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가 승리할 때 나도 승리하게 될까?
-편집실에서-
지구 역사가 끝마쳐지기 전에, 먼저 역사를 종식시킬 수 있는 진리가 회복되어야 합니다.요한계시록은 세상 역사에 종말을 가져오는 진리를 셋째 천사가 전하는 기별로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전쟁이나 기근이나 재해로 인해서 끝마쳐지는 것이 아니라 복음으로 끝마쳐지게 되어 있는 것이 예언이 말하고 있는 바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계 내에 여러 가지의 다양한 복음이 존재하고 있지만 마지막 시대에 짐승과 짐승의 우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진리는 오직 하나뿐인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리하여 종국에는 진리가 승리하고 모든 오류와 우상과 탐욕과 세속이 패배할 것입니다. 큰소리 외침에 의해서 복음이 세상 도처로 전파되고, 바벨론에서 나온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지막 복음의 초청에 응하여 진리와 연합하게 될 때, 우리 구주의 영광스런 재림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다음과 같은 심각한 도전이 있습니다. “진리가 최종적으로 승리할 때, 나도 그 진리와 함께 승리하게 될 것인가?” 증언의 말씀은 폭풍우가 임박할 때에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노라고 공언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원수의 편에 가담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진리가 최종적으로 승리할 때, 자신이 믿고 지지하던 진리와 함께 승리의 대열에 참여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을 까요? 화잇 부인의 증언을 들어 보십시다. “우리가 사업과 함께 전진하든지 않든지 간에 그 사업은 분명히 발전할 것이다. 그것은 분명히 승리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그것과 함께 승리할 것인가 이다.” 교회증언 5권, 영문 572.
진리를 이해한 사람이, 또는 진리를 지지하는 사람이 진리와 함께 승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진리를 믿고 지지하는 자가 진리의 요구하는 바를 거절하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그 진리를 인정하는 모든 사람에게 분명하게 요구하는 바가 있는데, 그것은 자아 희생입니다. 진리를 이해한 사람이 진리를 거절하는 이유는 자아희생을 거절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해주셨는가를 바라보고 생각하는 대신에, 우리들이 포기하고 치루어야 할 보잘것없는 희생(?)에 대해서 고민하고 불평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낭비한다면, 결국 우리는 진리를 포기하거나 거절하게 될 것입니다. 일단 진리를 거절한 후의 다음단계는, 마음 속에 있는 우상, 탐욕, 이기심, 그리고 너절한 감정의 찌꺼기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진리를 꽤 많이 닮은 오류를 찾아나서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자아희생과 극기와 인내를 강조하지 않는, 진리 비슷한 거짓복음을 발견하게 되면 대단한 기쁨을 가지고 그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사단은 지금 여러 가지의 전략과 상품을 준비하고 우리들 곁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그가 기대하고 원하는 만큼의 돈을 주어서 진리를 잊어버리게 만들고, 명예와 지위를 사랑하는 자에게는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주어서 그들을 뿌리 채 흔들어버리며, 자신의 평판을 소중히 여기는 자에게는 더 많은 사람들을 그에게 보내서 관심과 존경을 표현하게 만들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자아 희생의 법칙을 진리 안에 섞어 놓으신 이유와 목적은 죄로 인하여 타락한 인간으로 하여금 자아 희생의 법칙을 통해서 자신의 진정한 신앙과 영적 상태를 깨닫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견디기 힘든 고행의 길을 걷도록 강요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게 기만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자아희생의 길을 권고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아희생의 법칙은 우리의 모든 이기심과 탐욕과 세속적인 정신과교만을 폭로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진리 안에 있는 자아희생의 법칙과 부딪치게 될 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두 가지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데 그것은 그 법칙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고 진리 안에서 계속 전진하던지, 아니면 자신을 합리화 하면서 뒤로 물러서는 것입니다.
또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결국에 진리를 떠나가게 되는 또 다른 이유는, 진리를 이해한 사람이 날마다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거듭남의 경험을 소유하는데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신자들은 결국에는진리를 거절하고 떠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소유하고 있을 지라도 우리 자신과 가정이 진리에 의해서 변화되는 경험을 소유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진리가 우리에게 베푼 놀라운 역사에 대해서 진정으로 감사하는 정신을 소유할 수 없으며, 진리에 대한 감사의 정신이 없으면 진리의 참된 가치를 깨달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진리의 전파를 위한 개인적인 부담을 가질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진리에 대해서 불신과 부정적인 정신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키워오다가 일요일 강제 휴업령이 내려지고 마지막 폭풍우가 몰아 닥칠 때, 자신의 과거 신앙생활에서 실제적으로 자신과 상관이 없었던 진리를 버리고 원수의 편에 가담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재림 신자들은 단순하고 반복되는 진리에 대해서 지루해 하며, 불평하다가 어떤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납니다. 그들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경험을 잊어버린 채 딱딱한 율법주의 속에서 허식과 종교적인 의무로 자신의 영혼을 묶어 버리거나, 또는 그와 정반대로 진리가 요구하는 희생과 봉사에 지쳐서 새로운 자유주의 신앙을 받아들임으로써 양심의 가책을 잠재울 뿐 아니라 자신은 율법과 재림 신앙으로부터 해방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참된 십자가의 도를 깨달은 자들은, 즉 하나님과 예수께서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하셨는가를 바라보아 알게 된 자들은 진리가 요구하는 바를 자원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따르기로 선택하게 될 것이며, 그들의 그러한 선택은 그들로 하여금 좁은 길을 좁다고 불평하지 않고 인내로서 경주하게 만들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너무 좁고 협착해서 찾지 않는 그 길을, 그들은 마치 평탄하고 넓은 길을 가는 나그네처럼 아무런 불평 없이 단순한 감사의 정신을 가지고 꾸준히 걸어갈 것입니다. 진리는 우리에게 자원하는 봉사와 사랑과 순종의 심령을 창조해 주어서 활기차고 용감하며 친절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줍니다.오랜 세월 동안 진리를 고수하고 지키는 것은 우리의 인간적인 의지와 고집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닌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있는 진리에 대한 깊은 부담에 의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진정, 우리가 예수께서 오시는 그날에 진리와 함께 마지막 승리를 쟁취하기를 원한다면, 날마다 진리와 함께 승리하는 경험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정말 진리와 함께 승리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진리를 안다고 할지라도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에 역사하시지 않는 한, 우리는 매 발자국마다 올무에 결려 넘어질 것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자신이 저지른 악의 비참한 결과로 인해서 넘어지게 될 것이고, 성령이 함께 하지 않는 선(?)을 행한 자들은 자신이 베푼선한 행위에 의해 걸려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선한 행위는 죄를 용서하는 그분의 사랑이 역사한 결과일 뿐이다. 선행은 우리에게 아무런 자랑거리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구원함에 있어서 우리의 역할을 주장할 수 없다. 우리의 선행에는 공로가 되는 어떤 것도 없기 때문이다.” 본교 성경주석 5권, 1222.
“선한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단 한 사람도 없지만, 어떤 영혼도 선한 행실이 없이 구원 받기란 불가능하다.” 가려 뽑은 기별 1권, 474.
이천년 전에 예수께서 불쌍한 죄인들을 보셨을 때에 그분의 심장이 고동쳤던 것처럼,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심장은 그분의 맥박과 일치하고 있습니까? 죄에 빠진 불쌍한 영혼을 진정 불쌍히 여기는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의 손을 붙들어 주고 있습니까? 일상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인정과 동정과 친절이 세상의 무정함과 이기심을 견책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과 동료 인간을 위해서 우리들의 주머니를 털어야 될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마지막 경고를 울리기 위해서 우리의 장미 빛 인생을 그리스도께 겸손히 드려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생애를 명상하는 자마다 자신의 선행과 자아 희생에서 어떠한 만족이나 자랑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참된 거듭남의 경험 가운데 거하는 자만이 참된 선과 사랑을 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지 않는 한, 우리의 노력과 희생과 봉사는 무가치한 것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참된 가치는 항상 그리스도께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지금은 그리스도의 조용한 부르심을 들어야 할 때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장소와 사업이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은 가장 조용한 음성으로 들릴 것이지만, 그것은 가장 높으신 부르심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이 가장 높은 표준의 의를 행함으로서 세상이 흉내낼 수 없는 하늘의 법칙을 이 땅에 보여주시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희생과 봉사와 선한 행위는 모든 세상 사람들을 능가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느낌 속으로 기어 들어오는 불만족함, 불편함, 불쾌함, 불안함 같은 것들은 뒤로 물리쳐 버리고, 인내와 믿음으로 전진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앞으로 나가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우리는 비록 우리의 눈으로 어두움을 꿰뚫어 볼 수 없고, 우리의 발이 찬 물결을 느낄지라도, 이 명령을 순종해야 한다.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망서리고 의심하는 사람의 앞에서는 결단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불확실한 그림자가 사라지고, 실패나 패배의 위험이 없어질 때까지 순종을 미루는 자들은 결코 순종하지 못할 것이다. 불신은, ‘장애물들이 제거되고 우리의 길을 똑똑히 볼 때까지 기다리자’고 속삭이나 신앙은 용기 있게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믿고,앞으로 전진하라고 촉구한다.” 부조와 선지자 290.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에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도전적인 예언이 여기 있습니다. 그 예언은 우리 모두에게 엄숙함을 가져오며, 우리 자신의 생애와 진리를 깊은 숙연함으로 살펴보도록 이끌어 갑니다.
“세상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극히 소수만이 구원을 받아 영생에 이를 것이다. 그와 반면에 진리를 순종함으로써 자신의 영혼을 완성시키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둘째 사망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내가 사는 믿음, 213.
이 예언은 우리를 실망시키고 낙담시키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 예언은 다만 반드시 이루어질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오직 극히 적은 숫자만이 영생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예언은 하늘의 선택에 의해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너무도 적은 숫자만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들 자신에게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너무도 적은 숫자만이 하나님의 희생과 공로에 의해서 베풀어진 죄에 대한 용서의 은혜를 개인적으로 깊이 감사하고 있는 현실이 그 예언을 정확하게 성취되도록 할 것입니다. 너무도 적은 숫자가 그리스도를 개인의 진정한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너무도 적은 숫자가 하늘을 위해서 이 땅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하늘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늘은 우리를 위해서 그들의 왕과 대장인 하나님의 아들을 영원한 죽음의 길이 될지도 모르는 지구로 보내어 주었습니다. 하늘은 셀 수 없이 많은 천사들을 죄로 인해 악취가 진동하는 지구로 보내어 우리들을 시중들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지구에서 자행되는 온갖 가증한 것들을 보면서 고통당하는 가운데 육천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기다려 왔습니다. 그들의 가장 큰 슬픔은 너무도 적은 숫자 밖에는 그리스도의희생과 사랑에 대해서 감사하며 생각하기를 즐거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혹시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그리스도인이 있을지라도, 그리스도를 위한 헌신을 너무도 아까워하고 있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은 천사들에게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마음을 결코 주님께 드리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천사들은 사람의 이기적인 마음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늘은 우리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하늘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하늘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 무엇을 더 해야 될까요?
“만일, 어떤 사람들이 진리를 순종함으로 순결해지지 않고 그들의 이기심과 교만과 악한정욕을 극복하지 않을 것 같으면, 하나님의 천사들은, ‘그들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홀로 있게 버려 두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일을 하도록 지나쳐 버려지고, 그들 자신의 굴복되지 않은 죄악적 기질을 가지고 악한 천사들의 지배를 받도록 버려진다. 그러나, 모든 과정을 통과하고, 모든 시험을 견디고 이긴 자들은 어떠한 대가도 감수하고 참된 증인의 권고에 유의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늦은 비를 받고 승천하기에 합당한 자들이 될 것이다.” 교회증언 1권, 187.
이제 천사들과 성령께서 이 낡은 지구를 떠나야 할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고, 악한 자들은 그대로 악한 상태로 남겨질 수 밖에 없는 시간이 오고 있습니다. 천사들이 자신의 악함과 교만함을 계속 고집하는 모든 사람들을 악한 천사들에게 영원히 넘겨 줄 수 밖에 없는 시간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대다수의 사람들에게서 자신들의 수고와 봉사가 허지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천사들은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가리키며 죄인들을 위한 마지막 호소를 하시는 모습을 소홀히 여기는 대다수의 지구인들을 보면서 천사들과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생각하실까요?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감사와 존경을 받으실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전적인 믿음과 신뢰를 받으실 만큼 우리에게 먼저 행하시지 않았습니까? 이 지구에서 하늘을 향하여 올라가는 마지막 헌신과 사랑의 분향을 우리의 손으로 피울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타락한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영예로운 특권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진리가 이 땅에서 마지막으로 승리를 거둘 때, 그 진리를 따른다고 공언하는 우리도 진리와 함께 승리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소원이기에 앞서 하나님의 소원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