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ect Page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

저자: 생애의 빛 (1989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재림 교회가 가지고 있는 진리와 기별을 교회 안과 세상에 전파하기 위하여 출판 사업과 테입과 T.V 방송을 해오고 있는 자영 선교 기관) 

    요즈음처럼 예수 재림의 예언의 성취가 눈 앞에서 절실하게 보이는 때는 과거에 없었던듯 싶다. 지금은 정말 자다가 깰 때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자다가 깰 때가 되었고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 보다 가까워 졌다고 경고하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롬 13:11-14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말씀은 어느 누구보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정말로 더 절실하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재림이 우리가 처음 믿을 때 보다 훨씬 더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확실한 예수 재림의 징조를 가지고 있다. 일요일 휴업령의 징조가 지금처럼 분명한 때는 과거에 없었다.

재림의 시기를 알고 있으라는 분부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36-44).
우리는 예수께서 오시는 날과 시를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뜻이 재림을 기다리는 신자들이 예수께서 오시는 시기를 모르고 있다는 말씀은 아니다. 오히려 예언의 신은 우리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시기에 대하여 알고 있도록 요구 받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대쟁투, 371
“그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는 말씀은 재림신앙을 거절하는 자들이 가장 흔히 제기한 논증이었다. 그 성경절은 ‘그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성경절을 명백하고 조리 있게 해석하는 사람들은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었고 이를 그릇되게 사용하는 사람들은 반대자들임이 분명히 나타났다. 그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성전을 마지막으로 작별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으로 올라가서 잊을 수 없는 담화를 나누실 때에 하신 말씀이었다. 제자들은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마 24:3)라고 물었다. 그 때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의 징조를 말씀하시고,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 24:33)고 하셨다. 구주께서 하신 한 가지 말씀이 다른 말씀을 없이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비록 그분께서 오시는 날과 시를 아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우리는 그날과 시가 가까이 이른 것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과 요구를 받고 있다. 더욱이 우리가 그분의 경고를 멸시하고 그분의 재림이 가까움을 알기를 거절하거나 게을리하게 되면 홍수가 다가오는 것에 무관심했던 노아 당시의 사람들처럼 그 일은 우리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는 사실도 배웠다. 또한 그 같은 장(章)에 충성된 종과 충성되지 않은 종을 대조하여 말씀하시고, 심중에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생각한 종에게 파멸의 선고를 내린 비유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오심을 대망하고 깨어 있는 자와 그 일을 거부하는 자를 구별하여 각각 어떻게 갚아 주실 것임을 보여 주고 있다.”

위의 말씀은 재림교인들이 예수께서 오시는 정확한 날짜와 시간은 알지 못하지만, 얼마나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는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재림이 매우 가까웠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린다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현재 해야 할 재림 준비를 게을리할 뿐 아니라, 재림 직전에 늦은 비가 내릴 때에 저들의 부족함이 채워 질 것으로 기대하면서 아직도 중간 입장에서 서성이고 있다. 그 위험성을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경고해 주고 있다.

마지막 날 사건들, 194
“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몫을 담당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유쾌하게 되는 일이 그들에게 이르러 그들의 잘못이 제거되고 그들의 실수가 고쳐지기를 바랄 것 같으면, 또한 육체와 정신의 더러움에서 그들을 정결케 하고 셋째 천사의 큰 외침에 참여하기에 적합한 상태가 되도록 만들어 주리라고 의존할 것 같으면 그들에게 부족함이 드러날 것을 보았다.

우리는 교회 전체가 부흥되기를 바라고 있는가? 그러한 때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교회 안에는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 있으며 열렬하고 힘있는 기도에 연합하지 않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개별적으로 사업에 투신하여야 한다. 우리는 더욱 많이 기도하고 말은 더욱 적게 하여야 한다.

성령께서 부어지실 때, 이른비를 받지 않고 이해하지 못한 자들은 늦은비의 가치를 알거나 이해하지 못할 것임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다.

그들이 가진 빛에 따라 사는 자들만이 더 큰 빛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적극적인 그리스도인 미덕을 수범하는 일에 날마다 진보하지 않는 한, 늦은비를 통한 성령의 나타나심을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심령에 내리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분별하거나 받을 수 없다… 과단성 있는 노력이 없이 단지 성령께서 그들을 강제로 활동시킬 때를 기다리는 자들은 마침내 흑암 중에서 멸망하게 될 것이다. 그대들은 하나님의 사업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부주의한 자들이 마지막 징조가 보일 때에도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그때까지 그 이전부터 계속 일어나고 있었던 징조들과 그 의미들을 반복적으로 깨달아 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 곁에서 늦은 비가 내리고 있는데도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가려뽑은 기별 2권, 109
“하나님께서 예언적인 역사로서 과거에 성취될 것으로 밝히신 것은 모두 그대로 성취되었으며 장차 그 순서를 따라 일어날 것으로 밝히신 모든 사건들도 역시 그대로 성취될 것이다. 하나님의 선지자인 다니엘은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요한도 자기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계시록 가운데 있는 유다 지파의 사자이신 주님께서는 예언을 연구하는 자들에게 다니엘서를 펴놓았으므로 다니엘은 자기의 책임을 다하게 된 것이다. 다니엘은 예언들이 성취되기 직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크고 엄숙한 사건들에 대해 계시를 주님께서 자기에게 보여 주신 그대로 증언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속히 오실 수 밖에 없는 다섯 가지 징조들

1. 천연 재해의 증가

“일월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눅 21:25).

바다의 파도의 우는 소리로 인하여 두려워하던 시대는 과거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바닷속 지진으로 인한 해일과 또한 파도로 인한 가공할만한 허리케인의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는 시대가 되었다. 아시아 쑤나미와 미국의 카트리나 허리케인은 드디어 위의 성경절을 실감케 해 주는 시대가 도래한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다.

화잇 부인께서는 샌프랜시스코 지진 이후에 다음과 같이 기록 하였다 (화잇 부인은 샌프란시스코 지진이 일어나기 이틀 전에 이에 대한 계시를 보심).

9T, 94,95,97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 관한 더 많은 교훈과 범죄자들이 그분의 눈 앞에서 그들의 위험스런 위치를 깨닫는 일에 대하여 각성할 필요성이 나를 교훈해 주신 분으로부터 받은 그대로 백성들에게 반복되었다.

건물들이 무너지는 장면이 내 앞으로 지나간 지 이틀 후인 4월 18일에 나는 약속대로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카르 스트리트 교회로 갔다. 우리가 교회에 가까이 갔을 때 신문 파는 소년들이 “샌프란시스코가 지진에 파괴되었다!”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나는 그 무서운 재난에 대한 기사의 첫 단을 서둘러 읽었다.두 주일 후에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샌프란시스코를 지나게 되었다. 우리는 마차를 세내어 그 큰 도시에 닥친 파괴의 모습을 한 시간 반 동안 보았다. 재난으로부터 안전할 것으로 생각되었던 건물들이 폐허 속에 쓰러져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건물들이 부분적으로 땅 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그 도시는 내화성(耐火性)과 내진성(耐震性)을 위해 건축한 인간의 무능을 가장 처참한 모습으로 보여주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하나님의 심판이 세상에 임하고 있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화재와 홍수와 지진으로 그분께서는 당신이 가까이 오고 계심을 세상의 거민들에게 경고하고 계신다. 세상 역사에서 큰 위기가 다가올 때, 하나님의 정부의 모든 움직임이 비상한 관심과 말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주시될 때가 가까이 이르고 있다. 하나님의 심판¬화재와 홍수와 지진이 신속히 꼬리를 물고 전쟁과 유혈 사태와 함께 이어질 것이다.

아, 사람들이 그들의 심판의 때를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직도 이 시대를 위한 시험하는 진리를 듣지 못한 자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위하여 애쓰시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의 파멸적인 심판의 시간은 진리가 무엇인지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한 자들을 위한 자비의 시간이다. 주께서는 그들을 부드럽게 바라보실 것이다. 들어가기를 원치 않는 자들에게 문이 닫혀있는 동안, 그분의 자비의 마음은 감동이 되고, 그분의 손은 여전히 구원하고자 펼쳐져 있다.”

그 이후에 화잇 여사는 다음과 같이 허리케인에 대한 언급을 하셨다.

6T, 408
“억제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지금 세상으로부터 거두어지고 있다. 허리케인, 폭풍, 태풍, 화재, 홍수, 재난 등이 꼬리를 물고 신속히 일어난다. 과학은 이 모든 것을 설명하고자 애쓴다. 하나님의 아들의 오심이 가까움을 알리는, 우리 주위의 허다한 징조들은 참된 원인이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한 것으로 이해된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네 바람이 불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파수꾼 천사들을 분변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천사들에게 바람을 놓으라고 명령하시면 글로 묘사할 수 없는 요란한 장면이 펼쳐질 것이다.”

흥미 있는 일은 최근 미국의 신문들이, 카트리나 허리케인 피해가 1906년 샌프란시스코의 대 지진 이후로 가장 큰 재해라고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샌프란시스코 대 지진을 계기로 예언의 신이 미국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지금 미국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의 시기에 살고 있는 것 같다.

또한 뉴욕의 화재에 대하여 계시를 보시고 화잇부인께서 쓰신 말씀이 교회증언 9권에 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뉴욕 테러 사건을 예언한 듯한 뉴욕 높은 빌딩들의 그 화재 사건에 대한 예언을 교회증언 9권 11페이지에 출판해 놓은 것일까? 혹시 9-11 사태로 시작되는 마지막 사건들에 대하여 우리를 깨우시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함께 그 증언의 말씀을 읽어 보자.

9T, 11
“뉴욕에 있을 때, 나는 밤에 하늘을 향하여 층층으로 높이 솟은 건물들을 쳐다보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 건물들은 방화시를 대비, 든든한 보증이 되어 있었고, 그 소유주와 건축가들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세워졌다. 그 건물들은 점점 더 높이 솟아올랐고, 가장 값비싼 재료가 거기에 사용되었다. 그 건물을 소유한 자들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가장 영화롭게 할 수 있는가” 라고 자문하지 않았다. 그들의 생각 속에는 주님이 계시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아, 재물을 이같이 투자하고 있는 자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동을 보시는 것처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들은 거대한 건물들을 쌓아올리고 있다. 그러나 우주의 통치자의 눈에는 그들의 계획과 고안이 얼마나 어리석게 보이겠는가. 그들은 마음과 정신의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을 연구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사람의 첫째 의무가 되는 이것을 잊어버렸다.

이 고층 건물들이 올라갔을 때 그 소유주들은 자아를 만족시키고 그들의 이웃의 선망을 자극시키는 데 사용할 돈을 그들이 소유했다는 야심적인 자만심으로 기뻐했다. 그들이 이렇게 투자한 대부분의 돈은 가혹한 행동을 통하여,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 억누름으로써 얻어진 것이었다. 그들은 모든 사업 거래의 기록이 하늘에 보존되고, 모든 부정직한 거래, 모든 사기 행위가 거기에 기록된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사람들이 기만과 오만가운데서 주께서 지나가도록 허용하지 아니하실 지점에 이르게 될 때가 이르러 오고 있다. 그 때 그들은 여호와의 오래 참으심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내 앞을 지나간 광경은 화재의 경보였다. 사람들은 화재 방지가 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높은 건물들을 쳐다보고 ‘저 건물들은 틀림없이 안전하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건물들은 마치 송진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타 버렸다. 소방차들은 그 손실을 전혀 막을 수가 없었다. 소방수들은 소방 시설들을 작동시킬 수가 없었다.”

2. 멸망의 가증한 것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마 24:15).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눅 21:20,21).

그 당시에는 예루살렘 성 벽에서부터 약 2마일 까지를 거룩한 장소로 정해 놓았었다. 그것을 알고 있었던 로마 군대는 첫 번째 포위 때에 예루살렘의 거룩한 장소에 까지 들어 와서 그들의 이방 신의 깃발을 꽂아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유 없이 후퇴하였고 두 번째 포위 때에 예루살렘을 멸망 시켰다. 이것은 같은 방법으로 영적인 로마가 마지막 하나님의 교회를 공격할 것을 예표한다.

대쟁투, 26
“곧 우상 숭배하는 로마의 군기(軍旗)가 예루살렘 성벽 밖 수 마일까지 미치는 거룩한 땅(聖地)에 세워질 때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도망하여 안전을 얻어야 할 것이었다. 경고하는 징조가 보일 때에 도망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지체없이 서둘러야 할 것이었다. 예루살렘은 물론이요, 온 유대 땅에서도 도망하라는 신호에 즉시 순종해야 할 것이었다. 그 때 지붕 위에 있던 사람은, 아무리 값진 보물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건지기 위해 내려가서 집 안으로 들어가지 말 것이었다. 밭과 포도원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더운 날에 일하기 위하여 벗어둔 겉옷을 가지러 되돌아감으로 시간을 써서는 안 될 것이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멸망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한 순간도 지체하지 말아야 할 것이었다.”

5T, 464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 그들의 애정을 두거나 그들의 재물을 쌓아 둘 때가 아니다. 초기의 제자들처럼 우리가 황량하고 외진 장소에서 피난처를 찾지 않을 수 없을 때가 멀지 않았다. 로마 군대에 의한 예루살렘의 포위가 유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도망하라는 신호가 되었던 것처럼, 법왕권의 안식일을 강요하는 법령을 통한 우리 나라에서의 권력 장악은 우리에게 하나의 경고가 될 것이다. 그 때는 대도시들을 떠나고, 산간(山間) 한적한 곳에서 궁벽한 거처들을 마련하기 위하여 더 작은 도시들을 떠나갈 준비를 할 때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여기서 값비싼 주택들을 구하는 대신에 우리는 더 좋은 나라, 하늘까지 옮겨 갈 준비를 해야 한다. 자아 만족을 위하여 우리의 재물을 사용하는 대신에, 우리는 검약하는 법을 연구해야 한다. 하나님께 빌린 모든 달란트는 세상에 경고의 기별을 전하므로 그분께 영광이 돌아가도록 쓰여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동역자들이 도시들에서 해야 할 사업을 갖고 계신다. 우리의 선교지들은 지탱되어야 하고, 새로운 선교지들이 열려야 한다. 이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시키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요구될 것이다.”

지금은 대 도시들을 떠나야 할 시기이다. 도시에서 전도하기 위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돈을 벌고 편리한 생활을 살기 위하여 도시에 거주하는 모든 신자들은 도시를 떠나야 한다.

1888년도 미국에서 Blair 상원의원이 일요일 휴업령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여 통과 시키려고 하고 있을 때에 재림교회의 젊은 목사 A.T. Jones 가 국회에서 한 시간 가량 반대하는 연설을 하였으며 결국에는 일요일 법안이 통과되지 않았다. 교회가 준비되지 못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법안을 막으셨던 것이다.

로마 군대의 첫 번째 포위 때에 예루살렘이 멸망되지 않았었다. 두 번째 돌아와서 성을 포위하였을 때에 예루살렘 성은 결국 멸망 되었다. 마찬가지로 지금 미국에서 영적 로마의 군대의 깃발이 두 번째로 꽂혀지려고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는 1997년도에 요한 바오로 2세가 쓴 사도 서신인 “Dies Domini” 를 통하여 바티칸이 세계에 흩어진 추기경들과 신부들에게. 각 나라마다 그들의 헌법으로 일요일을 휴식일로 정하도록 촉구하라고 지시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 이후부터 미국의 개신교도들은 교황청과 협력하는 강력한 정치 운동들을 벌려 오고 있는데, 요즈음에 일어나고 있는 종교 운동이 바로 낙태 금지법 운동이다. 낙태는 그 자체가 옳지 않은 것이지만 국가의 법으로 제정하여 강요할 문제는 아닌 것이다. 그 것은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문제이지, 법률상의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로마교회의 교리를 강요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인간의 양심의 결정을 강요하는 일을 하시지 않는다. 국가가 이러한 교회의 교리를 강요하게 될 때에 핍박이 시작되는 것이다. 낙태 금지법은 일요일 휴업령의 전초 작업이다.

일요일 휴업령을 만들려고 오랫동안 싸워 온 개신교 단체인 Sunday Alliance(일요일 동맹)은 그들이 1888년부터 미국의 국민들과 국가를 섬기는 있는 일을 해 오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1888년도에 미국에서 첫 번째로 일요일 법령을 만들려고 시도했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바벨론 세력이 두 번째로 하나님의 교회를 포위하고 있다. 두 번째 포위 때에 예루살렘 성이 멸망 당한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3. 변해가는 미국의 모습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계 13:11,12).

계시록 13장에 나타나는 미국을 상징하는 두 번째 짐승인 새끼 양 같은 짐승의 뿔들에는 면류관이 없다. 다시 말해서 왕권이 없다는 뜻이다. 두 뿔은 공화 정치와 종교 자유를 상징한다. 정부와 교회가 분리되어 운영되는 나라인 것이다. 양과 용은 완전히 다른 동물이다. 마찬가지로 종교 자유주의로 출발한 미국이 종교를 탄압하는 법령을 내리게 되는 나라로 전락하게 되고 말 것으로 예언 되어 있다.

9-11 테러 이후에 미국에서 개인의 권리 Privacy 권한에 대한 해석이 크게 달라진 것을 볼 수가 있다. 미국 헌법 제 1조의 해석이 달라진 것이다. 미국 국민들의 사고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헌법 제 1조가 너무나 개인적인 자유를 많이 주고 있기 때문에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를 축소 할 수 있다는 여론이 지배적이 되어 가고 있다. 얼마 전에 많은 미국 시민인 아랍인들이 미국을 반대하는 이슬람의 설교자의 설교를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가서 몇 년 동안 가족들도 만나지 못한 채 고통을 당해야만 하였다. 예언된 대로 미국은 용처럼 말하기 시작하였다.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

예언의 신은 미국이 교황권과 손을 잡은 이후에 헌법의 원칙을 무시하는 일을 자행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 하였다.

5 T, 451
“하나님의 율법을 깨뜨리고 법왕권의 제도를 강요함으로써 우리 나라는 의에서 스스로 완전히 분리될 것이다. 개신교가 로마의 세력과 손을 잡기 위하여 구렁을 넘어 손을 뻗게 될 때, 그가 강신술과 악수하기 위하여 심연(深淵)저편으로 건너갈 때, 이 삼중 연합의 영향 아래 우리 나라가 개신교와 공화 정부로서의 그 헌법의 모든 원칙을 거부하고 법왕권의 거짓과 속임을 퍼뜨릴 준비를 갖추게 될 때, 우리는 놀라운 사단의 활동시기가 왔다는 것과 끝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로마 군대의 접근이 제자들에게 있어서 임박한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징조가 되었던 것처럼 이 배교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의 한계가 이르렀고, 우리 나라의 죄악의 잔이 찼고, 자비의 천사가 바야흐로 날아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징조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때에 선지자들이 야곱의 환난의 때로 묘사한 그 고통과 난관의 장면으로 돌입할 것이다.”

4. 강신술의 활동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 2:9-12).

마녀들의 힘을 토대로 한 이야기인 Harry Potter 책과 영화는 엄청난 파급을 일으키고 있으며, 유령과 초자연적인 현상들에 대한 영화들과 TV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들의 생각구조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영혼 불멸설은 그 힘을 더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마지막 악령들의 나타나는 일을 위한 준비가 제대로 갖추어져 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우리가 강신술에 대하여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한가지 중대한 면이 있다. 그것은 강신술이 교묘한 가면을 쓰고 이미 교회 안에 들어 와 있다는 사실이다. 강신술이 쓴 가면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교회 안에 몰래 스며 들어 온 자유주의 신학의 가르침이다.

대쟁투, 558
“오늘날에는 강신술이 그 형태를 변하여 지금까지의 불미한 점들을 감추고 그리스도교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강단과 인쇄물을 통하여 그의 주장은 일반 사람들에게 여러 해 동안 제시되어 왔다. 그러므로 그것으로써 그 정체가 드러나 있다. 그 가르침은 부인되거나 숨겨질 수가 없다.

최근에 새로운 형태를 취하고 있는 강신술은 이전 것에 비해 묵인할 여지가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교활해진 기만성으로 그 위험도는 실제로 훨씬 더 높아졌다. 강신술이 이전에는 그리스도와 성경을 부인하였으나 오늘날에는 그 둘을 다 받아들이고 믿노라고 공언한다. 그러나 성경은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방식으로 해석되는 한편, 그 엄숙하고 요긴한 성경의 진리는 효력을 상실해 버렸다. 사랑은 하나님의 중요한 속성이라고 생각되고 있지만 그것은 약한 감상주의로 전락되어 선과 악을 거의 구별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하나님의 공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견책, 거룩한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 등이 모두 무시되고 있다. 사람들은 십계명을 죽은 문자처럼 여기도록 가르침을 받고 있다. 귀를 즐겁게 하고 매혹시키는 우화적 이야기들로 감각을 빼앗긴 나머지 사람들은 신앙의 기초가 되는 성경을 부인하도록 이끌린다. 그리스도께서는 종전과 마찬가지로 부인 당하고 있다. 그러나 사단이 사람들의 눈을 너무도 어둡게 하였기 때문에 그 기만은 식별되지 않고 있다.”

대쟁투, 588
“사단은 두 큰 오류, 영혼 불멸설과 일요일 신성설을 통하여 사람들을 그의 기만 아래 들어오게 할 것이다. 영혼 불멸설은 강신술의 기초가 되고 일요일 신성설은 로마교회에 대한 공명심을 일으킨다. 미국의 개신교도들은 솔선하여 강신술과 손을 잡기 위하여 심연(深淵)을 넘어 그들의 손을 내밀고 또 그들은 큰 구렁텅이를 넘어서 로마교회의 세력과 악수하기 위하여 손을 뻗칠 것이다. 그와 같은 삼중 연합의 세력 아래 이 나라는 양심의 권리를 유린하는 일에 로마의 발차취를 따르게 될 것이다.

강신술이 오늘날의 유명 무실한 그리스도교를 더욱 잘 모방하면 할 수록 그는 더욱 큰 기만과 유혹의 세력을 갖게 된다. 사단은 현대의 감각에 맞추어서 스스로 변장한다. 그는 빛나는 천사의 모양으로 나타날 것이다. 강신술의 매개체를 통하여 이적들이 행해지고 병 고침을 받게 되고 부인할 수 없는 많은 기사들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그 영들은 성경을 믿는 그들의 믿음을 고백하고 교회의 제도들에 대한 존중심을 표명할 것이므로 그들의 활동은 마치 하나님의 능력의 표현처럼 인정될 것이다.

오늘날의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과 불신자들과의 한계를 거의 구별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교회의 교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있고 그들과 연합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사단은 그들을 하나의 단체로 연합시켜 강신술의 대열에 쓸어 넣음으로써 그의 사업을 강화시키고자 결심하고 있다. 이적이 참 교회의 분명한 표라고 자랑하는 법왕교도들은 이적을 행하는 이 능력에 쉽게 기만당할 것이며 진리의 방패를 버린 개신교도들 역시 미혹당할 것이다. 법왕 교도들과 개신교도들과 세속인들은 한결같이 경건의 능은 버리고 경건의 모양만 받아들일 것이다. 그들은 이 연합을 온 세계를 교화시키는 큰 운동이요, 오랫동안 고대했던 복천년을 도래케 하는 운동이라고 볼 것이다.”

5. 교회 안에 참된 믿음에 대한 결핍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 18:8).

가려뽑은 기별 1권, 48
“사단은 진리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거짓된 것을 밀고나가고 있다. 사단의 최후 기만은 하나님의 영의 증언을 무력하게 만드는 바로 그러한 성질의 것이 될 것이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멸망하리라)’(잠 29:18). 사단은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참된 증언에 대한 신뢰심을 동요시키기 위하여 온갖 방법과 종류가 다른 매개물들을 통하여 교묘하게 활동할 것이다.

증언들에 대한 혐오감이 일어날 것인데 이것은 사단에게 속한 정신이다. 증언들에 대한 교회의 신앙을 동요시키는 것이 사단의 책략이 될 것인데 그 이유는 이렇다. 만일 하나님의 영께서 주시는 경고와 견책과 권고들을 귀담아 듣는다면 사단은 자기의 기만술을 펼 수 있는 길을 마련할 수 없으며 자기의 기만 속에 영혼들을 묶어둘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증언의 말씀을 불신하거나 무시하거나 읽지 않거나 순종하지 않는 신자들은 마지막 교회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 교회 안에 믿음의 문제에 위기가 생겼다. 그래서 참된 복음인 영원한 복음에 대한 오해가 생기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생각지 않은 때에 아주 속히 임하실 것이다.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 지금은 준비할 때이다. 세상에 붙은 모든 욕심과 사랑을 버리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첫사랑을 회복하자. 그리고 성령님께 간구하여 영적인 눈을 뜨고 세상에 일어나는 재림의 징조들을 바라보자. 그리고 깨어나 모두 함께 준비하는 재림교인들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