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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교회에서 성령이 거두어지는가?

저자: 드와잇 오스굿(Dewitt Osgood)

이 기사는 약 1800년에 걸친 교회의 역사 가운데 있는 이야기로서, 신약과 구약 시대에 있어서 베옷을 입고 하나님의 기별을 증거하였던 두 증인이 남기고 간 슬픈 역사를 독자들에게 회상시킬 것이다. 이 기간 동안 교회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한 듯하다. 구약시대 때에 불신으로 인하여 마음이 완악해진 이스라엘은 그치지 않고 계속되는 불평과 근접해 있는 이방인들과의 친교, 우상숭배로 인해서 성령을 근심케 하였고 고통을 주었다. 또한 안식일을 범하고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들 앞에 분명하게 제시된 하나님의 영을 거절하였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로서 그들 앞에 등장한 성령의 역사를 결정적으로 모욕하기에 이르렀다. 하나님께서 “성령에 참예”하게 만들었던 자들이 “은혜의 역사를 욕되게” 하였다(히 6:4, 10:29). 그들은 성령께서 교회에게 어떻게 역사하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신들의 체제 유지와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그들의 종교를 이끌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그들에게 역사하시고자 하실 때마다 그들은 그것을 자신들이 원하고 이끄는 방향과 방법에 일치하지 않는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무시하고 모욕함으로써 거절하게 되었다. 그러한 이스라엘 교회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그리스도 교회 역시 역사의 교훈을 배우는 일에 있어서 크게 실패하였다.

성령이 이른비로 퍼부어진 바 되자, 사도 시대의 그리스도 교회는 하늘 아래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과 죄에 대한 승리의 기별을 전파하였다(골 1:8, 23). 그러나 그들의 열심이 빛을 잃어가자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투쟁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불법의 비밀”이 이미 사도 바울의 시대에 그 사악한 역사를 시작하였다(살후 2:7). 고린도의 신자들에게 질투와 사악함과 고소하는 정신이 몰아 닥치게 되었다. “그들의 논쟁은 그들의 마음과 정신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폭로하였다.” 리뷰 앤 헤럴드, 1900년 12월 11일. 모든 배도의 뿌리인 불신은 “진리의 영”을 몰아내고 “오류의 영”을 향하여 그들을 재촉하여 이끌었다(요일 4:6). 그들에게 있어서 헌신의 정신이 크게 저하되었다. 엘렌 화잇은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는 각 시대의 그리스도 교회의 상태를 대표하는 것이며 그 기별들은 세상 마지막까지 뻗어나갈 것이라고 증언하였다(사도행적, 영문 585). 그리스도께서는 에베소 교회가 그들의 첫사랑에서 떠난 것을 책망하시면서, 만일 그들의 상태가 치유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 자신이 그들의 촛대를 옮기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회개와 개혁을 호소하셨다. 그분께서는 꺼져 가는 그들의 사랑에 바람을 불어넣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첫 번째 역사를 하심으로써 그들의 불꽃이 다시 열렬하게 점화되기를 소원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의 역사를 거절하였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영혼에 성령을 나누어 주심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 가려뽑은 기별 1권, 영문 386.

그런데 교회와 각 신자들이 어떻게 그들의 첫 사랑을 잃어버리게 되었을까? 예수로부터 그들의 시선을 돌림으로써 슬픔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서로의 결점을 보기 시작하였다. 실수들을 생각하고, 불친절한 비판을 함으로써 구세주와 그분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드러내신 위대한 사랑을 그들의 시선에서 잃어버리게 되었다…. 가장 슬픈 사실은 그들이 자신들의 잃어버린 바 된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교회 증언 8권, 영문 241.

“얼마 동안의 시간이 지나간 후에 교회에는 냉정한 정신이 스며들어 오게 되었다. 별다른 가치가 없는 것들에 대한 논쟁이 생기게 되었고, 이것으로 인하여 신자들의 눈은 예수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서로에 대한 사랑은 식어가게 되었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경고 받지 못한 채로 남게 되었다. 한가지 질문이 있는데 ‘그렇다면 오늘날의 교회는 어떠한가?’ 이다.” 리뷰 앤 헤럴드, 1903년 5월 26일자.

세속적인 정신이 마음에 들어오자, 거룩한 영께서는 떠나가고 말았다. 불경건한 것들과 연합해 있던 자들은 그들의 영혼을 빼앗기고 말았다. 초대 그리스도 교회의 말기에 있었던 정신과 상태가 지금 우리 재림교회에 재현되고 있다. 그 결과로 인해서 지금, 우리의 남은 교회는 마땅히 소유해야 될 능력을 잃어버린 채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세상과 함께 장난하는 동안에 교회는 세속적인 정신과 아이디어를 흡수하게 되며, 교회만이 소유하고 있는 독특한 성격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하여 성령께서는 당신의 선물을 교회로부터 거두어 들이게 되며, 교회의 뒤로 물러가는 형편을 말없이 조용히 눈물을 흘리시면서 지켜보시게 되는 것이다. 한편, “교회가 항상 교회 특유의 거룩한 상태를 유지해 왔다면 제자들에게 주어졌던 성령의 능력이 아직도 계속되었을 것이다.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마귀가 책망을 받고 쫓겨나며 교회는 능력으로 그 대적들을 두려워 떨게 하였을 것이다.” 초기 문집, 영문 227.

교회 안에서 세상과 세속이 춤을 추게 되면, 곧 이어서 교리적인 변화가 교회에 재앙으로 내리게 된다. “한 사람 한 사람 늙은 노장들이 그들의 자리에서 쓰러졌다…. 젊은 사역자들 중 어떤 이들은 반복된 진리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다. 신기하고 놀라운 어떤 것들에 대한 갈망으로 그들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더욱 기쁘게 하나 복음의 근본 원칙에 일치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교리를 도입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자신에 대한 신뢰감과 영적 맹목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과거에 그들이 가졌던 경험을 의심하게 하여, 혼란과 불신으로 유도하는 궤변을 사람들에게 교묘한 방법으로 전하였다.” 사도행적 영문, 580.

서머나 교회는 사도 시대에 이어서 나타나는 교회이다. 이 시기 동안, 이방 로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각종 핍박과 박해를 가하였으나 이와 같은 시련은 믿음을 파괴하는 대신 불신실한 자들을 체질해 내고 충성스런 자들을 더욱 더 견고하게 만들었다. 버가모 교회 시대가 이르자, 사단은 자신의 공격 책략을 바꾸었다. 개심하지 않은 이방인들이 교회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그리스도인들이 이교로부터 반쯤 개종한 자들과 타협함으로써 그들은 진리에서 점점 멀리 떨어져 가는 길을 걷게 되었다. 사단은 수많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기만할 수 있었기 때문에 크게 기뻐하였다. 사단은 반만 개심한 자들을 충동함으로써 여전히 하나님께 진실되게 남아 있는 자들을 핍박하였다.” 각시대의 대쟁투, 영문 45. 교회의 지도자들은 한 입으로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공언하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그리스도께 실제적인 영광을 돌리는 자들을 박해하였다. 종교 지도자들은 공적인 자리에서 공공연하게 세속과 세상을 견책하였지만 개인의 사생활과 은밀한 자리에서는 뒷문으로 세상과 세속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이 제정한 형식과 의식은 “주께서 말씀하시되”를 대신하였다. 두아디라 교회 시대에 와서 교회의 배도는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교회는 성령께 속한 권한을 자신들이 사용했으며, 성경의 유일한 해석 자로서의 교회의 권위를 세웠다. 교황권은 성도들을 핍박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안식일의 시간과 법을 변경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니엘 8:11-13절에 따르면 가시적인 교회는 진리를 땅에 던졌고, 하늘 성소를 짓밟았다. 양심에 따라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유는 유린당하였다. 초대교회가 복음의 단순성을 떠나서 이교의 관습과 의식을 받아들임으로써 부패하게 되자, 교회는 성령과 하나님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사람들의 양심을 지배하기 위해서 교회는 세속적인 권력의 지지를 구하였다. 그 결과, 교황권은 국가의 권력을 지배하는 교회가 되었고,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그것을 사용하였고 특히 이단을 형벌하는 일에 권력을 이용하였다.” 각시대의 대쟁투, 영문 443.

인쇄술의 발전, 그리고 발명과 지성주의 시대의 도래와 함께 사람들은 성경을 새로운 관심을 가지고 탐구하게 되었다. 종교 개혁은 성경을 번역하는 일에 박차를 가했으며, 평민들도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빛이 어두움을 쫓아 내었다. 사데 교회는 마틴 루터, 칼빈, 낙스, 요한 웨슬리와 같은 종교 역사의 거장들을 탄생시켰다. 하나님의 영이 사람들을 사제와 미신과 영적인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시켰다. 어떤 개혁자들은 꽤 큰 무리의 사람들을 지도자로 갖게 되었는데, 지지자들은 후에 교파를 형성하게 되었으나, 세월이 지난 후에 교단은 그들의 선구자들과 설립자인 개혁자들의 정신을 거절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의 선구자들의 정신인 받은 빛에 따라 실행에 옮기는 개혁 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교파주의는 개신 교회들을 자기 만족의 정신으로 옷 입혔고, 각 교파들을 제각기 새장 속에 가두어 놓았다. 영적 무관심과 무감각이 교회 안에 조장됨에 따라서 종교 개혁은 시들어가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의 개신교회들은 개혁의 길을 전진시키는 일에 실패하였다.” 그 결과로 인해서 “종교는 또 다시 형식주의로 빠져들게 되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서, “종교 개혁의 정신은 점차적으로 죽어가게 되었으며, 루터 시대의 로마 천주교회처럼 개신교회에 커다란 개혁의 필요성이 요구되었다.” 상동 297.

개신교회를 생성하고 꼴 지은 위대한 3가지의 진리가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믿음과 실행의 유일한 척도로서의 성경
2.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3. 각 개인의 양심이 지시하는 바에 따라서 순종할 수 있는 권리, 즉 각 개인이 제사장임.

이러한 진리를 변질시키기 위해서 사단은 교회 안에 위조 개혁을 집어 넣었다. “사단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가치를 인정하지만 그것을 가볍게 여기도록 이끌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하여 그들로 하여금 다신교도는 아니지만 칼로 새겨서 만든 우상을 섬기는 것과 다름없는 이 세상 사물에 몰두한 자들과 연합하도록 이끌었다.” 상동. 이리하여 교회가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동안, 사대 교회의 불꽃은 깜박거리며 꺼져갔다. 곧 이어서 하나님께서 세천사의 기별을 위해서 안수하신 빌라델비아 교회가 나타났다. 이 교회는 성령의 임재를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세상에 있는 당신의 종들을 인도하시고 그들을 통하여 구원의 사업을 이루시는 큰 운동을 하신다는 사실이 어떤 다른 진리보다도 명백하게 나타나 있다.” 상동 343. 모든 나라에서 복음의 불꽃이 일어났다. 전도지와 소책자들이 말씀의 설교와 함께 뿌려졌다. 천주교회의 사제인 마누엘 라쿤자 신부, 유대교회에서 개종한 죠셉 울프, 그리고 윌리암 밀러는 다니엘 8장 14절의 2300주야를 강조하였다. 예언의 수학적 정확성은 모든 신자들과 설교자들에게 도전을 주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심판의 시간이 되었”음을 공포하였고, 2300주야에 대한 예언이 그들의 선언을 지지해 주었다.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에 대한 기대감이 만연하였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이 되었을 때, 특히 1844년 가을이 되었을 때, 고대하던 사건이 일어나지 않자 각 교회에서는 성령의 계속적인 인도하심을 인식하지 못하고 거절하였고, 모든 예언적인 가르침에 대해서 대항하며 일어섰다. 그러나 자신들의 경험 가운데서 부인할 수 없는 성령의 임재를 경험했던 사람들은 빛과 인도하심에 대해 열심으로 성경을 연구하였다. 그 결과로 그들은 10월 22일에 대한 예언의 수학적인 계산치 뿐만 아니라 성소 정결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1844년 여름과 가을 동안에 세상에 선포되었던 기별인 밤중 소리는 마태복음 25:6절의 성취였다.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성령이 역사하심에 따라서 이전보다 강력한 부흥의 불길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하여 밤중 소리와 둘째 천사의 기별인 “바벨론이 무너졌도다”라는 기별은 심판의 시간에 관한 기별과 연결되었다. 그 결과로, “이 운동은 조수와 같이 각 곳으로 퍼져 나갔다…. 말라빠진 땅에 내리는 소낙비처럼, 성령의 은혜가 진지하게 간구하는 자들에게 내려졌다…. 성령의 축복이 신실하게 믿는 자들에게 충만하게 부어지자 성령의 부드럽게 하고 가라앉히는 능력은 사람들의 마음을 녹였다.” 상동, 400, 402.

정한 시간이 지나가고 날카로운 비웃음과 조롱의 폭풍우가 몰아쳤다. 사람들은 “우리는 혹시 거룩하지 않은 다른 영에 의해서 잘못 인도된 것이 아닌가?”라는 심각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다, 만일 그것이 악한 영이었다면, 우리들이 경험했던 것과 같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헌신의 경험으로 우리들을 이끌 수 없었을 것이다”라는 확신을 자신들의 경험 가운데서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재림 기별의 전파를 위한 그들의 헌신과 쓰라린 경험을 통해서 그들은 예언을 성취시켰다. “첫째와 둘째 천사의 기별은 적당한 시기에 전파되었고, 하나님께서 그 기별들을 통하여 하시고자 계획하신 사업은 성취되었다.” 재림 신도들이 그들의 경험을 되돌아 볼 때, “그들은 재림 기별을 전파하는데 나타난 성령의 능력을 감히 부인하지 못 하였고, …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서 고양된 마음으로 얻은 결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상동 405, 406.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시여,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고 기다리는 일에 지쳐있습니까? 빛을 계속해서 따라가는 일에 지루해 하고 있습니까? 하늘 가는 길 위에서 계속적인 헌신과 희생의 발자국을 남기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집니까? 만일 그렇다면 1844년 10 월23일 아침을 기억하십시오. “너희들은 속았다. 너희들은 신앙을 버리고 재림운동이 사단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라.”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하였다. 그들이 그들의 믿음을 버리고 그 기별에 주어졌던 성령의 능력을 부인하게 되면 그들은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것이었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한 바울의 말로 그들은 용기를 얻고 확고 부동하게 섰다. 그들의 유일의 안전책은 하나님께로부터 이미 받은 빛을 간직하고, 하나님의 허락을 굳게 붙잡고, 계속해서 성경을 연구함으로 더욱 많은 빛을 받기 위하여 오래 참아 기다리고 깨어 있는 길이었다.” 각 시대의 대쟁투, 영문, 408.

우리는 한 때 셋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서 기쁨으로 헌신하고 거룩한 생의 길을 걷다가 시련과 지루함과 세속이 주는 유혹으로 인해서 뒤로 물러간 형제들을 기억한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한번 받았던 빛을 등한시 하거나 거절한 자들이 이전보다 더 깊은 어둠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두려운 교훈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주여, 저와 우리 형제들을 붙잡아 주소서. 우리의 연약하고 흔들리는 영혼을 지켜주소서. 주께서 오시는 그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