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친구야, 벌써 새해가 되었구나. 지나간 해는 주님의 용서하시는 은혜 속에 남겨두고, 이젠 그리스도의 깃발을 더 높이 들고 힘차게 나아가자. 지나간 해에 범했던 수치스럽고 가증한 죄들이 또 다시 우리의 영혼을 곤고하게 만들지 못하도록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의 양심을 씻자.
친구야, 과거에 우리가 도덕적으로 무력했었던 경험, 과거에 우리 자신의 나쁜 습관과 성벽을 이기지 못하여 여러 번 쓰러졌었던 경험, 과거에 우리가 하나님께 드렸던 엄숙한 서약이 신실하지 못했던 경험, 과거에 우리가 주님 앞에서 비겁했었던 경험, 이러한 것들은 때때로 우리를 괴롭히고 낙망시켜서 우리의 신앙을 의심과 불신의 늪으로 끌고 들어가려고 한단다. 친구야, 그러나 우리는 실망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과거에 행했던 모든 부끄럽고 비참했던 죄악들은 우리가 드렸던 정직한 고백과 진실한 회개의 기도와 함께 가장 깊은 바다 속으로 이미 수장되었단다. 비록 너와 나를 아는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의 죄와 수치를 기억하여 조롱하며 비웃더라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보시고 당신의 깊은 품으로 “가치 있는”우리를 안으셨단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를 실망시키는 우리 자신의 감정과 느낌에 의존하지 말고, 담대하게 우리의 의지와 뜻을 다시 그분께 드리자.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영께서 우리의 사상과 계획과 정서를 지배하실 수 있도록… 가장 지치고, 어둡고, 낙망되고, 슬프고, 괴로울 때에야 말로 우리가 믿음의 손을 뻗어서 그분의 강하신 팔을 붙잡아야 할 순간이란다. 그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있는 힘을 다해서 그리스도의 피 묻은 깃발을 움켜잡아야 될 순간이란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중보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닮은 자들로 만들기에 충분한 능력이잖니.
친구야, 너는 항상 교회 안에서 판치는 위선과 이기심과 파렴치함으로 인한 고통을 내게 호소했지. 친구야, 너는 돈 많은 장로님과 세속적인 집사님들이 세상에서 얻은 그들의 명성과 평판을 교회 안까지 가지고 들어와서 세도를 행사하며, 하나님의 사업을 그들의 재치와 수학적인 판단으로 끌고 가는 것을 보며 내게 한탄했지. 그러나 친구야, 교회에는 나처럼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어찌 위선과 이기심과 파렴치함이 없을 수 있겠니? 인간이 그리스도와 상관없는 자로 이 세상과 교회 안을 배회할 때, 그들은 그러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단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에게 있어서는 최선의 행동이요, 계획이요, 사상이기 때문이란다. 친구야, 교회 안에서 거들먹거리는 가라지 들을 보면서 실망하지 말자. 친구야, 교회 안에 있는 겸손하고 진실한 알곡들을 보면서 위로를 받으려고 하지도 말자. 그들은 모두 연약하고 변할 수 있는 존재들이란다. 우리는 다만 말씀에 우리 자신을 비교 함으로서 우리가 쓰고 있는 위선과 이기심의 가면을 벗어버리도록 하자. 우리가 언제까지 동요 인간들을 보면서 실망하고 낙담하는 가운데 의심과 불신의 늪을 찾아 가겠니?
친구야, 마지막 시대에 하늘을 위하여 준비하는 자들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에 익숙한 사람들이란다. 친구야, 혹시 우리는 고난보다는 세상이 주는 편리함과 안락함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지는 않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종하기를 원하며, 거룩한 생애를 살기 소원하고, 하늘에 가기를 열렬하게 희망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렇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순종을 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로 선택할 때, 그 대가로 고난과 희생을 감수해야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란다. 그들은 두려워서 순종을 거절하며, 두려워서 하늘을 포기한단다. 친구야, 그들은 순종의 입구에서 서성거리며, 두리번거리지만 결코 순종하기로 선택하지는 않는단다. 그리하여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교회에 가고, 성경을 보고, 말씀을 듣지만, 결코 순종을 하기로 결정하지는 않는단다. 그들은 순종 뒤에 따라올 수 있는 희생을 너무나 두려워하기 때문에 순종의 결과로 찾아오는 축복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다 보지 못한단다.
친구야,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묵상하는 자마다 세상과 세속을 무가치한 것으로 던져버리고 그리스도 앞으로 나오게 될 거야. 재물과 명예와 인기와 평판과 그 외에 좋아 보이는 모든 것들이 무가치하고 순간적인 것들로 보일 때까지 우리는 결코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즐거움을 맛보지 못 할거야. 친구야, 예수님께서 곧 오실 거야. 만일 우리가 이 해에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으로 믿고 살아간다면,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을 그릇되게 하는 것일까? 한 겨울 눈 덮인 달밤에 바위 위에 서서 목을 쳐들고 울부짖는 늑대처럼, 그렇게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면서 이 해를 살고 싶다. 친구야, 우리 마음 속에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열망이 식어질 때, 우리는 따뜻한 라오디게아로 돌아가게 될 거야. 곧 오시는 주의 재림을 우리가 선포하지 않을 때, 너와 나는 육체가 시끄럽게 떠드는 식욕과 정욕과 탐욕의 소리에 굴복하며 살게 될 거야. 우리가 가정과 직장에서 재림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을 때, 사단은 우리 곁에 와서 “너는 불쌍한 위선자야!”라고 속삭임으로서 우리를 낙망케 할 거야. 친구야, 예수께서 오실 때, 우리의 육체가 이 땅에서 떨어져서 공중으로 올라갈 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우리의 지나간 생애 동안에 하늘에 속하여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 될 거야. 우리는 우리가 세상에서 드렸던 부끄러운 헌신과 희생과 봉사를 되돌아보면서, 또한 하늘의 진주 문을 손으로 만지고, 영원한 생명수로 우리의 목을 축이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너무나 과분한 상급에 대하여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영원토록 부를 수 밖에 없을 거야.
친구야, 우리가 그리스도의 품으로 온전히 돌아가는 데에는 때때로 특별한 노력과 피 흘리는 싸움이 요구 된단다. 매일의 생활에서 우리의 눈 앞에 나타나는 십자가를 지지 않고 어떻게 우리가 더욱 높은 경지의 고상한 신앙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악과 죄를 버리고, 우리 주위의 어리석고 불쌍한 자들을 구원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협력과 동의 없이 어떠한 이적도 베풀지 않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하나님께서 당신의 임의대로 우리에게서 죄를 빼앗아 가고, 임의대로 성령을 주며, 임의대로 구원하시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거야. 그리스도의 신앙을 유지하고 향상시키는 일에 있어서 우리가 해야 될 몫을 하나님께 미루지 말자.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를 귀 기울여 들어보자.
친구야, 나는 주님께서 내게 요구하신 부흥과 개혁을 받아들이기로 이 해에 다시 한번 결심하고자 한다. 우리는 때때로 내일 다가올 환란과 박해에 대한 준비를 이야기하면서 오늘 경주해야 될 우리의 실제적인 굴복과 승리는 등한히 여기기 쉽지. 우리는 더욱 크고 높은 사업을 위해 계획하고 기도하면서 아주 적고 낮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기 쉽지. 금년에 내가 주님을 위하여 얼마나 큰 부흥과 개혁을 일으켜야 될까? 얼마나 큰 주의 사업을 완수해야 될까? 나의 이러한 궁금증에 대하여 주님께서는 내게 매우 귀중한 교훈을 알려주셨는데. 그것은 큰 것을 위하여 먼저 적은 것에 충실 하라는 것이었지.
“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눅 16:10). 인생으로 하여금 성공하게 하는 것은 세상에서 ‘작은 일’이라고 칭하는 것들을 신실하고 주의하여 실천하는데 있다. 조그마한 자선 행위, 조그마한 극기의 활동,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간단한 말, 조그마한 죄를 경계하여 감시하는 것, 조그마한 죄를 경계하여 감시하는 것, 이것이 곧 그리스도교이다. 작은 의무를 신실이 이행하는 자는 더 큰 책임의 요구에도 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일상 생애에 있어서 친절하고 예의 있는 자와 가정에서 관대하고 오래 참으며 항상 그의 가정을 주안에서 기쁘게 하기를 목적으로 하는 자는 주께서 부르실 때에 가장 먼저 자기를 버리고 희생할 자이다.”청년에게 보내는 기별 181.
한 방울의 비가 땅을 적셔서 다음 빗방울의 자리를 예배해 주는 것처럼 한 개의 작은 선한 생각이 다음의 선한 행위의 길을 예비 한단다. 가장 작은 일에서 정직하게 행하고 날마다 유쾌한 말과 환한 미소를 인생의 길 위에 뿌리면서 살아가자. 칭찬이나 이익을 생각치 않고 오직 원칙에 의거하여 작은 일들을 하나씩 해결하도록 하자.
친구야,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장 큰 위선이 무엇인지 아니? 그것은 가정에서 읽지 않는 성경을 교회에서 크게 읽는 것이며, 가정에서 나눠주지 않는 미소를 교회에서 차고 넘치게 흘리고 다니는 것이며, 가정에서 행하지 않던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교회의 모든 교인들에게 과시하는 것이지. 가정에서는 자기 멋대로 하고, 고집 세며, 무뚝뚝하고, 냉정하고, 교만하면서도 교회에서는 가장 점잖고 유머 있으며 관대한 그리스도인으로 행세하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지… 친구야, 그리스도의 율법의 완성은 사랑인데, 그 사랑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곳은 가정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우리 속에 이루어져야 할 그리스도의 의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 분명히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성품과 생활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아 나는 계명들을 지킵니다.”라고 그대가 말할는지도 모른다. 정말 그러한가? 그대는 그대의 가정에서와 그대의 가족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계명이 요구하는 원칙들을 잘 이행하고 있는가? 그대는 가족들 사이에서 무례함이나 불친절한 말이나 공손치 못함을 드러내지 않는가? 그대의 공언하는 바가 아무리 높다고 할지라도 그대가 가정에서 불친절함을 드러낸다면, 그대는 계명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가 다른 사람들에게 계명에 대하여 아무리 많이 설교한다고 할지라도 그대의 가정 생애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는 일에 실패한다면, 그대는 율법을 범하는 자이다.” RH 2, 556.
친구야, 고통과 고생과 고독의 눈물 속에서 어떻게 감사함과 즐거움으로 그리스도인의 생애를 불태울 수 있을까? 친구들과 가족들과 교우들에게서 “광신이고 교회를 어지럽게 만드는 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어떻게 뻔뻔스러울 만큼 대담하게 그리스도께서 인정하신 좁은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 가장 많은 헌신과 가장 높은 희생과 가장 큰 봉사를 이웃과 교회에게 드린 다음에도 어떻게 우리가 가장 겸비하고 부끄러운 종으로서 숨어 살 수 있을까? 하늘을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셨던 그리스도의 생애를 명상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한 모든 선한 행위를 부끄럽게 여기게 만들 것이며, 오히려 자신의 게으름을 채찍질하게 될 것이고, 그분의 놀라운 자아 희생의 생애를 더욱 사모하도록 우리 모두를 자극하게 될 거야. 친구야, 끝으로 너를 위한 특별한 글을 소개하마.
“그리스도와 연합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라야 한다. 옛 친구와의 교제도 끊어야 하고 일생의 계획도 포기하여야 한다. 또한 세상에 붙어 있는 소망도 버려야 한다. 고통과 눈물의 고독 속에서 희생하면서 씨 뿌리기에 종사하여야 한다.” 실물교훈 27
“천국으로 가는 길은 지위가 높은 자들이나 부자들이 당당하게 활보하기에는 너무나 좁으며, 야심을 펴기에는 너무나 협소하고, 마차가 쉽게 기어오르기에는 너무나도 비탈지고 험한 길이다. 노고, 인내, 자아희생, 비난, 궁핍, 고된 노동, 그리스도께 대한 죄인들의 반대를 극복하는 일 등은 그리스도께서 감당하셨던 몫이었으며, 인간이 낙원에 들어가고자 할 때에 치러야 할 몫도 이러한 것들이어야 한다.” 가려뽑은기별 2권 202
오, 친구야,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를 정복하고, 재림을 사모하는 열정이 우리를 붙잡고 있는 모든 인간적인 합리주의와 인본주의적인 정신을 송두리째 삼켜버릴 때까지 그리스도께로 달려 나가자.
1995년 새해를 맞으며, 친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