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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후의 정신

마틴 앤드류스(필명)

 주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시길,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하라.” (왕상 19:15~17)

 “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생도 중 하나를 불러 손에 이르되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손에 가지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 거기 이르거든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찾아 들어가서 그 형제 중에서 일어나게 하고 데리고 골방으로 들어가서 기름병을 가지고 그 머리에 부으며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노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되 지체치 말지니라…… 저가 이르되 보니 군대 장관이 앉았느니라 소년이 가로되 장관이여 내가 당신에게 할 말씀이 있나이다 예후가 가로되 우리 모든 사람 중에 뉘게 하려느냐 가로되 장관이여 당신에게니이다 예후가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니 소년이 그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을 삼노니 너는 네 주 아합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주리라 아합의 온 집이 멸망하리니 이스라엘 중에 매인 자나 놓인 자나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하되 아합의 집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함의 집과 같게 하며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과 같게 할지라 이스르엘 지방에서 개들이 이세벨을 먹으리니 저를 장사할 사람이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니라” (왕하 9:1~3, 5~10)

 예후가 일단 일에 연관을 맺을 때에는 항상 사건이 빨리 진전되었다. “예후가 나와서 그 주의 신복들에게 이르니 한 사람이 그에게 묻되 평안한가 그 미친 자가 무슨 까닭으로 그대에게 왔더뇨 대답하되 그대들이 그 사람과 말한 것을 알리라 무리가 가로되 당치 않는 말이라 그대는 우리에게 이르라 대답하되 저가 이리저리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는다 하셨다 하더라 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취하여 계단 꼭대기에 있는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가로되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 (왕하 9:11~13)

 예후는 주께서 그에게 분부하신 임무를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을 죽이고, 유다 왕 아하시야를 죽였다. 그 후 예후는 이스르엘에 가서 이세벨을 죽였다. 주께서는 아합 왕의 사악함으로 인하여 그의 온 집을 칠 것을 예후에게 명하셨다. “예후가 무릇 아합 집에 속한 이스르엘에 남아있는 자를 다 죽이고 또 존귀한 자와 가까운 친구와 제사장들을 죽이되 저에 속한 자를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왕하 10:11)

 예후는 주께서 그에게 하라고 명하신 임무를 수행했기 때문에, 주께서는 그에게 보상하셨다(왕하 10:30 참조). 그러나 예후의 생애를 연구해 볼 때, 그가 하늘 왕국에 있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게 된다. 성경은 말하기를,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왕하 10:31)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구원의 약속을 성경 가운데서 찾아볼 수 없다.

 예후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매우 흥미 있는 교훈을 주고 있다. 하나님의 지시에 의해서 안수를 받았고, 주님으로부터 “너는 내가 네게 명한대로 수행하였으니 내가 너에게 보상을 하겠다.”는 말씀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림을 당할 수 있을까?

 예후는 그의 생애에 있어서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문제중의 하나는 자신에 대한 신뢰(확신)였다. 그는 자신이 결정만 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살았다. 그래서 자신이 하기로 결정만 하면 어떤 하나님의 사업도 모두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만일 우리가 자신을 신뢰하고 확신한다면, 우리는 어떤 위대한 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생애에 있어서 자기 신뢰는 가장 위험한 기만 중의 하나이다. 우리의 신뢰는 오직 주님께만 드려져야 한다.

 예후의 두 번째 문제는 무엇인가?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고 결심하였다. 다음과 같은 예후의 선언은 그의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 “나에게 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 하고”(왕하 10:16). 예후는 열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없었다.

 예후의 종교는 행동과 행위에만 국한되었다. 예후는 열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종교가 활동적인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어떤 큰 일을 함으로써 신망을 얻게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스런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조성하는 사소한 일에 있어서의 품위와 우아함을 전혀 무시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굉장한 일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바쁘고 부산한 봉사는 하나님께 가납되지 않는다. ‘나에게 와서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고 말하는 것은 예후의 정신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에게 감사하는 정신이며, 스스로 만족하는 감정이다. 그러나 온 영혼은 정복되지 않고, 자제되지 못한 이기심에 의해서 더럽혀진다.” 시조, 1884년 11월 20일. 무엇이 잘못된 것인 것인가? 그의 종교는 온갖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변화되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와 같은 정신인 은혜스런 품성을 개발하지 않았다.

 분별없이 급하게 행동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예후의 정신에 대한 경고를 받아야 한다. “분별없이 급하다.”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중요하고 큰 결정을 그 상황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모두 느리고 게으른 사람으로 생각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예후와 같은 정신에 빠져들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엄숙하고 중요한 결정을 할 때에 분별없는 모험을 한다. 그들은 그들을 자신들의 위치에 올려놓으신 하나님께로부터 겸손하고 진실하게 지혜를 구해야 한다. 그들은 책임을 지는 일에 있어서 겸손하고 온유해야 한다.” 원고, 12권 113.

 “만일 우리가 주님의 즐거움에 동참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분과 협력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소유하게 될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에 미칠 수 있는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비이기적이고 사려 깊으며 친절하게 만든다. 친절은 마음의 문을 열며, 온유함은 예후의 정신보다 훨씬 강력한 것이다.” 리뷰앤 헤럴드, 1885년 2월 10일. 예후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기를 원하시던 것들을 행했다. 그러나 그는 올바른 정신을 소유하지 못했다. 우리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께 굴복되어 비이기적이고 온유한 마음과 정신을 소유하지 않는 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 문을 열고 그리스도께서 명하신 사업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예후의 정신을 가지고 바쁘게 일하면서, 스스로 자만하고 자신보다 바쁘게 일하지 않는 자들을 내려다보고 판단하는 한, 우리는 그리스도의 뜻을 발견하는 일에 실패하게 될 것이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종들을 무시하고 박해하는 일에 열심을 내게 될 것이다.

 여러분들은 예후의 정신보다 능력 있는 정신을 소유하기를 원하지 않는가? 여러분들의 자녀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을 원하는가? 여러분들이 참된 거듭남을 통하여서만 소유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함과 겸손으로 자녀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고 말할 때, 여러분들은 예후보다 더욱 강력한 능력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때에야 비로서 여러분들은 예후의 정신이 포함하고 있는 진정한 위험성을 간파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