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아는 기쁨
그대는 동트기 직전에 잠을 깨어 창문 밖 나무 꼭대기 잎사귀로 비쳐오는 햇빛을 본 적이 있는지? 아침의 고요함이 그대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우려고 그대에게 말하는 것 같다. 그대는 잠시 그대에게 그런 기쁨의 순간을 준 이가 누구였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봤는지?
시편 16:11은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고 말한다. 동 틀 때의 신속히 가는 몇 분이 아니라 영원한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약속인가!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우리가 하나님의 면전에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분은 우리를 지키기 위해 당신의 천사들을 보내시며, 그들은 그분의 얼굴을 뵌다.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더 많이 생각하기 위한 시간을 갖는다면 우린 다른 사람들처럼 더 잠자기를 원치 않을 것이며, 깨어서 그분이 순종하는 자녀들이 되기 위해 그분의 명령을 성취시킬 준비를 갖출 것이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행복과 사랑과 안전을 갈망한다. 그러나 모든 진정한 기쁨의 열쇠는 순종이다.
우리는 우리의 분주하고 세상적인 삶에서 돌아서서 2천 년 전에 사셨던 예수님의 생애를 돌이켜 봐야만 한다. 고난의 생애를 사시다가 돌아가신 우리 주 예수님은 지금 다시 사셔서 아직도 우릴 사랑하고 계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기쁨과 안전과, 또 그 이상의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우리 영혼의 결핍은 오직 그리스도께서만 만족시키실 수 있으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로 당신의 받으실 대접을 받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받아야 할 대우를 받으셨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은 아무 상관이 없으신 우리의 죄를 인하여 정죄함을 받으신 것을 우리로 아무 공이 없는 당신의 의로 의롭다 하심을 받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시대의 소망 1권, 22)
오, 예수를 바라보라! 그분은 그대를 사랑하신다. 그분은 그대를 위해 돌아가셨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위해 돌아가셨다고 말하는 것은 쉬우나 우리는 그분이 연약하고도 죄로 가득한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그분은 우리 각자를 사랑하신다. 그분은 우리가 매일 그분께 우리의 의지를 바치기를 원하신다. 이는 이것이 완전한 기쁨을 발견하는 첫 번째 계단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그분께 온전히 굴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결정을 한 번 할 때 우리는 그분을 우리의 사랑하는 동반자로 알게 된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랑을 알므로 우리는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왕국을 둔다.” (영문 실물교훈, 317)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사가 되며, 우리 가정은 하늘 대사관이 되어 더 이상 이 세상에 속하지 않게 된다.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 6:11,12) 매일 그분의 전신갑주를 입음으로 우리는 승리를 얻게 될 것이다. 우리가 매일 예수님을 배울 때 그분은 우리가 그분을 닮도록 변화시키실 것이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자유를 찾게 될 것인데, 이는 하나님의 율법은 자유이 법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신과 의지는 그분의 정신과 뜻에 너무도 일치되기 때문에 우리는 생각과 목적에 있어서 그분과 하나가 될 것이다.” (우리의 높은 부르심, 219) 완전한 기쁨은 결국 완전한 굴복으로부터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