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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에서 있었던 투쟁  (살렘 페레그 박사)

 1994년 9월 6일, 유엔은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10년마다 열리는 세계 인구와 개발에 대한 정상 회담을 개최하였다. 그것은 50년의 유엔 역사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회의였는데, 각국의 수상 대통령뿐만 아니라 학자들과 바티칸 대표를 포함하여 20,000명이 참석한 중요한 회의였다.

 유엔의 주제하에 열리는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이 회의는 지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회의로 인정되어 왔다. 인간 역사가 시작된 이후부터 1950년까지, 지구의 인구는 25억으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지난 50년간 즉, 1950-1990년 사이에 지구의 인구는 57억으로 증가되었다. 서기 2000년도에는 지구의 인구가 62억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수학적 논리로 성립된다. 유엔은 현재의 인구 증가율과 억제 율을 감안할 때, 2020년에는 세계 인구가 100억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매해 약 9천 4백만 명의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데, 이것은 멕시코의 전체인구와 거의 대등한 숫자이다.

 1992년, 미국 과학협회와 영국 왕립협회는 공동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선언을 하였다. “세계 인구의 증가에 대한 예측이 정확한 것이고, 각 국가와 민족의 활동과 산업의 형태가 변화되지 않는다면, 인간의 과학과 기술은 지구 환경의 부패와 빈곤을 역전시킬 수 없다.”

 유엔의 카이로 회담의 결론은, 모든 인류의 유익을 위해서 세계 인구 증가는 반드시 억제되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임신 중절의 법제화와 피임법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개발도상국가들에서 지금보다 적극적인 가족계획법이 실시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게 제시되었다.

 그러나 바티칸과 남미의 천주교 국가 그리고 모슬렘 국가들은 세계 인구 억제를 통한 지구의 문제 해결 방법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들의 주장은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부패하고 타락한 윤리가 문제라는 것이었다. 진짜 문제는 개인 또는 국가 사이의 부패하고 이기적인 윤리와 도덕이라는 것이다. 어떤 남미국가의 수상은 인구를 억제한다고 해서, 빈곤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고 말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 나라는 지난 20년 동안에 인구를 매우 효과적으로 억제하여 왔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매우 가난하다”라고 하였다.

 유엔 대표로 참석한 유엔 환경 프로그램의 수석대표인 엘리자베스 도우드스웰은 다음과 같은 연구조사를 발표하였다. “지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 중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이슈는, 모든 국가들이 평등하고 공평한 혜택과 유익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세계 인구의 80%가 제3세계의 국가들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을 지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국가들은 세계적인 혜택과 자원의 20%만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이와 반면에 세계 인구의 20%가 부유한 국가에 살고 있는데, 그들은 세계 자원과 혜택의 80%를 소비하면서 풍요롭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면서 이 같은 불공평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인도에서 태어난 아이들보다 3배나 높은 지구의 자원들을 소비하고 있다…… 한 명의 평범한 미국인이 일본인 3명, 멕시코인 6명, 중국인 12명, 인도인 33명, 방글라데시인 147명, 탄자니아인 281명, 그리고 에디오피아인 422명에 해당하는 자원을 소비하고 있다. ”

 폴 엘리취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 문제를 요약하고 있다. “우리가 염려해야 할 문제는 지구의 인구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이 어떻게 행하고, 어떻게 생각하는 가에도 깊은 관계가 있다.” 에너지 자원의 측면에서 볼 때, 상대적으로 소수인 부유한 나라의 사람들에 의해서, 지구 전체의 환경파괴의 2/3가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 인구가 가장 효과적으로 억제된다고 할지라도 부유한 국가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환경 자원의 소비를 감당할 수 없다.

 카이로 회담에서 한 가지 놀랄만한 사실이 밝혀졌는데, 그것은 선진국에 살고 있는 약 3천만 명의 부유한 사람들이 아프리카 대륙의 전체 인구인 6억 5천만 명(약20배)보다 훨씬 더 많은 지구의 환경자원을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인류는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자원의 소비의 분배를, 즉 소수의 사람들에게 집중되어 있는 자원의 소비를 어떻게 하면 지구 전체에 평등하게 분배할 수 있을 것인가를 결정해야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문제는 그러한 이상적인 환경자원의 공평한 분배를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는가 라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의 선진 강대국들은 카이로 회담에서 환경자원의 과소비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들은 쓰레기를 줄이고 자연을 보존하는 문제만을 다루기를 원하였다. 그들은 참가국들의 관심을 의도적으로 개발도상국가들의 인구를 억제하는 문제와 보다 적극적인 가족계획과 임신중절의 법제화에 대한 문제에 집중시키고자 하였다. 왜냐하면 이러한 문제들은 선진국가에서는 이미 해결되었거나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그러한 의도는 바티칸과 천주교 국가들, 모슬렘 국가들, 그리고 가난한 나라들의 반대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양보할 수 없는 논쟁의 선은 카이로 회담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되었다. 사실상 이러한 논쟁의 선은 카이로 회담이 시작되기 이미 오래 전부터 설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카이로 회담이 개최되기 전인 1994년 6월,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바티칸의 교황을 만나서 카이로 회담에서 미국의 입장을 지지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양자 회담은 실패하였다. 클린턴 대통령은 대통령 특사를 전 세계에 보내서 카이로 회담에서 미국의 입장을 지지해 줄 것을 호소하였다. 이때 바티칸의 교황 역시 각 국가들에게 특사를 보내어 미국의 계획을 저지할 것을 촉구하였다. 역사상 최초로, 바티칸과 모슬렘 세계들이 미국 및 서구세계를 대항하기 위한 동맹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카이로 회담은 문화적인 가치관에 대한 차이가 아니라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원칙에 대한 차이로 인하여 논쟁의 불꽃이 점화되었던 것이다.

 바티칸과 모슬렘 국가들은 “새로운 도덕적 세계질서”를 주장하면서, 결혼과 임신과 임신중절 및 피임에 대해서 어떠한 제재나 벌금이 부과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것들은 개인의 완전한 선택의 자유 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그들은 개인과 가정의 자유로운 선택을 존중해야 할 것, 그리고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한 사실은, 도덕적인 부패와 타락이 천주교회와 모슬렘이 흥황하는 제3세계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AIDS와 각종 전염성 성병들은 제 3세계국가들에서 더욱 극심한 참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예를 들면, 세계적으로AIDS에 감염되어 있는 2천만 명 가운데 1천6백만이 아프리카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회교도 국가들과 천주교 국가들의 도덕적 부패를 증명해주고 있다. 또한 몇 년 안에 아시아에서의   AIDS감염자 숫자가 아프리카를 앞서게 될 것이라는 보고가 제출되었다.

 카이로 회담의 논쟁은 바티칸과 모슬렘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두 종교가 동맹함으로써, 세계적인 강대국들의 영향력이 무력하게 되었다. 정치 위에 종교가 군림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세계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세계 인구와 자원과 식량과 환경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누가 살아남는 자가 될 것인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로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12: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