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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을 통하여 본 재림교회의 좌표

저자: 생애의 빛 (1989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재림 교회가 가지고 있는 진리와 기별을 교회 안과 세상에 전파하기 위하여 출판 사업과 테입과 텔레비젼 방송을 해오고 있는 자영 선교 기관) 

    2005년 4월 8일 금요일 오전 9시 30분, 온 세계가 한 자리에 모였다. 각 나라의 왕들과 대통령들과 수상들과 정치가들과, 그리고, 특히 각 종교단체의 지도자들, 기독교회는 물론 이슬람 종교와 힌두교, 심지어는 불교의 지도자들까지 한 자리에 모여, 죽은 만 왕의 왕(?)을 애도하였다. 수백년 동안 분리되어 있던 동방 정교의 사제들이 와서 장례 예식의 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약 사백만 명의 순례자들이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로마로 몰려왔고 베드로 바실리카 앞 바티칸 광장에는 약 20만 명의 군중이 모여들었다. 2시간 반에 걸친 장례식은 천주교의 미사 예식이었다. CNN 방송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장례 미사를 온 세계에 생방송으로 중계하였으며 각각 미사 의식 절차에 대한 설명도 꼼꼼하게 챙겨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눈물을 닦는 장면들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그것은 명실공히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거행한 전 세계 천주교 대전도 집회였다.

어쩌면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을까? 인류 역사상 가장 성대한 장례식이었다. 왜 한 사람의 죽음에 온 세계가 모여 이렇게 애도와 경외의 뜻을 표하여야 하는가? 왜 모든 나라의 왕들과 종교 지도자들과 모든 민족의 백성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기이하게 여기며 그를 따라야 하는가? 그 해답은 성경 예언에서만 발견하게 된다. 이 사건은 재림교회가 현재 어느 시점에 와 있으며 또한 앞으로 어떠한 역할을 담당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좌표를 정확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남은 교회의 정체성이 여기에서 드러나고 있다.

먼저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을 성경 예언을 통하여 재 조명해 보기로 하자. 그 장례식은 진실로 성경 예언의 성취였다. 성경 예언 중 어떤 예언의 성취를 말하는 것인가? 물론 요한 계시록 17장의 예언을 말하는 것이다. 계시록 17장의 예언은 긴 기간의 예언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 예언의 클라이막스는 마지막 시대에 짐승의 세력인 교황이 어떻게 부활하여 일어날 것이며 어떠한 심판을 당할 것인가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계시록 17장은 그 첫 절이 말해주고 있듯이 누가 과연 바벨론의 어미인 음녀인가를 지목해 주는 예언이다.

계시록 17장 1-18절까지 읽고 나서 다음 글을 계속 읽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예언을 역사적으로 해석하기 전에 짚고 지나가야 할 것은, 이번 교황의 장례식이 보여준 바티칸의 모습 그 자체는 실로 이 예언을 한 마디로 요약하여 묘사해 주는 상징 그 실체였다는 사실이다. 바티칸 광장에서 장례식을 집전한 Ratzinger 추기경이 높이 든 금잔 앞에 온 세상의 왕들과 백성들 모두가 다 마치 포도주에 취한 자들처럼 서 있었다. 그리고 주교들은 정말로 자주색과 붉은 빛 옷들을 입고 있었으며 18절의 표현 그대로 바티칸이 세상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도시)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었다. 그 색깔과, 미사 예식과, 취하게 하는 포도주를 담은 금잔과, 그리고 모든 왕들과 온 세상 백성들을 매료시킨 그 의식은 정말로 계시록 17장 내용의 상징 바로 그것이었다.

자, 이제 이 예언을 간단하게 해석해 보기로 하자. 먼저 이 예언은 많은 물 위에 앉은 음녀에 대한 심판을 보이는 것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물론 물은 많은 사람들을 상징함으로 세계의 많은 백성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 세력으로 상징된 교황권이 마지막 시대에 7재앙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표현이다. 그래서 일곱 재앙의 대접들을 가진 천사들 중 하나가 요한에게 계시를 주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음녀는 땅의 임금들과 백성들을 취하게 하는 세력이다. 취하게 만드는 것은 금 잔 속에 있는 포도주 때문이다. 취하게 하는 포도주는 음행의 포도주라고 표현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표현은 구약 성경 예레미야서 51:7에서 따 온 것이다. “바벨론은 여호와의 수중의 온 세계로 취케 하는 금잔이라 열방이 그 포도주를 마시고 인하여 미쳤도다.” 정말로 그러하다. 온 세상은 바벨론의 오류의 포도주를 마시고 다 미쳐있다.

성경에서 “음행”이라는 단어는 영적인 오류를 가르치는 일과, 이교의 우상 숭배를 받아 드린 것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땅의 임금들이 이 음녀와 음행을 행하였다는 것은 나라들의 정치적 지도자들이 교황권의 하는 일을 존중하여 그가 하나님의 진리를 가진 참 백성들을 없애버리기 위하여 세우는 작전을 도와 주며 그렇게 되도록 법을 세워 주기 위하여 자기들의 권력을 사용하여 준다는 뜻이다. 다음의 성경절들의 예증을 읽어 보면 알 수가 있다.

“요람이 예후를 보고 가로되 예후야 평안이냐 대답하되 네 어미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왕하 9:22)

“그 새긴 우상을 다 파쇄하고 그 음행의 값을 다 불사르며 그 목상을 다 훼파하리니 그가 기생의 값으로 모았은즉 그것이 기생의 값으로 돌아가리라.”(미가 1:7)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계 2:20,21)

로마 교회는 잘못된 복음과 오류로 온 세상을 취하게 만들었다. 그 오류의 가르침은 이교의 가르침, 즉 바벨론의 우상숭배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그들은 어거스틴의 원죄설로 성경의 복음을 어둡게 하였고 또한 교회의 예식들과 성지 순례 등 교회가 제정한 제도들을 따라 행함으로 구원의 공로를 쌓아 나갈 수 있다는 오류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였다. 영혼 불멸설과 지옥설, 연옥설, 미사와 고해성사, 신부들의 금욕주의 등등은 음녀가 창안하여 낸 취하게 하는 포도주들이다. 온 세상에 있는 11억의 천주교인들은 물론 많은 개신교회들도 그를 따르며 영적으로 혼미한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이 예언은 음녀와 그의 딸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우리 재림 교회 안에도 잘못된 어거스틴 주의의 오류의 복음이 살며시 들어와서 판을 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파수군들이 잠자는 동안에 도둑이 들어 온 것이다. 술에 취하여 있으면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가 없다. 무슨 일이 왜 어떻게 이루어 지고 있는지를 분간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교회들이 교황권의 오류의 포도주에 깊이 취하여 있다.

그런데 성령께서 이 바벨론, 즉 음녀의 정체를 밝혀 주기 위하여 요한을 광야로 데리고 가셨다고 말씀하고 있다. 왜 하필이면 광야인가? 그것은 계 12장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교회가 쫓겨나서 도망 친 곳인 광야를 은유하고 있다. 하나님의 교회는 중세기 동안에 광야 교회가 되어 교황권에 의하여 몹시 핍박을 당하였다. 6절에 이 음녀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했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이 광야는 교회가 핍박을 당하던 장소와 그 시점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음녀가 붉은 빛 짐승을 타고 있는데, 이 붉은 빛 짐승은 바벨론 세력이 국가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말하여 주는 것이며 음녀라는 표현은 이교와 음행을 행하며 타락해 있는 교회라는 사실을 말해 주는 상징적인 언어이다. 바티칸은 국가이면서 교회이다. 교황권은 국가로서의 권력과 종교 지도자로서의 권세를 둘 다 가지고 있다. 계 13장에도 붉은 빛 짐승인 용이 교황권에게 그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주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 당시 이교 로마를 붉은 용으로 표상하여 준 것이다. 물론 용은 마귀를 상징하는 언어이지마는 사단이 그 당시에는 이교 로마를 통하여 역사해 왔기 때문에 실제로 교황권을 받들어서 보좌에 앉혀 준 실제 세력은 로마제국이었다.

이 음녀의 이마에는 “비밀”이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죄의 창시자인 사단의 비밀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성육신을 성경은 “경건의 비밀”이라고 불렀다(딤전 3:16 참조). 그러나 바벨론의 비밀은 불법의 비밀인 것이다. 데살로니가 후서 2:7-12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지금 이 시대에 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 마귀의 불법의 비밀의 힘에 속아 넘어가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다.

계 17장의 천사는 음녀가 받을 심판에 대하여 설명해 주기 위하여 짐승이 가지고 있는 일곱 머리와 열뿔에 대한 예언을 가지고 우리들에게 힌트를 주고 있다. 이 일곱 머리와 열뿔에 대한 비밀을 알기 위하여서는 그 계시를 받는 시작점을 찾아 내어야 한다. 2300 주야 예언에 있어서도 그 시작점을 찾아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그 시작점을 찾아 내기 위하여 다시 한번 계 17:6-11을 읽어 보도록 하자.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천사가 가로되 왜 기이히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 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깐 동안 계속하리라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이 속에 힌트가 들어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다섯 머리는 이미 망하였고 (패하여 지나 갔다는 뜻) 현재 하나가 서 있다는 사실인데, 지금 서 있는 이 여섯번 째 왕이 누구인가 하는 것은 이 예언을 이해하는 일에 매우 중요한 것이다. 사도 요한은 바로 이 여섯째 왕의 시대로 데려감을 당하여 17장의 계시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 요한이 계시를 보기 시작한 지점인 여섯째 왕의 시대가 과연 어느 시대인지를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 그것은 오히려 간단한 일이다. 문맥 자체가 이미 설명해 주고 있는데, 그것은 음녀가 성도들의 피에 이미 취하여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광야 시대, 즉 중세기의 핍박시대의 끝에, 즉 교황권이 이미 수 많은 성도들의 피를 흘리고 난 이후 그 끝 무렵에 서 있다는 힌트를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예언에 나오는 짐승이나 그 머리에 대하여 해석 할 때에 성경 예언에 등장하여 이미 짐승들로 표상된 적이 있는 나라들을 토대로 해서 풀어 나가야만 한다. 어떤이들은 애굽이나 리디아 같은 나라들을 이 일곱 머리들 중에 속한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들은 성경의 어떤 예언 상에도 짐승이나 머리로 표상 되어본 적이 한번도 없다. 그러므로 이미 성경에 기록되어 표상된 적이 있는 나라들을 살펴서 적용시키는 것이 합당한 해석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이미 망한 다섯 왕은 성경 다니엘 예언에 표상 되어져 왔던 세력들인 바벨론, 메데 페르샤, 헬라, 이교 로마, 그리고 교황 로마로 보는 것이 올바른 견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계시록 17장의 예언이 말하고 있는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깐 동안 계속하리라” 는 뜻을 이해하는 지혜가 여기에 있다. 사도 요한은 여섯째 왕이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시대를 바라 보면서 이 계시를 받게 된 것이다. 그 시점은 교황권이 이미 많은 성도들을 핍박하고 난 이후이다. 요한이 주목하여 보게 된, 성도들의 피를 많이 흘린 세력인 다섯 번째 왕은 분명히 교황권이라는 사실이 7,8절에서 분명하여 진다. “천사가 가로되 왜 기이히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 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다시 말해서 이전에 있었다가 죽게 되는 상처를 받아 지금은 보이지 않는 이 다섯째 왕을 교황권 말고 또 다른 누구에게 적용시킬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교황권이 많은 피를 흘려 그 피에 이미 취해 있는 상태에 있을 때에, 중세기의 핍박 시대를 지나면서 그 끝 무렵에 등장하는 세계적인 세력이 과연 누구일까? 바로 그 세력이 여섯째 왕인 것이다. 그 세력은 계시록 13장에 기록된, 교황권 이후에 땅에서 올라 오는 새끼양 같은 짐승인 미국인 것이다. 그러므로 바로 미국이 여섯번째 왕이요, 이 미국이 한 나라로서 올라 오는 그 시점에 요한이 계시록 17장의 계시를 보게 된 것이다. 교황권이 죽게 되는 상처를 받은 때가 1798년인데 미국이 올라온 시점은 1777년이니 이 얼마나 정확한 시기인가! 다섯번째 왕이 망하는 시점에서 여섯째 왕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1745년도에 이미 요한 웨슬레는 이 새끼양 같은 짐승이 올라 올 때가 거의 되었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일곱째 왕에 대한 예언이 참 흥미가 있다. 이 왕은 아직 그 나라를 얻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그가 나라를 얻으면 잠시 동안만 계속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일곱째 왕은 미국이 세계를 다스리는 세력으로 파워를 발휘한 이후에 오는 세력이다. 또 한가지 괄목할 만한 사실은 이 일곱째 왕의 묘사가 열 뿔에 대한 묘사와 같다는 사실이다. 아직 그 세력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과 권세를 잡으면 잠간 동안 계속 할 것이라는 점들이 동일하다. 10절과 12절을 읽어 보자.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여섯째 왕-미국) 있고 다른 이(일곱째 왕)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깐 동안 계속하리라…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한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이 일곱째 왕을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기록하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이 세력은 나라들의 연합 세력이라는 것이다. 이 일곱째 왕은 바로 열 뿔과 동일한 세력이다. 다니엘 7장의 네번째 짐승인 로마도 분열된 이후 열 뿔로 나뉘어 졌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세계적인 수퍼 파워의 힘을 발휘한 후에 세계 연합 세력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을 이 예언은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한 열뿔의 세력이라고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UN의 연합 세력이 바로 일곱째 왕인 것이다. 일요일 휴업령이 강요될 때에 미국에서부터 출발한 그 법령을 온 세계가 따르게 될 것이라고 예언 되어 있지 아니한가! 이 일곱번째 왕이 한 마음과 한 뜻을 가지고 짐승의 세력, 다시 말해서 교황권의 세력을 지지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세계적인 일요일 휴업령이고 그렇게 해서 교황권의 죽게 되었던 상처가 완전히 낫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두 번에 걸친 이락 전쟁들을 통하여서 아버지 부쉬 대통령과 아들 부쉬 대통령이 강조하는 “새 세계 질서”라는 말을 여러 번 들어 왔다. 그것은 UN의 힘을 통하여 세계를 하나로 합하여 지배하려고 하는 세계 단일 정부의 계획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열국의 연합 세력인 일곱째 왕이 짐승의 세력 곧 교황권의 세력에게 기만 당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를 불에 태워 죽이게 될 것이라는 말씀으로 이 예언은 끝을 맺는다. 일곱 재앙이 내리게 될 때에, 특히 다섯째 재앙을 통하여 짐승의 보좌에 암흑 재앙이 내리는 것을 목격하게 될 때에, 세계의 왕들과 백성들은 드디어 자기들이 교황권에게 기만 당하고 속아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때에 그들은 지금까지 자기들을 기만하여 온 종교 지도자들을 죽이려고 분 내어 달려 가게 될 것이다. 바로 그렇게 바벨론 세력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은 설명하고 있다. 다음의 말씀을 읽어 보자.

“온 하늘은 예수님과 연합하였으며 그들은 “다 이루었다”하는 두려운 소리를 들었다. 구속의 경륜은 성취되었으나 그것을 받아들인 자는 극소수였다. 부드러운 자비의 음성이 사라지자 두려움과 공포가 악인들을 사로잡았다. 나는 그들이 두려워 떨면서 ‘너무 늦었다! 너무 늦었다!’하고 외치는 분명한 소리를 들었다.

과거에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던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기 위하여 동서남북으로 돌아다니며 여기 저기 뛰어다니고 있었다. 천사가 말했다. ‘그들은 찾지 못할 것이다. 땅에 기근이 이르렀는데 양식이 없어서가 아니요 물이 없어서가 아니고 주의 말씀을 들을 수 없는 기근이라.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단 한마디의 인정하는 말씀을 듣지 못할 것인가! 그렇다. 그들은 듣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갈증과 굶주림으로 허덕여야만 한다. 날마다 그들은 구원을 등한시해 왔고 하늘의 보물과 보증보다 지상의 부와 쾌락을 더 높이 평가했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거역하였으며 성도들을 조롱하였다. 더러운 자들은 영원토록 더러울 것이다.’

악인들은 재앙을 받게 될 때 몹시 화가 났다. 그것은 바로 가공할 만한 두려운 고통의 광경이었다.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자녀들은 부모들을 그리고 형제들은 자매들을, 자매들은 형제들을 서로 가혹하게 책망하였다. 사방에서 통곡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이 재난을 면하게 해 줄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 사람은 너였다.’ 백성들은 그들의 목사들을 향하여 심한 욕을 퍼부으며 비난하기를 ‘너희들은 우리에게 경고를 주지 않았다. 너희들은 우리에게 온 세상이 다 돌이키게 될 것이라고 말했으며 일어나는 모든 두려움을 잠재우기 위해 평안하다! 평안하다! 하고 외쳤다. 너희는 우리에게 이 때에 관하여는 말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너희들은 우리에게 경고를 준 자들에게 우리를 괴롭히는 광신자들이요 사악한 자들이라고 하며 저주했다.’ 그러나 나는 목사들도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음을 보았다. 그들의 고통은 그 백성들보다 열 배나 더 컸다.” (초기 문집 281)

하나님께서는 이 예언의 말씀이 다 응하여 이루어 질 때까지 성도들이 핍박 당하는 일을 허용하실 것이다. 한번 더 교회가 큰 환란을 통과하면서 큰 시련을 겪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온 우주는 하나님의 성품과 마귀의 계교를 직접 목격하여 본 이 후에 사단의 반역의 진정한 성격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난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을 통하여서 계시록 17장의 예언이 상징적인 한 장면으로 요약 되어진 것을 보았다. 참으로 우리는 놀라운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의 선조들과 선지자들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살기를 원하였었다. 모든 예언이 완전하게 성취되는 이 시대에 말이다. 그러나 우리처럼 연약한 자들이 마지막 주자들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일곱째 왕이 도래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미국의 수퍼 파워가 일곱째 왕인 UN에게 그 생기를 불어 넣어 주고 있다.

이 예언의 끝에는 여덟째 왕이 일어 나게 되는데 이 여덟째 왕은 일곱 중에 속했던 자로서 멸망으로 들어 갔던 자인데 무저갱에서 다시 올라오는 자라고 예언은 설명하고 있다. 1798년도에 죽게 되었던 상처를 받았던 교황권이 세계적인 일요일 휴업령을 통하여서 다시 과거에 세계를 다스렸던 왕의 힘을 가지고 올라 오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미 온 세상이 기이하게 여기며 짐승을 따르고 있는 형편을 보고 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에 새로 선출된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독일의 Ratzinger 추기경인데, 요한 바오로 2세가 죽기 전에 그를 종교 재판소(Inquisition)의 책임자로 추대했던 사람이다. 그렇다. 바티칸은 1999년도에 종교재판부를 다시 연다고 공포한 바 있다. 이 세상은 성경 예언의 그 마지막 부분을 달리고 있다.

서기 1100년 대에 살았던 천주교회의 아일랜드 감독이었던 말라카이 신부는 미래의 교황들에 대한 놀라운 예언을 남겨 두었는데, 괄목할 만한 내용은 그가 살고 있을 당시의 교황이었던 Celestine 2세 이후에 111명의 교황들이 더 선출 될 것이고 그 후에는 끝이 이를 것이라고 예언한 사실이다. 그런데 흥미 있는 사실은 죽은 요한 바오로 2세가 그 110번째 교황이었고 그를 “태양의 활동을 할 교황” 이라고 예언 한 것과, 또한 이번에 선출된 베네딕트 16세가 바로 마지막 교황이 되는 사실이다. 그의 예언에 따르면 이번에 선출된 교황 시대에 환란의 때가 임하게 된다는 것이다. 베네딕트 16세의 현재 나이는 78세이다. 우리가 바벨론 교회의 예언을 믿을 수는 없으나 마귀도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참고 할 수는 있는 것이다.

계시록 17장은 그 14절에, 이 엄청난 마지막 전쟁에 있어서 승리하는 자들은 어린 양과 함께 하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참된 거듭남의 경험) 빼내심을 얻고(참된 성화의 경험) 진실한 자들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22장의 혼인 잔치의 예복에 대한 비유에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해 두셨다. 마 22:11-14,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우리는 부르심을 받는 것으로 부족하다.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 말씀에 대한 다음의 예언의 신의 해석을 읽어 보도록 하자.

“예복을 입지 않고 혼인 잔치에 참석한 사람은 오늘날 이 세상을 사는 많은 사람의 상태를 나타낸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면서 복음의 축복과 특권을 요구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의 품성의 변화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를 전혀 체험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필요를 느끼지도 않고 그분에 대한 믿음도 나타내지 않았다. 저희는 악을 행하고자 하는 선천적, 또는 후천적 성벽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그들 자신이 꽤 선하다고 생각하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대신에 저희 자신의 공로를 의뢰한다. 그들은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들로서 잔치에는 왔으나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는 입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의는 품고 있는 단 하나의 죄도 가리워 주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할 수 있다. 사람이 겉으로 나타나는 범법 행위만 하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은 그를 매우 고결한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은 마음속의 비밀을 저울질한다. 모든 행동은 그 행동을 조장한 동기에 의하여 판단된다.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에 부합되는 것만 심판 날에 능히 설 수 있을 것이다.”
(실물교훈, 315)

“사단은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계명을 지킬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형상을 취하시고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의 완전한 순종을 통해서 신성과 인성이 연합될 때 하나님의 모든 법도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셨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이 권세는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권세는 곧 하나님의 권세이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 그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살 수 있는 능력도 받게 된다.” (실물교훈, 312)

“당신의 완전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게 하셨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칠 때에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과 연합되고 우리의 뜻은 그분의 뜻에 합병되고, 우리의 정신은 그분의 정신과 하나가 되고, 우리 생각은 그분에게 사로잡히게 되어 마침내 우리는 그분의 생애를 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분의 의의 옷을 입는다는 의미이다. 그리하면 주께서 우리를 보실 때에 무화과나무 잎으로 엮은 옷이나 죄로 인해 벌거벗고 뒤틀린 우리의 몸은 보지 아니하시고 여호와의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이루신 당신 자신의 의의 두루마기를 보게 된다.” (실물교훈, 311)

이렇게 확실한 말씀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재림 교회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 교회에서 흘러 들어 온 잘못된 복음의 포도주를 홀짝 홀짝 마시고 있다. 그리고 바벨론 교회에서 창안해 낸 교회 성장학과 그 방법론에 현혹되어 거대한 개신교회들의 세미나에 따라 다니면서 바벨론의 가르침에 젖어 들고 있다. 하나님께서 재림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교회를 크게 성장시키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세천사 기별을 온 세상에 전하여 오류에 빠진 자들을 불러 내라고 세우신 교회이다. 짐승의 세력의 기만과 오류들을 알려 주어 그 포도주에 취해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여 내기 위하여 마지막 기별을 전파하도록 세우신 교회이다.

최근에 재림교회 안에서 인기리에 실시되고 있는 “목적이 이끄는 삶” 세미나만 해도 그렇다. 우리에게 선지자가 없는가? 우리에게 진리의 샘과 영적인 힘의 근원이 없단 말인가? 왜 진리를 알지 못하고, 교회 성장학에 초점을 맞춘 사람의 책을 가지고 재림 교회 교인들을 부흥시키며 교육하려 하고 있는가? 오늘날 재림 교회는 우리의 정체성을 잃어 버리고 있다. 우리가 왜 부르심을 받았는지? 우리가 세상을 향하여 외칠 기별이 과연 무엇인지를 잊고 있다. 온 세상이 바벨론의 음녀에게 경배하고 있는 이 시점에 왜 재림 교회는 잠자고 있는가?

“목적이 이끄는 삶”이 다루고 있는 오류의 가르침들 중 예배에 관한 몇 가지를 지적해 보면 다음과 같다.

(목적이 이끄는 삶, 65)
“예배는 그 형태나 또는 노래 소리의 크기나 박자의 빠름과는 상관이 없다. 하나님은 모든 종류의 음악을 사랑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전도법, 507)
“하늘에서도 음악은 예배의 한 부분을 이룬다. 우리가 부르는 찬양의 노래가 하늘 찬양대의 화음에 가까워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너무 높은 음정과 훈련되지 않은 음성과 글자 그대로 찬미가의 어떤 신성한 말을 부르짖는 음성으로 나타내는 것은 듣기에 괴로울 때가 종종 있다. 날카롭고 거친 소리가 엄숙하고도 즐거운 예배에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가! 나는 이처럼 듣기 거북한 노래를 감상해야 하는 고통에서 떠나게 되기를 갈망한다. 신령한 예배를 위하여 음악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경우에 합당한 찬미를 선택해야 한다. 장송곡과 같은 슬픈 곡조가 아니요 엄숙하면서도 즐거운 곡을 택할 것이다. 음성은 잘 다듬어지고 부드러워져서 세련된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신령과 진정으로 노력해야 할 것을 나는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하지 않거나 화음이 되지 않는 노래를 즐겨 듣지 않으신다. 바른 것이 그릇된 것보다는 항상 그를 기쁘시게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정확하고 조화되게 찬미를 부르면 부를수록 하나님께 영광이요, 교회는 유익을 얻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좋은 감화를 끼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집회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저들의 신앙적 소망과 결의(決意)를 나타내는 노래들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런 내용이 없다. 저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찬미를 부르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일에도 어떤 사람들은 저들의 생애에 말씀을 적용하여 실천하지 않기 때문에 유익을 얻지 못한다.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위하여 애쓰는 주님의 사자들은 세상의 방법을 따르지 않는다. 그들은 집회에서 세속적인 음악가나 연극적 전시에 의존하여 흥미를 일깨우려고 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관심이 없고 진리를 깨닫기 위한 진지한 열망으로 그 말씀을 읽어본 적이 전혀 없는 자들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노래하기를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저들의 마음이 신령한 노래의 내용에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늘 찬양대가 형식에 불과한 이러한 노래에 어떻게 연합할 수 있겠는가?

그대가 돈을 위하여 노래하는 세상의 찬양대에 음악 순서를 의존한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영광을 받으실 수 있겠는가? 형제여, 그대가 이 일을 올바르게 깨닫는다면 그대는 그대의 집회에서 단순하고 아름다운 찬미를 부르게 할 것이며, 회중들이 다 같이 노래에 동참하도록 요구할 것이다. 비록 회중 가운데 다른 사람들과 잘 조화되지 않는 음성이 있을지라도 그 노래에 천사들이 함께 연합할 때 성화되지 못한 입술에서 나오는 노래가 결코 줄 수 없는 은혜스러운 감화를 끼치게 된다.
가급적 세속적 음악가들은 고용하지 말라. 신령한 마음으로 함께 모여 노래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으라. 때때로 그대는 불필요한 지출이 따르는 특별한 과시적 선전을 시도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것은 형제들이 원치 않는 바이며 불신자들도 이런 지출을 위하여 돈을 지불하기를 즐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대는 깨닫게 될 것이다.”

(목적이 이끄는 삶, 66)
“성경적인 스타일의 음악이란 없다… 그리스도인 음악이라는 것은 없는 것이다. 다만 그리스도인적 가사들이 있을 뿐이다… 영적인 곡조라는 것은 없는 것이다.”

(재림 신도의 가정, 514)
“이같은 무리에 대한 광경이 내게 제시 되었는바 거기에는 진리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자들이 회합하였다. 한 사람이 악기 앞에 앉아 있는데 지켜보는 천사들을 통곡시킬 그 같은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거기에는 환락이 있었고 비열한 웃음이 있었고 많은 열광이 있었고 일종의 흥이 있었다. 그러나 그 기쁨이란 사단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러한 기쁨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수치로 여길 열정이요 경박함이었다. 이러한 것은 여기 참석한 자들로 거룩하지 못한 생각과 행동을 하도록 준비시킨다. 그러한 환경에 이끌리었다가 그 수치스러운 행동을 충심으로 회개한 어떤 사람들을 생각해 볼만하다… 황홀한 장식과 현혹시키는 음악을 연주하는 오페라, 가장 무도회, 댄스, 카드놀이 테이블 등, 사단은 이런 것들을 사용하여 원칙의 방책을 무너뜨리고 관능적인 방종으로 향한 문호를 개방시키고자 한다. 자만심이 양성되고 식욕을 방종시키며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영원한 관심사를 잊어버리게 하는 쾌락의 회합마다 사단이 참석하여 그의 사슬로 영혼을 결박한다.”

(목적이 이끄는 삶, 66)
“예배는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예언의 신-영문 시조, 6-6-1895)
“예수께서 사람들을 만나실 때에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목적으로 모인 자들 위에 당신의 축복이 임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성스러운 날에 참된 예배와 헌신의 정신을 배양하고 품어야 한다. 우리는 위로와 소망과 빛과 평안을 예수께로부터 받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함께 모여야 한다.”

목적이 이끄는 삶 책에는 좋은 말씀들이 많이 들어 있다. 그러나 예언의 신의 수준에 비하면 너무나 낮은 수준이다. 무엇보다 그 책의 목적은 세 천사 기별에 있지 않다. 바벨론의 형식을 따른 교회의 성장에 있다. 우리는 숫자를 늘이기 위한 게임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마지막 시대에 참된 복음인 영원한 복음과 진리를 전해 주기 위하여 존재 하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바벨론의 비밀을 폭로시켜 주어 그 포도주에 취해 있는 자들을 불러 내기 위하여 존재하는 교회이다.

온 세상이 기이히 여기면서 교황권을 따르고 있다. 지난 교황의 장례식을 통하여 바티칸이 온 세상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도성이라는 사실이 만 천하에 드러났다. 우리는 취해 있는 자들을 깨워서 진리를 보여 줄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맞이 한 셈이다.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과 영적인 눈을 가진 자들은 어느 편이 과연 하나님의 편인지를 깨닫게 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지금이야 말로 우리는 일 할 때이다. 원수가 쳐들어 오고 있다고 외쳐 알려야 할 때이다. 이러한 시점에 현재 우리의 좌표는 어디에 있는가? 파수군들이여!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