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신 55
저자: 엘렌 G. 화잇
여러 주일 동안 나는 새벽 3시 반 이후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우리의 상태에 관하여 깊이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진리에 대하여 더욱 큰 빛과 지식을 가지고 있으므로 진리를 믿노라고 입으로 공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진리를 실천함으로써 받은 바 빛을 전진시켜야 할 더욱 큰 책임을 지고 있다. 우리가 진리를 실천할 때에 비로소 세상의 빛이 되시는 예수님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성으로서 항상 향상하고 점진적으로 신령한 사상에 젖지 않는다면, 우리는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행치 않으면서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가는 생애를 살아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는 거의 생각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더욱 생각하며, 주님의 은혜가 우리의 일상 생애에 작용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세계 역사의 중대한 시기에 살고 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며 시간은 빨리 흐르고 얼마 안 있어 하늘에서는 “다 이루었도다”(계 21:6),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계 22:11)는 말씀이 들려올 것이다. 우리의 증언들을 예리하게 해야 하며 하나님을 든든히 신뢰해야 한다. 나는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의 심령에 역사하시도록 새벽 1시 혹은 2시 혹은 3시에 일어나서 기도하는 일을 그칠 수 없다.
나는 온 하늘이 이 지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업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섬기는 천사들은 열렬하고 살아 있는 모든 믿음의 기도를 응답하려는 목적으로 예수그리스도의 명령을 즉시 순종하기 위하여 보좌 주위에 대기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믿노라
고 공언하는 많은 영혼들이 기도를 멀리하는 생애를 사는 것을 볼 때 민망스럽게 생각한다. 저들은 마음 가운데 성화되고 세련된 신령한 능력을 이끌어 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것이 에수님을 얼마나 슬프시게 만드는지 알고 있다. 나는 그분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아니하였도다”고 우시며 부르짖으실 때에 그분의 슬픔이 얼마나 컸는지를 생각한다(눅 13:34).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이 큰 빛과 축복을 가진 사람들에게 적용되기를 원치 않으신다. 예루살렘이 거절 당한 것은 그들에게 맡겨졌던 위대한 기회들과 보배로운 빛들을 그들이 경하게 여김으로 큰 특권들이 남용된 때문이었다.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는 특권은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가납하심을 받았다는 증거가 아니라, 하나님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위탁하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큰 빛과 특별한 이점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여 구원 받을 백성들은 없다. 그러한 하늘이 베푸시는 호의는 단지 그들의 책임을 증가시킬 뿐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더 많고 증가된 빛은 그 빛을 받은 자들의 책임을 더욱 많게 만드는 것이다.
만일 특권들이 현명한 방법으로 개발되고, 고귀하게 취급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진전시키는데 사용되지 않는다면, 비록 특권을 받은 자들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더 안전한 위치 가운데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화가 있을 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 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서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1:21). 예루살렘이 하나님에게서 분리된 것은 그들이 범한 죄 때문이었다. 예루살렘은 두로와 시돈이 결코 미치지 못하는 높은 위치로부터 떨어져 버렸다. 한 천사가 타락할 때 그는 그리스도의 원수가 되었다. 우리의 파멸의 깊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크신 인애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비로 우리를 일으키신 높은 빛에 의해 측정된다.
아,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에게 부여된 특권들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이 사랑하는 당신의 백성들을 인도하시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빛 가운데에서 걷기를 거절하기 때문이다. 그분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 가장 고상한 진
리를 맡겨 주시고 하늘의 빛으로 축복하신 백성들을 왜 끝까지 인도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와 목적의 놀라운 계시에 일치하여 영혼을 향상시키지 못하며 품성을 계발시키지 못함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표준에서 멀리 뒤떨어진 생애를 살고 있다.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잠 14:34)는 말씀이 있다. 과연 죄는 조직과 질서를 파괴한다. 개인의 심령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간에 죄가 어디에 있든지 인류와 하나님의 원수인 마귀가 정신을 지배하기 때문에, 그 곳에는 무질서, 반목(反目), 적대행위, 원한, 시기심 및 질투심 등이 있다. 그러나 진리를 사랑하고 주장할 뿐만 아니라 생애 가운데 실천할 때 남녀들은 죄를 미워하게 되고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산 증인이 될 것이다.
진리를 믿노라고 주장하는 백성들이 빛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해서 정죄를 받게 될 것이 아니라, 저들이 큰 빛을 가졌으면서도 하나님의 크신 의의 도덕적인 표준에 대한 시험에 저희 마음을 복종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정죄를 받게 될 것이다. 진리를 믿노라고 주장하는 백성들은 진리를 실천해 나감으로써 생애를 향상시켜야 한다. 성경에 기초를 둔 참된 신앙은 생애에 영향을 끼쳐야 하며, 품성을 정화하고 고결케 함으로써 점점 더 거룩한 모본을 닮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가정은 하나님께 올리는 감사와 찬송과 기도의 음성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천사들은 가정 안에서 봉사할 것이며 기도하는 집으로 향할 때 그 뒤를 따를 것이다.
진리를 믿노라고 주장하며 하나님의 율법을 옹호하는 교회들은 먼저 그 율법을 지켜야 하며 모든 악에서 떠나야 한다. 교회의 각 신자들은 개인적으로 악을 행하게 하는 시험과 죄 가운데서 방종하게 하는 시험을 거부해야 한다. 교회는 회개와 겸비와 마음을 깊이 살피는 것으로써 순결케 하는 사업에 착수해야 하는데, 이는 우리가 상징적인 대속죄일, 곧 영원한 결과가 따르는 엄숙한 시간에 처하여 있기 때문이다. 진리를 가르치는 자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그대로의 진리를 증거해야 한다. 품성을 완화시키며 성화케 하고 감화력을 순화시키는 하나님의 진리로 말미암아 저들은 깨끗한 그릇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저들이 성경을 기초로 한 신앙의 영향을 받을 때에 저들이 세상에 끼치게 될 감화력은 얼마나 클 것인가! 교회의 신자들은 각자가 순결하고 확고한 요지부동의 신앙으로써 항상 예수님의 풍성한 사랑을 간직하고 세상에 비취는 빛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파수꾼으로서 또는 양떼를 지키는 목자로서 엄숙한 진리를 선포해야 하고 모든 백성과 나라와 방언에게 경고의 기별을 전파해야 한다.
저들은 저희 자신이 주장하는 진리의 산 증인들이 되어야 하며 율법의 요구에 엄격하고 거룩하게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율법을 존대하고 순결과 신령한 생애로써 주님 앞에서 행하면 진리를 선포할 때 따르는 능력이 도처에 빛을 반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당신을 버리기까지는 결코 어떤 백성이나 개인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외부적인 압력이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하나님의 백성의 신앙을 흐리게 하지 못할 것이다. 순결성과 진리를 실천하는 일을 등한히 함으로 하나님의 영을 근심케 하며 자신의 생애를 약화시킬 것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저들 가운데 계셔서 축복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내부적인 부패는 하나님의 경고가 예루살렘에 임하였던 것처럼 이 백성에게도 임할 것이다. 아, 탄원의 음성과 열렬한 기도가 들려와야 할 것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하는 자들은 자신이 버림을 받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의 형제들이여, 우리는 우리 앞에 무엇이 놓여 있는지 알지 못하며, 우리의 유일한 안전책은 세상의 빛이신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고대의 소돔과 고모라 성과 고대의 예루살렘 성에 당신의 진노를 내리게 한 죄들이 우리의 죄가 되지 않게 할 때, 우리와 함께 일하실 것이며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의 가장 작은 부분일지라도 범죄한 사람은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므로 간절한 회개와 죄를 버리는 일이 없이는 그는 분명히 배도자가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 도덕적인 불결과 가증한 죄의 장막을 정결케 해야 할 것이다. 의의 도덕적인 표준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백성들에게 죄가 만연할 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을 우리를 위하여 베푸시며 의를 행한 백성처럼 우리를 구원해 주시도록 기대할 수 있겠는가? 세상의 모든 정책도 우리를 마지막의 무서운 체질로부터 구원할 수 없으며, 모든 권세를 동원하여 행사하는 모든 노력도 우리를 하나님의 매로부터 들어올릴 수 없을 것인데, 이는 바로 죄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믿음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펜과 음성으로써 옹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의식적으로 단 하나의 계명이라도 범할 때는 허약함과 패망이 우리에게 임할 것이다. 우리의 모든 교회에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각자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교만의 죄를 버려야 하며 의복에 대한 모든 사치성을 극복해야 하고 선교지에서 하나님의 사업을 유지하기 위하여 마땅히 창고에 들여놓아야 할 돈에 대하여 들여놓지 아니한 엄청난 도둑질을 하나님께 회개해야 할 것이다. 개혁 사업과 참된 회개를 백성들에게 제시하고 역설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하는 사업과 우리의 처신이 이 때를 위한 사업과 일치하므로써 “내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처럼 나를 따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겸비와 금식과 기도로써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영혼들을 낮추어야 할 것이며 죄를 회개하고 버려야 할 것이다.
참된 파수꾼의 음성은 계속적으로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사 21:12)고 외쳐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여호와의 크신 날을 준비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분명한 나팔 소리를 내야 한다. 우리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역류하여 헤엄쳐 가는 강한 사람처럼 투쟁할 지 모르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탄원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실패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 사이에서 존귀히 여김을 받으실 것이다. 그들은 순결해야만 하며, 자아에서 벗어나야만 하고, 견고하며, 요지부동하고, 주님의 사업 안에서 늘 충만해야만 한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신뢰하는 가장 겸손한 영혼을 높이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사람이 다니엘처럼 그분을 영화롭게 할 때 당신의 능력을 그의 노력에 더하실 것이다. 그러나 한 백성으로서 우리는 의와 성결과 진리의 아름다움을 필요로 한다. 가장 조화를 잘 이루는 이론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여러 가지 교리들이 범람하고 있다. 수천 가지 수만 가지의 교리를 가르치는 종교단체가 많이 있으나 하나님의 기호와 특징이 있는 종교는 오직 하나뿐이다. 인간의 종교도 있고 하나님의 종교도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혼을 영원한 반석에 고정시켜야 한다. 하나님의 세계 가운데 있는 모든 것, 곧 인간과 교리와 자연계 자체가 하나님의 예언의 확실한 말씀을 성취시키고 있으며, 이 세계 역사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장엄하고 종결적인 사업을 성취시키고 있다. 우리는 준비해야 하며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려야 한다.
국가들은 그 중심부로부터 흔들리게 될 것이다. 품성을 시험하는 유일한 시금석이 되는 하나님의 의의 표준을 선포하는 자들에게서 돕는 힘이 거두어질 것이다. 국가의 법령에 굴복하지 않는 자들과 하나님의 거룩한 날을 무시하고 죄의 사람이 제정한 안식일(일요일)을 높이라는 국가의 법령에 순종하는 자들은 모두 법왕권의 억압하는 세력뿐만 아니라 짐승의 우상인 개신교 세계의 압박하는 세력도 받게 될 것이다. 사단은 기만하기 위하여 자기의 이적을 행할 것이며 자기의 권세를 마치 최상의 권세처럼 내세울 것이다. 교회가 마치 쓰러질 것처럼 보일 것이나 교회는 결코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교회는 시온에서 죄인들을 추려내고 보배로운 알곡에서 쭉정이를 가려낼 때까지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은 실로 두려운 시련이지만 이 일은 반드시 겪어야만 할 것이다. 어린 양의 피와 증거의 말씀으로 승리한 자들 외에는 아무도 충성되고 참된 자로 발견되지 못할 것이며, 죄의 흠과 점이 없고 입에 거짓이 없는 자로 판명되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자칭 스스로 의롭다는 정신을 벗어버려야 하며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어야 할 것이다.
진리를 순종함으로 저희 영혼을 순결케 한 남은 무리들은 시련의 과정을 통해서 힘을 합칠 것이며 배도에 둘러싸인 가운데서도 신성의 아름다움을 나타내 보일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내가 … 손바닥에 새겼”(사 49:16)다고 말씀하셨다. 시련의 경험들은 영원하고 소멸되지 않는 기억 속에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원하는 믿음은 산 믿음이다. 우리는 죄인의 마음을 예리하게 찌를 만한 산 증언을 갖기 원한다. 설교하는 일은 지나치게 많으나 봉사하는 일은 너무도 적다. 우리는 거룩한 열정과 감동을 원한다. 우리에게는 진리에 대한 열렬한 사상이 필요하다. 많은 목사들은 저희 자신의 품성의 결함으로 말미암아 절반은 마비된 상태에 있다. 저희에게는 하나님의 회개케 하시는 능력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에 그에게 요구하신 것은 당신의 율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아담에게 요구했던 완전한 순종, 곧 흠이 없는 의, 주님의 안목으로 보실 때 결점이 없는 상태를 요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당신께 바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신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를 매일 생애에 실천케 하는 믿음이 없이는 이 일을 도저히 할 수 없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주님께서는 곧 오신다. 그대들의 생각을 높이고 머리를 쳐들 것이며 기뻐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즐거운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되고 충만한 영광을 맛보게 되기를 바란다. 재림의 소식이야말로 복되고 즐거운 소식이며 모든 영혼을 감동케 하고 우리의 가정에서 반복되어야 하며 길에서 만나는 모든 자들에게 전해야 할 소식이다. 이보다 더 즐거운 소식을 전할 수 있을까?
신자들이나 또는 불신자들과 트집잡는 일이나 언쟁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도록 맡기신 일이 아니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나의 구세주시며 나의 희생 제물이 되시고 나의 대속물이 되신다면 우리는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 진리를 믿는 모든 자들은 저희 구세주로서 예수님을 믿어야 할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행함이 따르지 않는 값싼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독생자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믿음 가운데 계속적으로 열렬하게 살아서 거하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범한 것에 대하여 용서를 바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에 비취는 밝은 광명 속으로 이끌리게 되기를 바란다. 간신히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 아니요 넉넉하게 들어가게 되기를 바란다.
택하신 족속이요 거룩한 나라인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나타내신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하여 그렇게 무감각할 수 있을까? 구원이란 한갖 침례를 받거나 우리 이름을 교회 녹명책에 기입하거나 진리를 전파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산 연합에서 오는 것이며 마음을 새롭게 하여 믿음과 사랑과 수고와 인내, 그리고 온유 및 소망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사업을 행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에게 연합된 모든 영혼은 자신을 둘러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산 선교사가 될 것이다. 그는 가까이 있는 자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을 위하여 수고할 것이다. 그는 까다롭게 따지는 성격을 갖지 않을 것이며, 자기가 관리하는 한 가지 일에만 관심을 두고 거기서 그의 열정이 식어지는 일이 없을 것이다. 누구나 다 같이 사업의 각 분야를 든든하게 하려는 관심을 가지고 일할 것이다. 자기만을 사랑하는 정신이나 이기적인 관심은 없을 것이다. 사업은 하나이며 진리는 거대한 전체를 이룬다.
간절하고도 근심하는 마음으로 “내 마음 속에 시기심을 품고 있지 않은가? 혹은 질투심이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지 않은가?” 라고 질문해 볼 것이다. 만약 시기심과 질투심이 마음 속에 있다면 그리스도께서는 그 가운데 계시지 않으실 것이다. “과연 나는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는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내 마음 속에 있는가?” 라고 물어볼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평화와 안식의 복된 천국에 들어갈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첫째가 되려 하고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투쟁은 없을 것이며, 저희 이웃을 저희 자신들처럼 사랑할 것이다. 아, 하나님께서 신자들 각자의 마음을 깨우치심으로 저희 심령을 각성시켜 호소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주님께서는 성직자들을 설교만 하도록 임명하시고 보내시는 것이 아닌데, 이는 그 일은 그분의 사업 가운데서 아주 작은 부분에 해당되는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설교 이외에 봉사하며, 백성들을 싸움꾼들이 아니라 경건한 모본이 되도록 가르치시기 위하여 성직자들을 임명하시고 보내시는 것이다. 매 분야에는 자신들의 사업을 담당해야 할 일꾼들이 있다. 예수님께서 높이 승천하실 때에 그분은 몇몇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를 주셨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보다는 인간의 명령에 의해 사업에 들어갔다. 그들은 자신들을 토론자들로서 교육시켜 왔고, 교회들은 그들의 관리 하에 그들의 사업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들은 준비되지 않았으며, 사업을 위한 적합한 준비를 이루지 못했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지 않다. 간략히 말해 그들은 이론은 가지고 있으나 진리를 통한 진정한 회심과 성화의 경험은 소유하고 있지 않다. 우리 곁에 놓인 큰 쟁점은 하나님께서 임명하지 않은 사람들을 추려내버리실 것이며, 그분은 늦은비를 위해 준비된 순결하고도 진실한 성화된 성직자들(MINISTRY)을 소유하실것이다.
우리의 열렬한 기도는 당신의 포도 밭에 추수하기 위한 일꾼들을 보내주시도록 은혜의 보좌로 올라가야 한다. 내가 선교지 주변을 살펴보며 백성들 앞에 진리를 전하기 위한 너무도 빈약한 노력만이 있는 것을 볼 때 나의 마음은 참으로 아프다.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 아무런 비난도 있어서는 안된다. 형제들이여, 내가 믿는 것은 그대들이 우리의 큰 필요에 있어서 나와 동일한 마음과 기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또한 이러한 문제들에 있어서 하나님의 성령의 뜻을 행하기 위한 간절한 소원이 있으며,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
시온에 평안히 거하는 자들은 깨우침을 받을 필요가 있다. 진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영혼들을 위한 무거운 부담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의 책임은 실로 막중한 것이다.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남녀들은 깨어서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주님께서 맡기신 책임을 지고 나가야 할 것이다. 단순히 평범한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것과 같은 무아의 관심을 가진 자들, 곧 악이 편만하다고 하여 역경 가운데 시들거나 죄악이 관영하다고 하여 식어지지도 않는 열렬한 정열을 지닌 그러한 자들이 요구된다.
나는 미국에 있는 모든 교회의 우리 신자들에게 간절히 호소하고 싶다. 죽은 상태에서 깨어라. 그리스도께서 그대들에게 생명을 주실 것이다. 영혼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과 같은 그 진리의 빛을 받지 못하여 멸망하여 가고 있다. 우리는 영원한 세계의 바로 문턱에 서 있다. 좋은 때만을 기다리는 안일한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업에 요구되지 않을 것이다. 선정적이며 취미삼아 믿는 종교는 이 시대에는 필요치 않다. 신앙 생애와 진리를 선포하는 일에 강렬한 열정을 불어넣어야 할 것이다. 나는 그대들에게 우리가 지금껏 인식하지 못했던 한 세력과 합세하기 위하여 사단의 세력에서 새로운 생명이 솟아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싶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늘 위로부터 새로운 능력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성화시키는 감화력을 가진 진리를 백성들에게 역설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리의 소망이 어떤 가정 위에 세워지지 않고 영원한 실재 위에 세워지기 위하여 간절한 탄원과 고민하는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야 할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 믿음에 있는지 혹은 하늘로 향하고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를 통하여 확실히 알아야 한다. 품성의 도덕적인 표준은 하나님의 율법이다. 과연 우리는 율법의 요구에 적응하고 있는가? 주님의 백성들이 저희 재물과 시간과 냥쭝과 저희 모든 감화력을 이 때를 위한 사업에 경주시키고 있는가? 우리는 다 같이 분기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 3:1)
― (서신 55, 1886). 1886, 12, 8일에 버틀러 목사와 해스켈
목사에게 보낸 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