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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내용을 우리의 입맛대로 편집하지 않고 독자 여러분께 사실 그대로 소개하는 것이 정직한 입장일 것 같기에 <재림신문>의 틀을 그대로 사용했음을 양해 바란다. 기사의 어떤 부분들은 <생애의 빛>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최소한 독자들은 무엇이 이슈이며, 교회역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기사라 생각된다. 그리스도의 인성, 죄의 정의, 그리스도인의 완전 등 이러한 문제들로 교회는 50여 년 이상 씨름해 왔다. 어떤 사람들은“이런 케케묵은 신학논쟁을 언제까지 할 것이냐?”“할 일들이 없으니 쌈박질이나 하고 있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굳이“하나님의 아들의 인성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들과 그리스도를 묶는 사슬이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께 묶어놓는 황금 사슬이다.”(원고 67, 1898)라는 언급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논의되는 이러한 주제들은 정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다. 복음에서“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라는 <성육신>을 빼고 무슨 할 얘기가 있겠는가!

대총회장, <생애의 빛>과 신학적 입장 동일
이러한 주제들은 여러 차례 논의해 왔으므로 새삼 무엇이 진리이냐를 논하지는 않겠다. 다만, 한국 재림교회가 가르치는 내용과는 전혀 다른, 오히려 <생애의 빛>과 동일한 신학적 입장을 대총회장이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자 그렇다면, 교회는 큰 문제다. 신학대학 교재, 여러 목사의 강의, 재림교회 공식사이트인 재림마을 등에서 <생애의 빛>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단이라고 단호하게 성토했던 이들이 이제는 이단 목사가 대총회장이 되었으니 촛불 시위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
재림마을 게시판에 "견고한 토대(생애의 빛)와 관련한 내용을 쓸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반대하는 내용은 쓸 수 있습니다." 또 "견고한 토대(생애의 빛)와 관련한 글을 게재하거나 댓글을 올리는 분들의 회원권을 정지하고 있습니다."라는 운영자의 공지를 본 적이 있다. 한국 재림교회의 윤리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더 안쓰러운 것은 <생애의 빛>을 공격하기 위해 여러 글을 쓰는 사람들의 내용이, 정말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것일 뿐만 아니라 재림교회의 신학이 아닌 내용으로 비판하는 글들까지 용인돼 있었다. 무엇이든 <생애의 빛>을 비판만 하면 된다는 이런 방식은 "우리와 눈썹이 다르게 생겼기 때문에 저 여자는 마녀"다 부르짖으며 화형 시켰던 중세기의 마녀 사냥식 논리를 연상케 한다.
한국 재림교회는 성도들에게 <생애의 빛>에 대해 두려울 정도의 공포심과 경계감을 심어주는데 성공했다. 그것은 필자의 경험에서도 분명하다. 북한군들은 모두 늑대처럼 생겼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처럼, <생애의 빛>은 사탄의 하수인들이거나 또는 집단적 광신주의자들, 위험스럽고 절대 상대해서는 안 되는 자들로 경계에 경계를 더했던 적이 있다.
왜 한국 재림교회는 성도들이 전혀 듣지 못하게 막으려는 것일까! 그것이 정말 이설이기 때문에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그것이 정말 진리이기 때문에 귀를 막으려는 것인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자신들이 믿는 것만을 고집스럽게 주장하며 그 외의 것들은 듣지 못하게 막고 있는 현 한국 재림교회의 현실이 딱하기만 하다.
핍박의 결과
재림신문에 다 실리지는 못했지만, 신문사에서 질문한 내용 중에 "억울하다고 생각한 점"은 없었는지를 물었다. 7개의 질문 중에 가장 답변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도무지 생각해내려고 해도 억울하다거나 마음에 쓴 뿌리로 남아 있는 어떤 것이 있다거나 하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재림신문에서도 <생애의 빛>에 대해,"신앙의 혼란과 파괴를 부르는 치명적인 독소","잘못된 이해를 기반으로 구성된 구원론","완전주의적 신앙으로 인도해 신앙의 행복을 파괴하는"사람들로 표현했지만, 솔직히 이런 평가를 보면서도 마음에 아무런 동요나 성가심이 없었다. 아마 4년 전쯤 그 질문을 받았다면 여러 할 얘기가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율법주의자, 완전주의자"를 넘어 "이단"이라는 선언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런 선고를 받은 사람이 어찌 억울함이 없었겠는가?
필자가 한국 <생애의 빛> 사업을 맡기 시작하면서 영혼을 거듭나게 하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이 놀라운 복음을 교단이 무작정 반대하는 것을 보며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심정이 들어 교단과 화해의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참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당시 연합회장과 임원들, 신학과 교수들에게 우리가 믿는 것이 무엇이고, 교단과 한 길을 가기를 바란다는 호소편지를 보낸 적이있다. 그것은 조직으로부터 어떤 인정을 바라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게 한 그 영원한 복음을 말하고 싶은 간절한 소원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후 교단은 그 어느 때보다도 <생애의 빛>을 세상에서 없애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듯 했다. 그런데 이러한 교단의 노력 덕분에 '도대체 <생애의 빛>이 무엇을 전하기에 교단이 저리도 핍박할까'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노크했고 그 결과 진정한 회개와 거듭남의 경험을 하게 되는 사람들을 무수히 보기 시작했다. 진정 예수 안에서의 자유와 주님과 동행함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생명력이 넘치는 역동적인 그리스도인 삶을 살게 되는 복음의 결과들을 보았다. 이 말씀을 듣고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것을 수없이 목격하고 있으며 필자도 그 사람들 중의 하나다.
편견과 오해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것들을 주의 역사를 이루는 데 사용하고 계심을 보았다. 마치 2300주야 예언의 끝이 이르렀을 때, 1844년 10월의 재림성도들은 참으로 쓰디쓴 실망과 패배를 맛보아야 했다. 그렇게 진실하고 재림을 사모했던 이들을 왜 그토록 아픈 경험에 처하도록 하나님은 인도하셨을까? 굳이 다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 절망은 성소진리의 발견과 결국 재림교회의 태동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