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의 처의 독백
“소돔이 살기에 완전한 장소는 아니었어. 그렇지만 거기엔 우리 집이 있었어”라고 그녀는 말했다. 사람들은 나를 잘못 판단하고 있어. 그러나 만일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올바르게 생각하기를 원한다면, ‘롯의 처는 소돔을 사랑했었다’라고 말해서는 안되지. 왜냐하면 그곳에는 내가 싫어하는 것들도 있었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는 아시기 때문이야. 당신이 진실을 말하려면 ‘롯의 처는 다만 그녀의 가정을 사랑했었을 뿐이야’라고 말 해야 해!
물론 거기에는 그 말 이상의 의미가 있지. 가정 안에 있는 가장 불쾌한 것들일지라도 우리를 가정으로부터 떠나게 하지는 못하잖니? 왜냐하면 가정에는 가정 특유의 안전과 편안함이 있기 때문이지. 우리는 가정 안에서 어떤 의자에 앉아야 하며, 어떤 베개가 더 푹신하며, 지붕의 어디가 새며, 주전자를 어디에다 두었으며, 누가 나쁜 친구들을 혼내 줄 것이며, 누가 가장 많은 칭찬을 받을 것이며, 누가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 될 것인지를 잘 알지. 그래. 가정은 우리가 아는 장소이며, 가정을 떠난다는 것은 가정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야.
그래서 그날 그 남자들이 소돔에 대한 소식을 가지고 왔을 때에 그것은 마치 모든 것들에 대한 종말을 선언하는 것과 같았어. 그들이 이 온 세계가 내일 아침에는 재가 되어버릴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말이 내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었어. 소돔은 나의 가정이며, 나의 생명이 되어 왔기 때문이지.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소돔을 떠나는 것은 나의 생명을 잃는 것 같았어. 내가 떠난다고 말했나? 아니야. 사실은 질질 끌려 나온 거야. 우리가 떠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틈도 내게는 없었어. 그저 한 순간 마음으로 느꼈을 뿐이야. 우리가 우리 가정으로부터 더 멀리, 더 멀리 멀어져 갈 때, 소돔 속에 있는 나의 가정은 마치 우리를 다시 그곳으로 데리고 가려고 하는 군대와 같은 엄청난 세력으로 느껴졌어. 수천의 행복한 추억들의 군대들이 우리에게는 가장 저항하기 힘들었었지. 가족들이 함께 먹던 식사시간, 아기가 처음으로 아장아장 걸음을 옮기던 것, 손님들의 방문, 시장에서 소곤거리던 비밀들, 소돔의 교회에서 즐기던 교제들, 발코니에서 따스한 저녁의 미풍을 즐기던 온갖 추억들…
그 즐거운 추억들을 다시 생생하게 떠올려 보는 것은 나로 하여금 피눈물을 흘리도록 했어. 우리는 편안했고 행복 했었어. 주위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행복을 인정했었지. 그런 행복은 다시 찾아볼 수 없는 행복 일 꺼야. 진짜야. 그래서 나는 결국 소돔을 동경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렸지.
내가 나의 마지막 고개를 돌렸을 때 내가 이 세상의 보통 여자들이 하는 것처럼 짙은 화장이나 눈썹을 그리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말아. 대신 피난민의 슬픔과 나의 마지막 시야가 불에 타고 있는 소돔이 아닌, 불붙는 가정을 쳐다보고 있었던 한 어머니로서의 나를 생각하길 바래. 불타고 파괴된 것들, 그것들은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해주던 침상, 우리 아기들이 태어났던 방, 우리 친척들이 자던 곳이었지. 내가 그리워했던 것은 가정이었다는 것을 제발 명심해주길 바래. 내가 원했던 것은 나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좀 이해해 줘. 지금 당신들이 원하는 것들이 바로 내가 원했던 것들이야.
당신들처럼 나도 하늘을 원했어. 그러나 나는 그것을 너무 일찍 원했던 거야. 그것은 마치 덜 구워진 빵을 솥에서 꺼내고, 설익은 사과나 미숙아로 태어난 아기와도 같은 너무 이른 동경이었어. 하늘을 원하는 소원이 내게도 있었단 말이야.
그러면 내 죄가 무엇이고 우리 가정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당신이 의아하게 생각하며 질문할 터인데, 내 죄가 무엇이었냐고? 그것은 우리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야. 내 죄에 관해서는 모호한 것이 하나도 없어. 나는 지금 내가 원하는 좋은 것들이 영원토록 계속되기를 바랬을 뿐이야. 나는 새로운 것, 즉 그때 당시 나의 상태에서 변화를 일으키게 만드는 어떠한 것도 원하지 않았어. 아, 그래. 아마 새로 구운 빵, 신선한 물, 새 옷과 새로 태어나는 아기를 원했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나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이는 새로운 사상이나 새로운 생활, 그리고 새로운 견해나 새로운 방법들을 원하지 않았어. 그래서 나는 당신들이 지금 성경을 통해서 보고 있는 정체된 조각기둥, 즉 오늘날의 당신들을 위한 과거의 기념물로 서게 된 거야.
만일 내가 몇 마디 더 할 수 있다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때때로 변화와 결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배우지 말라는 것이지. 진정 산다는 것은 매일 새로 태어나는 것이며, 언제라도 어떤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 하나님의 우주를 경험하는 것이야. 우리의 삶은 우리 발 앞에 들려진 좋아 보이는 것들을 내려놓을 준비가 돼 있어야만 한다는 귀중한 교훈을 배워야 하는 교육의 연속이지.
또 하나 말해두고 싶은 것은 영원한 가정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세의 가정을 기꺼이 떠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거야, 왜냐하면 인생의 모든 것은 가정을 떠나는 것과 가정으로 돌아오는 것과 가정을 발견하여 새로운 가정을 위하여 떠나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야. 당신이 학교에 가기 위해 부모를 떠나고, 진리를 찾기 위해 오류를 떠나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그래. 인생은 떠나는 것으로 가득 찬 거야. 언젠가 당신은 당신이 가진 것에서 떠나라는 요청을 받게 되고, 당신이 그 요청을 수락한다면 당신은 아무도 당신에게서 빼앗을 수 없는 어떤 것을 발견할 날이 올 거야.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은 나처럼 생명이 없는 한 형체가 되어 버릴 거야.
나의 인생 전체를 잃어버리고 난 후에 뒤늦게 들은 옛 현인의 교훈이 있는데, 그것은 이거야. 잘 들어봐.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라” (눅 17:33).
이말을 잘 생각하기 바래. 그리고 나를 부디 기억해줘.”
1984년 3월 17일, Insight 지에서.
필자는 당시 Review & Herald 의 부 편집인 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