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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과 그 봉사 The Tabernacle and Its Services

-엘렌 지 화잇

 모세는 하나님과 함께 산에 머물러 있는 동안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지”(출25:8)으라는 명령과 성막 건축에 관한 완전한 지시를 받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저들이 배신함으로 하나님의 임재하심의 축복을 상실하고 당분간 저들 가운데 하나님을 위하여 성소를 세우는 일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 하늘의 은총이 회복된 후 위대한 지도자는 하나님의 명령 실행하기를 속행하였다.

 택함을 입은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거룩한 건물을 건축하기 위하여 특별한 기술과 지혜를 받았다. 하나님께서 친히 모세에게 성소의 구조를 도면으로 보여주시고 그 크기와 모양과 사용할 재료들과 그 안에 두어야 할 모든 기명에 대하여 특별한 지시를 주셨다. 손으로 만들어진 성소들은 “참 것의 그림자”요,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히 9:23,24) 즉 우리의 대제사장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생명을 희생으로 바치신 후 죄인을 위하여 봉사하기로 되어 있는 하늘 성전의 축소가 되도록 손으로 만들어졌다. 하나님께서 산에서 하늘 성소의 광경을 모세 앞에 제시하시고 그에게 명하여 그에게 보여주신 모형을 따라 모든 것을 만들게 하셨다. 모세는 이 모든 지시들을 주의 깊게 기록하고 그것들을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전하였다.

 성소를 건축하기 위하여 많은 준비와 값진 재료들이 필요하였고 다량의 가장 귀중하고 비싼 재료가 요구되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원하는 헌물만을 받으셨다.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출 25:2)으라는 것이 모세로 말미암아 회중에 대하여 반복된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희생의 정신이 지극히 높으신 분을 위한 거처를 마련하는 데 첫째 요구 조건들이었다.

 모든 백성들은 일제히 응답하였다. “무릇 마음이 감동된 자와 무릇 자원하는 자가 와서 성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 여호와께 드렸으니 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가슴 핀과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거리와 여러 가지 금품을 가져왔으되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출 3:21,22)다.

 “무릇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들인 수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이 있는 자도 가져왔으며 무릇 은과 놋으로 예물을 삼는 자는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며 무릇 섬기는 일에 소용되는 조각목이 있는 자는 가져왔”다.

 “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낳고 그 낳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을 가져왔으며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 털로 실을 낳았”다.

 “모든 족장은 호마노와 및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을 가져왔으며 등불과 관유와 분향할 향에 소용되는 기름과 향품을 가져왔”(출 35:23~28)다.

 성소의 건축이 진행되는 동안 백성은 노유 남자 여자와 아이들이 저들의 헌물들을 가져오기를 계속하였다. 마침내 일 맡은 자들은 이제는 넉넉하여 사용하고도 남을 것임을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모세는 온 진영에 선포하게 되었다.

 “무론 남녀하고 성소에 드릴 예물을 다시 만들지 말라하매 백성이 가져오기를 정지 하니라”(출 36:6).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평과 저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형벌을 받은 것은 후세대를 경고하기 위하여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저들의 헌신, 저들의 열성과 너그러운 마음은 본받을만한 귀감이다.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좋아하고 그분의 거룩한 임재의 축복을 귀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저들에게 만나실 집을 준비하기 위하여 같은 희생의 정신을 나타낼 것이다. 저들은 가진 것 가운데서 제일 좋은 것을 하나님께 헌물로 드리기를 원할 것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짓는 집은 빚지지 말아야 하는데 이는 그것으로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까닭이다. 공사하는 사람들이 성막을 건축한 사람들 같이 “이상 더 헌물을 가져오지 말라”고 하리만큼 일을 성취하기에 충분한 양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쳐져야 한다.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여행에 저들이 그것을 분해하여 운반할 수 있도록 건축되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규모가 작은 것으로 길이가 55피트, 넓이와 높이가 18피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장엄한 건물이었다.

성막의 건물들과 그 가구에 쓰인 재목은 아카시아(조각목)나무로 된 재목이었으니 그 재목은 시내 광야에서 얻어지는 어느 다른 나무보다도 잘 썩지 않는 것이었다….

 성소 자체뿐 아니라 제사장들의 봉사도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히 8:5) 구실을 해야 하였다. 이와 같이 그 일은 매우 중대하였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 전형적 봉사의 요점마다 가장 분명하고 자세한 교훈을 주셨다. 성소의 봉사는 날마다의 봉사, 해마다의 봉사의 두 부분으로 되었다. 날마다의 봉사는 성막의 뜰에 있는 번제단과 성소에서 수행되었고, 해마다의 봉사는 지성소에서 있었다. 대제사장 외에는 어떤 인간이라도 성소의 안쪽 칸을 들여다 보아서는 안되었다. 오직 일년에 일차씩 가장 주의 깊고 엄숙한 준비를 갖춘 후 그는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다. 떨며 그는 하나님 앞에 들어갔고 백성은 마음이 높이 들리어 하나님의 축복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는 가운데 엄숙한 침묵으로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대제사장은 속죄소 앞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속죄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영광의 구름 속에서 그와 만나셨다. 그가 보통 때보다 그곳에 오래 머무르면 저들의 죄나 그 자신의 죄로 인하여 그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저들은 두려움으로 채워졌다.

 매일 드리는 봉사는 조석으로 드리는 번제와 금향단에 향기로운 향을 드리는 일과 개인들의 죄를 위한 특별한 제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또 안식일과 월삭과 특별한 절기를 위하여 드리는 제사가 있었다.  매 조석으로 일년 된 어린 양을 적당한 소제물과 함께 제단 위에서 태워 이것으로 민족이 매일 여호와께 대하여 헌신하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에 끊임없이 의지하는 것을 상징하였다. 성소의 봉사를 위하여 드려지는 제물마다 “흠 없”(출 12:5)
는 것이라야 한다고 하나님께서 명백히 지시하셨다. 제사장들은 희생 제물로 가져온 모든 짐승들을 검사하여 흠이 발견되는 것은 모두 거절해야 하였다. “흠 없”는 제물만이 자신을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벧전 1:19)으로 바치시기로 되었던 그분의 완전한 순결을 상징할 수 있었다. 사도 바울은 이 희생 제물들은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이 되어야 할 것을 예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말하기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고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 봉사하기 위하여 자신들을 바쳐야 하며 될 수 있는 대로 거의 완전한 제물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을 것보다 못한 것은 무엇이든지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다. 온 마음으로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생애의 최선의 봉사를 그분께 드리고자 할 것이며 저희가 가진 모든 능력을 율법들과 일치하게 하여 당신의 뜻을 행할 저희의 가능성을 계발시키려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제사장은 향을 드릴 때에 매일 드리는 봉사의 다른 어떤 행위보다도 더 직접 하나님 앞으로 접근되었다. 성소 내부의 휘장이 건물 꼭대기에까지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속죄소 위에 나타났던 하나님의 영광은 부분적으로 첫째 칸에서도 보였다. 제사장이 여호와 앞에서 분향할 때에 그는 법궤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향의 연기가 올라갈 때에 하나님의 영광은 속죄소 위에 내려와 지성소를 채우고 때로는 두칸을 다 그렇게 채웠기 때문에 제사장은 성막문에까지 물러가야 하는 일도 있었다. 저 상징적 봉사에서 제사장이 그가 볼 수 없었던 속죄소를 믿음으로 본 것처럼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하늘 성소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탄원하시는 대제사장 그리스도께 저들은 지금 기도를 올려 보내야 한다.

 이스라엘의 기도와 함께 올라가는 향은 그리스도의 공로와 중보 곧 그분의 완전한 의를 예표하며 그것은 믿음을 통하여 그분의 백성에게 전가되고 그것만이 죄스러운 사람들의 예배를 하나님께 가납될 수 있게 한다. 지성소의 휘장 앞에는 끊임없는 중보의 제단이 있었다. 거룩한 분 앞에는 계속하는 속죄의 제단이 있었다. 피와 향으로 하나님은 접근을 허락하시기로 되어 있었다. 이 상징들은 (피와 향)큰 중보자를 가리키는데 그분을 통하여서 죄인들은 여호와 앞에 가까이 하는 것이 허락되며 그분을 통하여서만 긍휼과 구원이 회개한 믿는 영혼에게 허락될 수 있다.

제사장들이 조석으로 분향할 시간에 성소에 들어갔던 것같이 매일 드리는 희생 제물은 바깥뜰의 제단 위에 드려지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이때는 성막에 모였던 예배자들에게 가장 흥미 있는 시간이었다. 제사장의 봉사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들어가기 전에 저들은 열심히 저희 마음을 살피고 죄를 자복하는 일을 해야 하였다. 저들은 얼굴을 성소로 향하고 묵도하는 가운데 연합하였다. 이리하여 믿음은 속죄의 희생으로 예표되었던 약속된 구세주의 공로를 굳게 붙잡는 동시에 저들의 탄원은 향연과 같이 올라갔다. 조석으로 희생을 위하여 정한 시간들은 거룩하다고 생각되어서 그것들은 유대민족 전체를 통하여 예배를 위한 정한 시간으로 지켜지게 되었다. 그리고 후에 유대인들이 먼 지방에 포로로 흩어졌을 때에도 저들은 여전히 그 정한 시간에 저들의 얼굴을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저들의 탄원을 올렸다. 이 습관 가운데에 그리스도인들은 조석 기도를 위한 모범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의 참 정신이 없이 단순히 의식을 반복하는 것을 정죄하시는 동시에 당신을 사랑하여 범한 죄에 대한 용서와 필요한 축복에 대한 저들의 요구를 제시하기 위하여 조석으로 머리 숙이는 사람들을 큰 기쁨으로 바라보신다.

 진설병은 항상 드리는 제물로서 여호와 앞에 항상 놓여 있었다. 이렇게 되어 그것은 매일 드리는 제물의 일부였다. 그것은 여호와의 면전에 항상 있으므로 진설병 혹은 “앞의 떡”이라고 불렀다.(출 25:30 참조) 그것은 사람이 영적 양식과 육신의 양식을 모두 주께 의존한다는 것과 또 그것을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서만 받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하늘에서 내린 떡으로 먹이셨으며 그들은 신령한 축복과 육신의 양식을 그분의 관대하심에 아직도 의존하고 있었다. 만나와 진설병은 둘 다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항상 계시는 산 떡 곧 그리스도를 가리켰다. 그분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요 6:48~51)라고 하셨다. 떡 위에는 유향이 있었다. 매 안식일 떡을 치우고 새 떡을 놓을 때에 유향은 하나님 앞에 기념으로서 제단 위에서 태웠다.

 매일 드리는 봉사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개인들을 위하여 수행하는 봉사였다. 회개하는 죄인은 자기의 제물을 성막문으로 가져와서 그 희생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고 그의 죄들을 고백하였다. 이 상징적 행위에 의하여 죄는 그에게서 흠없는 제물에게 옮겨갔다. 그는 자기의 손으로 그 짐승을 죽였고 제사장은 그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 죄인이 범한 신성한 율법이 들어있는 법궤 앞 휘장에 뿌렸다. 이 의식에 의하여 그 죄는 피를 통하여 상징적으로 성소에 옮겨졌다. 어떤 경우에는 피를 성소에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고 모세가 아론의 아들들에게 명령하여 “너희로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속하게 하려고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레 10:17)고 말한 것처럼 그 고가는 그 때에 제사장이 먹어야 하였다. 이 두 의식은 다같이 죄가 회개하는 죄인에게서 성소로 옮겨짐을 상징하였다.

이런 것은 연중 매일 진행되는 봉사였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죄가 성소로 옮겨져 성소가 더럽혀졌으므로 이 죄를 제거할 특별한 일이 필요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성소와 지성소 각 칸을 위하여 속죄하라고 명령하셨으며 제단에 관하여서는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단을 성결케 할 것이요”(레 16:19)라고 하셨다.

 일년에 한번 대속죄일에 그 제사장은 성소를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지성소에 들어갔다. 지성소에서 거행된 이 봉사로 연중 일체의 봉사를 완결하였다.

 속죄일에 두 염소 새끼를 성막문으로 데려 왔고 그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를 뽑아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였다. 처음 제비 뽑힌 염소는 백성을 위한 속죄제물로 죽임을 당하여야 하였다. 그리고 그 제사장은 그 피를 휘장 안으로 가져가 속죄소 위에 뿌리게 되어 있었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레 16:16)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레 16:21,22) 이와 같이 염소가 끌려가 버려지기 전까지 백성은 스스로 저들의 죄 짐에서 벗겨진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속죄 사업이 진행될 동안 각 사람은 그의 영혼에 고통을 당하여야 하였다. 모든 사무는 중지되고 온 이스라엘 회중은 기도와 금식과 마음의 깊은 반성으로 하나님 앞에서 진지한 겸비가운데 그날을 보냈다.

 백성은 이 연례적 봉사로 속죄에 관한 중요한 진리를 배웠다. 일년 동안 드려진 속죄제에서 죄인의 대신으로 대용물이 봉납되어 왔으나 희생 제물의 죄가 죄를 위하여 완전한 속죄를 이룬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만 죄가 성소로 옮겨지는 방편을 제공한 것뿐이다. 피 드리는 제사로 죄인은 율법의 권위를 승인하였고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였으며 세상 죄를 지고 가시기로 된 그분께 대한 믿음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그가 율법의 선고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니었다.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회중을 위한 제물을 취하여 그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율법의 돌비 위에 있는 속죄소에 뿌렸다. 이와 같이 하여 죄인의 생명을 요구하는 율법의 요구가 충족되었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중보자의 신분으로 죄를 자기에게 지운다. 그리고 성소에서 나옴으로 그는 이스라엘의 죄의 짐을 졌다.

그는 성막문에서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었다. 그리고 이 죄를 담당한 염소를 내어 보낼 때 죄가 백성에게서 영원히 분리된 것으로 저들은 생각하였다. 이와 같은 것이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히 8:5)로서 수행한 봉사였다……

 모세는 “저가 본 그 식대로 “지상 성소를 만들었다. 사도 바울은 선언하기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이 완성되었을 때에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행 7:44, 히 9:21,23)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요한은 하늘에 있는 성소를 보았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봉사하시는 성소는 본래의 것이며 모세가 지은 성소는 그것의 모형이었다. 만 왕의 왕께서 거하시는 하늘의 성전 그곳에는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단 7:10) 그 성전은 영원한 보좌의 영광으로 충만하였고 성전의 빛나는 그 수호자 스랍들이 예찬하여 저희 얼굴을 가리우는 그곳은 지상의 어떠한 건물을 가지고도 그 크기와 그 영광을 나타낼 수 없다. 그러나 하늘 성소에 관한 중요한 진리와 사람의 구속을 위하여 거기서 행하는 위대한 사업은 지상 성소와 그 봉사에서 배울 수 있었다.

 우리 구세주께서는 승천하신 후에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당신의 사업을 시작하시기로 되어 있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히 9:4)다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봉사가 두 큰 부분으로 구성되어 하늘 성소에서 각 봉사마다 일정한 시간을 차지하고 구별된 장소를 가지는 것처럼 전형적 봉사도 매일의 봉사와 매년의 봉사,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고 성막의 각 칸이 충당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참회한 신도를 위하여 그분의 피로 호소하시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 것처럼 제사장도 매일의 봉사에서 죄인들을 위하여 희생의 피를 성소에 뿌렸다.

 그리스도의 피는 회개한 죄인을 율법의 정죄에서 풀어주게 되어 있었으나 죄를 없이하기로 된 것은 아니었고 그것은 최후의 속죄까지 성소의 기록에 남아 있을 것이었다. 이와 같이 모형에 있어서도 속죄제의 피는 회개한 사람에게서 죄를 제거하였으나 그것은 속죄일까지 성소에 남아 있었다.

 최후 보상의 큰 날에 죽은 사람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계 20;12)을 것이다. 그때에 그리스도의 속죄하는 피의 공로로 회개한 모든 사람의 죄가 하늘 책에서 제거된다. 이와 같이 되어 성소는 죄의 기록에서 해방 혹은 정결하게 되는 것이다. 모형에 있어서 이 속죄의 대 사업 곧 죄를 도말하는 일은 속죄일의 봉사-죄로 말미암아 그것이 더럽혀 졌었던 성소를 속죄 제물의 피의 공로로 죄를 제거함으로 이루어진 지상성소의 정결로 예표되었다.

 최후의 속죄에서 진심으로 회개한 자의 죄가 하늘의 기록에서 제거되고 다시 기억되거나 마음에 떠오르지 않게 되어 있는 것과 같이 그 상징에 있어서도 죄는 회중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어 광야로 옮겨진 것이다.

 사단은 죄의 창시자이었으며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의 원인이 된 모든 죄의 선동자이었으므로 정의는 사단이 마지막 벌을 받을 것을 요구한다. 사람의 구속과 우주를 죄에서 정결하게 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사업은 하늘 성소에서 죄를 제거하고 마지막 벌을 받을 사단의 위에 이 죄를 놓는 일로 끝나게 될 것이다. 그와 같이 모형적 봉사에 있어서도 연중 봉사는 성소의 정결과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의 머리 위에 죄를 고백함으로 끝났다.

 이리하여 성막과 후에 그 대신 세워진 성전의 봉사에 백성은 날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봉사에 관한 위대한 진리를 배웠고 해마다 한번씩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의 종국의 사건 곧 우주에서 죄와 죄인들을 마지막으로 정결하게 하는 일로 저들의 마음은 이끌려갔다.

 부조와 선지자 상권, 453~4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