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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 속성의 종교인 로마교

 엘렌 지 화잇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라 주장하는 모든 자들을 성경을 읽는 그대로 해석해야 할 것이 절실히 요구된다. 성경이 때와 법을 변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죄악의 사람을 무엇이라 말하는지에 관한 올바른 결론에 도달할 필요가 있다. 죄악의 사람은 자신이 때와 하나님의 율법을 변경할 진정한 능력이 없으면서도 스스로 자신이 그 일을 하기에 능하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살후 2:4). 그는 죄의 창시자인 첫 번째 대 반역자를 흉내 내고 있는 자이다. 하늘에서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을 변경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고, 이 목적을 위하여 그는 하늘 궁정에서 자신의 성격과 자신의 위치를 바꾸어 다른 천사들이 하나님을 대항한 반역에 자신과 연합할 때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율법을 변경시키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사단의 사상에 맞게 당신의 정부의 형태를 변경시키지 않으셨으며, 하늘과 땅에 있는 당신의 정부의 기초가 보좌 그 자체처럼 변경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명백히 하셨다.

  사단이 하나님의 율법을 대항한 반역을 하도록 모든 천사들을 충동할 수 없었을 때 그는 지구를 자신의 반역의 현장 수행하려 하였다. 로마의 권력이오, 죄악의 사람인 교황권을 통하여 사단의 목적은 사람들 가운데서 수행되었다. 하나님의 율법과 때는 제쳐둔바 되었다. 이 일에 있어서 개신교가 천주교를 돕고 있음을 우리는 본다. 우리의 선조들이 재산과 생명에 위협을 받으면서도 대장부답게 반대하여 대항하던 거짓 예배 제도가 더 큰 영향력을 미치고 확장되기 위해 귀히 여기는 바 되고, 장려되었다. 개신교도들은 응당 해야만 할 만큼 성경을 탐구하지 않으며, 죄악의 사람의 일에 관해 주어진 경고에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는다. 로마 교회는 교황이 모든 감독과 목사들 위에 최상권을 가지고 군림하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최상권을 주장하는 이 주장은 과거에 개신교도들에 의해 부인된 바 있었다. 그들은 성경, 오직 성경만이 믿음과 가르침의 규범이며, 하나님의 말씀만이 인간 영혼들을 위한 결코 실수함 없는 유일한 안내자라는 입장을 취했으며, 하나님의 말씀 대신 신부나 성직자의 말을 듣는 것은 불 필요하고도 위험한 것이란 입장을 취했다.

  로마교도에게 있어서 성경은 금지된 책인데, 이는 성경이 로마교 제도의 오류들을 명백히 드러내며, 누구든지 밝은 식별력을 가지고 성경을 탐구하는 자는 로마교회와 더 이상 조화를 이룰 수 없는 때문이다.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 성경을 탐구하는 자는 교황이나 추기경의 세력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할 권리를 가지지 않았음을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루스벨이 하늘에서 그리스도 위에 최상권을 가졌노라고 하는 주장에 대한 아무 인가가 없는 것처럼 그들이 그 백성들에게 대해 최상권을 행사하는데 대한 아무 인가도 없다 최상권에 대한 교황권의 주장은 아주 끈질기게 하나님의 군데 위에서 최상권을 주장하는 첫 번째 대찬탈자의 영향력 아래서 생긴 것이다. 무지와 미신의 긴 밤이 암흑기를 통하여 최상권에 대한 교황권의 주장은 왕과 제후들에 의해 용인되는바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결코 그런 것을 재가하신 적이 없으며, 그 주장을 철회시키고 하나님의 교회로부터 로마의 멍에를 부서뜨리기 위해 사람들을 일으키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지정하신 대리자들을 통하여 교회가 그 독립성을 재주장하고, 그분이 주시는 힘 안에서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자유케 하신 자유를 굳건히 고수하도록 교회를 부르셨다. 교회는 교황권의 멍에를 부서뜨리고, 손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마치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물매와 몇 개의 조약돌을 사용하여 골리앗과 맞섰던 것처럼 거대한 로마교의 악과 맞섰다. 이스라엘의 도전자는 믿음의 사람 앞에서 살해당하였다.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에 집착하는 동안 그들은 오류의 큰 조직과 제휴할 수 없다.

 주님께서는 성경에 무엇을 가감하는 자들에게 저주를 선언하셨다. 스스로 있는 분이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믿음과 교리의 규범이 될 것인지를 결정하셨으며, 성경이 가정마다 읽어야 할 책이 되도록 고안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고수하는 교회는 로마와는 결코 조화될 수 없어서 로마로부터 분리된다. 그런 식으로 개신교도들은 한때 배도한 큰 교회로부터 분리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로마교에 더욱 가까이 접근하여 여전히 로마 교회와 화해의 길을 걷고 있다. 로마교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로마교의 원칙은 하나도 변경된 적이 없다. 로마교는 개신교와의 사이에 난 틈을 좁히지 않았다. 개신교가 모든 일을 추진시켰다. 오늘날 개신교의 문제점이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들로 성경의 진리를 거절하게 하여 불신에 이르도록 하신 것이다. 개신교와 교황권의 거리를 좁히는 것은 바로 타락하고 있는 (개신)교회이다.

  진정한 개신교도들은 루터, 크랜머, 리들리, 후퍼 등 진리를 위해 순교자가 된 수천의 고상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진리의 충실한 수호자들로 섰으며, 개신교는 로마교와 연합할 수 없으며,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교황권에서 멀리 분리되어야만 한다고 선언했다. 그러한 진리의 수호자들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이 “죄악의 사람”과 융화될 수 없었다. 초기에 의인들은 생명과 재산을 상실한다. 할지라도 오류의 조직체인 로마와 제휴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어 로마와의 분리된 상태를 지속했으며, 진리를 위해 대장부답게 싸웠다.

성경의 진리는 부와 명예, 혹은 생명 그 자체보다 그들에게 귀중한 것이었다. 그들은 진리가 미신과 거짓된 궤변의 무더기 아래 묻히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다. 그들은 손에 하나님을 말씀을 가지고 백성들 앞에서 진리의 표준을 높였으며, 그들의 열렬한 성경 연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드러내주신 것을 담대하게 선포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저들의 충성 때문에 가장 잔인한 죽음을 당하였으나 그들은 개신교도라고 주장하는 많은 이들이 악의 세력에 쉽사리 굴복하고 마는 자유와 특권을 우리를 위해 그들의 피로 사주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귀중하게 산 바 된 특권들을 굴복시킬 것인가? 우리가 우리를 로마의 멍에로부터 자유케 해주신 하늘의 하나님을 우리 자신을 다시 이 적그리스도의 세력 가운데 묶어 둠으로 모욕을 돌릴 것인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양심의 지시를 따라 하나님을 경배하는 우리의 권리, 우리의 종교적 자유를 서명하여 포기함으로 우리의 타락을 증명할 것인가?

수다한 사람들은 그들이 죄짓는 것은 허용하면서도 그 죄의 결과는 받지 않는다는 교리를 사랑한다.

  산과 골짜기에 메아리쳤던 루터의 음성은 마치 지진처럼 유럽을 흔들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고상한 제자들로 이루어진 군대를 소집하였다. 그들이 수호하던 진리는 장작더미나 고문이나 지하 감방이나 죽음으로서도 잠잠케 할 수 없었다. 여전히 순교자들로 이루어진 고상한 군대의 음성은 우리에게 로마교의 세력은 마지막 때의 예언된 배도 세력이요, 바울이 그의 시대에 이미 시작된 것을 보았던 불법의 비밀이 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로마 천주교는 신속하게 세계를 장악하고 있으며, 상승일로에 있다. 진리를 듣는데서 귀를 돌리는 자들은 로마교의 기만적인 우화들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천주교의 예배당, 천주교의 대학, 수녀원, 수도원들은 곳곳에 세워지고 있으며, 개신교 세계는 잠들어 있는 듯하다. 개신교는 세상과 구분되는 특징을 잃고 있으며, 로마교와의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그들은 진리에서 귀를 돌이켜 하나님께서 그들의 길 위에 던져준 빛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며, 그래서 흑암 가운데로 들어가고 있다. 그들은 모욕적인 언사로 로마교와 제휴하는 이들과 로마교 자체의 잔인한 백해의 역사가 부흥될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그 같은 부흥을 명백하게 예언한 사실을 이정하지 않으며, 마지막 때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경에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고 말한 것 같은 박해를 받을 것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천주교는 인간적 속성의 종교이며, 수다한 사람들은 그들이 죄짓는 것은 허용하면서도 그 죄의 결과는 받지 않는다는 교리를 사랑한다. 사람들은 어떤 형태의 종교를 소유하는데, 인간적 계교에 의해 형성된 이러한 종교를 가졌으면서도 하늘의 권세를 주장하는 것을 육적인 마음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자신들이 현명하고 똑똑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자만심으로 인해 의의 표준이 십계명으로부터 얼굴을 돌리며, 하나님의 길이 어디인지 묻는 것이 자신들의 고결함과는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고로 그들은 그릇된 길로 가서 금지된 길에 들어서며, 예수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르지 아니하고 교황의 모본을 따라 자만하고 도도해진다. 그들은 영성이나 자아부정을 최소한도만 요구하는 형태의 종교를 가지며, 성화되지 않은 인간의 지혜는 그들을 교황권을 싫어하도록 이끌지 않는다. 그들은 자연히 교황권의 규정과 교리로 이끌린다. 그들은 주님의 길을 걷고자 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너무나 많이 빛을 받았다고 생각함으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또한 하나님의 말씀의 지성적인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 주님의 길을 알려하지 않는 그들의 마음은 온통 기만을 향하여 열려 있으며, 모두 거짓을 받아들이고 믿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은 그들을 속이는 가장 황당무계한 거짓을 진리로서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한다.

  사단의 기만의 걸작은 천주교이다. 지성적인 대암흑 시대에 로마교가 잘 받아들여졌던 것처럼 지성적인 대광명의 시대로 로마교의 세력은 잘 받아들여지는 것이 될 것이다. 이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들 자신의 우월감에 집중되어 있고, 그들의 지식 가운데 하나님 모셔 두기를 좋아하지 않는 때문이다. 로마는 절대 과오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개신교도 동일한 노선을 따르고 있다. 그들은 진리 탐구하기를 원치 않으며, 더 큰 빛으로 나아가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은 편견의 벽 속에 자신들을 가둬두며 기꺼이 가만 당하며, 다른 이들을 기만하려는 듯이 보인다.

  교회들의 태도가 실망을 주는 것일지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진리에 대한 충성을 지키며, 성경, 오직 성경만을 저들의 믿음과 교리의 규범으로 삼고, 표준을 높이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이라는 글이 새겨진 깃발을 높이 들 한 백성을 소유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순수한 복음의 가치를 존중하고 성경을 저들의 믿음과 교리의 기초로 삼는 자들일 것이다.

  사람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옆으로 제쳐두는 이러한 때에 다윗의 기도가 바로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이다. “저희가 주의 법을 페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의 일하실 때니이다”(시 119:126).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거의 온 세상의 조롱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때에 접근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십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이 심각하게 시련을 받을 때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여호와의 율법의 구속력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그에 대한 존경심을 상실할 것인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백성들로 하여금 사람들이 그 율법을 제쳐두고 짓밟고 없애려하는 때에 다윗처럼 하나님의 율법을 열렬히 사모하게 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