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주제는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교인들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이면서 동시에, 곡해되어 있고, 엇갈린 이해로 혼돈되어 있는, 쉬우면서도 어려워서 잘 이해되지 않는 문제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는 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의미를 엘렌 지 화잇 여사의 영감의 글들을 통해서 다시 명확하게 찾아보고자 합니다. 이 주제에 대한 깊은 이해는 우리들에게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경험을 하게 하는 귀한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Q. 화잇 여사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이해가 특별히 마지막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얼마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A. 주님께서 속히 재림하실 것을 믿노라고 주장하는 모든 신자들은 전에 없었던 열성을 가지고 성경을 연구해야 하는데 이는 사단이 영혼들을 흑암에 가두고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위기에 대하여 깨닫지 못하도록 온갖 책략을 시도하려고 굳게 결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신자들은 열렬한 기도로써 성경을 연구함으로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성령의 깨우치심을 받게 될 것이며 하나님과 또한 당신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더욱 많은 지식을 얻게 될 것이다. 숨은 보화를 찾듯이 진리를 탐구하라. 그리고 원수를 실망시키라. 시련의 시기가 우리에게 임박하였는데 이는 죄를 사유하시는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의 의에 대한 계시를 보여주심으로 셋째 천사의 크게 외침이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온 땅을 영광으로 환하게 할 천사의 빛의 시작이다. … 만약 그대들이 환란의 때를 견디기 원한다면 그대들은 그리스도를 알아야 하며 회개한 죄인에게 전가시켜 주시는 주님의 의의 선물을 자기의 것으로 삼아야 한다. (가려뽑은 기별1권, 362,363)
Q. 그렇다면 먼저 믿음이 무엇인지부터 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A.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부주의한 신앙이 아니며 단순한 지적 찬동이 아니다. 믿음이란 마음에 깊이 뿌리가 박히고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삼으며 주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오는 모든 자들을 주님께서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장하는 것이다. … 죄인은 오직 범죄한 세상의 죄를 위하여 희생 제물이 되신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대속을 믿음으로써만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 아무도 자기 자신의 행위로써 의롭다 함을 받을 자가 없다. 죄인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사망과 부활의 공로를 통해서만 죄와 율법의 정죄와 범죄의 형벌에서 구원 받을 수 있다. 믿음이야말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며 신앙이란 믿는 것뿐만 아니라 신뢰하는 것을 포함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명목상의 신앙을 가지고는 있으나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구세주의 공로를 차지하시기에 합당하신 주님에게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 많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구세주이심을 인정은 하면서도 동시에 저들은 주님에게서 자신을 멀리하고 저희 죄를 회개하지 않으며 예수님을 저들의 개인적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저들의 신앙은 단순히 정신적인 동의에 그치며 진리를 판단하는 것으로 전부를 삼는다. 그러나 진리를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그 영혼을 성결케 하지 못하고 그 품성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가려뽑은 기별 1권, 389,390)
Q. 믿음이란 단순한 지성적인 동의나 진리의 깨달음이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을 굴복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럴 때에 진정한 변화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A. 이 높은 이상에 도달하기 위하여, 우리는 영혼을 넘어지게 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 죄가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의지를 통해서이다. 의지를 굴복시키는 것을 눈을 빼 버리거나 손을 베어 버리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의지를 하나님께 굴복하는 것이 평생을 병신이나 절뚝발이로 보내기로 동의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자주 있다. (산상보훈, 61)
그대들은 여러 번에 걸쳐서 매번 조금씩 죄를 버려야 할 것이라고 상상하는가? 아, 그 가증한 죄를 당장 버리도록 하라. … 우리들이 죄인이며 신령하신 바위에 떨어져 부서진다는 의미를 깨닫기 시작할 때에 영원하신 팔이 우리들을 안아 주시며 우리들을 예수님의 마음에 가까이 이끌어 주실 것이다. … 그러나 그대들은 “이처럼 나의 모든 우상들을 깨끗이 포기한다면 나의 마음은 찢어질 것이다”라고 말할는지 모른다.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는 마음의 자세를 신령한 바위에 떨어져 부서지는 것으로 상징하였다. 그러므로 주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라. 그대들이 부서지지 않는 한 그대들은 무가치한 자들이 될 것이다. … 그 때에 비로소 그대들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는 이치를 깨닫게 될 것이며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품성의 완전하심이 나타나 있고 주님의 생애 가운데 신성의 원칙들의 작용하심이 나타나 있다. (가려뽑은 기별 1권, 328,329,330)
Q. 아주 흥미 있는 말씀이신데 우리의 마음의 굴복과 믿음과 변화에 대하여 조금 더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A. 사람이 그리스도께 굴복할 때에 새로운 능력이 새 마음을 점령한다. 사람이 스스로는 성취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은 인간의 성정에 초자연적인 요소를 가져다주는 초자연적인 역사이다. … 악에 대한 유일의 방어는 그분의 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내재시키는 것이다. 하나님과 산 연결을 맺지 아니하면 우리는 결코 자아 사랑과 자아 방종과 죄에 대한 유혹의 부정한 영향을 대항할 수 없다. 우리는 많은 악습을 버릴 수 있을 것이며 얼마 동안은 사단과의 관계를 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순간마다 자신을 굴복시킴으로 하나님과 산 연락을 가지지 아니한다면 우리는 패배할 것이다. (시대의 소망, 324)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의롭다 하심을 얻기 이전에 그 심령의 완전한 복종을 요구하신다. 인간이 의롭다 하심을 보유(保有)하기 위하여서는 계속적인 순종을 하여야 하며 사랑으로 역사하는, 활동적이며 살아있는 믿음을 통하여 그 영혼을 순결케 하여야 한다. … 인간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기 위하여 그의 믿음이 마음의 모든 애정과 충동들을 지배할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해야 한다. 또한 믿음 자체가 완전함에 이르게 되는 것은 오직 순종에 의해서이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없이는 죄인은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 있게 되며 그를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거룩한 은혜를 힘입을 때에 초자연적인 능력이 인간에게 부여되며 그 능력이 인간의 정신과 마음과 품성에 역사하게 된다. (가려뽑은 기별 1권, 366)
Q. 화잇 여사님, 참 믿음은 우리의 전적인 굴복을 가져오는 것이라는 말씀인데, 그러나 사실상 믿음 자체에는 어떠한 공로나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A. 믿음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사유하심을 약속할 만한지를 다루어 보시는 조건이다. 그것은 믿음 안에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어떤 공덕이 있어서가 아니라 죄의 치유제로 마련된 그리스도의 공로를 그의 믿음이 붙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은 영혼을 순결케 한다. 성령께서는 믿음을 통하여 그 영혼 안에 거룩한 형상을 이루시기 위하여 심령 속에 역사하신다. 그러나 인간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일하지 않는 한 이 일은 성취될 수 없다. 우리들은 오직 성령께서 마음에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만약 우리들이 하늘 아버지께 나아갈 통로를 찾으려면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들의 신임장으로 가져야만 할 것이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의를 얻기 위하여 매일 성령의 감화로 말미암아 변화함을 입고 거룩한 성품의 참여자가 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취미를 고상하게 하고 심령을 성화시키며 인간 전체를 고결하게 하는 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 (가려뽑은 기별 1권, 366,375)
Q. 그 믿음을 우리가 가질 때에,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의를 행하는 사람들로 만드는 것이라는 말씀이시네요. 이 말씀을 조금 더 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A. 말로만 제자라고 하는 것은 아무 가치가 없다. 영혼을 구원하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제시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들은 “믿어라, 믿어라, 그러나 율법을 지킬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순종으로 이끌지 않는 믿음은 가정일 뿐이다. …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그분 위에 집을 짓게 된다. 단순히 의를 즐기는 자가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의를 행하는 자가 의로운 사람이다. 거룩하게 되는 것은 황홀경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친 결과이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 신앙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천하는 데 있는데 그것은 은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 자격이 없는 우리가 그분의 사랑의 선물을 받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구원의 근거를 단순한 신앙 고백이 아니라 의로운 행동을 통해 나타나는 믿음에 두신다. 단순히 말만 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기대되고 있다. 품성은 행동을 통하여 형성된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로마서 8장 14절). 하나님의 자녀란 단순히 마음으로만 성령에 의해 감동을 받거나 가끔 그 능력에 굴복하는 자들이 아니고 성령에 의해 인도되는 자들이다. … 그대가 가지고 있는 빛을 따르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에 순종하려는 마음을 가지라. 하나님의 능력과 그분의 생명은 그분의 말씀 가운데 있다. 그대가 믿음으로 그 말씀을 받아들일 때, 그것은 순종할 능력을 주게 될 것이다. 그대가 소유하고 있는 빛에 유의할 때, 더 큰 빛이 오게 될 것이다. 그대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집을 짓고 있으므로 품성이 그리스도의 품성과 같은 모습으로 형성될 것이다. (산상보훈, 146,149,150)
Q. 의로운 자가 되기 위하여서는 진정한 회심의 경험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하는데 참 개심의 경험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A.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거듭났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제시하고 있는 성품의 테스트에 합당치 않은 상태에 있다.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자들이 모든 사람이 자기들의 행한 일들을 따라 보상을 받는 날에 얼마나 슬픔에 처할 것인가! 회심이란 마음의 변화를 말하며 불의에서 의로움으로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고 주님을 믿는 참 믿음을 실행함으로 회개한 죄인은 죄에 대한 용서를 받는다. 악을 행하기를 그치고 선을 행하기를 배울 때에 그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은혜 가운데 자라가는 것이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하여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하며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려야 할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는 천성적인 성격과 이기적인 욕구들과 싸우기 위하여 기꺼이 나아가며 그리스도의 뜻에 자기의 의지를 전적으로 굴복한다. 매일 그는 주님께 은혜를 간구하며 힘과 도움을 얻게 된다. 자기 자신이 한때는 자기의 마음을 다스렸고 세속적인 쾌락이 그의 기쁨이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제쳐 놓아지고 하나님께서 최고의 자리에서 다스리시게 된다. 그의 생애는 의로운 열매를 맺히게 된다. 그가 사랑하던 죄들을 이제는 미워하게 된다. 확고하고 단호하게 그는 거룩한 길을 따라 행한다. 이것이 참된 회심이다. 교회의 녹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의 생애에 참된 변화의 경험이 없다. 진리가 그들의 마음 밖에 있다. 참된 회심이 없고 마음에 확실한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그들의 욕망이 그들 자신의 의향에 기초한 것이요, 성령의 깊은 자각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행위가 하나님의 율법과 조화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주로 받아 드린다고 공언하지만 주께서 그들의 죄들을 이길 능력을 그들에게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살아계신 구세주와 개인적인 접촉이 없다. 그리고 그들의 성품은 많은 흠을 나타내고 있다. (Review & Herald, July 7, 1904)
옛 성질 즉, 혈과 육의 뜻으로 난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 옛 생애들, 유전적으로 받은 경향들과 이전 습관들은 포기되어야 한다. 새로 태어남은 새로운 동기, 새로운 입맛, 새로운 경향을 가지는 것이다. 성령으로 새 생명 가운데 태어난 자들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되고 그들의 습관들과 행실들이 그들의 그리스도와 가진 관계의 증거를 제시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그들의 천성적인 성품과 성격들의 결함들을 그냥 가지고 있다면 그들의 형편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그들은 진리를, 거룩하게 하고 정화시키는 것으로 감사히 여기지 아니하였다. 참된 회심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그리고 후천적인 잘못된 경향들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Maranatha, 237)
Q. 진정한 회개에 대하여 몇 말씀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A. 우리는 흔히 우리의 악한 행실이 자신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슬퍼한다. 그러나 이것은 회개가 아니다. 죄를 진정으로 슬퍼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의 결과이다. 성령께서는 구주를 모욕하고 슬프시게 한 감사하지 않는 마음을 드러내어 우리로 십자가 밑에서 통회하게 하신다. 모든 죄로 말미암아 예수께서 다시 상처를 입으신다. 그러므로 우리 때문에 찔림을 받으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께 고뇌를 안겨 준 죄로 인하여 슬퍼하게 된다. 이러한 애통이 죄를 버리게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은 이 슬픔을 연약하다고 말할지 모르나 그것은 통회하는 자를 끊을 수 없는 고리로 무한하신 하나님께 동여매는 능력인 것이다. (시대의 소망, 300)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 사람들에게 나타내셔서 모든 인간의 심령을 당신에게로 이끄시기 위하여 오셨다. 주님께서는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고 말씀하셨다. 구원을 향한 첫 단계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이끄심에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에게 회개의 탄원을 하시며 또한 저들을 용서해 주실 수 있고 저들의 이름 위에 적힌 죄에 대하여 사유의 표를 찍을 수 있기 위하여 거듭거듭 인간에게 기별을 보내신다. 그런데 회개함이 없어서야 될 말인가? 주님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서 될 것인가? 주님의 자비의 제의를 어찌 모른 척하며 주님의 사랑을 어찌 냉정하게 거부할 수 있을 것인가? 만일 인간이 주님의 자비와 사랑을 거부한다면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매개물에서 스스로 절연하게 되는데 오직 하나님께서만 회개한 죄인을 용서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시며 당신의 성령의 탄원을 통하여 인간에게 회개를 호소하신다. 회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당신께서 용서하시는 사람을 먼저 회개케 하신다. … 죄인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죄인의 범죄의 고통을 맛보시며 죄의 형벌을 받으시는 것을 바라볼 때, 십자가의 죽음의 두려운 표현으로써 악에 대한 하나님의 증오심과 타락한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게 될 때,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한 율법을 범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향하여 회개하게 될 것이다. (가려뽑은 기별 1권, 323,324)
그리스도의 의를 얻기 위하여 마음과 정신과 행동의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회개가 무엇임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변화의 과정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며 인간의 모든 기능을 통하여 그 변화의 능력을 나타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이와 같은 회개를 자발적으로 할 능력이 없으며 오직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엡 4:8)신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회개의 체험을 맛볼 수 있다. (가려뽑은 기별 1권, 393)
Q.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일, 즉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 일과 행함과의 관계에 대하여 어떻게 이해하면 좋겠습니까?
A. 선한 행실로 말미암아 단 한 사람의 영혼도 구원을 받을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와 반면에 어떤 영혼도 선한 행실이 전혀 없이 구원 받기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인간의 협력이 없이 인간을 위하여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자기를 이기는 위대한 일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는 견해를 나타내지 말 것이다. 또한 그대들이 인간적인 최선을 다한 이후에 예수님께서 그대들을 도우실 것이라고 말하지도 말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말씀하셨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은 하나님과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 성령께서 인간의 심령에 역사하시지 않는 한, 우리들은 매 발자국마다 걸려 넘어질 것이다.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으며 무가치한 것이다. 다만 그리스도와의 협력만이 승리를 의미한다. … 인간의 편에서 별로 할 일이 없다거나 전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인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성공적으로 승리하기 위하여 인간이 하나님과 협력해야 할 것을 가르치라. 아무도 그대들의 행위가 하나님 앞에서 갖게 될 그대들의 계급과 지위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을 하지 말 것이다. 심판 때에 무엇을 했는지 혹은 무엇을 하지 않았는지에 따라서 판결이 내려질 것이다(마 25:34-40). (가려뽑은 기별 1권, 377,381)
Q.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의 죄를 가려준다는 의미에 대하여 좀 구체적으로 알려 주시겠습니까?
A. 개혁이 따르지 않는 회개는 참된 회개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의는 자복하지 않고 버리지 않은 죄를 덮는 외투가 아니다. 품성을 변화시키고 행동을 제어하는 것이 생애의 원칙이다. 거룩함이란 하나님께 전체를 바치는 것이며 마음속에 있는 하늘의 원칙에 마음과 생애를 완전히 복종시키는 것이다. (시대의 소망, 555)
그리스도의 의는 품고 있는 단 하나의 죄도 가려 주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할 수 있다. (실물교훈, 316)
하나님께서 아무리 공의로우시며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죄인을 의롭게 하실 수 있다 할지라도 어떤 인간이든지 자신이 알고 있는 죄를 여전히 행하며 알고 있는 의무들을 등한시하면서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로 자신의 영혼을 가리울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의롭다 하심을 얻기 이전에 그 심령의 완전한 복종을 요구하신다. 인간이 의롭다 하심을 보유(保有)하기 위하여서는 계속적인 순종을 하여야 하며 사랑으로 역사하는, 활동적이며 살아 있는 믿음을 통하여 그 영혼을 순결케 하여야 한다. (가려뽑은 기별 1권, 366)
믿음으로 그는 (너무나 엄청난 잘못을 행하여 하나님을 욕보인 죄인) 그리스도의 공로를 하나님께 가져올 수 있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의 순종을 그 죄인의 계정에 넣으신다. 그리스도의 의는 죄인의 실패 대신에 받아지는바 되는 것이다. (Review & Herald, Nov. 4, 1890)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 편의 어떠한 공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선물로서 우리에게 입혀진바 되는 것은 한 귀한 사상이다. (Review & Herald, Sept. 3, 1889)
Q. 그리스도의 의를 입는다는 뜻을 이제는 훨씬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의의 옷을 입는다는 의미를 한마디로 다시 한 번 쉽게 설명해 주실 수가 있으십니까?
A. 그는 이 세상에 계실 때에 그의 제자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요 15:10)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당신의 완전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게 하셨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바칠 때에 우리의 마음은 그리스도의 마음과 연합되고 우리의 뜻은 그분의 뜻에 합병되고, 우리의 정신은 그분의 정신과 하나가 되고, 우리 생각은 그분에게 사로잡히게 되어 마침내 우리는 그분의 생애를 살게 된다. 이것이 바로 그분의 의의 옷을 입는다는 의미이다. 그리하면 주께서 우리를 보실 때에 무화과나무 잎으로 엮은 옷이나 죄로 인해 벌거벗고 뒤틀린 우리의 몸은 보지 아니하시고 여호와의 율법을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이루신 당신 자신의 의의 두루마기를 보게 된다. (실물교훈, 312)
Q.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의롭게 된다고 하는 것은 용서도 포함되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의 완전한 회복으로서, 그 일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현재 우리에게도 가능하다는 말씀이십니까?
A. 그리스도의 구속은 단지 우리의 죄를 용서하는 기술적인 방법이 아니라, 그것은 범죄를 치료하고 영적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한 거룩한 처방이다. 그것은 하늘이 고안해낸 방법으로서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를 덮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성품 안에 있게 하는 것이다. (6 SDABC, 1074:Letter 406, 1906)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되고 일그러져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의 체력은 약해지고, 지적 능력은 떨어지고, 영적 통찰력은 어두워졌다. 그래서 인간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류는 소망 없이 버려지지 않았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로 구원의 경륜이 세워지고, 생명에 대한 유예(猶豫)의 은혜가 주어지게 되었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실현되도록 사람에게서 창조주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것, 다시 말해 지·덕·체의 발달을 증진시켜 사람으로 하여금 창조되던 당시의 완전한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구속 사업이다. 이것은 또 교육의 목적인 동시에 인생의 위대한 목적이기도 하다. (교육, 15)
Q. 그렇다면 입혀주신 의란 우리의 죄를 덮어 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A.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당신을 받아드리는 모든 자에게 당신의 입혀주신 은혜와 능력을 주신다. (7 SDABC,929)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신들의 선한 행실이나 힘이나 공로 가운데서가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 입혀주신 그리스도의 의 가운데서 강하게 될 것이다. (상동, 907)
믿음으로 주를 받아들이는 모든 자들은 입혀주신 그리스도의 의를 통하여 율법을 지킴으로 그들의 충성을 나타낼 수 있다. 회개하는 죄인이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붙잡을 때에 그는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로 만들어진 것이다. (영문시조, 4-7, 1898)
주님께서 당신의 입혀주신 의를 통하여, 믿는 영혼이 하나님의 계명들을 순종하게 될 것을 증거 하신다. (영문시조, 1-16, 1896)
그리스도의 입혀주신 의를 통하여 죄인은 자신이 용서받은 것을 느낄 수 있고 율법이 더 이상 그를 정죄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가 그 모든 계명들의 가르침과 조화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Sons and Daughters of God, 240)
당신의 이름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주께서는 당신의 의를 우리에게 입혀 주시는 데, 그것은 우리의 생애에서 살아있는 원칙이 된다. (That I May Know Him, 302)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받는 것은 우리의 공로로 인함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값없는 선물이라는 생각은 얼마나 귀한 생각인가! 하나님과 사람의 원수 마귀는 사람들이 이 진리를 충분히 받아들이면 자기의 힘이 무력하여질 것을 알므로 이 진리가 명백히 소개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마귀가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음을 지배하여 의심과 불신과 어두움을 경험하게 하면, 사단은 그들을 시험에 빠뜨려 정복할 수 있게 된다. (복음사역자, 161)
Q. 과연 우리에게 완전한 죄의 승리가 가능한 것입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되는 일이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A. 당신의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이상은 가장 높은 인간의 생각이 도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높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이 명령은 일종의 약속이다. 구속의 계획은 우리를 사단의 권세에서 완전히 회복시키는 것을 의도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회개하는 영혼에게서 죄를 분리시키신다. … 죄를 범하는 데에 핑계가 있을 수 없다. 거룩한 기질, 그리스도와 같은 생애가 모든 회개하고 믿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스도인 품성의 이상은 그리스도와 같이 되는 것이다. 인자(人子)께서 당신의 생애에서 완전하셨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도 그들의 생애에서 완전하여야 한다. (시대의 소망, 311)
예수께서는 사단의 궤변에 응하실 아무것도 가지시지 아니하셨다. 그분은 죄를 용납하지 아니하셨다. 그분은 생각까지라도 시험에 굴복하지 않으셨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시대의 소망, 123)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의 모본을 통해서 인간이 완전무결하게 죄를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증거 해 보이셨다. 인간은 악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는데 그 능력은 이 세상이나 사망이나 지옥이 지배할 수 없는 능력이며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저들을 승리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이다. 저들 인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이 결합될 수 있다. (가려뽑은 기별 1권, 409)
믿음으로 하나님의 계명들을 순종하는 매 사람마다 아담이 범죄 하기 이전에 살았던 상태에 이를 것이다. 가장 가한 유혹일지라도 죄에 대한 핑계가 될 수 없다. 아무리 그 압력이 크게 그 영혼에게 미쳐 올지라도 죄악은 우리 스스로의 행위이다. 지상이나 지옥의 세력이 어떤 사람에게 죄를 짓도록 강요할 수 없다. 의지가 먼저 동의하고 마음이 굴복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정욕이 이성을 능가할 수 없고, 죄는 의를 뒤엎고 승리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여할 때에 유전적이고 또한 배양 되어온 잘못을 행하려는 경향들이 성품으로부터 끊어져 나가게 되고 우리는 선을 위하여 살아있는 능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Maranatha, 224,225)
Q. 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이해가 바로 마지막 시대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서 굉장한 투쟁의 쟁점이 될 것으로 생각 되는데, 끝으로 마지막에 있을 쟁투의 모습을 잠깐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A.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이 셋째 천사의 기별의 골자이다. (Review & Herald, Apr. 1, 1890)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이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는다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왔다. (Review & Herald, Aug. 13, 1889)
우리의 현재와 영원한 승리에 있어서 그렇게도 필요한 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성경진리를 이해하는 사람이 백 명 중에 한 사람도 없다. (Review & Herald, Sept. 3, 1889)
주님께서 성소를 떠나실 때 이 땅의 거민들에게는 암흑이 덮인다. 이처럼 두려운 시기에 의인들은 중보자 없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 (각 시대의 대쟁투, 614)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란”의 때가 곧 우리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경험하고 있지 못한 경험 즉 사람들이 얻기를 너무도 게을리 하고 있는 한 가지 경험을 얻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상했던 것보다 실제로 당하는 환란이 가벼운 것이 상례이지만 우리 앞에 있는 위기는 그렇지 않다. 가장 자세하게 묘사하여도 그 시련의 크기를 여실하게 표현할 수 없다. 그 환란의 때에 각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우리의 대제사장께서 우리를 위하여 속죄하고 계시는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여지고자 노력해야 한다. 우리 구주께서는 비록 생각으로라도 유혹의 힘에 굴복당하지 않으셨다. …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셨다. 그러므로 그분에게는 사단이 이용할 수 있는 죄가 전혀 없었다. 그것은 환란의 때에 서게 될 사람들에게 반드시 나타나야 할 상태이다. (각 시대의 대쟁투, 622)
폭풍우가 다가올 때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노라고 공언해 오면서도 진리를 순종함으로 성화되지 못한 많은 부류의 사람들은 그들의 위치를 떠나 반대편의 대열에 가담할 것이다. 그들은 세상과 연합하고 그 정신에 동참해 왔으므로 모든 것을 세속적인 사람들과 거의 동일하게 생각해 왔다. 그러므로 시험이 올 때 그들은 평안하고 인기 있는 편을 택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한 때 진리 안에서 기쁨을 누렸던 재능 있고 말솜씨가 좋은 사람들은 그 능력을, 사람들을 속이고 미혹하기 위하여 사용할 것이다. 그들은 이전의 형제들에게 가장 큰 원수가 된다. (각 시대의 대쟁투, 608)
곧 하나님의 백성들이 불의 시련들로 시험을 받게 되고 지금은 순결하고 진실되게 보이던 자들 가운데 대 다수가 가치 없는 금속으로 드러날 것이다. (5T, 136)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그대들은 변화하게 될 것이며 그대들이 전에 품고 있던 교만심, 허영심, 자존심, 스스로 의롭다 하는 정신 및 불신을 증오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대들은 이러한 죄들을 무가치한 멍에처럼 버리게 될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고 온유하며 진실하게 행할 것이다. 그대들은 사랑, 인내, 온유, 양선, 자비 및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어야 할 모든 은혜스러운 일들을 행할 것이며 마침내 성화되고 거룩한 백성들과 함께 자리를 같이 하게 될 것이다. (가려뽑은 기별 1권, 388)
칭의란 영혼을 멸망으로부터 구원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 영혼은 성화를 얻을 수 있게 되고, 성화를 통하여서 하늘의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칭의는 그 양심을 죽은 행실로부터 정결케 하여 성화의 축복들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E.G. White – 7 SDABC, 908, 원고 113, 1902)
Q. 끝으로,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고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서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주의 음성을 듣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원할 때는 언제든지 변화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지요. 그러나 원하는 만큼 그 일이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인데, 우리가 지금 매일 매일 승리하는 생애를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신과 싸우는 싸움은 일찍이 싸운 싸움 중 가장 큰 싸움이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서 우리의 마음을 그분께서 완전히 지배하게 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배하도록 허락해 드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분께서 우리를 새롭고 거룩하게 만들어 주실 수 없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바칠 때 그분에게서 우리를 분리시키는 모든 것을 버리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누가복음 14:33).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게 하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을 숭배한다. 그들은 재산에 대한 욕망과 돈에 대한 사랑 때문에 사단에게 붙들어 매여 있다. 어떤 사람들은 명예를 다른 어떤 것보다 더욱 갈망한다. 그들은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보고 칭찬해 주기를 원한다. 어떤 사람들은 염려에서 벗어나 안이하고 이기적인 생애를 누리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것에서 돌아서야 한다. 우리는 절반은 하나님께 속하고 절반은 세상에 속할 수 없다. 우리는 전적으로 그분의 소유가 될 때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노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 그분의 율법을 순종하고자 한다. 그들 스스로의 노력으로 그들은 올바른 품성을 계발하고 구원을 받고자 노력한다. 그들의 마음에는 예수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이해함으로써 얻는 감동이 없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늘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요구하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생애를 하고자 노력한다. 그와 같은 신앙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예수님께서 우리 속에 살아계실 때 우리는 그분의 사랑으로 충만해진다. 그분과 나누는 우정의 기쁨이 우리로 하여금 그분께 가까이 가고 싶은 욕망을 가지게 해 준다. 우리가 그분을 생각함으로 자아는 잊어버린바 된다. 그분에 대한 사랑이 모든 행동을 지배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면 우리가 가장 적게 드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게 된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그대로 하고자 애쓰게 된다. 우리는 모든 것을 그분께 드리기를 원하게 되고,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정도에 따라 저절로 드리게 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은 하지만 이런 사랑을 나타내지 않는 사람들은 의미 없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무거운 짐이다.
우리가 예수님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 너무 큰 희생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무엇을 주셨는가 자문해 봐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를 구속하기 위하여 모든 것, 곧 생명과 사랑과 고난을 주셨다. 그처럼 큰 사랑을 받은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그분께 드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 생애의 매 순간 우리는 그분의 은혜의 축복을 받아왔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치르신 그 고난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지 못한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신 분을 바라보면서 그와 같은 사랑에서 돌아설 수 있겠는가? 영광의 우리 주님께서는 자신을 낮추셨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기심으로 더불어 싸우고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고 해서 불평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우리가 모든 것을 그분께 드릴 때 우리는 무엇을 드리게 되는가? 우리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피로써 순결하고 깨끗하게 해 주시도록 우리의 죄된 마음을 그분께 드리게 된다. 우리는 그분의 무한한 사랑으로 구원해 달라고 간구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말 듣기를 부끄러워하고 기록하기도 부끄럽게 여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간직해서 유익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버리도록 요구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무엇이 최선의 것인지 생각하고 계신다.
많은 사람은 “내가 어떻게 내 자신을 하나님께 바칠 것인가?”하고 묻는다. 그대들은 그대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기를 원하나 도덕적 힘이 약해서 유혹의 종이 되고 죄악적 생애의 습관에 지배를 받고 있다. 그대들의 약속과 결심은 썩은 새끼와 같다. 그대들은 생각과 동기와 애정을 억제할 수 없다. 그대들이 약속을 어긴 것과 맹세한 것을 이행치 못해 온 사실을 깨달을 때에 그것이 그대 자신의 성실성에 대한 그대들의 신임을 약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그대들을 받으시지 않으실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그러나 그대들은 낙심할 필요는 없다. 그대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곧 의지의 참 힘이다. 이것이 사람에게 있는 지배력이요, 결정력이요, 선택력이다. 만사는 의지를 옳게 쓰는 여부에 달렸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선택권을 주셨으니 그대들은 이것을 사용할 것이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마음을 고칠 수 없고 그대 자신으로는 애정을 하나님께 바칠 수 없다. 그러나 그대들은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할 수는 있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의지를 하나님께 바칠 수 있나니 그리하면 그는 그대들 안에서 그대들의 원하고 행하는 것을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들의 온 성질은 그리스도의 신의 지배를 받게 되고 그대들의 애정은 그에게 중심을 두게 되고 그대들의 사상은 그와 조화될 것이다.
우리가 선하고 거룩하게 되고자 욕망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그런 욕망은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바라고 소원만 하다가 잃어버린바 될 것이다. 그대들은 마음의 힘을 하나님께 즐겨 굴복시키는 그 지점까지 이르지 않는다. 그대들은 지금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결정하지 않는다.
전적인 변화는 의지를 올바로 사용함으로써 우리 생애에 이루어질 수 있다. 그대들의 의지를 그리스도께 바침으로써 그대들은 정사와 권세를 초월한 능력으로 더불어 연결되는 것이다. 그대들은 그대들을 굳게 서게 할 힘을 위로부터 얻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하나님께 끊임없이 바침으로 말미암아 새 생애 곧 믿음의 생애를 살 수 있게 될 것이다(정로의 계단 4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