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하게 사는 자들
클락 플로이드 목사
핍박이 다가오고 있다. 성경은 특별히 지적해서 말하기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핍박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무릇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디모데 후서 3:12.“그런데 박해의 불이 거의 꺼진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유일한 이유는 교회가 세속적 표준과 타협하여별로 반대를 받을 만한 일이 없어진 까닭이다… 초대 교회의 신앙과 능력이 다시 일어날 때에 박해의 정신은 다시 나타날 것이며, 핍박의 불길은 다시 타오를 것이다.” 각시대의 대쟁투 영문, 48.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과 군중들에게 하신 산상보훈에서, 그분께서는 여러 가지 종류의 축복에 대해서 설교하셨다. 사람들은 그 설교를 “팔복”이라고부르며, 예수께서 복의 종류를 설명하셨다고 생각한다. 엘렌 화잇은 그 설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팔복에는 그리스도인 경험이 진척되는 하나의 선(line)이 나타나 있다.” 산상보훈 영문 13.
마음이 가난한 자들은 자신들의 생애에 있어서 영적 필요성을 인식하는 사람들이다. 그리하여그들은 자신들의 생애에 있어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활동하심에 대해서 마음이 열려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삶 가운데로 들어오실 때, 그들은 자신들 안에 어떠한 선도 없음을 깨닫게 되며, 그로 인해서 자아는 온유함으로 대체 되어진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의에 대해서 심한 갈증과 굶주림을 느끼는 자들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생애를 채우게 될 때, 다른 사람들에 대한 거치른 감정과 태도는사라지게 되며, 그 대신에 자비가 나타나게 된다. 그들의 생각은 순결하게 되며, 그들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고자 하는 강력한 충동을 소유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의 마음은 평화로 채워지게 되며,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평화와 온유함으로 어루만질 수 있게 된다. 그들은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생애가 팔복을 따라서 이 지점에 까지 이르게 되면, 우리는 핍박과 관련있는 두 가지의 축복을 만나게 된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태복음5:10. “나로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태복음 4;11-12. 왜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인 경험에 있어서 최고의 위치처럼 보이는 팔복의 마지막 끝 부분에 핍박의 경험을 가져다 놓으셨을까? 핍박은 그리스도인의 생애에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성경과 예언의 신에서 찾을 수 있다. “시련과 핍박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 즉, 성품이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서 나타나게 된다.” 사도행적 영문, 576. 비록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성장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핍박의 불은여전히 우리 성품의 모나고 거칠은 부위들을 제거하는 역할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불에 태운 바 되어서 하늘의 정금 거리를 걸을 수 있도록 준비되는 것이다.
“당신의 자녀들에 대한 핍박과 책망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은 크게 드러나게 되며, 영혼들은 구원 받게 된다.” 산상보훈, 영문, 34.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참된 회개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신다.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어떤 사람들의 마음은, 한 그리스도인이 고문과 죽음의 고통 하에서도 그리스도의 이름을 인정하면서 담대하게 서있는 증인으로서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경우에만 감동을 받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사울의 영혼이 감동을 받고 자신의 생애에 그리스도께서 들어 오실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 놓을수 있었던 것은 돌에 맞으면서 순교 당하는 스데반의 얼굴에 나타난 하늘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핍박은 교회를 정결하게 한다. “번영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공언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배가 시킨다. 그러나 역경과 고난은 교회로부터 그런 자들을 깨끗하게 몰아 낸다.” 교회 증언, 4권, 89. 내 마음 속에 있는 큰 질문은 핍박이 올 때에 과연 나는 평안할 때처럼 서 있을 수 있을까이다. 그대들은 그 때 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투옥과 고문과 죽음을 통과하는 경험은 우리가 지금 생각하고 연상하는 것 이상의 두려움과 고뇌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는 성경과 예언의 신에 기록되어 있는 과거의 역사를 보면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게 된다. 이전에 살았던 우리의 조부들은 어떻게 그러한 역경을 견디었는가? 사도행전 7장에서, 우리는 스데반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그가 유대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향하여 마지막 고별 설교를 할 때, 그는 하나님께 불신실했었던 그들의 조상들에 대해서 역설하면서, 청중들을 강력하게 견책하였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 도다.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하지 않았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사도행전 7:51-53.
스데반의 곧바른 증언이 가져온 결과는 무엇인가?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서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사도행전 7:57-60. 물론 이것은 사울이 개심하게 되는 가장 원초적인 시작점이 되었다. 그런데 스데반은 어떻게 그렇게 서 있을 수 있었는가? 그 대답이 55절과 56절에 나온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스데반이 있던 바로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셨고, 그분께서 그에게 힘과 능력을 주셨던 것이다. 그는 자신을 보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었다.
스데반의 증언의 결과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 냈다. “그의 얼굴을 영광스럽게 하는 하늘의 빛과 죽어가는 기도자에게서 풍겨 나오는 거룩한 동정심은 그 자리에 서 있던 완고하고 고집센 산헤드린 사람들에게 날카로운 화살과 같았으며, 그로 인해서 핍박자였던 바리새인 사울은 이방인들과 왕들과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는 선택받은 그릇이 되었다.” 산상보훈 33, 34.
바울은 후에 수많은 핍박의 경험을 갖게 되었다. 사도행전 16장에서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9절.그리하여 그는 그가 있던 곳을 떠나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사도행전 16:12. 그 도시에서 바울은 악한 영을 통하여 점을 치는 한 여자 노예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그리하여 그 주인은 점을 침으로서 얻게 되는 수입원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종의 주인들은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 가지고 저자로 관원들에게 끌어갔다가.” 19절. 바울과 실라는 많은 매질을 당한후,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 어두운 토굴 감옥에서 고통 중에 있는 동안 일지라도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사도행전 16:25절.
그날 밤, 간수와 그의 가족들이 개심했을 뿐만 아니라 함께 있던 많은 죄인들 역시 그들의 마음이 감동되었다. 몇 년이 지난 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있었을 때에, 그는 빌립보 교회에게 한 통의 편지를 쓰게 되었는데, 그 편지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라고 말하면서,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첫 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에서 너희가 교제함을 인함이라 너희 속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빌립보서 1:1, 3-6.
엘렌 화잇은 그 여자 노예는 “악령에 의해서 사로잡힌 바 되었으나 올바른 정신을 회복하게 되었고, … 그리스도의 추종자가 되기로 선택했다.”사도행적 영문,213. 귀신들린 여자 노예, 감옥을 지키는 자와 그의 가족, 그리고 함께 옥 중에 있던 죄수들이 개심하고 그리스도의 추종자가 되기로 한 결심은 강력한 빌립보 교회의 기초가 되었다. 핍박을 당하는 동안에 인간의 입술을 통하여 흘러 나오는 간증과 증언의 목소리가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놓은 것이다! 빌립보에 있는 감옥 속에서 바울과 실라가 감수했던 극심한 상황과 그 속에서 이루어진그들의 찬미와 기도 소리가 이루어 놓은 역사와 결과들은 핍박이 맺는 축복의 열매들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다.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그러한 상황을 기도와 찬미로 견딜 수 있었는가? “예수께서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계셨다.그분의 임재의 빛이 어두움을 하늘의 영광으로 비추었다.” 산상보훈, 영문, 35.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보장을 주고 계신다. “예수께서는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계셨다. 그분의 임재의 빛이 어두움을 하늘의 영광으로 비추었다.” 산상보훈, 영문, 35.
시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은 사단이 주는 가장 잔혹한 핍박 가운데서 굳건하게 서 있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 초기의 사도 교회, 왈덴스인들, 그리고 개혁자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화형대 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방탕한 자들과 죄수들로 가득한 구질구질한 토굴 감옥 속에서, 존 번연은 하늘의 분위기를 호흡하였고, 그곳에서 그의 역작인 천로역정을 저술하였다. 베드포드 감옥으로부터 나온 목소리가 200년 동안이나 사람들의 마음을 능력으로 전율하게 하였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과 죄인의 괴수에게 퍼부어진 은혜는 수 많은사람들의 발걸음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였다.” 예언의 신, 4권, 174.
감옥 속에 있던 존 번연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가? 그의 생각과 말을 들어보자. “내가 법정에서 심판을 받기 전에, 나는 하나님께 재판의 결과를 모두 맡긴다는 나의 의지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만일 내가 옥 중에서보다 자유롭게 된 상태에서 더 많은 선을 이룰 수 있다면, 나는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그분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나에게는 어떠한 희망도 없지만 나의 옥중 생활이 이 나라의 성도들을 깨우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어떤 것을 선택하겠다고 그분께 말할 수 없다. 다만 나는 하나님께 이러한 자세로 헌신할 뿐이다.
“재판을 마치고 다시 감옥으로 돌아 왔을 때, 나는 사랑하는 하나님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내가 감옥에 있는 것이 그분의 뜻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나는 만족하였다.” 천로역정 31. “토굴의 어두움 속에서, 요한 허스는 참되고 진실한 믿음의 승리를 바라보았다. 꿈 속에서 그는 자신이 복음을 설교하던 초라한 성당으로 돌아왔는데, 그가 성당 안의 벽에 그려놓았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그림들을 교황과 주교들이 지우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광경은 그를 몹시 낙담케 했다. 그러나 다음 날 수많은 화가들이 더 많은 숫자의 그림과 더 밝은 색깔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을 복원하는 모습을 보았을 대, 허스는 기쁨과 감격으로 충만하게 되었다. 그들의 작업이 완성 되었을 때 화가들은 그들을 에워싸고 있는 수많은 군중들에게다음과 같이 소리쳤다. ‘자, 이제 교황과 주교들을 데리고 옵시다. 그들은 결코 우리의 그림을 지워버릴 수 없습니다.’허스가 자신의 꿈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말하기를 ‘나는 그리스도의 형상이 다시는 지워지거나 말살되지 않을 것을 확신합니다. 교황권은 그것을 파괴하기를 원하지만, 그 그림은 나보다 유능한 설교자들에 의해서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계속해서 그려질 것입니다.’” 예언의 신, 4권, 91,92.
하나님의 종은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다. “매 세대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기별자들은 욕을 듣고, 핍박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들은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지식은 널리 퍼져 나가게 되었다.” 산상보훈,영문 33. “예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의 장래를 아셨다. 어떤 이는 목베임을 당하고, 어떤 이는 십자가에 달리며, 어떤 이는 고독한 바다 가운데로 정배 보냄을 받고, 다른 이들은 박해와 죽음을 당할 것을 보셨다.그분께서는 시련을 당할 때마다 저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으로 저들을 격려하셨다. 이 약속은 하나도 그 효력을 상실하지 않았다. 주께서는 자기를 위하여 감옥에 갇혀 있거나 혹은 고독한 섬에 추방당한 그의 충성스러운 종들을 모두 알고 계신다.” 시대의 소망, 영문 669.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다시 한번 묻고자 한다. 시련과 핍박이 올 때, 그대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확고부동하게 설 것인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약속을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며, 우리 앞으로 이미 지나간 그리스도인 조부들의 경험을 기억하면서 힘을 얻어야 한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 그러한 경험들을 통과한다는 것은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근거로 해서, 우리는 시련과 고통과 핍박을 통과해야 한다.“환경들은 우리를 지상의 모든 친구들로부터 분리시킬지도 모르지만, 어떤 환경이나 어떠한 먼 거리도 우리들을 하늘의 보혜사로부터 분리시키지 못한다. 우리가 어디 있든지 어디를 가든지 언제나 그분께서는 우리를 지지하시고 붙드시고 격려하시고 위로하기 위하여 우리의 오른편에 계신다.” 상동.
“만일 그대가 그분을 위하여 맹렬한 풀무불을 통과하도록 부르심을 받는다면, 예수께서는 바벨론에 있었던 신실한 세 청년에게 하셨던 것처럼, 그대의 곁에 함께 계실 것이다. 그들의 구세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분과 함께 모욕과 책망을 나눌 수 있는 모든 기회들을 대할 때마다 즐거워 할 것이다. 그들이 자신들의 주인에 대해서 소유하고 있는 사랑은 그분의 기뻐하심을 위하여 고통을 인내하도록 만든다.” 산상보훈 영문, 30. 환란과 고난이 다가오고 있다. 그리스도의 약속을 믿는 자마다, 그리스도 안에 숨겨진바 된 자마다, 그리고 환란과 고난의 목적과 가치를 이해하는 자마다 핍박이 왔을 때, 우뚝 서게 될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곁에 함께 하여 주실 것을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