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기별과 우리의 선택
저자: 제프 피펜저 : 호프 인터내셔날 자영 선교 기관 부 편집인으로 봉사하였었음
아담과 하와가 그들의 의지를 그들 앞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방향으로 사용했을 때, 인류를 위한 구속의 계획은 실현되기 시작하였다. 아담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기로 선택하여, 사단의 그럴듯한 논리를 받아들였을 때, 죄는 아담의 그러한 의지의 사용을 통하여 인류에게 들어오게 되었다. 인류의 최초의 운명은 선택의 활용에 달려 있었다.
아담의 선택의 결과들 중에서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은 아담 자신의 안에 지니고 있었던 거룩한 임재를 상실하게 된 것이었다. 바로 그 거룩한 임재를 회복하는 것이 복음의 목적이 되어왔다.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야기된 하나님과의 분리를 치유하는 방법은,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달려있는 듯 하다.
“많은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자아를 하나님께 굴복할 수 있을까?’라고 묻는다. 그대들은 자신을 그분께 바치기를 원하지만 그들의 도덕적 능력은 약하다. 그들은 의심의 노예가 되어 그대들의 죗된 생애의 습관에 의해서 지배를 받는다. 그대들의 약속과 결심은 썩은 새끼줄 같아서 쉽게 끊어진다. 그대들은 자신의 생각과 충동과 애정을 지배할 수 없다. 그대들이 깨뜨린 약속과 서약에 대한 기억들이 그대들 자신의 신실함에 대한 자신감을 약화시키며, 하나님께서 그대들을 가납하시지 않으실 것이라고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소망을 잃어서는 안 된다.
그대들이 이해해야 될 것은 의지의 진정한 힘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성 안에서 지배하는 힘이 되는데, 즉 결정력이나 선택력을 말한다. 모든 것은 의지의 올바른 사용 여하에 달려 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으므로 사람들은 그것을 임의로 사용할 수 있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으며,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사랑을 하나님께 드릴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을 섬기기로 선택할 수는 있는 것이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의지를 그분께 드릴 수 있다. 그리하면 그분께서는 그대들의 안에서 역사하실 것이며,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행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온 본성은 그리스도의 영의 지배 하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대들의 애정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것이 될 것이고, 그대들의 사상은 그분과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정로의 계단, 영문 47.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대쟁투가 일어나는 격전지는 마음인데, 그곳에서 모든 사고와 사상의 전개가 이루어진다. 우리로 하여금 선택을 하도록 도와주는 마음의 5가지 능력들이 있는데, 그것은 양심, 이성, 기억, 감정(애정), 그리고 의지이다. 거룩하게 하는 성령의 감화, 감동하심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들 5가지 능력들은 모두 사단의 직접적인 지배하에 놓이게 된다. 오직 성령의 임재가 함께 하실 때에만 마음의 능력들이 그리스도의 지배 아래에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두 지배자 사이에는 어떠한 중간 지역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축복을 받아들이고, 부지런히 악 대신에 선을 배양하고자 한다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이성과 양심과 기억력과 의지와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이 인류를 사단의 구속으로부터 구출해 내기 위해서 한 언약을 맺으셨을 때, 인간의 본성이 그분의 거룩한 본성과 연합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이 제공되었다. 이러한 본성을 가지고 주님께서 유혹 받으셨던 것이다. 예수께서도 아담이 그러했던 것처럼 사단의 거짓 제의에 굴복할 수 있으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그분께서는 단 한순간도 굴복하지 않으셨다.” 가려뽑은 기별, 3권, 130-131.
아담이 죄를 짓기로 선택한 이후, 하늘의 해결책은 인간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만한 은혜의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하늘이 마련한 해결책은 깨어진 법의 요구를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거룩한 영의 임재를 회복시키며, 또한 죄짓지 않고 살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하늘에서 마련된 복음은 그것을 자신의 생애에 받아들이거나 적용시키는 사람에게 필요되는 모든 것들을 제공한다. 그러나 복음은 죄인 개개인들에게 필요되는 것들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아담이 범죄했을 때, 모든 인류에게 이르러온 죄의 문제를 해결한다.
아담의 개인적인 선택이 그 자신에게 죄의 결과를 가져왔던 것처럼, 전 인류 또한 마찬가지 입장에 놓여 있는 것이다. 복음은 개인 뿐만 아니라 전 인류를 구속할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하고 있다. 복음은 모든 사람들이 출생과 함께 타고나는 타락한 본성에 대한 치료제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개인적인 죄의 문제들에 대한 치유제가 된다.
“그리스도께서 인내하신 굴욕은 타락한 인류를 위한 것이었는데, 우리 인간들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유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한 인류를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나타내셨다. 인간에게도 이와 동일한 사랑이 나타나야 한다. 타락한 인류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형상이 반사되어야 한다. 차디찬 마음이 거룩한 사랑으로 활성화되고 빛나야 한다. 우리의 구속자 되신 분의 심장과 동일한 음으로 고동쳐야 한다. 그리스도의 명예가 그분께서 택하신 백성들의 성품의 완전함 속에서 완전하게 세워져야 한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당신의 성품을 세상에 대표하게 되기를 갈망하신다.” 시조, 1897년 11월 25일. 복음이 제공하는 것을 자신들의 생애 가운데서 받아들여서 성품의 완전을 이룩한 사람들이 존재해 왔다.
“지상 역사의 매 시대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유능한 사람들을 소유하셨는데, 그들을 향하여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느 시대든지 헌신적인 사람들이 있어서 자신들의 앞 길에 주어진 빛들을 모아서 하나님이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였다. 에녹, 노아, 모세, 다니엘과 그 이외의 많은 부조들과 선지자들은 의의 사도들이었다. 그들은 잘못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약점과 실수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럴지라도 주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봉사 사업에 자신들을 드릴 때, 그들을 통하여 일하셨다.” 복음전도자, 영문 13.
위의 인용구절에서 “그들이 하나님의 봉사사업에 자신들을 드릴 때”라는 표현은 그들이 거룩한 임재를 받아들여서 보유하기로 선택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1888년에 특별하게 의도했던 것(* 이때 미네아폴리스에서 개최되었던 대총회에서 죤스와 와그너 목사를 통하여 제시되었던 기별, 즉 인간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될 수 있음을 강조했음) 과 오늘날에 기다리시고 계신 것은 동일한 것으로서, 그분께서는 당신이 “신부”라고 부르실 수 있는 무리들을 소유하게 되기를 소원하고 계신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요한계시록 19:7.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교회 안에서 당신 자신이 표현되기를 갈망하고 계신다. 그리스도의 품성이 그의 백성들에게서 완전하게 재현될 때, 그는 당신의 것을 찾기 위해서 강림하시게 될 것이다.” 실물교훈, 영문, 69.
지금부터 백여년 전에 복음의 시계는 하나님의 신부가 일어날 때가 되었음을 알렸다. 그러나 당시에 이루어진 인간들의 선택에 의해서 하나님의 계획은 지연되고 말았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부르시고 계신다. 가장 놀라운 방법으로써 그분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임재를 나타내셨다. 그러나 기별과 기별자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그들을 멸시했다. 거룩한 사랑의 기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 문에서 두드리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하늘의 손님을 받아들이게 되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의 마음에서는 그리스도의 두드리시는 음성이 허지로 돌아가고 말았다. 미네아폴리스(1888년 대총회가 열렸던 도시 이름)에서 주어졌던 기별을 거절함으로써, 사람들은 죄를 범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별자들에 대해서 여러해 동안 동일한 미움을 나타냄으로써, 그리고 성령께서 계속해서 호소하시는 진리를 거절함으로써 훨씬 중한 죄를 더하였다. 그들은 기별을 경시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였다. 모든 호소는 거절당한 바 되었으며, 모든 탄원은 부주의하게 취급당했고, 마음을 더욱 강퍅하게 하였으며, 오히려 호소와 탄원을 꾸짖는 위치에 자신들을 놓았다.” 1888년 기별 재료, 913.
“미네아폴리스에서 거절했던 기별을 듣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게 될 때가 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지만, 많은 사람들은 다른 영에게 굴복하였는데, 그 영은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으로서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였다. 오, 그 불쌍한 영혼들이 너무 늦기 전에 완전하신 역사를 받아들여야 할텐데. 이보다 나은 기회들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며, 이보다 깊은 감동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상동, 1030.
화잇 부인께서 “거룩한 사랑의 기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 문에서 두드리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그 하늘의 손님을 받아들이게 되기를 갈망한다”라고 말씀하신 호소는 1888년 미네아폴리스에서 있었던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보내는 기별에 대한 거절을 지적하는 것이다. 1888년에 하나님께서는 한 집합체로서의 당신의 백성을 부르셔서, 복음의 능력을 온 세상에 전시하기 위하여 성령의 임재에 대한 약속을 받아들일 것을 호소하셨다. 그러나 그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거절은 오늘날까지 라오디게아 교인들이라는 집합체의 마음 속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성경에 나타나 있는 조사심판이라는 진리에 대하여 반대하는 정신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것은 사단이 그들에게 역사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미네아폴리스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새로운 모습으로서 진리의 귀중한 보석들을 주셨다. 하늘로부터 온 이 빛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거절할 때 나타냈던 완고함을 가지고 거절되었다. 옛 지계표에 대한 충분한 대화가 이루어졌으나 무엇이 옛 지계표인가에 대해서 그들이 무지하다는 증거가 나타났다. 양심에 호소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변론과 증거가 나타났으나 사람들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으며, 빛의 들어옴에 대하여 밀봉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기별이 ‘옛 지계표’를 제거하는 위험천만한 잘못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서 그 기별은 ‘옛 지계표’의 말뚝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으며, 그들은 ‘옛 지계표’를 구성하고 있는 진리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상동, 518.
하늘로부터 온 기별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양심에 호소했지만, 그들은 단체적으로 성령의 임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선택하였다. 화잇부인은 그들이 기별을 거절하게된 주요 원인이 그들의 마음과 정신 상태에 있음을 지적하였다.
“선입관념을 굽히고 이 진리를 받아들이기를 꺼려하는 마음이 미네아폴리스 총회에서 E.J. 와그너와 A.T. 죤스 형제들을 통하여 주님께서 보내신 기별을 반대한 주된 이유이다. 사단은 반대하는 정신을 자극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주시기를 갈망하신 특별한 성령의 능력을 우리 신자들에게서 빼앗는데에 성공하였다. 원수는, 사도들이 오순절 이후에 진리를 선포했던 것처럼 그들이 온 세상에 진리를 전할 수 있는 능력을 얻지 못하게 길을 막아 버렸다. 진리의 영광으로 온 땅을 환하게 비출 빛이 거절당했으며 우리 형제들 스스로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강력하게 세상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막히고 말았다.” 가려뽑은기별, 1권, 영문 234.
역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1888년부터 지금까지 그들의 집단적인 선택에 의해서 성령의 임재를 거절하여 왔던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들의 그러한 거절은 1888년 기별이라는 주제를 회피하거나 또는 1888년에 있었던 사건을 왜곡시킴으로써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1888년 이후, 우리는 “뿌린대로 거둔다”라는 원칙에 따라서 우리가 거절했던 결과로 인하여 그에 상응하는 슬픈 경험들을 거두어 왔다. 1888년 이후 교회는 단체적으로 눈먼 상태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라오디게아의 군중심리 속에서 다수에 의한 잘못된 선택의 악순환을 되풀이 하게 되었다. 바울은 영원한 복음 속에 포함되어 있는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에 대해서 특별히 지적하고 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디모데후서 3:5.
화잇부인은 디모데후서에 있는 이 성경절을 인용하여 성화의 경험을 거절한 재림 신자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미련한 처녀로 대표된 계급은 외식하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진리를 존중히 여기고, 또 진리를 옹호하였고, 진리를 믿는 사람들에게 매혹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의 역사하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예수이신 반석 위에 떨어짐으로 그들의 옛 성질을 깨뜨려 버리려 하지 않았다. 이 계급은 또한 돌밭 위에 떨어진 씨로 묘사된 사람들을 대표한다. 그들은 주저하지 아니하고 말씀을 받았으나 그 말씀의 원칙을 실천하지 아니하였다. 그 말씀의 감화력은 순간적인 것이었다. 성령이 마음 가운데 역사하게 되고 그 자신이 이를 원하고 허용할 때에 그의 안에는 새로운 품성이 심어지게 된다. 그러나 미련한 처녀로 대표된 계급은 단지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행위만으로 만족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품성을 연구하지 아니한다. 그들은 하나님과 교제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할 줄도 모르고 하나님을 쳐다보고 살 줄도 모른다.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봉사는 점차적으로 저하되고 형식화되고 만다.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고 이는 그 입으로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음이라.’ 겔 33:31. 사도 바울은 이러한 상태가 예수 재림 직전에 사는 사람들의 특성이 될 것이라고 밝히 말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3:1-5.” 실물교훈, 영문 411.
1888년 기별에 대한 교회의 거절이 낳은 열매는 무능력하고, 자만하며, 허세부리는 신앙이었다:
“우리는 성경으로부터 회개하는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도 푸른 잎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라는 말을 주목하라.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의 운명은 거듭나지 않은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천성적인 성향들을 나타내며, 매일의 삶 속에서 자신들의 신앙을 부인하는 자들에게 적용된다. 그들 안에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시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세상에 그리스도의 성품을 대표하지 못한다.” 리뷰앤 헤럴드, 1881년 1월 11일자.
“사도에 의해서 언급되어진 계급은 이방인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그들을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들로서 묘사하고 있다.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같이 저희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마지막 시대에 경건함을 공언하는 자들 가운데 나타나게 될 성품의 묘사이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부류가 존재할 것이다. 사도는 말하기를, ‘무릇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악한 자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딤후 3:12-13.” 시조, 1895년 12월 5일자.
한 사람의 선택에 의해서 인간 가족 전체가 성령의 임재를 거절하는 상태를 유전으로 이어받게 되었다. 1888년에 하나님께서는 인류 앞에 영원한 복음을 강력하게 제시하고자 계획하셨다. 이 기별은 개개인에게 필요되는 치료제가 될 뿐만 아니라 복음의 능력을 세상 앞에 전시하는 한 집단을 생산하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1888년에 이루어진 집단적인 거절은, 이스라엘 당시 여호수아와 갈렙에 의해서 전달된 하나님의 기별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선택했던 대다수처럼, 연속적으로 부흥과 개혁의 기별을 거절함으로써 하늘 가나안의 입성을 오랫동안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마 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로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년 동안을 광야에서 행하였더니.” 여호수아 5:6.
화잇부인은 우리가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을 반복하기로 선택하였다고 탄식하였다:
“40년 동안 불신과 반역과 불평의 정신이 고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와 꼭 같은 죄들이 현대 이스라엘을 하늘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지체시켰다. 이 두가지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의 약속에는 전혀 잘못이 없다. 죄악과 슬픔의 세상에 우리를 이처럼 오랫동안 머물게 한 것은 주님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백성들 사이에 존재하는 불신과 세속주의와 미지근한 상태와 분쟁이다.” 복음전도, 677.
1888년 기별을 거절한 이후, 얼마나 많은 재림교인들이 황량한 20세기의 광야에서 그들 자신의 은혜의 시간을 끝내고 무덤 속으로 들어 갔는가? 오늘날, 얼마나 많은 재림교인들이 죤스와 와그너에 의해서 전달되었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을 순수하게 보존하여 믿고 있는가?
아담으로부터 1888년을 거쳐서 오늘날까지의 역사는,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는 모든 우리의 필요들을 공급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성령께서 거하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우리는 스스로 선택해야만 한다.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께 완전히 굴복하고 형제들에게 우리와 같이 굴복하도록 격려하는 일없이, 영원한 복음이 포함하고 있는 능력을 집단적으로 전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굴복하기로 선택하였을 때, 복음의 실현에 있어서 인간으로서의 우리에게 맡겨진 몫을 완수하게 되는 것이며, 그때서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몫을 수행하실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각도에서 볼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촉진할 수 있는 것이며, 이러한 각도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셔서 우리의 의지를 거룩하게 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거룩함을 구현하실 수 있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선택하기를 뒤로 미루고 있는 우리의 하루 하루가, 우리들 각자의 죄뿐만 아니라 집단적이고 단체적인 교회의 죄로 인하여 뒤로 늦춰지고 있는 늦은비 성령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 중의 한 사람으로 속해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또 다른 신부를 준비시키는 역할을 신실히 감당하여야 한다.
1888년에 거절되었던 기별은 지구 역사를 통하여 계속해서 거절되어 왔던 것과 동일한 기별이다. 우리는 성령이 임재하심을 충만하게 채우기로 선택할 것인가? 하나님의 기별에 대한 우리의 선택은 우리의 죄없는 생애로써 매일 매순간 입증될 것이다. 우리는 경건의 모양만을 뒤집어 쓴 채, 매일 매일을 부패한 성품으로 세상과 교회에 악한 영향을 내뿜어대며 살아갈 것인가? 오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마음 문을 활짝 열 것인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여호수아 2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