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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설명하는 “세 천사의 기별”

저자: 강병국 목사  

    몇 달전의 일로 기억된다. 재림 교회 안에서 평생을 지내셨다는 한 장로님이, 내게 이상스럽기는 하지만 동감이 가는 한가지 질문을 해 왔다. “목사님, 세 천사의 기별이 뭡니까?” “…..” “정말 몰라서 제게 질문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저를 시험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목사님. 정말 몰라서, 창피를 무릅쓰고 묻는 겁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안식일 교회 교인이기 때문에, 세 천사의 기별에 대해서는 수 없이 들어왔고 또한 제 자신이 설교도 해 왔습니다. 이제는 그 성경절들은 달달 외울 정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세 천사의 기별이 정말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특히, 화잇 부인께서 셋째 천사의 기별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 바로 그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아무리 읽어 봐도 셋째 천사의 기별의 내용 속에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는 경고만 있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말씀은 한 마디도 없던데요. 좀 알기 쉽게 설명해 보십시오”

    아마도 이 질문은 수 많은 재림 교인들의 가슴속에 있는, 그러나 차마 부끄러워서, 아니면 별 관심이 없어서, 발표하지 않고 있는 질문이리라고 생각된다.

    우리의 존재의 이유를 밝혀 주는 중심 기별인, 이 세천사의 기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지자 우리는 우리의 그 독특한 특색을 감추려 하기 시작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세천사의 기별이라는 단어 자체에 신물이 난다는 역 감정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북미주의 어느 합회들에서는, 지구 위를 날고 있는 세 천사가 그려져 있는, 우리 교회의 마크의 그림이, 우리의 특색을 너무 노골적으로 나타낸다고 해서 더 이상 그 마크나 그림을 쓰지 않기로 결의했다는 사실들을 전해 듣고 있는 실정이다.

    세 천사의 기별. 그렇다. 그 기별이야 말로 우리가 남은 백성으로서 세상을 경고해야 하는 우리의 사명의 기별이다. 이 기별은 세상을 소란케 할 기별이다. 이 기별은 늦은비를 불러 올 기별이요, 예수님의 재림의 무대를 준비시키는 기별이다. 이 기별은 세상을 향한 마지막 자비의 경고의 기별이다. 그러나, 교회가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 들게 되자, 우리는 우리의 좌표를 잃어 버리게 되었고, 우리에게 맡겨진 귀중한 모퉁이 돌 같은 이 진리가, 마치 내 팽개쳐진 거침돌처럼 되어 버렸다. 예수님께서 왜 재림 하실 수가 없는지에 대한 이유들 중,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 이제 그러면 우리의 원 위치로 돌아가, 무엇이 과연 세 천사의 기별인지를 알기 쉽게 이해해 보도록 하자.

먼저 요한 계시록 14:6-12절 까지에 있는 세 천사의 기별을 읽어 보도록 하자.

첫째 천사의 기별: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 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둘째 천사의 기별: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셋째 천사의 기별: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먼저, 여기에 나오는, 공중을 날아가며 외치고 있는 세 천사들은 누구인가? 영감의 말씀은 그 해답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이 세 천사들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세상을 향하여 능력을 가지고 복음을 펼치는 사람들을 대표한다.” (본 교회 성경 주석7권, 979) 아울러, 화잇 부인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 하고 있다. “특별한 의미에 있어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은 이 세상을 위한 파숫군과 빛을 가진 자로 정해져 있다. 저들에게는 멸망해 가는 세상을 위하여 전해야 할 마지막 경고의 기별이 위탁되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흘러 나오는 놀라운 빛이 저들에게서 비치고 있다. 그들은 첫째와 둘째와 셋째 천사의 기별을 전파하는 가장 엄숙하고 중대한 사업이 맡겨져 있다. 그보다 더욱 중대한 사업은 없다. 저들은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도 그들의 관심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복음전도, 122)

그러므로 쉽게 말해서 세 천사란,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참 진리를 가지고 있는 진실된 진짜 재림 교인들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그들이 공중을 날면서 전파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을까? 그것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경고해야 하는 세계적인 스케일의 기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며, 또한 이 기별은 지체됨이 없이 신속하게 전파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라는 사실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마지막 기별을 전파하기 위하여 첫 번째로 날아 가고 있는 천사가 모든 사람들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있다고 성경은 말해 준다. 이 영원한 복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 영원한 복음이란, 아담이 타락하자마자 에덴 동산에서부터,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구속의 방법에 대해 계시하셨던 바로 그 복음을 말하는 것이요, 또한 아브라함이 이해하고 믿었던 그 구원의 복음을 말하는 것이요, 사도 바울이 깨닫고 설명한 바로 그 똑같은 복음을 말하는 것이요, 현재는 물론이요, 앞으로 미래까지 영원히 동일하며 변치 않는 바로 그 복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구원 받을 수 있는 구원의 진리와 경험은 한가지 밖에 없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영원한 복음이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유일한 구속의 방법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 방법이 영원히 변치 않는 시종 일관하는 복음이라는 의미이다.

    복음이란 흔히들 “기쁜 소식”이라고 설명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롬 1:16) 복음이란 단지, 하나님께서 인간을 독생자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복된 소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복음 속에 있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힘, 다시 말해서, 타락하기 이전 상태로 죄인들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 곧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파워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복음이란 기별이나 진리 그 이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죄인을 변화시키어 에덴으로 다시 돌아 갈 수 있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재 창조의 기적을 말하는 것이다. 불순종하여 악해진 죄인들을, 순종하는 의인들로 변화 시키시어, 아직도 하늘에서 죄없이 순종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타락하지 않은 자들과 다시 만나서 살 수 있도록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취었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 지어다 아멘.” (롬 16:25-27)

    아담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범죄한 후에 “하와”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하나님께로부터 죽음의 선고를 받은 후에, 그는 돌아서서 아내를 향하여 이제부터 그대의 이름은 “하와”라고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하와”의 뜻은 우리가 잘 아는대로 “모든 산자의 어미”라는 뜻이다. 그 당시의 감동적인 드라마를 연상해 보자.

    범죄한 후에, 땅의 저주를 선고 받고 자기들의 죽어야 할 운명을 선고 받은 떨고 서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예수님께서 가까이 다가 오셨다. “아담아, 저기 보이는 두 마리의 어린양이 보이느냐?” “예, 보입니다.” “불러 보렴.” 아담의 휘파람 소리에 예나 다름없이 두 마리의 어린양들은 껑충 껑충 달려와 아담과 하와의 품에 덥석 안긴다. 귀여운 애완용 동물들을 쓰다듬고 있는 아담에게 충격적인 또 하나의 명령이 가해 진다. “아담아, 이제는 저기 보이는 돌을 가지고 와서, 날카롭게 만들고, 그것으로 양의 머리를 내려 치는 거다.” “아니, 하나님 그럼….” “그렇다. 그 양을 죽이라는 거다.” “하나님, 내가 어떻게 그런 일을…못합니다.” “아담아!” “예, 알겠습니다. “여러 번 돌에 맞은 어린 양은 원망스럽고 놀라는 눈을 크게 뜨고, 피를 흘리며 죽어 가고 있다. 처음 죽음의 가공할만한 장면을 목격하는 아담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양의 시체를 땅바닥에 내 동댕이 치면서 이렇게 소리 친다.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범했기 때문에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야 한다는 말이군요.” 예수님께서 아담을 조용히 바라 보시고는 말을 받으신다. “아담아! 네가 범죄하였으므로, 너희를 구속하기 위하여 후일에 내가 저렇게 죽어야 한다.” 드디어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을 한 눈에 이해 하였다. 범죄한 두 부부는 구세주의 발 앞에 엎드려서 뜨거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소리 친다. “하나님, 우리의 죄가 하나님을 이러한 고통의 죽음을 당하시도록 만든다면, 우리는 그 ‘죄’를 증오합니다. 다시는 주님의 율법을 범할 마음이 없습니다. 주여, 우리를 도와 주시옵소서.” 에덴 동산에서 처음들은 그 복음은 죄인을 진심으로 회개케 하며,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히 순종하고자 하는 새 마음을 갖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이 복음은 아담 때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는 영원한 복음인 것이다 (엡 3:9; 골 1:26-29 참조).

“사람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때에는 그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살 수 있는 능력도 받아들인다.” (실물교훈, 326)

    천사가 날아가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외친다. 무엇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뜻일까? 성경에서 “두려워하라”는 뜻은 우리들이 흔히들 생각하는 개념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다음의 성경절들을 읽어 보도록 하자.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잠 16:6)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시 128:1) “곧 너와 네 아들과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신 6:2) 위의 성경절들은 하나님을 경외, 즉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그의 계명들을 순종하고 죄를 멀리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욥기 1:1 참조).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 까지라도,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아낌없이 제사로 바치려 한 순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네 아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두려워)하는 줄을 아노라.” (창 22:12) 부조와 선지자 상권, 189페이지에서 화잇 부인은 다음과 같은 영감의 말씀을 기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온 하늘 앞에서 그분의 종의 충성을 시험하여, 완전한 순종만이 받으시는 바 된다는 것을 증명하고 구속의 경륜을 더욱 완전히 저들 앞에 밝히고자 하셨다.”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는 말은 무슨 뜻을 의미하고 있는가? 다음의 해석은 우리에게 분명한 이해를 갖게 한다.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은 우리의 생애에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7 BC, 979) 데살로니가 후서 2장 13,14절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치신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시대의 소망 2권, 72페이지에서는 이 “영광”을 품성으로 해석해 주고 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하자 하나님께서 그 앞을 지나치시면서 당신의 형상을 보이시면서 자기의 이름을 선포하시었다. 당신의 이름을 선포하시면서 주께서는 오히려 당신의 성품의 특성을 열거하신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출 33: 34). 그러므로 쉽게 말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순종하며 죄에서 멀리함으로 속히 그의 품성을 우리 속에 온전히 이루라는 경고의 기별이다.

    이 말씀의 기별은 그 시간에 불문하고 언제나 진리이지마는, 그러나 새삼스레 급하게 경고하는 이유는 어디 있는가? 그 이유는 “그의 심판 하실 시간이 이르렀”기 때문이다. 1844년 이후 조사 심판이 하늘에서 진행되면서부터, 지구 역사의 대속죄일이 시작되었다. 이제는 모든 죄로부터 완전히 정결케 되고 죄의 도말을 경험한 참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러나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대속죄일의 정결 사업을 통과한 자들만이 새로 오는 새 하늘과 새 땅에 살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이다. 죽은 자들을 먼저 심판 한 후에 산 자들을 심판할 시기가 이르렀다는 경고가 첫째 천사의 기별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 기별은 세상 역사의 마지막에 전파되어야 할 최후의 자비의 경고의 기별이다. 아울러 첫째 기별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는, 즉, 창조주를 경배하라는 안식일 진리의 회복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그 이유는 마지막 세대가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순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먼저, 하나님의 율법이 온전하게 회복되어야 함을 시사하는 것이다.

    둘째 천사는 그 뒤를 이어 바벨론이 무너졌다는 기별을 전하고 있다. 첫째 천사의 기별을 거절한 교회들이 바벨론이 되어 도덕적으로 심히 타락하고 영적으로 어두워져서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영적 현실을 보여주는 경고의 기별이다. 하나님의 기별을 거절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참된 백성들을 핍박하게 될 때에 그 교회들은 바벨론이 되는 것이다. “바벨론으로 표상된 교회들은 그들의 영적 상태에서 타락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자들을 핍박하는 세력으로 바뀐 교회들을 상징한다.” (복음전도, 196)

    “교회들이 첫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이기를 거절 하였을 때 그들은 하늘에서 온 기별을 거절한 채 하나님의 은총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였으며, 첫째 기별을 거절함으로 둘째 천사의 기별 가운데 있는 기별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압제를 당하던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들은 ‘바벨론이 무너졌다’는 기별을 받고 교회들을 떠났다.” (초기문집, 244)

    “나는 예수께서 하늘에 있는 성소를 떠나 둘째 휘장으로 들어 가신 후 교회들은 부정하고 가증한 악마들로 가득 채워 온 것을 보았다. 나는 교회가 범죄로 크게 부패한 것을 보았는데 그래도 교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초기문집, 281)

    위의 글들을 참고해 보면 둘째 천사의 기별은 그 시기적인 적용에 있어서 천주 교회 보다는 타락한 개신 교회를 향한 기별인 것을 알 수가 있다. 천주교회는 이미 바벨론이 된지 오래 되었고, 1844년 재림 운동과 성소 기별의 빛을 거절한 교회들은 다름 아닌 개신 교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거의 역사가 다시 한번 전 세계적으로 반복될 터인데, 계시록 18장에 나오는 바벨론이 무너졌다는 큰 소리 외침은 마지막 종국에 가서 타락한 온 세상의 교회들이 늦은비를 받고 외치는 소수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장면에서 곧 다시 재현될 모습이다. 바벨론은 잘못된 오류의 가르침으로 더럽혀져 있는 교회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을 신뢰하다가 그들이 몰래 들여오는 바벨론의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먹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여야 한다. 오늘날 재림 교회 안에도 많은 바벨론의 진노의 포도주 잔들이 소개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진리를 고수하기 위하여 우리는 열심히 기도하며 투쟁하여야 한다. 또한 한가지 더 유의해야 할 점은, 항상 하나님께서 주시는 빛은 점진적으로 이르러 왔는데, 그러한 점진적으로 주어지는 하늘의 빛과 기별들을 무시하거나 거절할 때에 우리들도 항상 바벨론으로 빠져 들어 갈 위험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한다. 우리는 첫째 천사의 기별에 따라 하나님의 품성으로 온전하게 꼴 지어져 가고 있는가?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순종하고 있는지……

    셋째 천사의 기별은 시기적으로 보아 가장 중요한 기별이며, 세상을 향한 마지막 경고의 기별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은 큰 소리 외침과 함께 주어질 것으로 나타나 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능력으로 전해질 것을 말한다. 모든 것이 위기에 처해있다. 셋째 천사의 기별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 되어야 한다… 이 셋째 천사의 기별은 우리가 지구 역사의 마지막에 가까이 오면 올 수록 그 중요성이 증가된다.” (7BC 980)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의 역사에 있어서 일어나 빛을 발하여야 할 때가 있었다면 바로 지금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을 선포하는 데 있어서 그 음성을 억제 하지 않도록 하라. 어느 누구도, 세상의 인정을 잃어버릴까봐 단 하나의 빛도 흐리게 하지 않도록 하라.” (위를 향하여, 171)

    셋째 천사는 짐승의 표를 받지 말고, 그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고 외치고 있다. 이 기별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 곧 인내를 가지고,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짐승의 표 받기를 거절하는 마지막 성도들이 여기에 있다고 외치면서 그 끝을 맺고 있다. 이 셋째 기별은 두려움과 공포감을 일으키는 기별이라기 보다는 멸망하여 가는 인류를 향해, 애절하게 목메어 호소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절규의 음성이다.

    만일 우리의 어린 자녀들 가운데 고집을 부리면서 낭떠러지를 향하여 뛰어가는 아이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떨어지면 죽는다고 소리치면서 황급히 뒤따라 달려가던 어머니가, 급한 나머지 돌을 들어 그 아이의 다리를 쳐서라도 중지시키어, 그 아이를 살리려 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그 어머니가 무지막지한 사람이라고 불평할 수 있겠는가? 이 셋째 천사의 기별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자비의 호소이다.

    이 세상에 은혜의 시기가 마치기 전에 짐승의 우상이 서게 될 것이고 또한 짐승의 표인 일요일 준수가 강요될 것이요,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커다란 시련이 될 것이다 (7BC 976참조). 이 때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마에 쳐지게 되고, 짐승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손이나 이마에 짐승의 표가 쳐지게 된다. 교황의 권위인 일요일을 준수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안식일을 준수하느냐의 투쟁은 어떤 의미에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이요, 그 속의 기본적인 투쟁은 하나님의 계명을 전적으로 순종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하는 투쟁인 것이 다. 안식일은 우리에게 충성의 큰 시금석이 되는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품성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들에게만 찍혀질 것이다.” (본교회 성경 주석, 7권, 970) 예수께서는 이 땅에 계시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심으로 아버지의 성품을 나타내시었다. 우리도 예수의 믿음을 가질 때에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성도가 될 수 있다. 어차피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지킬 수는 없다고 하는, 다시 말해서 우리가 예수와 같은 죄없는 생애를 도저히 살 수 없다는 공격에 대하여 셋째 천사는 다음과 같이 외치고 있다. “성도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라고. 한마디로 쉽게 말해서 이 성도들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이란 말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화잇 부인께서는 셋째 천사의 기별이야 말로 참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 바로 그것이라고 말씀 하신 것이다 (복음전도, 190 참조). 자기가 매일 죽고 그리스도께서 자기 속에 사시는 경험을 통하여, 항상 내재 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계명들을 순종하여 하나님의 품성을 온전히 반사하는 자들 곧, 죄를 승리하는 자들만이 환란 때에 안식일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인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자들이 바로 믿음으로 의로워 진 사람들이다. 의로운 자들은 의롭게 사는 자들이며, 그 의의 척도는 역시 하나님의 계명인 것이다. 의롭게 사는 자들은 순종하는 자들이며, 순종치 않는 자들은 그들 마음 가운데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사랑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셋째 천사의 기별이 인치는 기별이라고 불리워지는 것이다. “나는 그때 셋째 천사를 보았다. 나를 시중드는 천사가 말하였다. 그의 사업과 사명은 놀라운 것이다. 그는 곡식을 가라지와 구별하여 인을 치고 묶어서 하늘 창고에 들이는 천사이다. 이 일에 온 마음과 주의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초기문집, 123) 우리가 세상을 향하여 바벨론의 거짓 가르침을 폭로하고 하나님의 인을 받도록 초청하려면, 먼저 우리가 진리로 거룩하게 되는 경험들을 이루어야 한다. 모든 죄들을 승리하는 경험들 말이다.

    “사단은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다고 주장 하였다. 또한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계명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형상을 취하시고 이 세상에 오사 당신의 완전한 순종으로써 신성과 인성이 연합될 때에 하나님의 모든 법도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셨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에는 그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살 수 있는 능력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가 온전하게 되기를 요구하신다. 그의 율법은 그의 품성의 사본인 동시에 모든 품성의 표준이 된다.

이 귀한 표준을 모든 사람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나라로 구성할 백성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데 대하여 오해가 없도록 하시기 위하심이다. 그리스도께서 사신 지상 생애는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표현한 것이니,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칭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을 가지게 될 때에는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 때에 주께서는 저들을 하늘 가족을 구성할 만한 자들로 인정하시게 된다. 저희는 그리스도의 의의 영광스러운 옷을 입고 임금의 잔치에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저희는 피로 씻은 옷을 입은 무리들과 연합할 권세를 가지게 된다.” (실물교훈, 326, 327)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 환란의 때는 모퉁이를 돌아 성큼 성큼 다가서고 있다. 세 천사의 기별을 이해할 뿐더러 체험하는 재림 교인들이 하루 속히 많아져야 하겠다. 그래서 세상을 경고해야 하겠다. 분명한 나팔 소리로 말이다. 아직도 이 세상에는, 바벨론이 받을 심판과 그 재앙들에서 피해 나와야 할 귀한 영혼들이 많이 있지 아니한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늦은비를 내리시도록 기도하자!! 그리하여 우리가 셋째 천사의 사명을 감당 할 수 있도록….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