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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스러운 침묵

-로웰 스카보로

 우리 모두는 “침묵은 금이다.”라는 격언을 잘 알고 있다. 그 말을 여러 다른 환경하에서 아름다운 진리로서 잘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침묵이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수많은 환경이 또한 존재한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은 비극적인 환경 중의 어떤 것들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천사 기별은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인간들에게 온 가장 심각한 기별이다. 그 기별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것으로써, 지구상의 모든 개개인들이 그리스도를 대하여 대항하던지 아니면 찬양하던 지를 결정하도록 이끄는 기별이며, 마지막 환란의 시기에 중보자 없이 당신의 백성들이 완전하게 설 수 있도록 이끄는 기별이다. 그분의 백성들이 과거에 이와 같은 일을 하도록 준비된 적은 결코 없었다.

 성경은 복음이 구성하고 있는 바에 대해서 명백하게 증거하고 있지만, 교회는 지난 역사를 통하여 이 주제에 대하여 논쟁해 오고 있다. 성령께서 우리의 선구자들을 특별하게 인도한 결과로 그들은 우리의 기별을 결정하는 성경적인 진리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적어도 우리의 교회 안에서는 영원한 복음에 대한 논쟁이 생긴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보였다. 엘렌 화잇을 포함한 우리의 선구자들은 성화가 복음을 구성하고 있는 한 국면이며, 계명에 대한 순종이 성화를 증거하는 참된 표증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우리의 교회는 점점 더 복음을 이해하고 설명하는데 있어서 복음 주의파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당신의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의 성취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대다수의 지도자들이 침묵을 일관하고 있는 비극적인 현실을 나는 부인할 수 없다.

 나의 이러한 염려를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에 우리 교회의 담임 목사님과 장로들이 모여서 회의를 한 적이 있었다. 그 회의의 주제는 구원과 순종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그 목사님은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순종은 어떤 부분도 차지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강력하게 역설하면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 목사님이 목회학 과정을 마치고 전도사 생활을 시작하려고 준비하던 때에, 목사님의 담당 교수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교수는 그에게, 계명에 대한 순종이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는 식의 설교를 할 것이냐고 물었다. 목사님은 “아니요, 나는 그런 설교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는데, 그 때 그 교수는 “자네는 계속해서 그 입장을 고수해야 하네.”라고 권면하였다고 한다. 그런 다음 목사님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 교회의 인쇄소로부터 나오고 있는 어떤 책들에서도 계명에 대한 순종이 구원의 조건이 된다는 글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후 수년 동안 나는 교회에서 나오는 여러 책들을 관심 있게 보게 되었는데, 결국 그 목사님이 말했던 바가, 예언의 신을 제외한 대부분의 출판물에 있어서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목사님은 얼마 전에 은퇴하였다. 그가 말한 내용은 지금부터 40년 전에 있었던 신학 교수와의 대화 내용이었으며, 그의 목회 생활 중에 읽었던 출판물에 대한 견해였다. 그러나 나는 그 목사님이 다음과 같은 글을 읽었을 것을 믿는다. “그리스도께서는 법의 요구를 경감시키지 않으셨다. 오해할 수 없는 언어로 그분께서는 영생의 조건으로서 법에 대한 순종을 제시하셨다.” 실물교훈, 영문 391. 구원은 “자원하는 순종”에 의해서 얻어진다. (상동, 117)

 누가복음 10:25~28에서, 율법사는 법을 인간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요약하였다. 그때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하셨다. 시대의 소망, 영문 498에는 이 성경절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석을 하고 있다. “인간의 운명은 전체 법에 대한 순종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극치인 사람에게 당신의 요구를 이해하며 그분의 율법의 공의와 자비, 그리고 그에 대한 율법의 신성한 요구를 납득할 능력을 주셨고, 사람에게는 성실한 순종이 요구되었다.” 부조와 선지자, 영문 52.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14:15 이 성경절에 대한 해석을 살펴보자. “이것이 하나님의 법의 개요와 요지이다. 아담의 모든 아들과 딸들의 구원에 대한 표현이 여기서 그 윤곽을 나타내고 있다.” 재림교회 성경주석, 1권, 1105.

 “모든 나라와 민족과 방언과 백성들에게 전파될 복음은, 영생을 얻은 조건이 순종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분명한 진리를 제시하고 있다.” 상동 7권, 972.

 우리는 우리가 전하는 모든 복음에서,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위한 조건으로 순종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나타내야 한다는 사실을 주목하고 있는가? 약 100년 동안이나 엘렌 화잇의 글과 사상이 포함된 책들이 사방에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목사님은 그러한 글들을 읽거나 이해하지 못한 듯 했다.

 몇 해 전에 나의 한 친구가 구원의 조건으로 순종이 요구된다는 내용이 담긴 책을 발행해냈다. 같은 기관에서 고위 직책을 맡아 일하던 그의 친구가 내 친구의 글을 잃게 되었다. 책을 읽고 난 후, 그는 나의 친구에게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에서 그는 그 책의 내용 중에서 구원의 조건을 순종으로 표현하고 있는 글들을 빼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는 그러한 글을 교회 내에서의 내 친구의 영향력을 급격히 감소시키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감사하게도 나의 친구는 그의 조언을 따르지 않았다. 나는 그가 반대하였던 내용의 글이 예언의 신에서 발췌한 글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교단 안에서 글을 쓰고 있는 수많은 저자들과 편집인들이 내 친구의 책을 반대한 사람과 동일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년 전, 내가 캘리포니아의 한 큰 교회에서 과정공부를 가르치고 있을 때, 나는 나의 반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위한 조건으로 당신의 계명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십니까?” 모든 반생들이 한동안 침묵을 지켰는데, 그때 한 자매가 “그렇습니다”라는 대답을 했다. 그러자 그 대답을 기점으로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자매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 문제에 관하여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로부터 1년 후에, 나는 다른 반을 맡아서 과정공부를 지도하게 되어서 동일한 질문을 했지만, 그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때 이후부터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동일한 질문을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거의 예외 없이 직접적이고 분명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들의 답변은 대개 다음과 같았다. “글쎄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법에 순종하기를 원하시겠죠. 그러나 우리는 행함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들 모두는 “우리는 행함에 의해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기사와 설교를 수없이 듣고 읽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법에 대한 순종이 요구된다고 말하는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율법주의로 밖에 들리지 않게 되었다. 거의 모든 재림 교인들이 이러한 입장을 조금씩은 가지고 있는듯하다. 하나님의 법에 대한 마지막 대쟁투가 눈 앞에 다가온 이때, 계명에 대한 순종이 대쟁투의 중심을 이루게 되는 마지막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데, 우리는 구원과 순종을 분리시켜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설교 단상과 출판물들에서 흘러나오는 침묵은 두렵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구원을 위하여서는 순종이 요구된다는 분명한 가르침이 모든 우리 백성들 앞에 놓여져야 한다. 만일 우리가 지나간 과거 동안에 그렇게 가르쳐왔었다면,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 구원에 관하여 이토록 다양한 견해가 난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우리를 버릴 때, 진리와 의를 옹호하여 굳게 서고, 투사가 적을 때,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는 것-이것이 우리의 시험이 될 것이다.” 교회증언, 5권, 141. 구원과 관련 있는 순종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이 오랜 세월 동안 침묵 속에 파묻혀 있음으로 인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진리를 버리게 되었으며, 늦은비와 멀어지게 되었다.

 물론, 세천사의 기별을 진실하게 믿고 있는 신실한 재림교인들이 교단 안에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서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실 것이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동료일꾼들과의 연합과 화목이 마땅히 전파되어야 할 진리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다. 진리를 버리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에 대한 책임은 이러한 기만과 소홀함에 돌려져야 한다. 당연히 분명하게 강조되어야 할 진리가 침묵 속에 싸여 있는 동안, 수많은 영혼들이 영생을 잃어버려가고 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위해서 법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신다 라고 믿을 때, 그가 행함으로 구원 받을 수 있음을 믿는 것은 아니다. 순종할 것을 요구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그러한 뜻을 전달한 것은 선지자들이고, 그러한 뜻을 받아들인 것은 남은 자손들이었다. 물론, 우리는 행함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진리를 알고 있다. 우리가 반드시 이해해야 될 것은, 우리의 순종은 새로 태어남과 함께 시작될 수 있으며, 성령께서는 거듭난 우리의 순종을 인도하시는데, 이러한 순종이 하늘을 위한 우리의 적합성을 증거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구원에 대한 조건으로서 새로 태어남(거듭남)을 제시하셨다.

 성령의 역사 중에서 최고의 역사는 사랑, 즉 그리스도의 의를 인간의 마음에 나누어 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나누어 받은 사랑이 우리를 순종으로 이끄는 것이다. (로마서 5:5; 오늘의 나의 생애, 영문 49; 교회증언 8권, 영문 139; 교회증언 9권, 영문 40 참조)

 구원의 조건을 거듭남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말할 때, 그것은 곧 구원의 조건으로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말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순종은 단지 성령께서 나누어 주신 사랑의 외적인 표현일 뿐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요일 3:9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요일 3:6. 엘렌 화잇은 이 성경절들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법을 고의로 범하지 않음.” 시조 1896년 4월 30일자. 이 말의 의미는 영으로 태어난 자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뜻임에 분명하다. 따라서 영으로 태어남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분리할 수 없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 믿음과 사랑에 의해서 이루어 지는 순종, 거기에는 율법주의나 행함으로 구원 받는다는 식의 망상이 비집고 들어설 여유가 전혀 없다.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바로 이것이 하늘을 위한 적합성이 되는 것이다. 시대의 소망, 영문 161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기록되어 있다. “타락한 천사들과 타락하고 속된 인간들을 제외한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들(천사들과 사람)에게는 거룩한 영이 내재하고 있다. 성령의 내재하심이 우리를 하늘 가족과 연합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성령에 의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게 된다.

 1970년대 후반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셋째 천사 기별을 거절하는 수많은 책들과 설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당시 주류를 이루고 있던 가르침은 복음은 성화를 배제한 칭의 만을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가르침은 결국 순종은 구원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평신도들에게 우리의 참된 입장을 밝히는 기사나 설교들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한 가르침에 대한 계속적인 정정이나 교정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조용한 침묵만이 교회를 채우고 있었다. 오히려 구원을 위해서 필요한 조건은 아무것도 없다는 식의 값싸고 무조건적인 구원론이 판을 쳤다. 나를 포함하여 수많은 평신도들은 지도자들이 너무도 조용한 것에 대해서 놀랄 뿐이었다. 그들의 그러한 침묵이 오늘날 교회에 이토록 비참한 현실을 가지고 온 것이다.

 지도자들은 남은 교회의 입장을 분명하고 선명히 밝히는 대신에, 1979년 대총회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에 대한 토의를 1980년 글레이설 뷰우 회의 때까지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그 기간 동안, 배도는 좀 더 깊이 교회 안을 파고 들 수 있게 되었다.

 그때로부터 15년이 지나간 지금까지, 우리의 출판물들 가운데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 외치는 아무런 경고의 음성도 들을 수 없었다. 오직 몇몇 설교 단상에서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순종이 우리의 구원에 대한 조건이라는 분명한 가르침이 새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이 포함하고 있는 복음이 왜곡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교회와 합회와 연합회와 지회와 대총회에 수치스런 침묵 만이 흐르고 있는 것에 대한 하늘의 엄청난 보응이 곧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수치스런 침묵으로 인하여, 너무도 많은 영혼들이 남은 교회 안에서 분명한 진리를 듣지 못하고 무덤 속으로 사라져 갔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