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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가장 중요한 주제를 강조하고 있습니까?

-스캇 헌터(필명)

 나는 약 50여명의 재림 교인이 모인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 집회에서 설교자가 설교하던 도중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청중들에게 던졌다. “여러분들이 침례를 받기 전에, 여러분 중에서 얼마나 많은 분들이 술, 담배, 마약 그리고 비도덕적인 서적 등을 포기해야 된다는 가르침을 받았습니까?”

 그때 모든 사람들의 손이 올려지면서 자신들이 그러한 가르침과 서약을 했음을 나타냈다. 그러자 설교자는 곧 이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청중들에게 다시 던졌다. “여러분 중에 얼마나 많은 분들이 침례를 받기 전에 자아에 대해서 죽어야 되며 분노, 울분, 시기, 질투, 자존심, 인내하지 못함 그리고 기타 여러 가지의 죄된 감정과 태도를 포기하는 것에 대한 가르침을 들으셨습니까?” 그때, 오직 한 사람만이 손을 들어 자신이 그러한 가르침을 받았었다고 응답하였다.

집회가 마친 후에 나는 그 설교자와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그는 자신이 수 많은 재림교인들에게 동일한 질문을 했지만 그 대답의 비율은 항상 거의 동일 했었다라고 말하였다.

 나는 깊은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설교자가 내게 말한 그 사실은, 우리는 그 동안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우리가 교회로서 준비되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강조했지만, 동시에 개종한 사람들과 교인들을 다가오는 재림을 위해서 준비시키는 가장 중요한 경험, 즉 거듭남으로 이끌어 주는 일에는 실패해왔다라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행동을 정정하거나 신조의 순결함을 유지하는 것들을 통하여서는 결코 하늘 왕궁에 들어 갈 수 없다는 진리를 명백하게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

 그런 다음 또 다른 의문이 마음 속에 떠올랐는데, 그것은 우리 중에 어떤 사람들이 직면하게 되는 것으로써 좀 더 어려운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자신들을 자유주의적인 교인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역사적인 재림신자(Historic Adventist)”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들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와 살아있는 관계를 가질 수 있는가와 거듭남에 대한 실제적인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우리는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과 준비의 필요성, 그리고 세상과 교회의 상태를 말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강력한 인상을 줄 수 있다. 또한 사람들에게 거듭나야 될 것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에게 준비를 갖추는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일없이 준비해야 될 필요성만을 권면한다면, 그것은 마치 집을 잃어버린 어린아이에게 그의 집을 찾을 수 있도록 돕지 않은 채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고 재촉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경우에 준비하라는 권면과 경고를 듣지만, 어떻게 준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가르침을 듣지 못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리뷰앤 헤럴드, 1894년 11월 20일. 이 문제에 대한 백성들의 무지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그들을 영적으로 지도하는 자들에게 잘못에 대한 책임이 돌아가야 할 것이다. 백성들을 영적으로 지도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그들의 설교를 듣는 백성들이 이미 개심의 경험을 가지고 있던지 아니면 개심의 경험 가운데로 들어가고 있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의심할 여지 없이 믿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수 많은 종교적인 집회로부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실망한 채 돌아오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의 영적인 필요성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자극을 받아서 낙담할 수 있고, 그들 마음의 영적인 진공상태가 채움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그리스도인 생애에 대한 실제적인 이해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자신들의 필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직접적이고 곧바른 대답을 얻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들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기로 굳게 결심한 채 집으로 돌아가지만, 그들은 원수 마귀의 공격 수단들에 대해서 가르침을 받지 못했고, 자기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자아, 죄된 생각과 느낌과 태도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되는지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영적으로 희미한 빛 안에서 더듬거리며 헤매다가 발을 헛디디어 넘어지게 된다.

 그러다가 한동안의 실패 후에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애라는 것이, 말로 듣던 것처럼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결론을 갖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율법주의 속으로 미끌어져 들어가거나, 또는 자신들의 실패의 경험을 근거로한 다른 형태의 그리스도인 신앙을 갖게 되며, 아니면 완전히 뒤로 물러서게 된다.

 “나는 그대가 이 점을 분명하게 이해하게 되기를 원한다. 영혼들로 하여금 혼돈된 생각을 가지고 진리를 순종하게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마음과 의지를 어떻게 굴복하는가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는가에 대한 특별한 가르침을 원하고 있다.” 복음전도, 영문 152.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가르침인데, 그것은 ‘내가 나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이다.” 저자와 편집인에게 보내는 권면, 25.

 우리는 남은 교회에 동참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담배를 끊고, 마약을 금하며, 술과 나쁜 말을 하지 않고 악한 책과 해로운 텔레비전을 보지 말 것 등에 관하여 요구해야 된다. 성경은 그러한 나쁜 행습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다. “낮과 같이 단정히 행하며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롬 13:13)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6:19-21). 이러한 것들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외부적인 행위들인데, 각 사람에 의해서 개인적으로 억제되고 제압되어야 할 것들이다.

 그러나 갈라디아서와 성경의 다른 곳에서 미워함과 질투와 같은 외부적인 행위로 드러나는 죄가 아닌 것들을 또한 지적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한 것들은 마음과 감정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들인데, 그러한 것들 역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도록 한다.

 예수께서는 행위에 의한 죄보다도 마음으로 범하는 죄가 더 많음을 지적하셨다.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마5:21-22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7-28)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덕질과 거짓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마15:19)

 물론 인간이 다른 사람의 생각과 동기를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비록 그렇다고 할지라도 목사들과 침례 공부를 시키는 책임을 맡은 가르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행위를 보시기 전에 인간의 마음과 동기와 정신을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이러한 가르침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영혼의 곤고함을 깨닫게 할 것이며 자신의 마음을 굴복시켜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점(참된 개심)에 대해서 일깨워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목사들은 참된 개심을 설명하는 주제들을 특별히 강조할 것에 대해서 교육받을 필요성이 있다.” 믿음과 행함 19.

 우리는 울분, 분노, 인내하지 못함, 질투, 그리고 마음으로 범하는 다른 죄들에 대한 개심, 회개, 고백, 회복 그리고 영적인 승리에 대해서 지금보다 훨씬 더 명확하고, 실제적이며, 구체적으로 가르쳐야 된다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우리는 백성들이 자아와 죄에 대한 회개와 고백과 승리의 방법에 대해서 확실하게 가르침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영혼들이 그리스도께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이해하기를 갈망하고 있다… 많은 목사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조절되는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회개와 믿음에 대해서 설교해야 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청중들이 복음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의 주의를 얻기 위하여 다른 주제들이 준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청중들이 그들의 설교에 대해서 흥미를 나타내면 그들은 그것을 성공의 증거로 삼는다. 사람들은 구속의 계획에 대해서 무지하며, 다른 어떤 주제들보다 가장 중요한 이 주제에 대한 가르침이 필요된다.” 교회증언 영문 394.

 “새로 태어남은 이 시대의 세상에서 매우 희박한 경험인데, 그 이유는 교회 안에 너무도 많은 혼돈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많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성화되지 못했고, 거룩하지 못하다. 그들은 침례를 받았으나, 산채로 장사되었다. 자아는 죽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진 생명으로 일어나지 않았다.” 교회성경주석 6권, 1075.

 이제 독자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할테니 개인적으로 스스로 대답해 보기 바란다. 거듭남에 대한 필요성 뿐만 아니라 어떻게 그 경험을 가질 수 있으며, 어떻게 그 경험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단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설교를 들어본 적이 얼마나 되었는가? 그리스도와의 살아있는 관계를 실제적으로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책이 신간으로 나왔음을 알리는 광고를 본적이 얼마나 되었는가? 또한 그러한 주제들에 대한 기사를 종교적인 출판물에서 읽은지가 얼마나 되었는가?

 우리는 세상의 두려운 상태에 대해서 설교하고 기사를 써야 한다. 우리는 교회안과 밖에 있는 남녀들에게 위험을 경고해야 한다. 그들에게 짐승의 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하나님의 법과 심판에 대해서 알려주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성의 중요성과 그 속에 담겨있는 복음을 최선을 다하여 이해해야 한다. 또한 성경에 나타나 있는 여러 가지 교리들을 단순한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 오류, 교회 안과 밖에 존재하는 배도와 죄악, 그리고 우리의 주의를 사로잡는 마지막 사건들과 같은 주제들만 집중하는 동안,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실제적으로 중요한 문제인 새로 태어남에 대해서 소홀히 할 수 있으며, 거듭남 속에서만 발견 할 수 있는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관계를 잊어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진리와 모든 중요한 가르침에 대핸 변호 속에서도 우리의 주의와 관심이 실제적으로 중요한 문제로부터 벗어나지 않도록 경계하자. 성경과 예언의 신과 보편적인 타당성을 가지고 백성들에게 구속의 길을 교육시키는 것이 첫 번째 필요성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백성들에게 단순히 거듭나야 된다고 권면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그 경험을 발견할 수 있고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보여주어야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이것이 첫 번째 목표가 되어야 하며, 다른 모든 것들은 두 번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