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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해야 늦은 비를 받을 수 있습니까?

저자: 강병국 목사

    재림교인들 마음 속에 늘 맴도는 한가지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늦은비를 기다리는 희망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세상을 복음화 하여야 할 너무나 엄청난 사명 앞에 선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가지셨던 같은 능력을 통하지 않고서는 완전히 불가능 하다는 현실을 깨닫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먼저 자기 자신들의 죗되고 연약한 모습들을 정직하게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저희들의 선생님이셨던 분과 같은 성품과 생애의 목적을 가지지 않고서는 그분께서 행사하신 능력을 행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께서 남기고 가신 말씀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 14:12-14.

    그들은, 복음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온 세상 모든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겠다는 사명감으로 가슴이 벅차게 되었습니다. 구속의 십자가가 높이 들려져야 합니다. 영혼들을 향한 사랑이 그들의 마음과 사상을 불태웠습니다. 이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능력이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재림교인들에게도 온 세상에 알게 해야 할 기별이 있습니다. 옛날 제자들에게는 세상 죄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알리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었지마는, 우리들에게는 그 복음과 아울러 세천사의 기별을 세상 모든 나라들과 족속들과 방언과 백성들에게 알려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세상의 역사가 끝나는 마당에, 조사 심판이 끝나고 모든 사람들의 운명이 영원히 결정되기 직전에 우리는 세상에 알려 주어야 할 기별이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복음 이상의 것입니다. 그것은 십자가 앞에서 회개한 자들이 경험하는 순종의 면입니다. 거짓 복음이 아니라 영원한 참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참 진리와 바벨론의 포도주의 거짓 가르침의 차이를 분명히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온 세상 사람들이 듣고 양심에 따라 결정할 수 있도록…. 그것이 바로 세 천사의 기별입니다. 그것이 바로 안식일 준수를 통하여 드러날 마지막 시대의 대쟁투가 아닙니까? 우리도, 옛날 초대교회가 그러했던 것처럼, 온 세상에 알려야 할 기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성령의 능력이 필요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늦은비를 받을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가 한가지 알고 지나가야 할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초대 교회 시대에 성령께서 임하시기 전에 큰 시련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곧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그들의 기대와 소망이 다 무너지고 그들 자신들도 죄수들처럼 쫓기게 되면서 큰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실망의 경험이었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국가적인 일요일 휴업령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 마지막으로 큰 흔들림이 생길 것입니다. 수많은 쭉정이들이 그리고 삯꾼들이 나가 버릴 것입니다. 교회가 정결하여질 것입니다. 남아있는 자들도 두려워 떨게 될 것입니다. 용이 분내어 소리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우리는 위로부터 유쾌하게 됨을 받을 것입니다. 늦은비 성령을 말입니다. 성경과 예언의 신은 각각 늦은비가 내리는 시기를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행 3:19. 죄 없이함을 받는다는 것은 죄의 도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일은 대속죄일 마지막에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속죄의 최종 단계인 것입니다. 죄의 도말이 없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용서가 완전히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또한 유쾌하게 되는 날은 늦은비의 경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조금 후에 그 사실을 예언의 신을 통하여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예언의 신은 다음과 같이 그 시기를 설명하여 주고 있습니다. “나는 한편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알지도 못하고 지키지도 못하는 자녀들도 두고 계신 것을 보았다. 그들은 안식일에 대한 빛을 거절하지 않았다. 환란의 때가 시작될 무렵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나아가 안식일을 더 온전히 선포하는 것을 보았다. … 여기에서 언급한 바 있는 ‘환란의 때가 시작될 무렵’이라는 말은 일곱재앙이 내리기 시작할 때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 바로 직전 예수님께서 아직 성소에 계실 때이다. 구속 사업이 마쳐지려는 그 때 땅 위에는 대 환란이 이르겠고 열방들이 분노하나 셋째 천사의 기별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저지당할 것이다. 그 때에 늦은비, 또는 주의 앞으로부터 새롭게 함이 이를 것이며 셋째 천사의 목소리를 높일 힘이 주어 질 것이며 그리하여 성도들을 마지막 일곱 재앙에서 피하여 서도록 준비시킬 것이다.” 초기문집, 85,86. 다시 말해서 늦은비는 일요일 휴업령의 핍박 이후부터 7재앙이 내리기 이전 사이에 내리는 일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각 시대의 대쟁투 에서 화잇 부인께서는 다음과 같이 덧붙여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세째 천사의 기별을 전파하는 일에 협력하는 천사는 그 영광으로 온 세상을 환하게 한다. 온 세계적 범위의 사업이 비상한 능력으로 성취될 것이 여기에 예언되어 있다. 1840년에서 1844년까지의 재림 운동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영광스럽게 나타났다. 첫째 천사의 기별은 세계의 모든 선교지에서 증거되었다. 그리고 어떤 나라들에서는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어떤 곳에서 있었던 것 보다 가장 큰 종교적 각성이 일어났다. 그러나 셋째 천사의 마지막 경고 아래 이루어질 큰 운동은 그것보다 훨씬 더 뛰어날 것이다.

그 운동은 오순절의 운동과 유사할 것이다. 복음 사업의 시초에 귀중한 씨앗의 발아를 위하여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이른비를 주신 것처럼 그 사업의 종말에는 늦은비를 주셔서 추수할 곡식을 무르익게 하실 것이다.” 대쟁투, 하권, 473

    “셋째 천사의 기별이 마쳐지면 세상의 죄인들을 위한 자비의 탄원은 더 이상 없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사업을 다 이루었다. 그들은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 (행 3:19) 르는 ‘늦은비’ (호 6:3)를 받았으므로 그들 앞에 있는 시련의 때를 위하여 준비를 갖추었다.” 상동, 477. 여기에서 예언의 신은 유쾌하게 되는 날과 늦은비를 동일시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이 세상에 내리기 전에 주님의 백성 중에는 사도 시대 이래 일찍이 목격하지 못한 근본적 경건의 부흥이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과 권능이 그분의 자녀들 위에 부어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사랑하는 대신에 이 세상을 사랑하는 그러한 교회들에서 분리되어 나올 것이다. 목사들과 신자들을 막론한 많은 사람들이 주의 재림을 위하여 백성을 준비시키고자 이 시대에 전파되고 있는 큰 진리를 즐거이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원수는 이 일을 방해하려고 이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가짜 운동을 꾸며 냄으로써 이를 막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의 기만의 세력 아래 모이는 교회들 가운데는 마치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이 내린 것처럼 보이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신앙적 큰 부흥이 일어난 것처럼 생각하도록 나타낼 것이다.” 상동, 251.

    지금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 교회들 안에 굉장한 부흥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한 거짓 성령 운동이 온 세상에 번지고 있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서기 2000년부터 복천년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외치며 천주교회와 개신교회들이 서로 연합하여 부르짖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또한 미국에서, 예언된 것처럼 짐승의 우상이 세워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점점 더해만 가는 천연 재해들을 목격하면서 우리는 정결의 경험을 통하여 하루 속히 한 교회로서 늦은비 성령을 받을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는 애절한 느낌을 갖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늦은비 외에는 우리에게 소망이 없습니다. 교회 성장학도, 가정 세미나도 갖가지 전도 방식들도, 좋기는 하지마는 궁극적인 해결 방법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아무리 크게 성장하고 있다고 하여도 세계 인구 증가의 1000분의 1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세 천사의 기별들을 모르게 되는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의 문제 해결은 늦은비를 받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운명이 바로 이 문제에 걸려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개인들의 구원도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늦은비를 받지 못하는 재림 교인들은 구원 받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회들에서는 잘못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가르침 속에서 잘못된 영을 받고 있습니다. “참으로 회개한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영원한 사물에 관한 관계는 인생의 큰 주제가 된다. 그러나 오늘날 인기 있는 교회에 하나님께 헌신하는 정신이 있는가? 회심하였노라고 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교만과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들은 회개하기 전과 다름없이 자기를 이기고 제 십자가를 지고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 종교인으로 자처하면서도 그 원칙에 대하여 무지한 자들 때문에 종교는 무신론자와 회의론자들의 놀림감이 되어 버렸다. 경건의 능력은 많은 교회에서 거의 떠나갔다. 야유회, 연극, 자선회, 굉장한 건축, 개인들의 사치등이 하나님께 대한 생각을 제거해 버렸다. 토지와 재산과 세속적 직업이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서 영원한 이익에 속한 사물을 거의 주목해 볼 수 없다.” 대쟁투, 하권, 250.

    그러나 그러면서도 세상의 교회들은 크게 부흥이 오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1989년도 7월호, Forerunner 라는 월간지에서 팻 롸벌슨 목사는 “우리는 인류의 역사 가운데서 가장 놀라운 종교적 각성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5월 The Wanderer 라는 월간지에서는 여론 조사가 죠지 갤럽씨가. “미국은 도덕과 윤리적인 큰 위기를 직면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참석하는 일이 사람들의 윤리와 행동의 변화에 큰 차이를 일으키고 있지 못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선지자의 말씀처럼, 그러면서도 교회들은 큰 부흥의 때가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짓방언과 거짓 기적이 온통 기독교계를 누비고 있습니다. 1900년도 초기 우리교회의 훌륭한 지도자 가운데 한 분이셨던 쥴리어스 길버트 화잇 목사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사단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을 공개적인 강신술을 통하여 기만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더 나은 계획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거짓 늦은비를 소개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일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께 늦은비를 달라고 간구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성령이라고 생각하지마는 하나님의 영이 아닌 어떠한 것을 받게 만드는 것이다.” 알파와 오메가의 배도, 38페이지, 쥴리어스 길버트 화잇 목사

    죄를 온전하게 승리하는 정결의 경험이 없이 간구하는 늦은비는 다 거짓입니다. 자 이러한 세상과 기독교회들과 우리 교회의 형편을 직시하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이 질문을 심각하게 던져야 합니다. 우리 모두의 구원과 승패가 달린 질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늦은비를 받을 수 있습니까?” 제2부에서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늦은 비를 받을 수 있습니까? – 제2부

(1)늦은비를 위한 선제 조건들

A. 진정한 개심과 마음의 성전의 정결 사업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임하시기 위하여서는 그 자리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자리를 같이 하실 수가 없습니다. 이른비도 그 씨앗이 썩어 죽은 다음에, 그리고 새로운 싹을 낸 후에야 필요한 것입니다. 풀이 되어 자라기 전에 먼저 풀로서 태어나는 경험이 필요치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영혼의 성전이 정결케 되어 새로이 거듭나는 확실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적당한 회개가 아닌 죄를 미워하고 버리는 철저한 굴복이 필요합니다. 적어도 마음으로는 단 하나의 알고 있는 죄악이나 우상들을 품고 있어서는 안됩니다. 모두 다가 제단 위에 올려 놓아져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들의 영혼의 성전을 모든 더러움으로부터 정결하게 하고, 또한 그러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계속하여 유지하기 위하여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늦은비가 퍼부어질 때 그 비를 흡족하게 받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본 교회 성경 주석, 6권, 1055

    “우리들 중에 아무도 우리의 성품 중에 단 하나의 흠이나 점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인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성품의 흠들을 치유하는 일과 모든 더러움으로부터 우리 영혼의 성전을 정결케 하는 일은 우리에게 맡겨진 일이다. 그 때에 오순절 날 제자들에게 이른비가 임하였던 것처럼 우리에게 늦은비가 내릴 것이다.” 교회증언, 5권, 214

    진정한 회개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지에 대하여 보고 깨닫기도 전에 분위기나 감정이나 혹은 자기들의 결의에 의하여 생애를 바꾸려고 애를 쓰게 되며, 그러한 것을 회개의 경험이라고 부르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의 이끌리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으로 나아와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먼저 깨닫게 되어야 합니다. 거기에서 죄인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죄가 미워지고 의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각도에서 회개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때에 죄인은 죄를 고백하고 버리고 싶은 강한 충동과 함께 죄 자체를 슬퍼하는 진정한 회개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언의 신은 회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회개는 죄에 대한 슬픔과 또한 그로부터 돌아서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가 그 죄를 심히 죄되게 보기 전 까지는 그 죄를 버릴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그 죄에서 돌아서기 전 까지는 우리 생애에 진정한 변화가 없을 것이다.” 정로의 계단, 영문, 23

    “말이나 공언함이 아니라, 죄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계명들을 순종하는 열매들이 진정한 회개와 참된 개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본 교회 성경 주석, 5권, 1077

    “옛 본성, 혈육으로 타고 난 것은 하나님의 왕국을 기업으로 받을 수가 없다. 옛길들과, 유전적인 경향들과 예전 습관들이, 포기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은혜는 유전적으로 물려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듭남이란 새로운 동기들과 새로운 입맛, 새로운 경향들을 갖는 것이다. 성령에 의하여서 새로운 생애를 얻은 자들은 신성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며, 그들의 모든 습관들과 행동에 있어서 그들이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대한 증거를 보이게 될 것이다…. 순전한 회개의 경험은 유전적이고 배양된 잘못된 경향들을 변화시킨다 … 짜깁기는 새롭게 만들지 못한다. 유일한 길은 옛 것을 전적으로 버리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계획만이 유일한 안전한 길이다. 그분께서는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였노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기워 입는 식의 종교는 하나님께 아무런 가치가 없다. 주께서는 온 마음을 요구하신다.” 마라나타, 영문, 237

    “고백이란 진정한 회개와 개혁이 없이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가 없다. 거기에는 결정적인 생애의 변화가 있어야만 한다. 하나님께 혐오감을 주는 모든 것들은 포기 되어야만 한다. 이것은 진정한 죄에 대한 슬픔의 결과일 것이다.” 교회증언, 5권, 640

    1828년도 웹스터 사전은 “개심”(Conversion)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개심이란 마음과 태도가 돌아서서 죄의 상태에서 거룩함의 상태로 바뀌는 것이요, 마음과 도덕적 품성이 변하여 하나님께 원수되었던 상태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룩한 생애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얼마나 정확한 설명입니까?

진정한 회개와 영혼의 성전의 정결 사업이 없이는 우리가 늦은비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옛날 제자들이 오순절 날 어떻게 하여 이른비 성령을 받았는지를 미루어 보면서 우리의 늦은비를 위한 준비에 대하여 헤아려 보면 커다란 도움을 얻게 됩니다.
    초대 교회의 제자들이 성령을 받을 때의 모습들을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들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승천 하신 후 제자들은 하나님께 겸비한 탄원을 올리기 위하여 한 곳에 모여 있었다. 마음을 살피고 스스로 반성하는 10일 간이 지난 후 청결해지고 하나님께 바쳐진 마음의 성전에 성령께서 들어오실 길이 준비 되었다.” 복음전도, 679

    “죄를 고백하고 버리는 일과, 진지한 기도로 자신들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일들로 초기 제자들은 오순절 날 성령의 부어 주심을 받기 위한 준비를 갖추었다. 똑같은 역사가 더욱 큰 영역에서 이루어 져야 한다.” 목사들에게 보내는 증언, 영문, 507

    우리는 그들의 경험에서 두가지 분명한 선제 조건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진정한 개심과 영혼 성전을 정결케 한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마지막 교회를 향한 선물인 예언의 신을 열심히 탐구 할 때에 절대로 잘못된 영적인 경험이나, 그릇된 견해들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된 회개와 칭의의 경험, 그리고 성화의 과정에 대하여 잘못된 관념들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예언의 신을 연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참 하나님을 섬기고 있으면서 이방신전에 가서 그 지혜와 깨달음을 구하고 있는 격입니다. 홍수처럼 교회 안에 밀려 들어오는 타 교파들의 신학자들의 가르침들과 범람하는 학위를 위한 욕망들은 바로 교회 안에서 늦은비를 막고 있는 커다란 장벽들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다음과 같이 우리의 형편을 말씀하시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들의 할 몫을 위하여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아니하면서 위로부터 새롭게 함이 이르러 자기들의 잘못들을 제거하고 그릇된 것들을 고쳐주기를 바라며, 또한 그 새롭게 함이 그들을 모든 영육간의 더러움에서 씻어주며, 셋째 천사의 큰소리 외침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자들이 부족함으로 발견될 것이 나에게 보여졌다. 새롭게 함이나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명하신 일들, 즉, 자기들을 모든 영육간의 더러움에서 정결케 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온전하게 거룩함을 이루는 일로 자신들을 준비시킨 자들에게만 임하는 것이다.” 교회증언, 1권, 619

“셋째 천사의 기별은 큰 음성으로 고조되고 있는데 그대들은 마음대로 당면한 의무들을 등한히 하면서 장차 큰 축복을 받게 되고 아무런 노력도 없이 놀라운 신앙 부흥의 체험을 맛보게 되리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그대들은 오늘 하나님께 그대들 자신을 바쳐서 하나님께서 그대들을 귀히 쓰는 그릇으로 만들고 주님의 사업에 합당한 인물이 되게 하라. 오늘날 그대들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바쳐 먼저 자기를 비우고 시기심과 질투심을 비우며, 악한 생각과 다툼을 그치고 하나님께 욕이 될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할 것이다. 오늘날 그대들은 그릇을 순결하게 하여 하늘의 이슬을 받을 준비를 할 것이며, 늦은비의 소나기를 받을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늦은비는 분명히 내릴 것이며 하나님의 축복은 모든 더러움에서 정결함을 입은 영혼들에게 가득히 채워질 것이다. 우리의 영혼을 그리스도께 복종시켜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의 앞으로부터 이를 때 성령의 침례를 받기 위하여 합당한 사람이 되도록 준비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가려뽑은 기별, 1권, 239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잘못된 관념을 가지고 있는 재림 교인들은 올바른 의롭게 되는 경험에 들어갈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 기만 속에 빠져서 늦은비를 받지도 못하게 될 것이고 또한 늦은비가 임할 때에 분간하지도 못하게 되어 성령을 받은 자들을 오히려 광신자들이라고 외치며 핍박하는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기회가 있을 동안에 진리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굴복하는 일을 너무나 큰 희생처럼 생각한 나머지 쉬운 기만의 가르침을 오히려 진리로 믿기로 선택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독자들이시여, 아직도 은혜의 기간이 조금 남아있습니다. 주님께로 달려 가십시다. 은혜의 가슴 속으로 말입니다. 하나님께는 자비하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속하고도 결정적으로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다음의 말씀이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이 가진 빛에 따라서 생활하는 자들만이 더욱 큰 빛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능동적인 그리스도인의 덕성의 모본을 보이는 일에 날마다 전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늦은비로서 오시는 성령의 나타나심을 식별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 주위에서 다른 이들에게는 부어질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도, 혹은 받지도 못할 것이다.” 목사들에게 보내는 증언, 507

“봄비(늦은비) 때에 여호와 곧 번개를 내는 여호와께 비를 구하라 무리에게 소낙비를 내려서 밭의 채소를 각 사람에게 주리라.” 슥 10:1

어떻게 해야 늦은 비를 받을 수 있습니까? – 제3부

B. 이른비

“주께서는 당신의 사업의 위기의 때에 무관심과 불충실을 미워하신다. 온 우주는 말할 수 없이 큰 관심을 가지고 선악간의 대쟁투의 마지막 장면을 주시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영원한 세계의 변경에 접근하고 있는데, 그들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보다 그들에게 더 중대한 것이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선지자와 왕, 138.

늦은비를 받기 위하여서는 먼저 이른비의 경험을 해야 합니다. 옛날 유대 지방에서는 일년에 두 차례의 우기계절이 있었는데, 이른비는 씨를 뿌리는 가을철(유대 땅의 농사 조건은 우리의 농번기 시즌과 반대임)에 내리고 늦은비는 수확의 시기인 봄철에 내리었습니다. 이른비를 통하여 씨가 싹트고 성장하여 열매를 맺히기 까지 자라남이 없이는 늦은비가 내려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늦은비는, 이른비가 해 놓은 결과가 없이는 그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농사에 있어서 이른비와 늦은비를, 우리의 영적인 성장과 열매 맺는 과정에 비추어 상징적인 언어로 사용하시었습니다. 그러면 이른비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이른비는 씨가 땅에 떨어져 썩어야 그 효력을 발휘할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와 십자가 밑에서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고 거듭날 때에, 그리고 우리가 우리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주님께 드릴 때에 드디어 이른비의 성령의 역사가 우리 속에서 일하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영감의 말씀을 통하여 이른비의 역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동방 나라들에서는 이른비가 씨 뿌리는 시기에 내렸다. 그것은 씨가 싹트도록 하기 위하여 필요되었다. 땅을 기름지게 하는 비의 영향아래 연한 싹들이 올라왔다. 늦은비는 계절이 거의 끝나가려는 시기에 내려졌는데 그것은 곡식을 여물도록 하고 그리하여 그것을 수확할 수 있도록 하였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자연적인 작용을 이용하여 성령의 사업을 나타내시었다. 이슬과 비가 땅에서 먼저 씨앗을 싹트게 하고 그 다음 추수할 수 있도록 여물게 하는 것처럼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영적인 자라남의 성장 과정에서 성령은 점차적으로 주어지는 바 되는 것이다. 곡식을 무르익도록 하는 것은 영혼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로운 사업이 완성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은 품성 가운데서 완전함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는 완전히 그리스도와 같이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땅의 수확물을 무르익게 하는 늦은비는 인자의 오심을 위해 교회를 준비시키는 영적인 은혜를 묘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른비가 내려지지 않는 이상 거기에는 어떤 생명도 없을 것이며 파란 싹은 돋아나지 않을 것이다. 이른비의 역사가 없을 때 늦은비는 완성을 위한 아무 역사도 가져 올 수 없다.

거기에는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는 성장이 있어야 한다 (막 4:28). 끊임없이 그리스도인의 덕성이 자라남과 그리스도인의 경험 가운데서 끊임없는 진보가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우리 주 그리스도의 교훈으로 단장되고자 하는 강렬한 소망으로 이것을 구해야 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른비를 받는데 있어 크게 실패하였다. 그들은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제공하신 모든 이익들을 얻지 못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부족한 것은 늦은비에 의하여 채워지리라고 기대하였다. 은혜의 충만함이 풍성하게 부어지게 될 그때에 가서 그들은 그들의 마음 문을 열고 받으려고 생각한다.

그들은 무서운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인간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 분의 빛과 지식을 주심으로 시작된 사업은 계속하여 끊임없이 전진되어야 한다. 매 개인은 자기 자신들의 필요를 꼭 깨달아야 한다. 마음은 모든 더러움으로부터 비워져야 하며 성령께서 거하시기 위하여 정결케 되어야 한다. 오순절 날에 성령의 부어주심을 위하여 초기 제자들을 준비시켰던 것은 죄를 자복하고 버림으로써 열렬한 기도와 자신들을 하나님께 헌신함으로써 이루어 진 것이다 … 사업을 시작하신 이는 하나님이시요 그분께서 그의 사업을 완성시키실 것이며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반드시 이른비에 의해 나타난 은혜를 게을리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목사들에게 보내는 증언, 469-470

위의 말씀을 미루어 보아 이른비 성령의 역사란 것은 우리가 거듭난 후에 우리의 성품이 그리스를 닮아 성장하게 하는 은혜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가지 분명히 알고 지나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성장이란 죄를 짓고 또 용서 받고, 죄를 다시 짓고 또 용서 받고 하는 오르락 내리락하는 시이소 게임식의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씨가 새로운 싹을 낸 후에 계속적으로 새로운 식물로서 자라나는 것처럼, 우리의 영적인 생애도, 거듭난 후에 거듭난 자로서 계속 그 품성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타락했다가 다시 회개 했다가 다시 뜨뜻미지근해 졌다가 다시 열심을 냈다가 영적인 경험에서 물러 갔다가 다시 열을 냈다가 하는 식의 과정이 아닌 것입니다. 죄에게 져서 한참 쓰러져서 맥을 잃고 살다가 다시 부흥회 때에 열심을 되찾아 헌신하다가 다시 죄에 쓰러져 낙심하다가 다시 회개하여 주 앞으로 나아가는 그러한 생애는 영적인 성장의 생애가 아닌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성장한다는 의미는 주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죄와 싸워 승리해 나가는 생애를 말하는 것입니다. 혹 실수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곧 십자가 밑에서 정결케 되어 꾸준한 싸움과 승리로 점철된 그리스도인 생애를 말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성화란 거룩한 생애를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계속적으로 유지해 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죄와 순종의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생활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화란 그 낱말이 말하여 주듯이 거룩함에서 계속적으로 거룩함으로 자라나가는 생애인 것입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 이니라” (고후 3:17,18)라고 사도 바울은 말씀 하십니다.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모본을 남기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하나님께 매일 바칠 때에 온전한 승리의 생애가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습니다. 늦은비도 성령님의 역사인 것처럼 이른비도 같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는 매일 거듭나서 주님께 바쳐진 영혼들만 자라나게 하실 수가 있습니다.

화잇 부인께서 말씀하신 다음의 귀한 말씀을 읽으며 명상하여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들의 가진 빛에 따라 생활하는 자들만이 더욱 큰 빛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능동적인 그리스도인의 덕성의 모본을 보이는 일에 날마다 전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늦은비로서 오시는 성령의 나타나심을 식별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 주위에서 다른 이들에게는 부어질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도, 혹은 받지도 못할 것이다.

우리의 경험 중 어떤 지점에서라도 처음에 출발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던 그 도움이 필요치 않은 때는 없다. 이른비로서 우리에게 내려진 축복들은 끝까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치는 못하다. 우리가 이른비의 축복들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늦은비가 없다면 이삭에 충실한 곡식을 익게 할 수 없으며, 낫을 대어 추수할 준비도 되지 않고, 추수군의 수고도 헛될 것이라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은혜는 사업의 시초에 필요한 것이며 사업의 매 단계마다 필요하고, 더욱이 거룩한 은혜만이 이 사업을 완성시킬 수 있다. 우리가 부주의한 태도로 쉴만한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경고를 결코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깨어 기도하라’ ‘깨어라 … 항상 기도하라’ 우리의 진보에 있어서 매 순간 거룩하신 대리자와 연결되어있는 것은 필수적인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을 소유할 수 있으나 믿음과 기도로써 끊임없이 더욱 많은 성령을 구하여야 한다. 우리의 노력을 그칠 때에는 결코 성령의 부어주심이 없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진보하지 않는다면, 만일 우리가 자신들을 이른비와 늦은비를 함께 받을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잊어버리게 될 것이고 그 책임은 우리에게 놓이게 될 것이다.” 목사들에게 보내는 증언, 470-471.

위의 말씀을 읽어보면 두 서너 가지 사실들이 확실하게 우리 앞으로 다가옵니다. 첫째로, 이른비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품성의 완성을 위하여 나아가는 성장 단계를 의미하는 성령의 은혜를 말하는 것이요, 두번째, 이른비란 늦은비를 받아 복음 사업의 추수를 가능케하기 위하여 추수군들과 추수할 곡식들을 준비시키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인 것을 알게 됩니다. 또 한가지는 우리의 노력과 투쟁이 없는 곳에 성령께서 자연히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분명합니다. 한가지 더 부언하자면, 늦은비를 받지 못하는 재림교인들에게는 은혜의 시간이 끝나는 것입니다. 큰소리 외침은 밖을 향하여 외치는 자비의 초청이지 재림교인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품성의 완전함은 이른비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늦은비 때에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완전한 승리의 경험을 위하여 늦은비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크게 실망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이시여,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이른비의 성령께서 임하고 계십니다. 새벽 이슬처럼 말입니다. 여러분은 경험하고 게십니까?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역사를 말입니다. 이제 늦은비가 임한다는 징조들이 확실히 보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늦은비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