러운 교회가 오순절의 영광을 재현하게 될 것이다. 드디어 교회 안에서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승리하게 되는 순간은 바로 그때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역사적인 순간에 이르기 전까지 교회 안에서 승리를 거두게 될 사람들은 누구인가? 누가 마지막 시대에 교회 내에서 지배적인 세력으로서 교회를 주도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모욕을 당하시고 진리가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는 동안 사단의 종들이 교회 안에서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라고 예언의 신은 경고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그분의 교회 위에 역사하시고 있는 동안, 사단 역시 그의 인간 대리자들을 통해서 남은 교회를 점령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땅에 말씀의 기근이 이르러 왔고, 미련한 처녀들은 기름을 찾으러 나갔다. 그들은 과거에 기름을 소유하였었고 빛을 비춘 적이 있지만, 부주의함으로써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시 한번 기름을 찾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설교자들에게 달려갔다. 그들은 자신들이 성장해 왔으며, 남은 교회라고 굳게 믿어온 교회에게 자신들의 모든 신뢰를 두었다. 그들은 과거부터 자신들이 익히 잘 알아왔던 저자들이 쓴 책들만을 읽을 정도로 조심스럽다. 그들은 다시 한번 빛을 비추기 위해서 등잔 기름을 찾으러 나갔고, 그들은 그들의 목적을 성취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이 들고 있던 등잔에서는 다시 빛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또한 그들이 갈구했던 능력이 되살아 나오는 듯했다.
우리는 예수께서 하늘의 지성소로 들어가신 때를 알고 있는 백성이다. 그런데 어떤 재림신자들은 믿음으로 그분을 따라 들어갔다. 그들이 그분을 따라서 믿음으로 지성소로 들어갔다는 말의 의미는 믿음으로 지성소의 경험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하늘 성소를 정결하게 하시는 동안, 그들은 죗된 그들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경험 속에 거하는 것이다(초기문집, 57 참조). 그러나 어떤 재림 신자들은 이미 예수께서 떠가간 성소에 머물러 있었다. 물론 초기문집 55에 나오는 그 글은 화잇부인 당시의 초기 재림신자들의 경험에 관한 언급이지만, 오늘날도 지성소로 따라 들어가지 않는 재림신도들이 있는 것이다. “나는 보좌 앞에 아직도 머리를 숙이고 있는 무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난 것을 몰랐다. 사단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하려고 나타났다. 그들은 보좌를 쳐다보며 ‘아버지여,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부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였다. 사단이 그들에게 거룩하지 않은 영향력을 불어 넣었는데, 그 안에는 빛과 큰 능력이 있었지만 자비로운 사랑과 기쁨, 그리고 평안이 없었다.” 초기문집, 57.
우리는 사단에게 기도하는 자들에게도 빛과 능력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여러분들은 라오디게아의 경험 속에 살고 있지만, 그들의 생애 속에 희한한 능력이 역사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듣거나 본적이 있는가? 그들은 그러한 경험을 이전에 결코 경험해 본 적이 없으며, 그들에게 있어서 종교는 새로운 의미를 가진 것으로 부각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생애와 경험은 마치 에덴 동산에서의 하와의 경험과 같은 것이다. 하와는 사단의 유혹에 넘어져서 불순종을 하였으면서도 자신이 더욱 더 높은 경지의 경험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생각하였고, 자신의 경험에 대한 확신이 너무도 진지하였기 때문에 남편에게도 자신의 경험에 동참할 것을 힘있게 호소하였던 것이다. 하와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빛 가운데서 불순종의 생활을 살고 있으며, 실제적인 불순종의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착각이 너무도 심각하고 진지하기 때문에 그들의 말과 행동 속에는 깊은 확신마저 깃들어 있다. 그들이 그토록 깊이 스스로에게 기만 당하게 된 것은 그들이 빛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었으며,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선한 행위를 하며, 더 열심히 전도함으로써 더욱 더 굳은 확신감 속으로 들어가려고 애쓰지만, 때때로 조용히 혼자 있거나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있게 되는 엄숙한 순간,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자존심과 평판이 흔들거리는 위기의 순간에는 그들의 마음 속에 평안과 기쁨과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참된 개심과 거듭남의 경험을 소유하고 있지 못했고 자신이 받은 진리에 대한 전적인 순종이 없었으므로, 평안과 기쁨과 사랑을 소유할 수 없었다.
다시 열 처녀의 비유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신랑을 기다리던 모든 처녀들이 재림 신자들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진심으로 주의 오심을 기다렸다. 그들은 등잔을 가지고 있었으며, 한때 그들이 들고 있던 등잔은 불타고 있었다. 열 처녀에 관한 성경의 말씀을 계속 읽어나가 보자.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25:10-13.
혹시 미련한 처녀들이 다른 기름과 다른 불을 사가지고 왔으면서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자신들에게도 기름이 있는 것으로 잘못 확신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는 기름이 있었고 등잔은 불타고 있었으며, 그들은 빛과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문은 닫혀졌는데 그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기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태복음 24:36-42.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라는 구절을 생각해 보자. 이 말은 홍수가 밀려온 것을 그들이 몰랐다는 말이 아니다. 이 성경절은 그들이 은혜의 시간이 이미 끝났음을 알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노아와 그의 식구들은 방주로 들어갔고, 방주의 문은 닫혔다. 아무도 은혜의 시간이 끝났음을 알지 못했다. 방주문이 닫히고 구원을 받을만한 마지막 기회가 지나가 버렸는지도 모르고 그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갔는데, 그렇게 하기를 7일이 지나고 홍수가 그들 위에 퍼부어질 때까지 계속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 오늘날의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시는 것이다.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태복음 24:39.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동안에 문은 조용히 닫혀질 것이지만, 하나님을 믿는다고 공언하는 교인들은 여전히 안식일이면 교회에 나갈 것이고, 십일금과 연금을 드리며, 교회의 각종 활동에 참여할 것이다. 문은 닫혀지고 있는데, 사람들은 문 닫히는 소리를 들을만한 귀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문은 닫혀지고 있는데,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들이 하는 장사와 교회 활동에만 전념하고 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시여, 우리는 우리가 처한 위험이 고대 이스라엘의 위험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에게 고대 이스라엘이 가리켜졌다. 이집트를 떠났던 장정 중에 2명만이 가나안에 들어갔다. 그들의 범죄함으로 인하여 그들은 광야에서 시체로서 뒹굴게 되었다. 현대 이스라엘은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잊어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훨씬 더 큰 위험 가운데에 놓여 있다.” 교회증언,6권, 영문 609.
은혜의 시기가 끝마쳐지기 전에 교회 안에 있는 모든 믿는 자들이 흔들리게 될 것이다. 아! 모든 형제자매들이 그 흔들림 속에서 자신들의 진정한 상태와 형편을 깨닫게 되어야 될 텐데…. “선지자들에 의하여 경고 받기를 거절하고 모든 진리에 순종하여 그들의 영혼을 정결하게 하는데 실패하고, 자신들의 상태가 그들의 진정한 형편보다 훨씬 좋다고 믿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재앙이 내리는 때를 당해서야 그들이 건물을 위하여 적합하게 깎아지고 다듬어지지 않았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는 그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을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경우를 간구해 줄 중재자도 없을 것이다.” 초기문집, 75.
모든 것을 이기고 승천할 교회는 오직 순결하고 거룩한 교회뿐이다. 어떤 교회도 은혜의 시간이 끝나기 이전에 정결하게 되거나 거룩하게 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 가운데 있는 가장 두려운 기만 가운데 하나는 교회의 지도자들과 대다수의 교인들에게 인정 받아야만 구원에 대한 안전감을 소유하게 되는 현상이다.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팽배했던 기만도 바로 이러한 것이었다.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를 도와 교회의 부흥과 개혁을 위해서 일어서려고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교회가 그리스도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을 때까지라도…. 그들은 그저 교회 안에 머물면서 안전감과 평안함을 즐기고 있었다.
오! 사랑하는 형제들이시여, 유대국가의 은혜의 문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비밀리에 닫혀졌던 것처럼, 지금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향한 은혜의 문을 닫으신다면, 우리는 문 안에 있겠는가? 아니면 문 밖에 있겠는가?
지금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저울질하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사업을 잘 알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모든 대회와 합회의 사무실의 복도를 걷고 있으며, 우리들이 말하는 이야기들을 듣고 계신다. 성경은 말하기를, 열매를 맺지 못하는 모든 나무마다 잘라서 불에 던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우리들이 바로 미련한 처녀들이 아닐까? 우리는 너무도 미련해서 우리 자신을 스스로 속일 만큼 미련한 처녀들이 아닐까? 비록 우리가 우리 자신을 속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동기와 의도와 생각을 읽고 계신다. 이제 곧, 우리의 삶에 아무런 재난과 환란이 없이도 은혜의 문이 조용히 닫혀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성품을 완전하게 반사하는 자들만이 그때 문 안에 거하게 될 것이다.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깨어 일어나서 기름을 사러 뛰어 다닐지라도 이미 모든 것은 결정되고 끝난 후가 될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시여! 그대들은 지금 조용히 닫히고 있는 문 소리를 들을만한 귀를 가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