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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복음” 성경에서 찾을 수 없는 복음

저자: 콜린 스탠디쉬|하틀랜드 대학장

성경이 말하고 있는 복음은 오직 한가지뿐인데, 그것은 믿음으로 의로워지는 칭의와 믿음에 의해서 성장되는 성화, 둘 다를 포함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의 기자들은 복음은 칭의만을 포함한다는 인간의 가설들을 성경을 통하여 분명하게 부인하고 있다.

잭 세퀴이에라 목사의 주장과 그 문제점

이번에 우리는 이 기사를 통하여 1888년 기별 연구 위원회의 가르침과 잭 세퀴이에라(Jack Sequeira) 목사의 저서, “믿음 저편” (Beyond Belief)의 중심적인 개념인 “객관적 복음” (Objective gospel)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주:객관적 복음이란 인간의 사전 지식과 동의 없이 인간을 의롭게 하는 방법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인간 내면에 어떠한 변화나 전환, 즉 성화 없이도 인간을 의롭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잭 세퀴이에라 목사는 그의 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함으로써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하고 있다. “거의 400년 동안 개신교는 구원에 관하여 두 개의 파로 나뉘어져 왔다. 첫 번째가 칼빈주의로, 그들이 주장하는 바는 그리스도께서 실제적으로 십자가에서 인간들을 구원하였지만 그 구원이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예정한 자들 즉, 선택된 자들에게 제한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견해는 알미니안주의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를 십자가에서 구원을 획득한 사실을 주장하지만 그 구원은 단지 모든 인류에게 제공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1]그들은 인간은 믿어야 할 뿐만 아니라 회개하여서 제공된 것을 자신에게 실제적인 것으로 만들어야 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단지 조건적인 복음에 불과한 것이다. “본인은 두 가지 견해 모두 구원에 대하여 완전한 진리를 제시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2]나는 하나님께서 무조건적으로, 실제적으로 십자가에서 모든 인류를 구원하셨다고 성경은 가르치며,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그러한 행위에 의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움을 받았으며, 화해되었다고 믿는다(롬 5:10,18; 고후 5:18,19). [3]나는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는 그가 의도적으로, 그리고 고집스럽게 그리스도 안에 제공된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을 거절하기 때문이다(요 3:18,19). 이것이 세상 끝날까지 여러 나라와 백성과 방언과 족속들에게 전해져야 할 계시록의 영원한 복음인 세천사 기별이다.” 믿음 저편 7-8. (미주 교회지남 94년 8월호, 5페이지에 번역 기재된 내용과 동일함).

그 책의 서문을 읽는 사람마다 머리 속에 붉은 신호등이 켜져야만 한다. 그러나 70년대와 80년대에 신신학의 기수였던 포드 박사의 가르침을 정확히 지적하여 오류라고 외치던 사람들 중의 많은 사람이 잭 세퀴이에라 목사의 가르침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그의 책, “믿음 저편”의 서문 중에서 위에 번호를 붙인 세가지 주장에 대해서 잠시 번호 순서대로 검토해 보도록 하자.

1. 구원을 얻기 위해서 우리가 믿고 회개해야 된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설교하신 복음을 부인하는 것이 된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마가복음 1:14, 15.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6.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 13:3).

2. 구원이 무조건적이라고 하는 주장은 구원은 믿음과 회개를 요구하지 않는다고 하는 주장과 같이 성경의 기초에서 벗어난 것이다.
“우리가 의롭다 하심과 거룩하게 됨과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엄연한 조건들이 있다.” 가려뽑은 기별 1권, 영문 377.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이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약 1:12).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약 2:5).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벧전 1: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이에 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약 2:22,23).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7).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 20:6).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계 22:14).

3. 세 번째에 제시되고 있는 개념도 우리를 오해하도록 이끌기 쉬운 것이다. 구원을 거절하는 것도 우리를 잃어버린바 되도록 유도하지만, 구원을 소홀히(등한히)여기는 것도 우리를 영원한 파멸로 이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히 2:3). ‘우리가 저항하거나 거절하지 않는 한, 우리는 구원받는다’는 개념은 그럴듯하게 들리는 개념이지만 여기에는 상당한 위험 요소가 내포되어 있다. 이 개념은 ‘우리가 아무런 결정을 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구원받게 될 것이다’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실제에 있어서 우리는 저항하거나 거절하지 않아야 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은혜를 결정적으로 선택해야만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잃어버린 바 될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 편에 서기 위한 선택을 해야만 한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거절도 선택도 하지 않은 채 중간에서 헤매고 있는가?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마 12:30).

잭 세퀴이에라 목사와 포드 박사의 공통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가르침에 있어서, 잭 세퀴이에라 목사와 포드 박사 사이에는 실제에 있어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 잭 세퀴이에라 목사가 제시하는 개념은 지금부터 약 20년 전에 포드 박사가 가르쳤던 것과 많은 동일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잭 세퀴이에라 목사와 포드 박사 사이에 공통되는 견해들을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다.

1. 구원은 칭의만을 의미하는 것이다. “칭의는 하늘을 위한 자격을 갖추는 데에 있어서 우리에게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되지 않도록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제공해 주신 그리스도의 의에 관한 모든 것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그분 안에서 완전하다.” 잭 세퀴이에라 목사의 저서, 믿음 저편 103.

2. 객관적인 복음(Objective Gospel)이 존재한다. “객관적 복음(그리스도의 입혀주시는 의)은 하늘을 위한 우리의 자격인데, 그것은 지금 현재와 심판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상동 36. 그러나 데스몬드 포드 박사와는 달리 잭 세퀴이에라 목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믿고 있다. 그는 인간이 변화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구원의 조건은 칭의이지 성화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3. 성화는 복음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것이 하늘을 위한 우리의 자격에 기여하는 것은 없다. “주관적 복음(그리스도의 나눠주시는 의)은 하늘을 위한 우리의 자격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입혀주시는 의에 대한 실제를 증거한다.” 상동.

4. 복음의 중심은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라는 말에 있다. “복음에 관한 사도 바울의 신학에 있어서 중심 주제는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사상에 있다.” 상동33.

5. 포드 박사와 잭 세퀴이에라 목사가 성소에 대한 많은 언급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한 구원의 모든 것은 2000년 전에 갈바리 십자가에서 완성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논리적으로 그리스도의 성소 봉사의 의미와 중요성을 격하시키고 있다. 구원의 세가지 국면, 즉 칭의, 성화, 영화가 우리 주 그리스도의 출생과 생애와 죽음과 부활에서 이미 성취되었다.” 상동 30.

6. 두 사람 모두 만인 구원론을 가르치고 있다. “나는, 하나님께서는 무조건적으로, 실제적으로 십자가에서 모든 인류를 구원하셨다고 성경이 가르치며, 그러한 행위에 의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았고 하나님과 화해되었음을 믿는다.” 상동 8.

7. 우리는 구원에 대한 적극적이고 계속적인 거절에 의해서만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가르친다.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는 그가 의도적으로, 고집스럽게 그리스도 안에 제공된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상동. 바로 이러한 가르침으로 인해서 수 많은 재림교인들이 구원에 대한 완전한 거절도, 완전한 받아들임도 하지 않은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이 구원을 의도적으로, 고집적으로 거절하지 않고 생각함으로써 만족하고 있다.
8. 우리가 죄를 범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칭의 가운데에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실수를 하고 죄에 빠질 때마다 우리를 거절하시지는 않으신다. 만일 우리가 죄를 범할 때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칭의를 잃어버린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진리를 완전히 무효화시키는 것이 된다.” 상동 104.

잭 세퀴이에라 목사와 포드 박사는 천주교회의 어거스틴에게서 그 기원을 발견할 수 있는 개신교회의 칼빈주의와 상당한 공통점들을 가지고 있다. 위에 열거한 개념들은 성소 기별 중에 나타나 있는 참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의 신앙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 것들이다. 비록 잭 세퀴이에라 목사가 성소에 대한 여러가지 가르침들을 그의 가르침 속에 섞고 있을지라도…. 그의 저서인 ‘믿음 저편’에서 그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주의 한 국면을 이루고 있는 하늘 성소에 대하여 심각할 정도로 무시하고 있다. 잭 세퀴이에라 목사는 자신의 책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대속 사업이 하늘 성소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이미 완성된 것으로 논리적으로 추측하게 만들고 있다. 그는 사실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속죄 사업이 지성소가 아닌 성소 뜰의 번제단에서 완성된다고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가 지성소에 속죄하러 들어가서 자기와 그 권속과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고 나오기까지는 누구든지 회막에 있지 못할 것이며” 레위기 16:17. 화잇 부인께서는 성소 기별은 우리 신앙의 중심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늘 성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봉사 사업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우리 신앙의 토대이다.” 복음전도, 영문 221. 우리 중의 어떤 사람들은 우리 신앙의 중심은 십자가라고 말한다. 물론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리고 그분의 희생과 죽음은 성소 기별에 있어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먼저 이해해야 된다. 성소 기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사랑과 공의로서 이루어지는 구원에 대한 정확하고 변할 수 없는 구속의 모든 역사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칭의와 성화를 분리할 수 있는가?

객관적인 복음에 대하여, 잭 세퀴이에라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구원은 그리스도의 지상 생애를 통하여 깨달아 알 수 있듯이 객관적인(칭의로 이루어지는) 진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신학적으로 객관적인 복음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믿음 저편 31. 그는 복음의 주관적인(나눠주시는 의, 즉 성화)면들을 인정하고 있지만, 구원의 문제에 관한 한 자신이 주장하는 객관적인(입혀주시는 의 즉, 칭의) 복음 이외의 어떠한 것도 인정치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복음을 우리 안에서 성취시키는 것으로서 구원을 설명하고 있다. 구원에 대한 이러한 국면도 복음의 객관성(칭의) 위에 덧붙여질 수는 없다.” 상동. 그의 객관적인 칭의에 관한 주장은 로마서 5장 18절을 근거로 하여 펼쳐지고 있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로마서5:18. “한 사람이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로마서 5:19.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사는 모든 인류는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라는 주장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데, 이러한 믿음은 잭 세퀴이에라 목사뿐만 아니라 1888년 기별 연구 위원회(1888년 기별 연구위원회란 1888년 기별을 해석하면서 칭의에 대한 면을 주로 강조하며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모든 인류를 다 칭의 하셨다고 믿는 그룹을 말함―현재 미국 내에서 있는 움직임임―역자주)가 믿고 있는 강력한 신조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주장은 화잇 부인에 의해서 가르쳐진바 된 “그리스도 우리의 의”라는 기별 가운데에서 찾아볼 수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중에도 없는 것이다. 1888년에 주어진 “그리스도, 우리의 의”에 관한 수천의 화잇 부인의 글 중에서 단 한 번도 칭의를 주관적인 형태와 객관적인 형태로 구분하여 분리시킨 적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지해야 한다. 1888년 기별 연구 위원회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칭의의 두 국면, 즉 사법적인(법적이고 일시적이며 통괄적인) 칭의와 믿음에 의한 실제적인 의로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들이 포드 박사와 다른 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 분명히 알아야 되는 것은 성경에서나 또는 예언의 신에서 의롭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 단지 법적으로만 의롭다고 선언하는 식의 사법적인 칭의에 관한 개념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일시적으로, 법적으로 칭의를 받았다는 사법적인 칭의에 관한 개념은 결국에 가서는 우리들을 오직 칭의에 의해서 구원받게 된다는 잘못된 믿음 가운데로 이끌고 가며, 이러한 것이 바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가르침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하늘 왕국에 적합하게 되어야 되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순종에 대한 중요성을 점점 더 소홀히 여기게 만드는 위험 가운데로 몰고 간다. 성경은 구원받게 될 사람들에게 있어서 “변화”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으로서 강조하고 있는 성경절들로 가득 차 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계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계 2:11).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 3:5).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계 3:12).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 3:21).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 5:23).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행 20:32).

“그리스도 안에”(in Christ)라는 용어의 뜻은 무엇인가?

잭 세퀴이에라 목사가 주장하는 객관적인 복음(칭의만의 복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둥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 안에”라는 표현이다. “복음에 관한 사도 바울의 신학의 중심 주제는 ‘그리스도 안에’(in Christ)라는 사상이다.” 믿음 저편 33. 그는 그것을 “집단적인 단일체”(corporate oneness)라는 기본적인 개념으로 삼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갈바리에서 돌아가셨을 때, 그분께서는 온 인류의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치르셨는데, 그 때 온 인류는 “그리스도 안에(in Christ) 함께 있었다고 하는 사상이다. 잭 세퀴이에라 목사가 “그리스도 안에(in Christ)라는 말과 의미를 설명하면서, 그는 성화를 인류의 구원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으로 제시하지 않았고, 칭의와 성화를 분리시키려고 애를 썼다. 잠깐 “그리스도 안에”와 관계된 그의 기별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그리스도께서는 성화와 칭의를 결코 구분하여 말씀하지 않으셨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요 6:56)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 14:20)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요 17:23)
그리스도와 인간의 연합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에서 가장 잘 엿볼 수 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요 15:4)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가지가 포도나무 안에 있는가? 아니면 포도나무가 가지 안에 있는 것인가? 말씀은 분명히 이 둘은 서로 서로가 서로의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in Christ)이라는 말과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Christ in)란 말은 별개의 분리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복음에 있어서 이 둘은 항상 함께 밀착되어 하나로 존재하는 것이다. 요한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in Christ)의 의미와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Christ in)의 의미를 계속해서 하나로 묶어 강조하고 있다.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요일 3:24) 바울 역시 이 둘을 분리시키지 않고 하나로 묶어 증언하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Christ in Me)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Christ in You)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골 1:27)

주관적인 복음(나눠주시는 의, 성화)과 분리된 객관적인 복음(입혀주시는 의, 칭의)은 성경 안에서 찾을 수 없는 인간의 논리이다. 하나님의 사법적 조치는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 인간에 대해서 취하여진 모든 하나님의 사법적 행위는 우리 그리스도인 삶 속에서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들을 반영하고 있다. 하늘이 우리를 의롭다(칭의)고 여길 때에 그것은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하였고, 우리가 지은 죄를 고백하였으며, 새로운 동기와 새로운 충동과 새로운 성품을 소유하게 되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또한 하늘이 우리를 성화되었다고 인정할 때에 그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께서 매일 거하심을 증거하는 것이다. 우리의 죄들이 조사심판에서 도말 되었을 때, 그 죄들은 하늘에 있는 기록책에서만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삶 속에서도 제거되었음을 선언하시는 것이다. 세상의 은혜의 시기가 마친 후부터 그리스도의 재림이 있기 전까지의 짧은 기간 동안에 이 땅에서 겪을 의인들의 중요한 영적 경험, 즉 야곱의 환란에 대해서 예언의 신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최후의 속죄에서 진심으로 회개한 자의 죄가 하늘의 기록에서 제거되고 다시 기억나거나 마음에 떠오르지 않게 되어 있는 것과 같이 그 상징에 있어서도 죄는 회중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어 광야로 옮겨진 것이다.” 부조와 선지자, 영문 358. “의로운 자들은 구원을 위한 그들의 진지하고도 고통스러운 절규를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어떤 특정한 죄들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자신들의 전 생애를 통해서 어떤 선한 것도 찾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죄는 심판이 이르기 전에 사라졌으며, 용서가 그들의 죄를 대신하여 기록되었다. 그들의 죄는 영원한 망각의 세계로 옮겨져 버렸고 그들은 그것들을 다시 기억할 수 없다.” 영적 선물 3권, 영문 135. “(은혜의 시기가 마친 후에) 성도들이 자신들의 무가치함에 대해서 깊이 느끼고 있는 동안 그들의 잘못을 고백하지 않고 숨겨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들의 죄는 이미 심판정에서 도말 되었다. 그들은 그 죄들을 다시 생각해 낼 수 없다.” 각 시대의 대 쟁투 하권 488.

영감의 말씀은 인간을 변화시켜서 모든 남녀 그리스도인들이 하늘 심판정을 위해 준비시키는 복음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잭 세퀴이에라 목사의 가르침을 거절해야 되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율법에 대한 행함은 하나님께 대한 미묘한 반역의 형태인데, 왜냐하면 모든 이와 같은 행위는 실제에 있어서 하나님께 대하여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믿음 저편, 97. 율법에 대한 행함 자체가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믿음으로 율법을 행하는 것은 반역의 미묘한 형태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반역은 우리의 육체를 통하여 율법을 행하는 것이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기업을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라디아서 5:19~21.

잭 세퀴이에라 목사와 1888년 기별 연구위원회는 그들이 성화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동안, 그들이 제시하는 논리는 그들의 말을 듣고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논리적으로 완전한 순종, 즉 성품의 완전이 구원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스스로 내리게끔 이끌어 간다. 그러나 영감의 말씀은 우리에게 명확하게 진리를 제시하고 있다. “그의 계명을 행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또 그 문을 통하여 도성 안으로 들어가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계시록 22:14. “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 마가복음 4:29.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 안에서 그분의 현시를 고대하고 계신다. 그리스도의 성품이 당신의 백성들 안에서 완전하게 재현될 때, 그분께서는 그들을 당신 자신의 것으로 주장하시기 위해서 강림하실 것이다.” 실물교훈, 영문 69.

잭 세퀴이에라 목사가 전하는 객관적인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능력과 하늘 아버지의 사랑의 선물에 대한 전적인 반응인 완전한 순종 없이도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결론으로 많은 사람들을 유도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그의 가르침에 불확실한 의문을 갖고 있다면, 우리는 과거에 포드 박사의 가르침으로 인해서 수없이 영적으로 죽어간 우리의 이전 형제들을 회고해 보아야 된다. 이러한 우리의 회고를 통하여 우리는 잭 세퀴이에라 목사의 가르침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끝으로 간단히 말해서, 객관적인 복음이란 천주교회의 어거스틴이 중세 시대에 만들어낸 인간의 상상에 의한 성경에 없는 복음인데, 이것은 결과적으로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저버리게 이끌 것이며, 하늘의 타락하지 않은 존재들과 함께 금으로 된 거리를 거닐 수 있는 자격과 적합성을 빼앗아가 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