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강명수 (재림교회의 집사로서 미국 죠지아 주에서 아내와 두 자녀와 함께 시골 생활을 하고 있음)
요즈음 한국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싸우고, 우익과 좌익의 극한 대립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인터넷 세대와 젊은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김정일을 찬양 내지 지지하거나, 동조하지 않으면 보수 세력으로 낙인 찍혀서 따돌림을 받게 되는 상상하기 어려운 사회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고 한다. 40대 후반과 50대, 60대 이상은 보수적 우익이고, 20대, 30대, 40대 초반까지는 진보적 좌익 사상을 가진 사람들로 나뉘어 지고 있는 모습을 신문과 방송 매체를 통해서 쉽게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흥미 있는 사실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대립과 매우 유사한 양상이 재림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사회가 보수와 진보의 진영으로 나뉘어서 투쟁하고 있는 것처럼, 재림 교회 또한 보수와 진보의 두가지 양상으로 나뉘어서 커다란 영적 대쟁투를 벌이고 있다. 물론, 성경에는 보수도 없고 진보도 없다. 성경은 다만 진리를 말하고 오류에 대해서 경고할 뿐이다. 그러나 보수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스스로 진보적 재림 신앙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서로 나뉘어져 투쟁하고 있는 재림 교회의 현실을 바라보며, 과연 무엇이 진정한 보수이고, 무엇이 진보의 참 모습인지를 살펴보기 위하여 이 글을 쓴다.
얼마 전에 개신교계의 신망 높은 목사로 지지 받고 있는 김진홍 목사는 다음과 같은 글을 모 일간지에 올림으로써, 한국 사회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켰다.
나는 스스로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사람이다. 누가 그렇게 불러주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를 일컫는 말이다. 나도 20대와 30대 나이에는 진보주의자임을 공언하였고, 진보 세력에 줄서기를 했었다. 그런데 40대를 지나고 50대를 지나면서 세상을 보는 안목이 넓어지게 되면서 진보주의자에서 보수주의자로 성숙되어 왔다 …. 그렇다면 보수란 무엇인가? 참된 보수란 우리가 지켜온 값진 것들을 보면서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하여 자기 개혁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문제는 이 나라의 보수주의자들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땅에 참된 보수주의가 역사 발전에 주도권을 행사하려면 보수주의자들의 철저한 자기 반성이 있어야 한다. 보수에 대한 정체성을 확실히 하고 시대의 흐름이나 인기에 영합함이 없이 확신에 따라 행동하는 보수주의자들이 되어야 한다. 보수를 한마디로 줄여 말하자면, 대한민국이 처음 세워질 때의 사상과 비젼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을 말하는데, 정치적으로는 자유 민주주의이고, 경제적으로는 시장 경제를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를 따르며, 사회적으로는 열린 체제와 복지 사회 건설을 제대로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진보주의를 외치는 인사들 중에는 통일의 중요성을 앞세워 사회주의 내지 북한의 독재 공산주의를 지지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것을 찬양하는 것이 통일을 앞당기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젊은 사람들, 특히 20대 30대 40대 초반의 사람들 중에 확산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은 우리나라 과거 역사에 있었던 군사 독재를 반대하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한의 독재를 찬양하거나 눈감아 주는 모순에 빠져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의 생각에 단연코 반대한다. 진정한 보수 세력이 세를 모아서 이런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겨례의 대세를 움직여 나가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그런데, 보수 세력들 속에도 문제가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누렸던 기득권에 길들여지고 타성에 젖어서 자기 혁신을 게을리 하고 있다. 그리하여 참된 보수의 진면목을 잃어버린 채 한갓 수구 내지 노장 기득권 세력으로 머물고 있다. 그래서 지난 번 선거에서 진보 세력들에게 패배하였던 것이다. 올바른 보수, 건전한 보수 세력은 자기 혁신에 철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부정 부패를 일삼는 무리들에게서 자신들을 구별하는 차별화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자신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한낱 수구 기득권 세력으로 매도 당하게 되었다. 이제는 제대로 된 보수가 한국 사회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 …. 이제는 참된 보수주의가 결집해야 할 때이다. 그래서 오늘의 혼란을 막고, 민족 경영 내지 선진국가 건설의 주도권을 확립해야 할 때이다.
무엇이 재림 교회의 보수 신앙인가? 한국 사회의 보수 진영이 대한민국이 처음 건국되었을 때에 가졌던 국가의 정체성을 그대로 이어가는 사람들인 것처럼, 재림 교회의 보수 진영 역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가 처음 세워졌을 때에 가지고 있었던 정체성과 구원의 도를 그대로 이어가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보수적 재림 신앙은 역사적 재림 신앙이라고도 불리운다. 그렇다면, 재림 교회의 선구자들은 그들이 믿는 구원의 도와 정체성을 어디에 두었었는가? 화잇부인은 다음과 같은 말로 재림 교회의 구원의 도를 밝혔다. “여러 사람들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이 세째 천사 기별인지를 질문하는 편지를 나에게 보냈다. 나는 ‘그 기별이야 말로 참된 세째 천사 기별이다 ‘고 대답하였다.” 복음 전도 189.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시록 14:12. 각 교파마다 저마다 그들이 믿는 구원의 도를 대표하는 성경절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의 선조들은 재림 교회 구원의 도를 세째 천사 기별 위에 두었다.
또한 우리의 선구자들은 요한계시록 12장 17절과 요한계시록 19장 10절에서 재림 교회의 예언적 정체성을 찾았다.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 계 12:17.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계 19:10. 그러므로 재림 교회의 보수 신앙은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완전한 순종을 믿으며, 예수께서 가지셨던 그 믿음을 모본으로 따라가고, 예수의 증거를 대언의 영, 즉 예언의 신으로 받아들인 마지막 시대의 남은 무리의 신앙을 뜻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참된 보수 진영의 한계를 정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재림 교회가 처음 세워졌을 때에 하나님께서 화잇 부인을 통하여 계시와 비젼으로 주신 진리의 기둥들을 믿고 따르기 원한다면, 당신도 재림 교회의 보수 진영입니다.
만일 당신이 예수께서 우리와 같은 타락한 인성을 취하시고 태어나셨다는 진리를 믿는다면, 당신도 재림 교회의 보수 진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인성에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취하셨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면, 주께서는 그 형제들과 같이 되실 수도, 우리와 같이 모든 일에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실 수도 없으셨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이기는 것처럼 이기신 것도 아니었을 것이요, 인간이 필요한 그러한 온전하신 구세주가 아니셨을 것이다…그리스도께서는 인성으로서 아담의 모든 자손들처럼 죗된 본성을 물려받으셨다. 신성의 편에서는 잉태되실 때부터 성령으로 탄생하시었다. 이 일로 인하여 인간은 더 나은 고지로 올려 놓아지게 되었고, 성령으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해야 한다.” 1946년 도판 Bible reading for the home (대총회 발간)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으므로, 우리도 그분처럼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완전한 순종을 드릴 수 있다고 믿는다면, 당신도 재림 교회의 보수 진영입니다.
”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지킬 수 없는 법을 만드셨다’는 사단의 거짓을 분쇄시키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그분께서는 인성을 취하시고 이 땅에 오셔서 순종의 생애를 사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지킬 수 없는 법을 만들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입증하셨다. 또한 인간도 하나님의 법을 완전하게 지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셨다.” 내가 사는 믿음, 영문 114.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창에 찔리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될 때, 우리가 계명을 범하면서도 그분의 은총을 계속해서 누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죄인으로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공로를 굳게 붙들고 죄짓기를 중단해야만 한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가려뽑은기별 1권 389.
만일 당신이 단순히 예수를 믿고 그분의 말씀에 지적 동의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가지고 생애하셨던 예수의 그 믿음을 가지기를 소원한다면, 당신도 재림 교회의 보수 진영입니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에 그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살 수 있는 능력도 받아 들인다” 실물교훈 326.
만일 당신이 예언의 신을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예수의 증거 및 대언의 영으로 인정한다면, 당신도 재림 교회의 보수 진영입니다.
“나는 몸이 연약하고 떨렸지만 그대들에게 편지를 쓰기 위하여 새벽 3시에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흙인 인간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셨다. 그대들은 이 교통이 다만 하나님의 편지에 불과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하나의 편지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된 것이다. 그 편지는 내게 나타난 것들을 그대들에게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내가 기록하는 이 편지들, 내가 전하는 증언들을 통하여 나는 주님께서 내게 제시하신 것을 그대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교회증언 영문 5권, 67. “사단의 최후의 기만은 하나님의 영의 증언을 무력하게 만드는 바로 그러한 성질의 것이 될 것이다” 가려뽑은기별 영문 1권, 48.
만일 당신이 늦은 비는 죄에 대하여 승리의 생애를 사는 사람들에게 내려진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당신도 재림 교회의 보수 진영입니다.
“인치는 천사는 알고 있는 죄를 범하고 알고 있는 의무를 게을리 하는 어느 남녀나 아이 위에 하나님의 인을 치지 않을 것이다” 가려 영문 1권, 366. “모든 더러움에서 영혼의 성전을 깨끗케 하기 위하여 우리 품성 가운데 결점을 고쳐야 할 것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 그 다음에 오순절 때에 이른 비가 제자들에게 내렸던 것처럼 늦은 비가 우리에게 내리게 될 것이다.” 교회증언 5권, 214.
만일 당신이 재림 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을 알고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성경과 예언의 신 말씀에 비추어 철저한 회개와 끊임없는 자기 개혁을 하기 원하는 재림 교인이라면, 당신도 재림 교회의 보수 진영입니다.
오늘날 재림 교회의 문제는 이 교회의 보수 진영이 심하게 흔들리면서 사라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먼저, 참된 보수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철저한 자기 반성과 회개를 통하여 진리를 위하여 올바로 서야만 한다. 재림 교회가 가지고 있는 사명과 목적을 올바로 직시하고 전진해야 한다. 남은 교회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인식하고 시대의 흐름이나 인기에 영합함이 없이 진리에 따라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보수적 가르침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세속에 길들여지고 타성에 젖어서 지금 교회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를 보지 못하는 보수적 재림 교인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그리하여 참된 보수의 진면목을 잃어버린 채, 옛 것을 아무런 목적이나 이유없이 고집스럽게 붙들고 서 있는 빛바랜 노장 재림 교인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바로 보수 진영에 섞여 있는 이러한 사람들 때문에 참된 보수적 재림 신앙을 믿는 사람들이 율법주의자 내지 완전주의자로 매도되게 된 것이다. 예언의 신을 믿고 보수적 가르침을 선호한다고 말하면서 이기심과 탐욕으로 뭉쳐진 생애를 살아가는 교인들 때문에, 재림 교회의 참된 보수 진영은 자신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한낱 낡은 옛 것을 주장하는 “그룹”이나 “분파”로 매도 당하게 되었다. 이제는 제대로 된 참 보수가 재림 교회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 이제는 참된 보수적 신앙인들이 결집해서 일어서야 할 때이다. 그래서 재림 교회의 정체성과 구원의 도에 깊이 뿌리 내린 혼란으로부터 교회를 구하여, 재림 교회가 늦은 비를 위하여 올바로 준비될 수 있는 길을 예비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진보적 재림 신앙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150여년 전에 재림 교회가 처음 세워졌을 때의 신앙보다 발전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문제는 그들의 신앙이 단순히 보수와 다르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재림 교회가 처음 세워질 때에 하나님께서 화잇부인을 통하여 계시로 확정지어 주셨던 진리의 기둥들을 거부하거나 무시한다는 데에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그러한 일들이 재림 교회에 일어나게 되었는가를 역사를 통하여 살펴 보도록 하자.
화잇 부인이 돌아가시던 해인 1915년, 재림 교회는 하나의 구원의 도를 가지고 있었다. 1920년, 우리는 하나로 뭉쳐 있었다. 1930년, 재림 교회는 하나의 복음을 가지고 있었다. 1940년, 우리 사이에는 보수도 없었고, 진보도 없었다. 다만 하나의 구원의 도를 믿으며 따르고 있었다. 1950년대초, 이 때까지만 해도 재림 교회는 하나의 깃발 아래 굳건하게 연합하여 서 있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가르침은 언제, 어떻게 재림 교회 안에 들어 오게 되었는가? 1955년, 개신교회 복음주의파인 월터 마틴이 그 진원지이다. 그는 미국 내 여러 이단 종파에 관한 책을 저술하는 개신교회 이단문제 전문가였다. 1955년 봄, 그는 워싱턴 D.C.에 있는 재림 교회 대총회를 방문 하였다. 그는 대총회 지도자들에게 자신이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에 관하여 책을 쓰기 위한 자료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생각에 의심이 가는 교리들의 목록을 재림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제시하면서 글로 답변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월터 마틴이 재림 교회의 가르침에 대하여 꼬집어 낸 것은 이것이다. 만일 재림 교회가 갈바리 십자가 이후에도 하늘에서 구속 사업이 계속 진행된다고 믿고 있으며,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것이 구원을 위하여 필요되는 일이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모본이시므로 우리도 그분의 승리의 생애를 본받아야 한다고 믿는다면, 재림 교회가 “복음주의파 개신교회”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재림 교회의 지도자들이 개신교회 복음주의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내용의 답변서를 쓸 것을 요구하였다. 또한 재림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서 새롭게 작성된 “교리들에 대한 질문”이라는 책을 출판하여 모든 재림 교회와 전 세계의 개신교회 대학의 도서관에 보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월터 마틴은 대총회가 자신의 요구에 응해 주면, 자신이 저술할 책에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는 절대 이단이 아니며, 완전히 정통에 해당되는 복음주의 교회라고 소개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때 당시의 대총회장과 몇 명의 신학자들은 월터 마틴의 질문에 대하여 만족할만한 답변을 비밀리에 급히 작성하여 전 세계에 있는 250여명의 재림 교회 지도자들에게 발송하려는 위기의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이 다하도록 저지하고 반대한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현재 존재하는 자영 선교기관들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M.L. 앤드리어슨 목사이다. 대총회는 앤드리어슨 목사의 저항을 조직의 권위로 누르면서 새롭게 변조된 가르침을 재림 교회 안에 보급하는 일을 조직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새 가르침은 후에 앤드류스 대학의 신학과와 세미나리에 도입되게 되었고, 마치 그것이 재림 교회의 정통 가르침인 것처럼 자리잡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그들이 말하는 소위 “진보적 재림 신앙”의 시작이다.
이러한 진보적 재림 신앙은 후에 바벨론 교회의 신학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돌아와 앤드류스 대학의 강단에 선 신신학자들과 그들로부터 신학을 공부한 목사들에 의하여 계승되고 전파되어 왔다. 그래서 이제는 앤드류스와 삼육 대학을 졸업한 정통 재림 교인들도 정통 재림 신앙에 대하여 무지하거나 오히려 반대하는 입장에 서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재림 교회의 정통 대학에서 변질된 재림 신앙의 신봉자들을 양산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무엇이 진보적 재림 신앙인가? 그것은 “신신학” 또는 “자유주의”라고 불리우기도 하는데,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진보적 재림 신앙 즉, 재림 교회의 진보 진영의 한계를 규정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남은 교회의 초석이 되는 재림 교회의 성소 기별에 나타나 있는 구원의 도에 대한 이해와 확신이 없다면, 당신은 재림 교회의 진보 진영에 속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생애에 대한 가르침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면, 당신은 재림 교회의 진보 진영에 속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는 다른 인성 즉,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의 인성을 취하셨기 때문에 죄를 정복하는 생애를 사실 수 있었지만, 우리는 예수님과는 달리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죄에 대하여 승리할 수 없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재림 교회의 진보 진영에 속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재림 교인으로서 늦은 비 성령을 받을 수 있는 자격 조건이 “죄에 대한 완전한 승리”라는 예언의 신의 분명한 가르침을 부인한다면, 당신은 재림 교회의 진보 진영에 속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원죄를 갖고 태어난 죄인이기 때문에 결코 죄를 승리할 수 없다” 고 말한다면, 당신은 재림 교회의 진보 진영에 속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재림 교회에서도 침례 교회와 장로 교회에서나 들을 수 있는 설교들이 흘러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재림 교회의 진보 진영에 속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십자가의 사랑을 강조하면서, 계명과 순종에 대해서는 대충 얼버무린다면, 당신은 재림 교회의 진보 진영에 속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예언의 신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예언의 신에 나타나 있는 분명한 가르침들과 상충되는 어떤 견해나 교리를 존중하고 따라가고 있다면, 당신은 재림 교회의 진보 진영에 속해 있습니다.
비록 당신이 직접적인 오류를 믿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재림 신앙의 중심 기별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다면, 당신은 재림 교회의 진보 진영에 속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께서 재림 교회를 세우신 목적에 대하여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면, 당신은 재림 교회의 진보 진영에 속해 있습니다.
비록 당신이 지적으로는 보수적 가르침을 지지한다고 할지라도, 참된 거듭남을 체험하지 못한 연고로 율법주의적 신앙 생활에 지쳐서 신신학이 주장하는 “원칙을 무시한 사랑 타령”에 한눈이 팔려 있다면, 당신은 이미 재림 교회의 진보 진영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진보적 인사들이 대한민국의 건국 이념과 정체성을 부인하고 북한의 공산 독재주의를 지지 내지 동의하는 것은 진보적 사상이 아니라 반역인 것처럼, 재림 교회를 마지막 시대의 남은 교회로서 확정지어 주는 중요한 진리의 기둥들을 무너뜨리거나 변질시키는 것은 진보가 아니라 엄청난 반역이며,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세우신 목적을 송두리채 허물어뜨리는 배도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참된 진보는 무엇인가? 그것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새로운 빛과 사상을 원래의 재림 신앙에 더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이 “이것이 새로운 진보적 구원론이다!”라고 주장할 때, 그것은 반드시 재림 교회를 마지막 시대의 남은 교회로 존재케 했던 진리의 기둥 즉, 하나님께서 화잇 선지자를 통하여 주셨던 구원의 도와 일치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수천년에 걸쳐서 수십명의 저자들에 의해서 기록된 성경의 복음이 놀라운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재림 교회가 세워질 때에 받았던 마지막 시대의 복음 역시 시대가 지나고 문화가 바뀌는 동안 필연적으로 보수와 진보적 사상들이 발생되었다고 할지라도, 처음에 받았던 구원의 도 자체를 부정하거나 밀어내는 일이 생겨서는 안된다. 참된 진보는 진리 안에서 참된 보수와 하나로 연합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성도들이 하나로 연합할 수 있는 이유이다.
초대 기독교회의 후예들이 처음에 12제자들에 의해서 세워진 구원의 도를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 것이 진보가 아니라 엄청난 교황권의 배도였던 것처럼, 오늘날의 재림 교회가 화잇 선지자와 초기 재림 교회의 선구자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구원의 도를 버리고 새로운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진보가 아니라 두려운 배도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해야만 한다.
현재 재림 교회 내에 존재하는 보수와 진보의 차이는 채식을 하는 방법에 대한 문제나, 여인들의 치마 길이가 무릎 아래로 얼마나 내려가야 하는가와 같은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구원의 도에 대한 문제이고, 재림 교회의 정체성, 곧 남은 교회로서의 사명과 목적에 대한 문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재림 교회의 문제는 세속적 정신과 자유주의 가르침이 신속하게 퍼져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지긋한 재림 신자들은 젊은 시절에 들었던 재림 기별을 기억하지만, 교회가 이미 신신학으로 물들어 버린 이후에 성장한 젊은 세대들은 재림 기별의 진수를 들어 볼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 당하고 말았다. 그들은 그저 토요일에 교회에 나올 뿐 재림 기별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귀를 즐겁게 하고, 논리적으로 들리는 모든 말씀을 자신의 신앙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은 성소 기별을 모른다. 그들은 늦은 비를 불러오는 기별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들은 죄를 승리하는 생애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들은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마다 죄를 버리게 된다는 말의 의미를 모른다. 그들은 축제 교회를 좋아하며, 여자 목사 안수를 지지하는 것이 진보적인 사고 방식이라고 생각하며, 계명과 순종, 그리고 성소 기별 같은 것은 이미 용도 폐기된 낡고 고리타분한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인터넷을 통하여 수시로 한국 연합회와 미주 교회 웹 사이트에 들어가 온갖 바벨론 사상을 서로 주고 받음으로써, 재림 교회를 깊은 어둠으로 끌고 가는 주역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재림 교회의 젊은 세대는 무죄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진리를 듣고 배울 수 있는 충분한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죄는 과거에 재림 기별을 듣고 동의하였다가 돌아서서 지금은 신신학의 기수로 서있는 나이든 목사와 장로와 집사와 신학자들에게 있다. 모든 책임은 한때는 재림 교회의 보수 신앙을 가지고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자유주의와 신신학으로 돌아 선 그들에게 있다. 그런데 그들은 왜 진리로부터 돌아서서 저 편으로 건너가게 되었을까? 그들은 한때 참된 재림 기별을 사랑했었다. 그러나 그들의 심령이 십자가의 사랑에 굴복되지 못했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다. 그들은 그러한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마음을 가지고 계명을 지키고자 애쓰는 율법주의적 삶을 살다가 참담하게 실패한, 쓰라린 경험의 소유자들이다. 그들이 그러한 경험 가운데서 깊은 수렁을 헤메고 있을 때, 바로 그러한 때에 그들의 귀에 달콤하게 들려오는 새로운 가르침이 있었는데 그것이 진보된 재림 신앙, 즉 신신학이었다. 신신학은 율법주의적 신앙으로 지쳐있던 그들에게 “타락한 인간이 죄를 다 이기고 정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매력적인 설교를 들려 주었을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는 전연 다른 육체, 즉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의 인성을 취하시고 이 땅에 오셨으므로 우리는 예수의 순종을 따라갈 수 없다는 완벽한 신학적 핑계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성령께서 양심 속에서 분명하게 지적해 주는 죄를 다 버리지 않더라도, 성령께서 인도해 주신 진리의 빛에 순종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덮어주시는 의”로 우리의 허물을 덮으셔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신신학적 칭의가 그들의 마음에 느긋한 평안을 주었다. “그리스도의 의는 자복하지 않고 버리지 않는 죄를 덮는 가면이 아니다. 거룩함이란 하나님께 전체를 바치는 것이며 마음 속에 있는 하늘의 원칙에 마음과 생애를 완전히 복종시키는 것이다” 시대의 소망 2권 373. 비록 헛된 것이지만 한번 마음의 평안을 맛본 신신학의 추종자들에게 있어서 참된 보수적 재림 신앙은 율법주의로 인도하는 위험한 신앙으로 보이게 되었다.
사단은 율법주의에 지쳐 있던 재림 교회에게 신신학을 던져줌으로써 단번에 참된 재림 기별을 등지게 만드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참된 거듭남의 경험없이 하루 하루를 자신의 노력으로 계명을 지키기 위하여 힘들게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신신학은 단번에 양심의 괴로움과 유황불의 두려움을 벗어나게 해주는 묘약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진보된 재림 신앙”이라고 부르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진보가 아니라 배도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의 표준을 자신의 타락한 본성을 만족시키는 수준으로 끌어내린 것에 불과할 뿐 이었다.
바벨론의 신학을 “진보된 재림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남은 교회 안으로 끌어들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예언의 신의 가르침과 완전히 상반된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예언의 신 속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듯한 말씀을 찾아내어 무지한 양무리들을 혼돈에 빠지게 하는 노력을 중단해야 한다.
재림 교회에 존재하는 보수와 진보의 투쟁을 이해하고 나면, 화잇 부인이 보았던 다음과 같은 계시의 장면을 이해하게 된다. “내게 주어진 지난 번 계시에서 나는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 가운데 극소수만이 진리로 거룩하게 되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보게 되었다” 교회증언 1권, 608. 어떻게 재림 교회가 이토록 철저하게 실패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유대 교회의 역사가 재림 교회 속에서 다시 반복되기 때문이다. 유대 교회가 하나님의 유일한 교회로서 4000년간 진리를 보존해 왔지만 결국에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고 극소수의 사람만이 구원받고 이른 비 성령의 대열에 참여 했듯이, 마지막 시대 역시 재림 교회가 복음의 마지막 주자로서 오랫동안 진리를 보존해 오다가 결국에는 마지막 기별을 거절하고 오직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진리로 거룩함을 받아 구원받게 된다는 것이 화잇부인이 보았던 계시의 장면이다. 그렇다면, 화잇부인은 재림 교회의 실패 원인으로 무엇을 지적하고 있는가?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교리들에 대한 각종 바람이 불 것이다” 교회증언 5권, 80. “기별의 전진하는 영광 속에 행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세상을 그 영광으로 환하게 비췰 빛을 거짓된 빛이라고 부를 것이다” R&H 1890, 5/27. “우리의 현실과 영원한 행복에 그렇게도 필요한 이 주제에 관한 성경의 진리를 스스로 이해하는 사람은 100명 가운데 한 사람도 없다” R&H 1889, 9/3.
우리는 진보적 사고 방식을 가지고 신신학을 가르치는 목사들과 지도자들 때문에 재림 교회가 이렇게 타락하게 되었으며, 교회의 표준이 땅에 떨어지게 된 사실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자유주의에 물들은 목사들과 지도자들은 보수 재림 신앙을 가진 교인들을 핍박하고 따돌린다. 교회의 대부분의 직책들이 신신학의 추종자들로 채워진 이 시점에서 참된 보수 신앙을 가진 재림 교인들은 설자리를 잃고 교회 안에서 방황하게 된다(앤드류스 대학의 멀빈 멕스웰 교수 편지 참조).
참된 보수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 나이가 지긋하고 힘없는 사람들이며 그 숫자가 매우 적으며, 진보적 재림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 젊고 왕성하게 활동하며 그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그래서 보수는 진보의 숫자에 밀리고 나이에 밀려서 재림 교회 속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한구석을 차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수 진영이 가르치는 구원은 그 길이 협착하고 좁아서 찾는 이들이 적고, 진보 진영이 가르치는 구원은 그 길이 넓고 평탄하여 그것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사람들의 숫자가 교단적 차원에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가고 있다.
재림 교회는 유대 교회의 역사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초림 직전의 상황이 재림 직전에 다시 반복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공식 채널인 유대 교회가 율법주의로 인하여 막히자, 침례 요한이라는 비공식 채널을 일으키셔서 그리스도의 초림의 길을 예비하셨다. 이와 같은 역사가 지금 우리들의 눈 앞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공식 채널인 재림 교회가 신신학과 자유주의로 인하여 막히자, 세계의 이곳 저곳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자영선교기관들과 참된 보수 재림 신앙인들을 일으키셔서 당신의 마지막 기별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심을 준비하고 계신다. 지금 교회는 놀라운 위기에 처해 있다. 이런 위기의 상황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심각한 마음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주께서는 당신의 사업의 위기의 때에 나타나는 무관심과 불충실을 미워하신다. 온 우주는 말할 수 없이 큰 관심을 가지고 선악간의 대쟁투의 마지막 장면을 주목하고 있다. 각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엘리야와 다니엘과 같이 저희가 당신의 특별한 백성임을 고백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는 도덕적 영웅들을 가지고 계셨으며 지금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은 적극적인 활동가들의 노력 위에 부어지게 되는데, 그들은 의무의 노선에서 벗어나지 않고 거룩한 힘을 가지고 누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냐고 물을 수 있는 사람이며, 다만 묻는 것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전진하여 만왕의 왕과 만주의 주에게 저희의 충성을 분명하게 나타내도록 요구할 사람들이다” 선지자와 왕, 137-138.
어떤 사람들은 “새는 두 날개로 난다”는 말로 재림 교회 안에 존재하는 보수와 진보의 공존을 주장한다. 물론, 새는 두 날개로 난다. 그러나 두 날개로 날되 한 방향으로 날아 간다. 만일 새의 날개가 서로 다른 반대 방향으로 날기 위하여 퍼덕거린다면, 그 새는 한 방향으로 날아갈 수 있겠는가? 그러한 새는 결코 날 수 없다.
지금 재림 교회가 가지고 있는 보수(우익)와 진보(좌익)라는 두 날개 역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퍼덕거리고 있다. 바로 이것이 재림 교회에 지금까지 늦은 비가 없는 이유이다. 우리는 재림 교인으로서 보수와 진보 중 어느 진영이 진리를 가지고 있는가를 심각하게 살펴 보아야 한다. 그래서 진리와 오류 중 어느 하나를 택해야 한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재림 교회의 형편은 감리 교회와 같다. 처음에 감리 교회는 요한 웨슬리와 챨스 웨슬리 형제에 의해서 놀라운 부흥을 경험하면서 성서적 거룩함을 강조하는 교회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웨슬리 형제가 죽고 시간이 흐르면서 감리교회는 “진보”라는 명분 아래 온갖 다른 사조들과 가르침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결과, 현재의 감리 교회는 감리 교회라는 간판을 걸고 있고, 요한 웨슬리의 동상이 그들의 교회 앞 마당에 서 있지만, 더 이상 감리 교회가 아니며 웨슬리 형제의 사상과 가르침이 없는 교회가 되어 버렸다. 감리 교회가 아니지만, 감리 교회 간판을 걸고 있는 교회, 이것이 오늘날의 현대 감리교회의 모습이다.
재림 교회는 어떤가? 재림 교회는 2300주야의 성서적 예언 해석을 통하여 세워진 교회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에 예언의 신을 허락하셔서 마지막 시대의 남은 교회로서의 사명을 맡기셨다. 그러나 이 교회의 선구자들이 죽고 세월이 흐르면서, 교회는 진보라는 이름하에 받아들여진 각종 다른 구원론과 자유주의적 사상으로 채워져 왔고, 그 결과 재림 교회는 남은 무리로서의 사명과 목적을 상실한 채 끝없이 표류하고 있다. 남은 교회이지만 남은 교회로서의 기별과 사명과 목적을 상실한 교회, 바로 이것이 현대 재림 교회의 모습이다.
나는 스스로 진보 진영을 선택한 재림 교인들에게 이렇게 호소하고 싶다! “여기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늦은 비를 위하여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믿음은 늦은비를 가져오는 기별과 정면으로 부딪히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믿는 구원의 도는 재림 교회보다는 이미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린 제칠일 안식일 침례 교회에 더 합당한 것입니다. 비록 여러분이 지금은 진보적 재림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여러분 각자의 양심 속에서 말씀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으면서 기도하는 심령으로 성경과 예언의 신에 나타난 구원의 도를 연구한다면, 반드시 진리를 발견하고 우리 모두가 하나로 연합하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재림 교회가 마지막 남은 교회로서 받은 기별과 자신이 믿는 진보적 재림 신앙을 면밀하게 비교해 본 다음, 재림 교회가 150여년 전에 받았던 그 복음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었다는 결론이 내려지거든, 부디 자신의 신앙적 양심이 추구하는 교회를 찾아 이 교회를 떠나는 결단을 내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재림 교회의 보수와 진보가 만나 그리스도인으로서 함께 성경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시간을 갖게 되길 원한다. 어떤 사람이나 그룹을 이단이나 극단으로 정죄하기 전에 먼저 그들이 믿는 바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서로의 견해를 나누는 일이야말로 현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끝으로 미주 재림 교회 협의회에 다음과 같은 호소와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부디, 교회 차원에서 보수와 진보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재림 신앙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밝히고, 진리를 연구할 수 있는 성서적 공청회를 열어주기를 바란다. 재림 교회가 처음 세워졌을 때처럼, 서로가 자신을 낮추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과연 무엇이 성경과 예언의 신이 말하는 구원의 도인지를 연구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크게 축복해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끝으로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