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체됨의 이유/어찌하여 지체하시나이까?
저자: 콜린 스탠디쉬(Colin Standish)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을 믿는 믿음이 결여되어 있다. ‘나의 주님이 더디 오시리라’는 말이 마음 속에서만 아니라, 말과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행동에서 표현되고 있다. 이 깨어 있어야 할 시기에 무감각하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시대의 징조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만연하고 있는 비참한 죄악은 교회로부터 죄를 제거하기 위한 최고의 성실과 산 증언을 요구하고 있다. 믿음은 두려울 정도로 감소되고 있다. 믿음이 증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활용함으로써 이다.” 교회증언 영문, 255-256.
이 글은 지금부터 120년 전의 시대에 대한 경고의 글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시대의 긴박성과 재림에 대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적 감각은 어떠한가? 몇 년 전, 나는 와싱톤 D.C. 근교에서 있었던 어떤 세미나에 참석하였었는데, 그때 그 세미나의 총 주제가 “재림, 그것은 불타는 소망인가? 아니면 시들어 가는 꿈인가?”이었다. 이 중요한 문제를 위하여 유명한 연사들이 초청되었다. 그들의 대담과 토론을 들으면서 나는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그들은 청중들을 혼동시키고 나약한 이야기들만을 들려주었다. 한 때는 곧 다가온 그리스도의 재림에 의해서 강력하게 신앙이 고취되었던 그리스도인들이 이제는 연약해졌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체됨으로 인해서 방황하고 있는 모습이 그 세미나의 강연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그들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재림의 긴박성에 대한 확신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발표할 순서가 되어도 말하지 않아야 겠다고 마음 속으로 결정했지만, 결국 나의 마음 속에서 불타고 있는 재림에 대한 열정적인 소망을 일어서서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체되어 온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내가 7살이 되었을 때에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7년이 지나기 전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고 확언하시던 것이 기억난다. 그 당시 내가 14살이 되기 전에 예수께서 오신다는 것은 내게 있어서는 너무 빨리 오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마음 속으로 ‘내가 30살이 될 때가지 예수께서 오시지 말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지금도 기억난다. 7살인 당시의 나에게 있어서 30살은 꽤 많은 나이였으며, 그때까지는 착한 사람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한 준비가 될 것이라고 상상했던 것이다.
1941년에 나의 조국인 호주는 제 2차 세계 대전에 휩싸이게 되었는데, 당시 미국은 아직 그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았었고, 유럽에서는 나찌와 파시즘이 급속히 확장됨으로 인해서 장래에 대한 무서운 염려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 후 오래지 않아서 싱가폴이 일본의 손에 쓰러졌고, 아버지와 나는 일본 제국 방송이 보내는 영어 방송을 듣게 되었는데, 그 방송에서 그들은, 싱가폴은 무적이라고 영국이 주장했으나 일본은 싱가폴이라는 섬 요새를 단 2일 만에 점령했다고 선전하였다. 그리고 계속해서 방송하기를 “일본은 곧 인도네시아를 정복하고 이어서 호주를 공격”할 것이라고 선전포고 하였다. 그 때 나의 심장은 멈추는 듯 했다. 나는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우리 부모님들의 긴장과 갈등은 너무도 심각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뒤뜰에 공습에 대비하기 위한 대피소를 마련했고, 우리들은 공습경보가 울릴 때 학교 울타리 바로 안쪽에 파놓은 참호 안으로 뛰어들어가는 연습을 하였다. 또한 적기가 우리의 머리 위를 날아갈 때마다 우리는 땅에 납작하게 업드려야 된다는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고 유사시 학교로부터 집까지 뛰어서 얼마나 걸리는지를 알기 위해서 학교에서 집까지 달리는 연습을 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께서 하시던 말씀을 지금도 잊어버릴 수 없다. “학교에서 무엇이라고 말하던지 너희는 집으로 뛰어와야 해. 나는 너희들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기 원한단다.”
우리가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 일본군이 발사한 폭탄 두개가 우리가 살고 있던 도시의 동쪽에 떨어졌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시드니 항구까지 방어망을 뚫은 일본군 잠수함 두정이 침입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의 염려와 걱정은 극에 달했다. 그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본 잠수병 12명을 포함하여 28명이 전사했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두번째 오심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생각과 관심의 중심이 되었다. 우리 모두는 죽음을 눈 앞에서 보게 되었으며, 이러한 전쟁의 비극이 다시는 있을 수 없는 세상을 갈구하게 되었다. 나는 부모님이 그리스도께 깊이 헌신했던 가정에서 자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가정에서 들을 수 있었다.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 했으며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절박하고 실제적인 문제였다. 또한 당시의 목사들에게 있어서 재림은, 많은 강조를 하며 제시해야 하는 주제 중의 하나였다.
나의 어머니가 재림에 관하여 나에게 예언적인 확언을 했던 것은 어머니가 28세가 되던 해였다. 그분은 생동감이 넘치었고, 재능이 있으며, 운동 신경이 발달한 분이셨다. 우리는 1974년 사랑하는 어머니께서 갑자기 잠드실 때까지 죽음으로 인해서 우리 가족이 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때의 슬픔 이후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던 어머니의 소망을 우리도 간직하게 되었다.
그 후, 세월이 흘러서 어느덧 20년이 지나갔다. 우리는 다가온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신선한 충격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잊혀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게 되었다.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며 “늑대”처럼 울부짖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우리에게 있어서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가 되어 버렸는가? 아니면 미래의 가장 먼 끝에 생길 불확실한 사건에 불과한 일인가? 약 2000년 전, 그리스도의 승천이 이 땅에서 있은 이후로 그분의 재림은 그리스도교의 역사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그리스도교회를 지배했었다. 그분의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승천을 지켜보는 가운데 다음과 같은 천사의 말을 들으면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그들의 확신을 재 확신하게 되었다.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행 1:11.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전 4:13-16.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 4:8.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벧후 3:3-13.
또한 사도 바울이 디도서에 기록한 놀라운 말씀을 보도록 하자.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디도서 2:13. 여기서 “복스러운 소망”이라는 말은 당시 헬라어를 사용하는 신자들에 의해서 사용되던 인사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말로서 마라나타 즉, “주께서 오신다” 라는 뜻이다. 제1 세기에 살던 그리스도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요한 복음 21장에 있는 그리스도와 베드로와의 대화에서 나오는 말씀에 주의를 집중시켰다. 그 대화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가 십자가 형에 의해서 죽게 될 것을 이야기 하셨다. 그러자 베드로는 깊은 궁금증을 가지고 요한의 마지막 운명에 대해서 질문하였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답변하셨다.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요한복음 21:22.
요한은 당시의 어떤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답변에 너무 지나친 촉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면서 다음과 같이 예수님의 답변에 대한 의미를 규명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말이 형제들에게 퍼지니 그(요한)가 죽지 아니하리라는 것이더라.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가 죽지 않을 것을 말한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라고 한 것이더라.” 요한복음 21:23.
사도들의 죽음 이후, 그리스도인들이 곧 다가올 그리스도의 재림에 그들의 초점을 맞추는 신앙은 심각할 정도로 어렵게 되었다. 2세기, 3세기를 지남에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조부들이 지키던 그리스도를 그리는 재림신앙에서 서서히 떠나가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원초적이고 신선한 경건함은 신학적인 논쟁과 이방 신앙의 침투, 그리스도교계의 권력 투쟁과 대립, 그리고 예식과 형식을 중요시하는 풍토로 인하여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갈수록 예배 자체에 대한 헌신과 정성이 사제들과 권세자들에 대한 충성으로 평가되게 되었고 재림에 대한 “복된 소망”(마라나타)은 신자들의 마음 속에서 깜빡거리며 꺼져가는 사상으로 전락되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변질되어 시들어가는 소망은 곧바로 구세주와 그분을 믿는 신자들의 연합을 애매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두번째 오심은 그리스도인들의 시선 밖에 존재하는 희미한 신기루이며, 미래의 어떤 시점에나 있을지 알 수 없는 막연한 사건으로 밀려져 버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혼동시키는 상황은 영혼불멸설과 같은 이교의 이단적 신앙이 그리스도교에 소개된 이후로 시작되었고, 로마제국 시대를 거치면서 서서히 스며들게 되어서 인간의 죽음 이후에 즉시로 생명이 다시 복귀된다는 오류가 그리스도교를 강타하게 되었다.
그러나 특별한 시간에, 특별한 일을 일으키셔서 선택된 기별에 의하여 지상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임박성을 일깨우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재림 교회이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선구자들에게 있어서 “재림”은 너무도 중요한 사건이었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교파를 표현하는 제목에 “재림”이라는 단어를 포함시켰던 것이다. 재림교회의 선구자들은 예수께서 그들이 이 땅에서 생애하는 동안 오신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없이 믿었고 또한 그렇게 살았다. 그러나 세월은 흘러 수 십년이 지나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가운데 벌써 150년이 넘어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그리스도 교회 안에서도 회의주의가 판을 치게 되었다. 마치 사도들이 죽은 이후 세월이 흐름에 따라서 세속과 불신과 오류가 그리스도교 안으로 서서히 들어왔던 것처럼…. 우리의 사랑하는 교회 안에도 불신과 세속에 빠진 두려움 없는 대담한 자들이 다음과 같은 죗된 감정적인 구호를 외치게 된 것이다.
“그가 온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만물은 창조의 시작부터 그대로 있다.” 베드로 후서 2:3.
바로 이와 같은 불신과 믿음의 결핍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계속적으로 지체시키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라는 사실을 그들 자신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 한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께서는 당신께서 신뢰심을 갖고 늦은비를 퍼부어 주셔서 당신의 권능으로 세상에 복음을 들고 나가 모든 민족과 족속과 방언에게 세천사의 기별을 전파할 수 있는 한 백성을 소유하실 때까지 결단코 오시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루어지기 위한 필수적인 선제 조건들은 무엇인가?
1. 요한계시록 14:7에 나오는 영원한 복음이 온 세상에 선포될 때까지 예수께서는 오시지 않을 것이다. 재림교회는 세상의 거의 모든 나라에 이 기별을 전파하는 일에 있어서 놀라운 업적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업적들이 요한계시록 14:6절과 마태복음 24:14절의 약속과 예언을 성취시킨 것으로 생각하고 믿는다면, 우리는 자기 기만 가운데서 미혹 당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도 명확한 사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좀더 기발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프로그램을 통한 전도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 다음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서 주목해 보자.
2.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늦은비가 내려질 때까지 복음은 온세상의 족속과 방언에게 전파되지 않을 것이다. 분명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의 성령을 간구하는 기도가 절실히 요구될 때이다. “너희는 늦으비가 내릴 때에 주께 비를 구하라. 그리하면 주께서 번쩍이는 구름을 만드시며 소나기를 주시고 각 사람에게는 들에 풀을 주시리라.” 스가랴 10:1. 그러나 기도만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늦은비를 받도록 준비시키는 요소는 아니다.
3. 예수께서는 복음이 온 세상 속으로 들어 갈 때가지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은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늦은비를 받을 때까지 성취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늦은비는 분열을 노리는 분리주의자들에게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온 마음을 다하여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어내는 연합이 존재해야 한다.
4. 하나님께서 당신의 품성을 완전히 반사하는 백성을 소유하실 때까지 이러한 연합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연합은 그리스도인 완전의 확실한 결과이다.”성화된 생애 영문, 85. 하나님께서 아직도 당신의 성령을 인간에게 위탁하실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여전히 죄 가운데서 그들의 생애를 즐기며 그들의 생애가 아직도 이기적인 면모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의 성령이 죄와 이기적인 생애로 불완전한 기별자들에게 위탁된다면, 거기에는 성령의 이기적이고 죗된 사용으로 인한 끔직한 파멸이 생기게 될 것이다. 무수한 사람들이 하늘의 마지막 초청을 거절하게 될 것인데, 그 이유는 그들이 전하는 기별 때문이 아니라, 죄와 이기적인 생애를 살아가고 있는 기별자들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복음의 기별자들이 될 마지막 세대에 있어서 성품의 완전함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촉진시키는 일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콜롬비아 우주선이 발사될 때에는 엄청난 힘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그 우주선에 결함이 있었기 때문에 우주선은 그 엄청난 힘을 감당치 못하였고, 위대한 우주선의 임무와 사명이 비참한 파멸과 재해만을 초래했었던 것을 우리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 우주선의 폭발은 분명 하나님께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주셨을 경우에 생기게 되는 참혹한 파멸에 대한 실물교훈이라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어떠한 사람도 진리와 분리된 상태에서 참다운 성화의 경험아래로 들어설 수 없을 것이다.
5. “진리로부터 떠난 성화란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 교육의 기초 영문, 432. 진리는 연합을 위한 그리스도의 기도 속에 온전하게 잘 반영되어 있다. “아버지여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또 그들을 위하여 나는 나 자신을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하게 되기 위함이니이다.” 요한복음 17:17,19.
바울은 이 문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엡 4:11-15.
하나님의 백성들이 전적으로 세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이고 성령께서 진리를 통하여 그들 자신들을 성화시킬 수 있도록 허용할 때, 그들은 진리와 의로움 안에서 완전히 하나로 연합될 것이다. 바로 그러한 경우에만 복음은 온 세계를 향하여 전파될 수 있으며, 그때에야 비로소 예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것이다.
재림교회가 이 땅에서 지금까지 150년 동안 순례자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지금껏 그러한 백성을 소유하시지 못하셨다는 것을 명백히 증명해 주고 있다. 우리는 자주 과거의 “좋았던 옛 시절”들을 회상해 보기를 좋아하는데, 그러한 회상 가운데 자신들이 “역사적인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 이라고 불려지기를 좋아했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추억이 종종 우리들의 마음 속에 떠오른다. 그러나 나는 과거에 신실했던 사람들에 대한 칭호인 “역사적인 재림교인”이라는 명칭을 철회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당신의 성령의 권능을 퍼부어 주실 만한 한 백성을 발견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아직도 예수께서 이 땅에 재림하지 못하셨다는 것으로서 입증되며, 초기 재림 교회의 신실했던 선구자들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한 백성으로서 하늘 왕궁에 입성시킬 만큼 준비되지 못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과거에 대한 향수에 젖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19세기를 통하여 우리의 신실했던 백성들 가운데서 볼 수 있었던 영적 경험을 능가하는 일찍이 없었던 헌신과 굴복을 요구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1895년 12월 25일 화잇 부인께서는 뉴욕의 로체스터에서 한 계시를보았다. “…목사들과 백성들은 그들이 사는 시대를 위하여 준비되어 있지 않고, 현대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 시대를 위한 준비의 사업을 이해할 준비를 갖추지 못한 실정이다. 세속적 야망을 가진 현 상태,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부족, 자아에 대한 몰두 등의 상태로는, 그들이 늦은비를 받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자신의 허구(虛構)로 그들의 믿음의 파선을 일으키며 달콤한 어떤 자아 기만에 단단히 묶이게 하는 사단의 분노를 대항하여 서는데 전혀 적합하지 않다. 그들은 모두 그릇됨에도 불구하고 옳다고 생각한다.” 교회증언 1권, 영문, 466.
그리스도의 재림을 지연시키고 있는 이유를 두 단어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불순종”과 “사랑”일 것이다. 재림이 지연되고 있는 이유 중에 “불순종”은 우리 인간이 야기시키고 있는 이유이고, “사랑”은 하나님께서 재림을 지체시키고 있는 하나님 측의 이유이다. 주의 종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더 많은 해를 이 세상에서 남아 있어야만 될 것이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당신의 백성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행위로 인한 결과들을 하나님께 돌림으로써 죄에다 죄를 더하지 말아야 한다.” 복음 전도, 영문, 696.
우리가 하나님께 그분의 계명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일에 있어서 실패해 왔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지금까지 오실 수 없었다. 그리스도께 참되고 온 마음을 드리는 의지의 굴복에 대한 절실한 필요성이 요구되고있는데, 그러한 의지의 굴복은 우리로 하여금 신실하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유도할 것이며, 그리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품성을 소유하게 되어 주의 재림을 위한 준비를 마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당신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위대하신 사랑은 지금 당장 은혜의 시기를 끝마침으로 인하여 잃어버리게 될 수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아직도 은혜의 문을 열어놓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주의 약속은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벧후 3:9.
오늘의 현실을 보면, 지구 역사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빛의 자녀라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불순종과 불신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목적이 좌절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불순종의 길을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1.“주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기를 그들의 음식으로 공급하시지 않으셨는데,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고기로 된 음식의 사용은 질병과 불순종을 야기시킬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기질을 변화시키고 마음의 고등 능력을 활발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죽은 동물의 살을 당신의 백성들에게서 제거하셨다.” 본교 성경주석 1권, 1112, 1113.
오늘날도 하나님의 요구하심은 하늘 왕국을 위한 우리의 준비에 있어서 모든 거침돌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분명, 식생활의 개혁은 우리에게 영적 개혁을 가져올 것이며,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이기 위한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준비시킬 것이다.
2. 불순종에 대한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는 불평이다.
“견책에 대하여 저항하여 중얼거리는 불평의 정신이 뿌리가 되어 불순종의 열매를 맺게 된다.” 교회증언 1권, 영문, 199.
이 열매는 각 시대마다 저주로서 드러나게 되었다. 중얼거리는 불평의 정신은 믿음의 결핍에 기인하는데, 실제로 우리 중의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과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름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만일 우리가 경험에 의거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최악의 환경 하에서도 우리의 입술로부터 중얼거리는 불평과 불만이 새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불평과 불만은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여하기 보다는 아직도 세속적이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종은 그리스도 재림의 지체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돌리고 있다.
“지배하려는 정신이 우리의 합회장들에게 뻗어가고 있다. 자기 뜻대로 지배할 권리를 부여받고 있다고 느끼면서 자기 힘에 대해 자신만만하고, 그 형제들을 지배하려고 드는 사람이 있다면 가장 훌륭한 최선책은 그를 제거하는 것인데, 이것은 커다란 해를 입지 않고, 그의 영혼을 잃어버리지 않고, 타인의 영혼을 위태롭게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너희는 다 형제니라.” 하나님의 유업을 지배하고자 하는 이러한 성향은 이들이 자신의 길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 한, 부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목사들에게 보내는 권면, 영문, 362.
교회에서 권위 있는 사람이 교인들에게 교회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만을 요구할 때, 교인들은 하나님께 보다는 사람의 권위에 의존하도록 길들여진다. 또한 그렇게 함으로서 그들은 자신들의 영원한 구원을 잃어버리게 되는데, 왜냐하면 교인들이 하늘 가는 안내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찾는 대신에 사람의 지시와 명령을 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인간의 구속 사업 중 가장 마지막 국면인 지성소에 들어가신지 벌써 150년이 흘러간 지금, 우리의 가슴 속 깊이로부터 울려나오는 고통의 소리는 “주여,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됩니까?”이다. 그러나 이 고통스런 질문에 대한 답변은 우리 자신들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세상에 속한 악한 자들 때문에 재림이 지체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존재하는 악과 배도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오실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재림교회를 일으키셔서 이 시대를 위한 당신의 독특한 백성을 만드시길 원하시는데, 그들에게는 지금까지 인류에게 맡겨진 바 된 기별 중 가장 고귀한 기별이 위탁되었다. 1888년 미네아 폴리스 대총회에서 “그리스도, 우리의 의”에 관한 기별이 제시된 이후로 주의 종은 불과 몇 년 안에 하나님의 백성은 하늘 왕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증언하였다. 그러나 교회 지도자들의 그 기별에 대한 거절은 100여 년이 지나간 지금도 우리 모두를 이 땅에서 유리하도록 만든 비극적 원인이 되었다.
“이 기별은 온 세상의 죄를 대속한 희생 제물이 되어 높이 들리신 구세주를 더욱 분명하게 세상에 소개할 기별이었다. 이 기별은 우리의 보장이 되시는 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의롭게 된다는 진리를 제시하였다. 또한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도록 백성들을 초청하였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들에 대한 순종으로 나타나게 된다. 많은 이들이 예수를 그들의 시야에서 잃어버렸다. 그들은 그분의 거룩한 본성과 그분의 공로와 인간 가족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주목해야 한다.” 상동 96.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을 하늘 왕국에까지 인도할 기별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로 연합시킬 기별이다. 왜냐하면 이 기별은 그들을 그리스도의 희생과 봉사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별은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한 용서와 정결을 위해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으며, 죄 된 행습으로부터 떠나 구세주의 완전한 생애를 반사할 한 백성을 준비시킬 것이다. 그리하여 이 기별은 진리와 의 안에서 완전하게 연합하여, 오순절 당시보다 훨씬 능력 있는 늦은비를 위탁 받는 한 백성을 준비시켜 영원한 복음을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들에게 전파하게 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들의 개인적인 삶을 준비시켜 주실 것과 하나님의 백성들의 완전한 연합을 위하여, 독자들의 기도와 금식을 요청하고자 한다. 진리와 의 안에서 마지막 세대가 완전하게 연합할 때, 복음의 전파는 완수될 것이며, 오랫동안 기다리고 소망하던 구세주의 재림은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