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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양털

저자: W. D. 프레지

오늘 여러분과 함께 연구할 주제는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양털”입니다. 양털은 그것이 어떤 종류의 양에게서 왔던지 간에 그다지 값비싼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수천만 마리의 양들이 존재하지만 만일 한 제국의 왕이 될 사람이 보살피는 양들이 있다면 그 양들은 매우 특별하고 값비싼 양들이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 저는 그 양들의 목동이 되어 초장과 광야를 헤매고 있는 왕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 목자는 양떼를 이끌고 초장과 시원한 물을 찾아서 먼지나는 미디안 광야를 걸어야만 했습니다. 양떼들 사이에서 먼지를 들이키며 초라한 모습으로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사람은 한 때 굉장히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세계를 주름잡던 대제국 애굽의 왕의 후계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아무도 그에게 특별한 주의와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초라한 목자입니다. 성경은 그 목자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에 능하였더라.” 사도행전 7:22. 왜 모세는 양떼를 좇아 다니는 목자가 되어야만 했을까요? 그 당시 애굽은 석기 시대와 같은 야만국이 아니었습니다. 애굽의 예술과 과학은 탁월했으며, 모세는 그들이 알고 있는 모든 학문에 능통했었습니다. 그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모세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신명기 34:10.

그는 사람의 눈에만 위대하게 보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에도 위대하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 주위의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하실 것입니다. “아, 그것은 모세가 이스라엘을 구출해 낸 후의 그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러나 바로 거기에 우리 모두가 유의해야 할 바가 있는 것입니다. 그의 과거는 세계적인 대제국의 후계자이며, 미래는 이스라엘의 구원자인데 지금 그는 사막에서 양을 치며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과거에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제국의 보좌에 앉았으며, 그의 앞날에는 역사가요, 시인이요, 철학자요, 통치자요, 한 민족의 위대한 구원자로서의 놀라운 경험과 사건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는 왜 말 안 듣는 양들과 씨름하며 흙먼지 날리는 광야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도 잠깐 동안이 아닌 40년 동안이나 말입니다. 모세의 가치는 한 시간당 얼마나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얼마 전에 저는 어떤 법적인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서 변호사와 상의를 한적이 있는데 그 때 제가 지불했던 비용은 한 시간당 150불이었습니다. 매우 값비싼 대화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애굽에서 그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만나기 위해서는 줄을 서서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으며, 많은 선물을 준비해야 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양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가 돌보던 양들의 몸에서 나온 양털은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양털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저는 많은 사람들이 모세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처럼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렇게 평범하고 단순한 일을 하고 있다니 그는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데!” “모세여, 도대체 어찌된 일이오? 당신처럼 재능이 뛰어나고 훌륭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소? 이런 일은 아무라도 할 수 있소! 당신은 특별한 사람이오.” 그는 왜 그곳에 있었습니까? 누가 그에게 그런 일을 시켰습니까? “사람은 오랜 세월 동안의 수고와 남의 눈에 드러나지 않는 생활을 시간의 큰 손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무한하신 지혜의 하나님께서는 장차 당신의 백성의 지도자가 될 그를 비천한 목자의 일에 40년을 보내라고 부르셨다.” 부조와 선지자 상권, 323.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것은 너무나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되므로 그 기간을 단축하려고 애쓸 것입니다. “무한하신 지혜를 가지신 하나님께서는 그 기간이 너무 길다든지 그 대가가 너무 많다고 생각지 않으신다.” 교육 83. 그 값이 너무나 크고 깁니까? 아닙니다. 양에게서 나온 양털 자체는 별다른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은 양을 돌보던 목자에게 일어났던 경험입니다. 우리가 진정 주 앞에 신실하게 산다면, 여러분과 저는 조만간에 하늘 유리 바닷가에 서 있는 찬양대와 함께 노래할 것입니다. 기억하십니까?

사도 요한은 그의 계시록 15:3절에서 그가 들은 144,000명의 노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것을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라고 표현했습니다. 모세의 노래를 부르게 될 마지막 세대는 모세의 경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모세가 왜 광야에서 양을 돌보았으며, 또 왜 그 일을 40년 동안이나 했는가에 대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광야 이전과 광야에서 있었던 몇 가지 일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모세의 출생과 그에 관련된 사건들을 기억하십니까? 사도행전 7:20절은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라고 기록했습니다. 왜 “그 때”입니까? 왜냐하면 그 때는 구원자가 태어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구원자가 태어날 것임을 알았고, 그래서 그는 그것을 막기 위해서 어떤 강제적인 법령을 공포했습니다. 사단은 바로의 마음을 자극하여서 그로 하여금 애굽에서 태어나는 모든 사내아이는 강물에 던지든지 죽여버릴 것을 명령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사단은 수백년 후에 구세주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때에 그분을 죽이려고 했던 것처럼 이스라엘의 구원자를 죽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무한한 지혜를 지니신 하나님께서는 마귀가 온갖 계교를 다하도록 허용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일이 생기도록 역사하셨습니다. 모세는 죽임을 당하는 대신에 갈대밭의 작은 방주 안에서 애굽왕의 공주에 의해서 양자로 취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통하여 모세는 자신의 친 어머니의 품에 다시 안기게 되었고, 요게벳은 자신의 아들을 왕궁의 돈을 받으면서 키우게 되었습니다. 마귀가 얼마나 이를 갈면서 사태를 역전시키려고 애를 썼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먼저 마귀의 계교를 허용하신 다음에 스스로 자기가 쳐 놓은 그물에 걸리도록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세는 12년 동안 자신의 어머니 요게벳에게서 양육되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노예 신분이었지만 애굽의 공주가 주는 돈을 받으면서 아들을 키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시여, 저는 우리 모두가 우리의 아이들을 키우도록 허락 받은 시간이 12년뿐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우리의 자녀들을 충성스럽게 교육시켰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요게벳에게 아들인 모세를 12년 동안 키울 수 있는 기간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요게벳은 자신의 의무를 신실하게 행했고 어린 모세의 마음에 진리를 새겨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녀는 우상 숭배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가르쳐 주었고, 창조의 이야기와 노아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때 들었던 그 이야기들을 모세는 후에 광야에서 양을 치면서 창세기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녀는 모세에게 순종, 충실, 충성의 공과를 가르쳐서 모세가 마침내 12살이 되어 바로의 궁전으로 가서 살 게 되었을 지라도 그 어린 마음에 깊이 새겨진 교훈과 공과는 절대로 지워질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모세가 애굽의 교사들과 사제들과 왕자들과 함께 지낸 모든 세월 동안에 모세는 하나님께 대한 그의 진실한 마음과 원칙을 한번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 한번도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으며, 단 한번도 우주의 창조주에 대한 그의 충절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모세의 경우를 통해서 어렸을 때의 교육이 그 아이의 전 생애를 통해서 미치게 되는 영향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12살이 되기 전에 받았던 교육이 애굽의 궁정에서 지내는 세월 동안에 끼친 영향력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고센 땅에서 멸시 받는 노예인 히브리인들의 하나님을 경배하고 있는 애굽의 왕자 모세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애굽의 사제들이 모세로 하여금 애굽의 신앙을 갖도록 하는 임무를 맡았다는 기록을 읽을 수 있습니다. 모세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그가 하나님을 섬기는 한 애굽의 왕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충고를 수없이 많이 들었습니다. 애굽의 왕이 되기 위해서는 애굽의 종교와 연관을 맺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모세에 대한 다음의 놀라운 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사제와 예배자들에게 무감각한 대상을 미신적으로 숭배하는 어리석음을 지적하며 알려 주었다. 아무도 그의 변론을 논박하거나 그의 목적을 변경시킬 수 없었다.” 부조와 선지자 상권, 320. 친구들이시여, 지금 애굽의 대학에 가서 철학과 신학과 심리학을 배우고 있는 우리의 자녀들과 젊은이들은 모세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챔피언으로서 생활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애굽의 세상 재미에 현혹되어서 세상과 교회에 한발씩 걸쳐 놓고 반신반의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가 모세와 같은 자녀들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에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그러한 자녀들을 소유하고 있는지….

이제 세월은 흘러 모세는 애굽 교육의 정상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는 논리, 종교, 예술, 과학뿐만 아니라 군사학과 전술 훈련까지 받았습니다. 그는 장군이 되었으며 전쟁에 나가서는 놀라운 전략을 통해서 괄목할 만한 승리를 쟁취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전쟁에서 돌아올 때에는 애굽의 모든 군사들이 그를 찬양하는 노래를 소리 높이 불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애굽의 신들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았고 돌이나 나무로 만든 우상들에게 머리를 숙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믿음을 지켰으며, 어릴 때부터 어머니께로 받은 가르침을 기억하였고, 천사들에 의해서 계시된 그의 거룩한 임무, 즉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운명을 한시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이 될 운명을 박차버리고 멸시 받는 히브리인들과 운명을 함께 하여 그들을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키겠다는 결심을 거듭거듭 하였습니다. 그러한 모세의 생각은 우리 모두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결론을 갖게 할 것입니다.

“분명 모든 준비는 되었다. 그는 최고의 교육을 받았고, 높은 비전을 가지고 있으며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그는 천재요, 재능이 많은 사람이며, 훈련과 경험과 지위와 영향력을 갖추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사업에 던질 준비가 되어 있으며, 하나님을 도와서 당신의 백성을 건져낼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는 히브리서에서 바울이 기록해 놓은 모세에 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히브리서 11: 24-26.

그는 그의 등을 돌려 애굽의 신들을 뒤로 물리치고 참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지켰으며, 애굽의 보좌를 버렸고, 자신의 운명을 멸시 받는 노예 히브리인들에게 걸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시여, 우리가 그러한 모세에게서 더 이상 무엇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 40세가 된 모세와는 전혀 비교할 수도 없는 상태에 있으면서도 자신들이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서 잘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인간적인 교육과 신령한 교육이 부족하고,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충성심도 없으면서도 자신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오직 뜻을 펼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훈련과 천부적인 소양, 헌신, 재능,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위해서 일할 수도 있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모세는 한 애굽인이 히브리 사람을 부당하게 다루는 것을 보았는데, 그것은 그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하도록 자극하였습니다. 모세는 애굽인을 죽였으며, 그 시체를 모래 속에 묻었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동족 히브리인들의 칭찬과 격려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이러한 행위는 동족인 히브리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좋지 않는 인상을 갖도록 만들었을 뿐 아니라, 자신을 애굽인들의 원수로 만들었습니다. 살인자 모세는 바로의 추적을 받아야 했는데, 만일 그가 붙잡히면 그는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갔으며, 장인의 양떼를 돌보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애굽의 군대 장관이던 그가 이제는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으며, 한 제국을 물려받을 그가 이제는 장인 어른을 위해서 일하는 평범한 사위가 된 것입니다. 모세는 그의 인생에 있어서 바닥이 되는 경험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의 찬란한 인생에 가혹한 채찍을 스스로 맞았으며, 심한 패배감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이리하여 모세의 40년간의 광야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셔서 “모세야, 나는 이제 준비가 되었다. 우리 함께 일을 해보자” 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에 우리의 주의를 집중해야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구원자로서의 준비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모세의 준비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유를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첫째로 그는 애굽의 교육에 너무도 많이 노출되었고 영향을 받은 결과로 인해서 인간적인 합리주의와 이성주의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는 믿음을 어느 정도는 이성으로 대치시켰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을 당신의 위대한 사업에 사용하실 수 없으셨습니다. “애굽 사람을 죽임으로써 모세는 하나님께서 하시겠다고 약속하여 놓으신 일을 자신들의 손으로 처리했던 조상들의 과오를 반복하였다.” 부조와 선지자 상권, 322.

우리는 모세의 순간적인 감정에 의한 실수는 배도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합니다. 그는 결코 진리를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인간의 지혜를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애굽의 대학에서 배웠던 논리와 합리주의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일에 적용시켰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바쳐서 하나님의 사업을 추진시키려고 했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의 많은 부분은 지나치게 인간적이며 세상적인 것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모세는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약속하여 놓으신 일을 자신들의 손으로 처리”하는 과오를 되풀이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세가 생각한대로 전쟁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영광이 그분께만 돌려지도록 하나님 당신의 능하신 힘으로 하는 것이었다.” 상동 322.

모세는 그가 할 위대한 일을 위해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이 다 준비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경우에 있어서 그것은 더욱 그렇게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일찍이 신실한 어머니 아래에서 충성스러운 교육을 받았으며, 바로의 왕실이 주는 놀라운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주님, 이제 저는 모든 것을 당신을 위해서 사용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여, 오라! 함께 가자! 내가 그대들을 인도하여 저 애굽 군대에게 안겨줬던 승리를 그대들에게 안겨주리라.”

모세는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믿음을 이성으로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애굽의 청사진으로 신령한 계시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보다 크고 중요한 것인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글에서 그 핵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세는 애굽의 군관학교에서 무력의 원칙을 배운바 이것이 그의 품성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었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을 사랑의 법칙으로 지도하기에 적당한 자가 되기에는 하나님과 천연계로 더불어 조용한 교제를 하면서 40년의 세월을 보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교육, 84. 그는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기 이전에 먼저 미디안 광야에 가서 목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는 애굽의 군관학교에서 배웠던 무력(또는 경쟁)의 법칙을 잊어버려야만 했으며, 대신에 사랑의 법칙을 배워야 했습니다. 하늘의 지혜자들은 모세로 하여금 40년간 양치는 일에 종사하도록 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한 순간이라도 낭비하는 일이 결코 없으시므로 그것이 가장 최선이며,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결정을 내리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적당한 공과를 가르치기 위해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보는 것은 매우 흥미 있는 일입니다. 저는 모세의 광야 학교의 시작을 상상해 봅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이드로가 있는 미디안으로 이끌려와 목자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무슨 일이든지 신속히 하는 데에 익숙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변에 있는 양들에게 무엇이든 신속히 하라고 명령을 내렸을 것입니다. 양들은 놀라서 어찌할 줄을 모른 채 웅성거리고 있을 뿐입니다. 아마 모세는 양들에게 그의 명령을 전달해줄 소대장이나 선임하사를 찾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을 것입니다. “이 양들은 도무지 순종할 줄을 모르는군!” 그러나 문제는 그가 양들에게 어떻게 명령하는지를 모르는 데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많은 부모들과 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명령하는지를 모르고 있으면서도 양들이 순종하지 않음에 대해서 불평합니다. 모세는 어떻게 명령하는 지를 배우기까지 40년이 걸렸습니다. “현명하게 다스릴 수 있기 전에 그는 순종하기를 훈련 받아야 했다.” 부조와 선지자 상권, 322. 모세는 현명하게 다스릴 수 없었을까요? 애굽에 있었을 때, 그는 다스리는 일에 종사했고 왕과 백성들은 모세가 다스리는 일을 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는 일은 잘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는 완전히 다른 체계의 새로운 정부 형태를 배워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야, 양떼를 가지고 한번 실습해 보아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같은 연습을 하는 데에 40년이 걸렸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압니까? 그것은 그가 경쟁을 가르쳐주는 애굽의 군관학교에서 너무 오랜 세월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의 품성에 뿌리 깊은 영향을 주었으므로 그가 이스라엘을 사랑의 법칙으로 지도하기에 적당한 자가 되기에는 40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렇게 준비된 돌보는 일의 습관, 곧 그의 양떼를 위하여 자기를 잊는 동정과 부드러운 염려의 습관이 자비심이 깊고 오래 참는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도록 그를 준비시킬 것이었다.” 상동 323.

사랑하는 형제들이시여, 여러분들은 40세 때의 모세를 닮았습니까? 아니면 80세 때의 모세를 닮았습니까? 여러분은 80세 때의 모세의 노래를 부르실 수 있습니까? 그 노래는 인내하고 노하기를 더디 하며 자비가 많은 사랑의 노래입니다. 우리 모두는 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336,337에 있는 “사업을 위한 신속한 준비”라는 장을 읽어보아야 합니다. 거기에는 장기간의 교육 과정에 대해서 경고하는 글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우리는 그 가운데서 모세의 광야 교육에 대한 설명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제목은 “사업을 위한 신속한 준비라고 쓰여져 있는데 내용은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교육을 받은 모세에 관한 기록이 있는 것입니다. 제목과 내용이 잘 어울리지 않는 듯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40년간의 광야 교육이 사업을 위한 신속한 준비 과정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지혜로부터 받은 그의 교육은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키기에 충분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군대의 장관으로서 배워야 할 모든 것을 습득하지 않았던가? 그는 그 나라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교육 기관에서 모든 혜택을 받지 않았던가? 사실 그렇다. 모세는 자신의 힘으로 백성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먼저 자기 백성들의 환심을 사는 일부터 착수하였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 중의 한 사람을 학대하는 애굽인을 살해하였다. 이러한 행위로서 그는 태초부터 살인자였던 마귀의 정신을 나타냈으며, 자비와 사랑과 온유의 하나님을 증거하기에 부적당한 자신을 드러냈을 뿐이다.

모세는 첫 계획부터 비참한 실패를 저질렀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는 그 즉시로 하나님께 대한 신뢰심을 잃어버렸으며 자신에게 맡겨진 사업을 등지고 돌아섰다. 그는 바로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 도망하였다. 모세는 애굽인의 생명을 살해한 자신의 큰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잔인한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키는 사업에 자신이 참여하는 것을 허락하시지 않으실 것이라고 단정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모든 일꾼들이 당신을 위한 사업에 성공하기 위하여 반드시 소유해야 할 온유와 선함과 오래 참는 정신을 모세에게 가르치시기 위하여 이런 일들을 용납하셨던 것이다.” 우리 중에 하나님의 사업을 하다가 어떤 실수를 범한 사람이 있습니까? 만일 자신이 실수를 했기 때문에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거나 또는 전과 같이 많은 일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스스로 내리고 실의에 빠져 있는 영혼이 있습니까? 그런 분들은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모세는 그의 계획의 첫 시작부터 비참한 실패를 저질렀습니다. 40년 동안이나 준비하여 온 위대한 사업의 시초부터 완전한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그는 너무나 실망하여서 이제는 모든 것이 끝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실망을 이용하셔서 모세에게서 의기양양함과 자아를 높이려는 정신을 제거하는 수술을 시작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전 생애를 지배해온 칼과 힘, 인간적인 권위와 신조, 그리고 자기 중심적인 사상을 치워버리고 일개 목자로서의 의무와 고난을 신실하게 감당하며 보잘것없는 동물들을 인내와 사랑과 온유로서 돌보아주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가 그러한 교훈들을 잘 배웠다고 생각하셨을 때까지 40년이 걸렸던 것입니다.

제가 배우기를 소원하는 한가지 공과가 있는데, 그것은 자신을 부인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우리 자신이 이득과 이윤을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 골몰하기 전에 우리의 이웃과 형제를 어떻게 하면 도와 줄 수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하여야 합니다. 모세가 애굽에 있을 때, 그분께서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어떤 것을 기대하도록 교육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모세는 자신의 탁월한 재능들을 빙자하여 백성들의 아첨하는 말이나 찬양의 말들을 당연히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교육을 받았다.” 상동 337.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항상 자신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아첨과 찬양의 말들을 들어야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 합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박수 갈채를 받기 위해서 자신들의 위대함을 보여주려고 애를 씁니다. 모세는 그러한 것들에 익숙해 있었으며 무의식 중에 그러한 것들을 기대했습니다. “양을 치는 목자로서 모세는 고통을 당하는 짐승을 돌보며, 병든 양을 간호하고, 길 잃은 양을 끈기 있게 찾아야 하고, 다루기 힘든 것들을 오래 참으며, 고독을 벗삼아 어린 양들의 필요를 공급하고, 늙고 허약한 양들을 보살펴주는 일들을 배워야만 했다.” 상동. 하나님은 그러한 일들을 통해서 모세에게 가장 필요되는 교훈과 경험을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르치셨던 것들을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봉사하고, 길 잃은 자들에게 길을 가르쳐주며, 병든 자를 돌봐주며, 슬픔에 낙망한 자를 위로해 주고, 다루기 힘든 자들에 대해서 오래 참는 그리스도인들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기를 기도 드립니다. 저는 우리 모두에게 부조와 선지자 22장과, 교육 2장과 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11장을 연구할 것을 요청합니다. 우리는 거기에 있는 글들을 일고 암기함으로써 미디안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아니며, 거기에 있는 말씀을 경험함으로써 모세의 경험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미디안에서 잊어버려야 했던 두 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애굽에서 배웠던 세상의 철학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사물을 따져보고, 앞뒤를 재본 후 오직 그의 이성에 합리적인 것만을 믿고 실행에 옮기는 습성이 있었습니다. 미디안 광야 대학에서 그는 전혀 새로운 것들을 배웠습니다. “모세는 자신감을 잃고… 자신의 인간적인 이성으로 볼 때, 하나님의 명령이 옳게 보이든지 옳지 않게 보이든지 간에 기꺼이 순종하였다.” 상동 337, 338. 이것이 바로 순종의 공과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이 옳게 보이든지, 옳지 않게 보이든 지를 불문하고 그분의 명령을 즐겨 순종하는 지점에 까지 도달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로 하여금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갈 수 있도록 했던 원천이었습니다. 광야에서는 150만 명의 백성들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지라도 명령에 따라서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로 끌고 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광야에서 순종의 공과를 배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백성들과 양떼들이 주리고 목말랐을 때, 바짝 말라 있는 반석 곁으로 그들을 인도할 수 있게 한 것도 바로 그가 배운 믿음의 공과 때문이었습니다. 40년을 통하여 매 순간마다 모세는 인간의 이성 대신에 하나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그가 배웠던 것을 잊어버리는 데에 40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우리도 신속하게 잊어버려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 말을 오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현대적 발견이나 의학이나 영양이나 다른 모든 과학들에는 아무런 진리도 없다고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어떤 것이 진리이고, 어떤 것이 오류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배운 것들 가운데는 굉장히 많은 진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가지고 있던 문제는, 그는 진리와 오류가 혼합되어 있는 것을 배웠다는 것인데, 바로 이것이 오늘날의 우리들의 신앙을 혼돈케 하는 문제거리 입니다. 진리와 오류를 가려내는 데에 40년이 걸렸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그 일은 꽤 오랜 시간을 요구하게 될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과 천연계가 있는 곳에 있을 때,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인하여 창세기를 기록했습니다. 산봉우리들에 둘려 싸여 있는 가운데 그는 양떼를 이끌고 푸른 계곡과 맑은 물가로 갔습니다. 애굽의 영화가 희미하게 사라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점점 더 실제적인 것이 되도록 한 곳은 바로 그 외로운 산중이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합리주의의 위험과 이성을 믿음 보다 높이 두는 위험으로부터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우리도 성경과 성령의 계시로 우리의 마음을 흠뻑 적혀야만 합니다. 우리의 영혼을 가끔 한번씩 발작적으로 생각날 때마다가 아니라 끊임 없이 말씀과 천연계에 접촉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언덕과 계곡에서 하나님의 영감이 우리의 마음에 강력하게 임하시도록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왜 지금 시골에 있어야 되는지를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천연계를 한 숟갈씩 홀짝 홀짝 마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 되나 말로 들이켜야 합니다.

끝으로 다음의 말씀을 읽고 결론 맺고자 합니다. “모세는 애굽인들의 모든 지혜를 배웠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그는 광범위한 교육을 받았으나 그 교육의 대부분은 다시 고쳐서 배워야 할 것들이나 어리석은 것들이었다. 40년의 긴 세월을 통해서 양떼와 어린 양을 돌보는 가운데 애굽의 교육에서 얻었던 인상을 깨끗이 지워버려야만 하였다.” 상동 344. “만약 주님의 사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세처럼 격리되고 저희 마음이 온유하게 될 때까지 어떤 비천한 직업에 종사하도록 구속을 받는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기업인 당신의 백성들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 지금보다 훨씬 더 충실한 목자가 되었을 것이다. 저들은 저들 자신의 재간을 뽐내거나 하나님께 대한 확실한 지식 대신에 얻은 고등 교육의 지혜를 자랑해 보이려고 애쓰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인 교육의 기초 360. 우리 모두 어리석은 세상의 지혜와 무력과 경쟁심의 이기적인 사용으로부터 구원 받게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