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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교회를 향한 대 총회장의 호소

저자: 로버트 피어슨 목사

    이 글은 1973년에 열렸던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대총회의 연례 회의에서 대총회장인 로버르트 피얼슨 목사님과 행정위원들에 의해서 작성되었던 글이다.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하에서도 이토록 과감한 개혁의 호소를 교회에게 보냈던 지도자들에게 우리가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존경과 경의를 보낸다. 그러나 이 호소문이 각 지회와 연합회, 대회와 합회에게 발송된지 벌써 20년이 흘렀지만, 슬프게도 오늘날 이 글로 인해서 취하여진 어떠한 정책의 변경이나 개혁의 조치는 찾아 볼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자신과 교회를 위해서 “울며 탄식” 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할 때이다. 우리는 견고한 토대의 모든 독자들이 이 글을 주의 깊게 읽음으로서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또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편집실

    예수 그리스도의 두번째 오심이 오랫 동안 지연되어 왔습니다. 우리는 재림의 지연에 대한 원인이 어떤 신비에 싸여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현재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앞에 놓여있는 중요한 과제는 우리 주님의 재림을 촉진시키기 위한 일에 있어서 개인적이거나 단체적인 일의 우선순위를 새롭게 다시 편성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늦은비 경험의 충만함, 세째 천사 기별의 큰 소리 외침, 그리고 고대하던 주님의 재림을 위하여 교회를 준비시키는 일에 있어서 우리들이 긴박성을 느낀 첫번째 지도자들은 아닙니다. 남은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기별자들이 종종 이와같은 긴박성에 대한 호소를 해왔습니다. 특별히 1892년에 쓰여진 다음과 같은 말씀은 우리에게 명확한 비젼과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세째 천사의 큰 소리 외침은 그리스도의 의와 죄를 용서하시는 구세주를 제시함으로서 이미 시작되었다. 이것은 온 세상을 영광으로 가득 채울 천사가 전하게 되는 빛의 시작이다.” 그리스도 우리의 의, 56. 이 말씀은 일종의 영감적인 선언인데, 이것은 계시록 14:6-12 에 나오는 그들의 영광으로 온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세천사들과 합세하게 되는 “다른 천사” 가 전하는 계시록 18:1-4 의 성취가 시작되었다는 뜻입니다. 역사적인 미네아폴리스 대총회가 개최되었던 1888년으로 부터 4년이 지난 후,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 에 대한 신선하고도 강력한 강조가 재림교회 안에 일어났었는데, 그것을 가리켜 엘렌 화잇이 “큰 소리 외침이 시작되었다!” 라고 말 할 수 있었던 정도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1973년의 연례 회의에서는 오직 한가지 질문이 다른 모든 주제들보다 우선되어야 하는데 그 질문은 이것입니다: 1892년에 경고와 호소의 마지막 기별이 벌써 시작되었는데, 그 기별과 경험에 대해서 지금까지 우리 교회는 어떻게 반응해왔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는데 있어서 우리는 처음에 그 기별을 받았던 사람들이나, 또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사업을 이끌어왔던 사람들을 비난 할 의향은 전혀 없지만, 우리는 지나간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어떤 함정이 있음을 분명히 발견하게 되는데, 오늘날의 우리는 그것을 피할 수 있으며 그것으로부터 오히려 어떠한 교훈을 취함으로서 유익을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모두의 가장 중요한 관심은 “우리가 현재 해야 할 경험이 무엇인가?” 에 놓여져야 하며, 과거 우리의 부적당함과 불충함으로부터 벗어나서 승리를 향한 신속한 전환을 이루어야겠습니다. 오, 우리는 이미 오랜 세월동안 “늦은비의 시기” 하에 살아왔던 것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각계 각층의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풍요로운 승리의 경험을 하고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이른비의 경험 가운데에서 살고 있는 것이며, 주님 안에 있는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자기 만족과 자기 찬양에 대한 변명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아직도 교회는 요한계시록 3:14-19 에서 “참된 증인” 이 증언하는 것처럼 라오디게아의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오심을 촉진시키는 일에 있어서의 우리의 실패와 그로인한 재림의 지연에 대해서 연례 총회는 다음의 세가지 주요 요인을 지적했습니다:

1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보내는 그리스도의 분석과 호소를(계 3:14-19) 개인 적인 기별로서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2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개인적으 로, 교회적으로 하나님의 지도하심 에 대해서 불순종하고 있다.

3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교회가 해야 할 임무를 다하고 있지 않다.

    늦은비의 경험이 아직 교회에게 임하지 않은 것을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기별이 아직 우리 가운데에서 명확하게 이해되지 못하고 있으며, 우리에게 충분한 유익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을 맺게 됩니다. 다음의 인용 구절에서 예언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이 아직 성취되지는 않았지만, 이 말씀은 참된 증인의 요구 사항을 이행할 한 백성에 대한 필요성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모든 과정을 통과하고, 모든 시험을 견디고 이긴자들은 어떠한 댓가도 감수하고 참된 증인의 권면에 유의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늦은비를 받고 승천하기에 합당한 자들이 될 것이다.” 교회증언 1권 영문 187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은 높은 수준의 한 백성을 창출해 내는 그리스도와의 살아있는 관계를 포함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높은 수준의 한 백성” 이란 요한계시록 3:21에서 “내가 이긴 것같이”라고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승리와 정복을 경험하는 백성을 의미합니다. 이 기별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킨 사람들을 나타내 보일때, 주저함없이 전시할 수 있는 한 백성을 만들어 낼 것인데, 그들은 하늘의 거룩한 능력에 의해서 계속적으로 유지되는 선함과 의로움을 그들의 경험을 통하여 배운 사람들 입니다. 이와같은 사람들에게는 “늦은비”라고 하는 특별한 권능이 위탁 될 것인데, 왜냐하면 그들은 과거 예수께서 권능을 사용하셨던 방법대로 그들에게 주어진 권능을 사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인생의 모든 국면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반사하게 될 것입니다.
    말하고 행동하는 일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라고 일컬어지는 과정에 있어서의 목표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는 자복하지 않고 버리지 않은 죄를 덮는 가면이 아니다. 그것은 품성을 변화시키고 행동을 제어하는 생애의 원칙이다. 거룩함이란 하나님께 전체를 바치는 것이며, 마음 속에 있는 하늘의 원칙에 마음과 생애를 완전히 복종시키는 것이다.” 시대의 소망, 영문 555

    이번 연례 총회의 대표자들로서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의미하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교회가 필요로 하고 있는 것들 중에서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생애가 이 지상에서 실제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 앞에 전시하여 보여 줄 한 세대의 재림교인들의 출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이 감히 미치지 못할 모본을 보여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의 은혜가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수” 있습니다. 유다서 24.

    라오디게아의 각 교인들은 신학적인 지식이나 말씀에 대한 관주해석 이상의 것을 필요로 합니다. 그들은 성경과 예언의 신의 권위에 대해서 그들의 생애와 의지가 진실되고 완전한 굴복을 해야하며, 개인적인 생활 태도나 교단의 정책과 실행에 있어서 혁명적인 대변혁을 가져올 수 있는 굴복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모든 교인들은 그들 각자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촉진시키거나 지연시키는 일에 있어서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은 말씀하시길 “그리스도의 품성이 그분의 백성들에게 완전하게 재현될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당신의 것으로 주장하시기 위해서 오실 것이다.” 실물교훈, 영문 69

교회 지도자들로서 우리는 교회에서 발하여지고 있는 설교와 그것의 실행에 있어서의 불일치함 그리고 이러한 불일치함에 대한 계속적인 허용과 용납이 결국 교회의 사명완성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성경 말씀을 밝히 비춰주는 영감적인 증언의 말씀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증언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경험과 증거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면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으로서, 우리는 우리 각 개인에 대한, 그리고 교회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치에 대해서 무지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권면을 무시하거나 거절한다면, 우리는 불순종한 것으로 인정 될 것이며, 그리하여 우리는 주의 재림을 지연시킨 자들로서 간주될 것입니다. 주의 종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도 불순종으로 인해서 많은 세월을 이 세상에 남아있을 수 밖에 없다.” 전도법, 영문 696

    이번 연례 총회에서는, 교회의 지도자들로서 구성된 조그만 연구 위원회를 결성하여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한 권면을 순종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실패 할 수 있는 분야들에 관하여 철저하게 검토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면들에 있어서 좀더 큰 관심과 주의가 기울여져야 할 것을 지적하였습니다.

1. 철저한 안식일 준수
2. 하나님의 선물에 대한 올바른 청 지기 직분
3. 영혼의 통로를 잘 지키는 문제
4. 건강 법칙들에 대한 확고한 실행

    그들은 이 보고서의 결론으로서 교회 증언 9권 154페이지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존전에 서기 전에 이룩해야 할 사업이다.”

또한 이들 연구 위원회는 이혼과 재혼에 대해서 평상적인 태도와 자세를 취하는 문제와 같은 나태해진 도덕성을 지적했으며, 의복과 장식품에 있어서 세상을 흉내내는 경향의 증가에 대해서 깊은 염려를 표현했습니다.

    그들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기관들이 하는 사업에 대해서 광범위한 조사를 실시한 후, 어떤 기관들은 여러가지 면에서 하나님의 사업을 촉진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독특한 성격들을 잃어가고 있는 사실에 대한 증거들을 지적했습니다 (그리스도인 교육의 기초, 351을 볼것).

    개혁을 위한 진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관들의 규모가 증대됨에 따라서 개혁의 어려움도 커짐을 인식하게 됩니다. 사회적인 의식과 변화가 증가되고 있는 시대의 조류에 따라서 재림교회의 기관들이 세상 사람들이 참여하는 가치있는 일에 동참하게 되었지만, 반면에 오직 남은교회 만이 할 수 있는 사업들은 소홀히 여김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고등 교육기관들에 대한 가장 큰 위협 중의 하나는 세상의 교육기관에서 공부를 한 장래에 교사가 될 학생들에 의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받아들일 수 있는 거짓된 철학과 신학인데, 이런것들은 재림교회의 학교에 바벨론의 포도주를 가지고 올 것입니다 (계 14:8-10; 18:1-4).

    우리의 영성에 대한 계속적인 위협이 생활의 편리함과 수준의 향상, 그리고 세상에서 제공되는 것에 상당하는 높은 보수에 대한 욕구들로 인해서 증가되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주의 종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현대진리의 원천은 자기부정과 자기희생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우리는 우리의 사업의 초기동안 우리 사업에 있어서 특징을 이루었던 단순하고 자기 희생적인 정신으로 부터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 할 필요가 있다.” 가려뽑은기별 2권, 영문197

    우리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활과 교회 기관의 여러가지 면들을 검토했을때, 우리들은 많은 점들에 있어서 성경과 예언의 신에서 너무나 명백히 표현되어 있는 하나님의 권위와 뜻에 대하여 불순종하고 있는 사실로 인해서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현재 불순종하고 있는 점들을 하나씩 들춰내지는 않겠지만, 총회 일동이 모든 곳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탄원하노니 부디 부흥과 개혁을 위한 이 호소에 응답하여서 교회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대표하며 교회의 고유한 사명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연례 회의 대표로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강림을 지연시키고 있는 한가지 중요한 요소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온 세상에 세천사의 기별을 전파시키는 우리의 사명을 끝마치지 못한 것입니다 (계 14,18). 화잇 부인은 온 세상이 하나님의 구원하는 기별을 들을 수 있는 공평한 기회를 얻을 수 있을 때까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자비의 기별을 세상에 전파시키는 하나님의 목적이 그분의 백성들에 의해서 실현되었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이 땅에 오셨을 것이다.” 교회증언 6권 450
하나님께서는 1844년과 1888년 그리고 1901년 다시 한번 그분의 사업을 신속한 승리로 이끌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지연되었습니까? 또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서 1973년 연례총회의 대표자들은 전 세계에 있는 우리의 일꾼들과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호소를 보냅니다. 우리의 호소는 세가지이지만 결국에는 하나로 집약됩니다:

1 더이상 지체하지 말고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시며 탄원하고 계시는 구세주께 마음의 문을 활짝 여십시요. 그리고 예수님을 생애의 절대적인 지배자로서 받아들이십시요. 그분께서 우리를 변화시키고 지배하시도록 그분을 우리의 마음 속으로 초청합시다. 이른비가 내리고 있는 동안에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빛대로 생애하십시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모든 권면과 권고하심을 실행에 옮기십시요.

2 너무나 오랫동안 개인과 교회의 결정 사항들에 영향을 미쳐온 불순종의 정신을 버리십시요. 이것이야말로 우리 교회의 초기 역사 이후부터 지금까지 연기되어 온 늦은비의 새롭게 하심을 준비시키는 길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분께서 예언의 신을 통하여 은혜로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권면을 무시하고 있는 한, 하나님께서는 충만하신 그분의 영을 우리에게 보내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수 십억의 사람들에게 세천사의 기별을 전해야 되는 교회의 사명에 대한 각오를 새롭게 하십시요. 이 각오는 개인적인 헌신과 개인적으로 증거하는 일과 개인적인 희생을 요구할 것입니다. 더구나 이 일은 각 교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간섭하심을 필요로 하며, 모든 교인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일에 있어서 효과적이고 설득력있으며 사랑스러운 증인이 되기 위해서 늦은비 성령의 능력을 하나님께 탄원하는 일을 필요로 합니다.

    온 하늘은 하나님의 마지막 자비의 부르심을 짊어진 교회를 위하여 놀라운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완전한 백성, 즉 그리스도의 형상을 충만하게 반사 할 한 백성을 위한 하늘의 계획에 자신을 완전히 굴복시키는 모든 사람들에게 경이로운 일을 행사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진짜 부흥이 올 것이라는 사실이 다음의 증언에 의해서 명백해 집니다: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이 세상에 내리기 전에 주님의 백성 중에는 사도 시대 이래 일찌기 목격하지 못한 근본적 경건의 부흥이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과 권능이 그분의 자녀들 위에 부어질 것이다.” 대쟁투 영문 464 사단은 이 부흥이 오지 못도록 방해할 것이라는 사실 또한 분명합니다: “사람들의 원수는 이 일을 방해하려고 이 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거짓을 이끌어 들임으로써 이를 막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의 기만의 세력 아래 모이는 교회들 가운데는 마치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이 내린 것처럼 보이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신앙적인 큰 부흥이 일어난 것처럼 생각되도록 나타낼 것이다.” 상동. 만일 오늘날 전세계를 빠르게 휩쓸고 있는 카리스마적인 (대중의 지지를 쉽게 얻는) 운동이 하나님의 영이 예언한 거짓 부흥 운동이라면, 분명 하나님께서 그분의 남은 백성들에게 늦은비를 퍼부어주실 시간이 가까이 왔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련하고 절망적인 세상을 향하여 당신의 권능과 영광을 나타내보이실 수 있는 위대한 부흥과 개혁의 사업에 있어서 모든 교인들이 대회의 사역자들과 교회의 행정가들과 함께 손을 마주 잡을 것을 호소합니다. 우리는 모든 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탐구하고, 먼저 하나님의 왕국과 그분의 의를 구하며, 이 땅에서의 사명의 완수를 위해서 성령의 퍼부어주심을 위해 기도할 것을 엄숙히 호소합니다 (목사에게 보내는 권면, 506-512을 볼것).

    준비할 시간은 짧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마태복음 24장 4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