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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그대에게 감사하다고 말해야 하는가?

“비록 구원이 인간의 아무런 공로 없이 주어지는 것일 지라도, 그것을 파멸시키는 원인이 없이는 우리로부터 멀어지지 않는 구원을 누가 거절할 것인가?”

랄프 랄슨 박사

이 기사는 분명 성경에 나와 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소홀히 여겨지고 있는 한 예화에 관한 내용이다. 비록 그것이 복음의 가장 핵심부분인 누가복음 17장에 나오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것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듯하다. 나는 그 예화에 관한 기사들을 지금까지 결코 읽은 적이 없으며, 어떠한 설교를 통하여서라도 그것과 연관된 내용을 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 가운데에 있는 이러한 소홀함은 우리의 영적 생애에 있어서 분명한 손실을 야기시키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 예화는 때때로 우리에게 혼돈을 일으키게 하는 어떤 중요한 진리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결정적인 열쇠의 역할을 하는 심오하면서도 기본적인 진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에베소서 2:8절에서 “믿음으로 구원받”게 됨과 요한계시록 20:12-13에서 “행함으로 심판받”게 된다는 진리를 접하게 되며, 가려뽑은 기별 1권, 영문 377에서 “인간의 선한 행위에 의해서는 단 한 명의 영혼도 구원받지 못할 것이지만, 선한 행위 없이 구원받게 될 단 한 명의 영혼도 없다.”는 말씀을 발견하게 됨으로써 우리는 종종 구원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서로 다르게 보이는 두 가지 양면으로 인해서 혼돈 가운데로 빠져 들어 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러면 이제, 누가복음 17:7-10절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예화를 읽어 보도록 하자.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이 성경절을 세 번 읽으시기 바랍니다-편집실)

이 성경절에 대해서 화잇 부인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어떠한 선한 행위에 대해서도 “고맙다”라고 말해야 할 필요성이 없는 두 가지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첫째,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에게 풍성하게 주신 것에 대한 우리 자신의 의무를 행하고 있을 뿐이며, 하나님께서 공급하여 주시는 능력 안에서만 우리는 선한 행위를 행사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행위, 그 자체에는 아무런 공로도 없다. 우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했을 때에라도 우리 자신을 무익한 종으로서 간주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감사의 표현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무로 부여 받은 것들을 행하였을 뿐이며, 또한 우리의 타락한 본성의 힘으로는 우리가 행한 어떠한 선한 행위도 이루어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본교 성경 주석 5권, 1122

“그대들이 행할 수 있는 최선의 행함도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다.” 교회증언 1권, 167

이 문제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절묘한 균형을 이루는 말씀을 주목하라. “비록 구원이 인간의 아무런 공로 없이 주어지는 것일지라도, 그것을 파멸시키는 원인이 없이는 우리로부터 멀어지지 않는 구원을 누가 거절할 것인가?” 교회증언 6권, 영문 481

“구원은 아무런 공로 없이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선한 행위는 우리들이 하나님과 우리의 이웃들에게 응당 갚아야 할 빚이다. 우리의 선한 행위에 대한 대가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인해서 이미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것 이상의 것으로써 값이 치뤄 진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을 행할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 중의 어떤 사람도 이기심 없고 명예심 없는 참된 선을 행할 수 없다. 우리가 어느 정도의 선을 베풀었다고 해서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감사하거나 고맙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진 빚은 우리 자신이 행하는 선한 행실의 총 합계보다도 훨씬 큰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선을 통하여 우리는 어떠한 공로도 쌓을 수 없으며, 그것으로 인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어떠한 종류의 감사의 의미가 담겨 있는 보상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우리에게 빚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구원하셔야만 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증거로서 우리들이 행한 선한 행위들을 그분 앞에 제시할 수 없다.

“구원은 그것을 파멸시키는 원인 없이는 거절될 수 없다.” 이 말은 단지 행함이 없이는 우리가 구원받을 수 없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변화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행함 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말은 지극히 논리적인 말이 아닌가? 그렇다. 우리의 믿음의 진가와 우리의 마음의 역사하는 어떤 능력의 원천은 행함에 의해서 측정되고 드러나게 된다. 그것은 마치 자동차 타이어의 공기 압력이나 전구의 전압이 그러한 것들을 측정할 수 있는 측정 계기에 의해서 드러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행함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과 신앙을 측정하고 심판하시는 정확한 계기인 것이다.

우리의 가정에 있는 각종 전기 장치와 자동차의 부품의 적당한 작동 여부를 측정하는 계기 자체가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거나 전기 장치에서 열이 나오도록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자동차 부품이나 전열 장치의 온동한 품질을 검사할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행하는 행위에 의해서 우리가 구원 받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매일의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우리의 행위들로써 우리의 믿음의 질을 시험할 수 있는 것이다.

“행함에 의해서 유지되지 않는 믿음은 가치 없는 것이다.” 1815년 6월 1일, 성경훈련학교

“영혼을 구원하는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하며 영혼을 순결케 한다.” 영문시조, 1890년 6월 16일

“영혼을 정결케 하는 믿음만이 진정한 믿음이다. 우리는 우리의 행함에 따라서 심판 받게 된다. 믿음으로서만 구원받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모래로 된 밧줄을 의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은 선한 행위에 의해서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R&H 1911년 4월 13일.

“우리가 행함이 없는 믿음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도 없는 것이다.” 저 하늘에는, 118.

“그리스도에 대한 살아있는 믿음은 생애에 있어서의 모든 활동과 영혼의 모든 감정을 하나님의 진리와 의에 대해서 조화되는 것으로 만들어 준다.” 그리스도를 높임, 188.

“진짜 믿음은 선한 행위로서 표현된다. 왜냐하면 선한 행위는 믿음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가려뽑은 기별 1권, 영문 397.

지금까지 위에서 열거한 말씀들은 야고보서 2장 26절에 대한 또 다른 메아리들 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2:26)
죽은 믿음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믿음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진리이다. 영혼을 구원하는 믿음은 언제나 선한 행위를 생산해 낸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지만, 행함이 없이는 구원받지 못 한다 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완전한 논리인 것이다. 만일 행함이 없다면 믿음은 부족한 것이고, 진짜가 아니라는 것이 판명되는 것이다. 행함은 믿음의 뒤를 따라오는 자연스러운 열매이다.

잠깐 하나님의 십계명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십계명은 우리의 신앙생애에 있어서 부정적인 부 적합성애 대해서 주로 지적해 주고 있다. 십계명은 우리의 부족과 잘못된 것들을 지적해 줌으로써 긍정적이고 하늘에 적합한 성질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의 하늘 왕국과 연결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하늘을 향한 길에서 벗어날 수는 있다. 우리는 선한 말을 함으로써 하늘 왕국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더럽고 간교한 말을 함으로써 하늘에서 멀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재정을 올바르게 사용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으로 하늘을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재정을 잘못된 방향으로 소비함으로써 하늘을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없다. “하나님! 나는 도둑질하지 않았고, 거짓말도 하지 않았으며, 더욱이 간음 같은 것은 결코 범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구원을 위한 자격을 완전히 성취하였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나를 구원하셔야 됩니다.”

이러한 요구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실 것이다. “네가 나의 계명을 지킬 수 있었다면, 그것은 오직 나의 은혜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란다. 네가 만일 하늘 진주문을 들어갈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은 오직 나의 은혜에 의해서 가능해진 것이란다. 네가 만일 하늘에 들어간다 할지라도, 너는 여전히 나에 대해서 빚진 자일 뿐이고, 내가 네게 빚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렴.”

이러한 행함에 대한 기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오류 가운데로 빠져들어갈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행함에 대한 원칙을 잘못 이해함으로 인해서 빠지게 되는 오류들 중의 가장 공통적이면서도 위험한 것은 다음과 같은 결론이다. “만일 우리가 행함에 의해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행위는 구원의 계획 중에 차지할 아무런 자리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또한 다음과 같은 말을 하도록 유도한다. “성화(행함)은 권장할 만한 것이지만, 그것이 구원을 위한 필수 요소는 아니다.” 이러한 잘못된 개념에 사로잡힌 자들은 다음과 같은 단순하지만 심오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증언의 말씀에 대해서 좀 더 깊은 사고력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는 행위에 의해서 구원을 받을 수 없지만, 행위 없이 구원받을 수 있는 영혼 역시 단 한 명도 없다.” 가려뽑은 기별, 1권 영문, 377.

비록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 생애의 성경적인 원칙 위에 거한다고 할지라도 그가 자신의 행위를 근거로 구원을 향하여 나간다면, 이것 역시 위에서 언급한 것과 유사한 오해인 것이다. 이러한 부류의 논리의 전개에 있어서 그 마지막 귀결점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의 표준을 잘못 왜곡시키는 것으로 끝맺게 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이러한 종류의 개념들보다 복음에 대해서 왜곡시키는 오류를 상상하기도 쉽지 않다.

“여러분들은 죄 짓기를 중단할 필요가 없습니다”라는 말은 역사를 통해서 사단이 되풀이하여 반복적으로 불러온 노래이다. 사단의 이러한 노래는 세상이 지금까지 만들어 낸 모든 “주의”, “사상” 즉, 불교사상, 도교사상, 공자사상, 몰몬주의, 천주교 사상, 만인구원론 사상, 그리고 부패된 칼빈 사상에서 그 밑바탕을 이루어 왔다. 그리고 이제는 부패된 칼빈주의를 통하여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심장부까지 파고 들어왔다. 그것은 치명적인 재앙처럼 재림 신앙을 좀먹어 들어가고 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신학에 있어서 재림 신앙과 부패한 칼빈주의가 함께 병존할 수 있을까? 우리들 중의 어떤 사람들은 “그럴 수 있다.”라고 대답하고, 어떤 이들은 “그럴 수 없다.”고 대답한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회복에 있어서 죄가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어떤 이들은 죄가 결코 존재 해서는 안 된다 라고 이야기 한다. 어떤 이들은 죄를 가지고 하늘 진주문을 들어갈 수 있다고 설명하며, 어떤 이들은 결코 들어갈 수 없다고 경고한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불법을 행치 아니하나니” (습 3:13)

“하나님께서는 순결하고 진실한 한 백성을 소유하실 것이다. 미구에 크게 키질하는 일이 있을 때 우리는 이스라엘의 능력을 보다 더 잘 측정할 수 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손에 키를 가지고 계신다는 것과 그분께서 타작 마당을 철저히 정결하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내실 때가 가깝다는 징조들이 보인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밤이 깊어지면 질수록 별들은 더욱 찬란해질 것이다. 사단은 충성된 자들을 극도로 괴롭힐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넉넉히 이길 것이다. 그 때에 그리스도의 교회는 ‘달같이 아픔답고 해같이 맑고 기치를 벌인 군대같이 엄위’(아 6:10)할 것이다.” 교회증언 5권, 영문 80,81,82.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을 두르고 있는 오류들에 의해서 기만 당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을 향하여 도전하고 있는 배도에 의해서 요동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을 에워싸고 있는 오류들이 노골적이든지, 세속적이든지, 아니면 철학적인 궤변에 의해서 매력적인 옷을 입었을 지라도, 그들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그것을 시험할 것이며, 그들의 길을 확고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계속 걸어갈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구원하는 믿음의 순결함을 그리스도와 같은 생애를 통하여 전시할 것이다.

“만군의 주가 말하노니 내가 나의 보석들을 만드는 그 날에 그들이 나의 것이 되리라 내가 그들을 아껴 두리니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자기의 아들을 아낌 같이 하리라 그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 사이를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 사이를 분별하리라”(말 3:17-17)

랄프 랄슨: 은퇴한 목사로서 극동 지역 재림 교회의 신학 대학원 학과장으로 봉사하다가 은퇴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