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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개인이나 교회가 영적으로 무너져 가는 과정은 대체로 비슷하다. 처음 신앙을 받아들이고 뜨거운 영적 경험을 했던 그리스도인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신앙이 식어가는 과정과 처음에 뜨거운 신앙을 가지고 시작된 교회가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타협과 배도의 길을 걷는 과정은 대체적으로 유사하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예언은 십자가 이후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를 일곱 교회의 시대로 구분하는데, 일곱 교회 예언 중에서 첫 번째 교회인 에베소 교회는 초대 기독교회를 상징한다. 사도 요한은 에베소 교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계 2:1~3,6.

 에베소 교회는 A.D.34~100년까지 즉 십자가 이후부터 마지막 사도가 죽을 때까지의 사도시대 교회를 뜻하는데 에베소라는 이름에는 바람직한, 흠모할 만한 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사도들과 제자들이 생존해 있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직접 설교를 들을 수 있었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을 체험하였으며 복음 전파를 위하여 위대한 업적을 남겼던 교회이다. 에베소 교회는 로마 제국의 네로 황제의 핍박 속에서도 지칠 줄 모르는 열심과 수고를 다하여 일하는 교회였다. 또한 성경이 말하는 진리에 충성스러웠으며,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은 스스로 사도요 선생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을 성경 말씀으로 시험하였다.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 계 2:3.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당의 가르침(영지주의, Gnosticism)을 반대하였는데, 니골라당에 속한 사람들은 도덕률에 순종하기 위해서 구태여 육체의 욕구를 자제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다. 또한 물질과 육체는 악하고 영은 선하기 때문에 육체의 방종이나 죄된 행위는 영의 구원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어떤 의미에서 니골라당은 현대 기독교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자유주의적인 가르침 즉, 그리스도를 지적으로 인정하고 믿기만 하면 구원받으므로, 하나님의 계명과 진리의 말씀에는 순종할 필요가 없다라는 가르침의 시조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니골라당의 가르침에 대항하여 일어선 에베소 교인들을 칭찬하셨다.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계 2:6절.

 이토록 순수하고 뜨거운 정열을 가지고 시작된 초대 기독교회가 서서히 몰락해 가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그들의 경험 속에서 중요한 교훈들을 배울 수 있다. 지금부터 초기 기독교회 역사와 경험에 대하여 기록한 책인 The Act of the Apostles, 568페이지를 읽어보도록 하자.

그리스도교가 조직된 지 반세기 이상이 지났다 & 그때까지 교인들은 감정과 행위가 하나가 되었다.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은 그들을 함께 묶은 금사슬이었다. 그들은 계속 주님을 더욱 더 완전히 알고자 하였으며 그들의 생활에는 그리스도의 기쁨과 평화가 나타났다. 그들은 고통당하는 고아와 과부들을 방문하였고 자신들을 지켜 세속에 물들게 하지 않았으며, 이렇게 행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공언하는 바는 거짓이 되고 결국 그들의 구주를 부인하는 것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도시에서 사업은 추진되었다. 영혼들은 회개하였고 그들은 저희가 받은 바 값으로 헤아릴 수 없는 보배에 대하여 말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그들의 마음을 밝게 비춘 빛이 다른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게 될 때까지 쉴 수 없었다. 많은 불신자들이 그리스도인의 소망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과오를 범한 자들, 추방당한 자들, 진리를 아노라고 공언하면서도 하나님보다 열락을 더 사랑하는 자들에게 따스하고 감명 깊은 개인적 호소를 하였다.

 교회가 세워진 후 처음 50여 년 동안 그들의 신앙은 정말 순수하고 뜨거웠다. 그들 가운데 사랑이 있었고 그에 따른 분명한 열매들이 있었다. 그들이 진리를 전할 때에는 정말 따스하고 감명 깊은 개인적 호소를 하였으며 그들의 신앙과 삶을 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가지고 있는 소망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에게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The Act of the Apostles 는 그들의 신앙이 무너지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는데, 그들이 흔들리는 단계를 다음과 같이 살펴보도록 하자.

첫 번째 단계: 그러나 얼마 후 신도들의 열심은 쇠해지고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사랑과 상호간의 사랑이 식어지기 시작하였다. 예수께서 돌아가신 이후 50여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그들은 서서히 지치고 무너져갔다. 반세기 동안 그들은 감정과 행위에 있어서 완전히 하나로 연합되어 있었는데 그들의 감정(사랑)이 먼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여전히 검소하게 살았고, 기도를 열심히 드렸고, 매 주일마다 예배 드렸고, 이웃을 돕는 행위가 꾸준하였지만, 그들 속에 사랑이 식어갔다. 어떤 개인이나 교회 역시 그들의 신앙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첫 번째 시작점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식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에베소 교인들을 다음과 같은 말로 책망하였던 것이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 2:4. 그들 속에서 사랑이 식어가자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게 되었다.

두 번째 단계: 냉담함이 교회 안에 몰래 들어왔다. 어떤 이들은 저희가 진리를 받았던 기이한 방법을 잊어버렸다. 그들을 하나로 묶어주던 사랑의 감정에 문제가 생기자 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처음에 진리를 받았던 기이한 경험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이 첫 사랑의 단순한 심정을 잃어버리면 그 마음은 냉담함이 지배하게 된다. 사람에 대해서 냉담해지고, 진리에 대해서도 냉담해진다. 그리하여 처음에 기이한 하나님의 섭리를 통하여 복음을 받았던 경험까지 잊어버리게 된다. 계속해서 진행되는 그들의 흔들림을 살펴보도록 하자.

세 번째 단계: 한 사람 한 사람 연로한 기수들은 그들의 자리에 쓰러졌다. 예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재림의 약속을 그들에게 주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3. 열 두 제자들과 에베소 교인들은 예수께서 직접 주신 재림의 약속을 굳게 붙잡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 있는 동안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을 굳게 믿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사도들은 하나씩 죽어갔다. 베드로가 죽고, 빌립이 죽고, 마태가 죽고 맨 나중에는 나이가 많이 든 사도 요한만이 남게 되었다. 에베소 교인들의 신앙은 시험을 받았고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지치고 그들의 신앙이 시험을 받아 흔들리고 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들의 경험을 살펴보도록 하자.

네 번째 단계: 이 개척자(열두 제자들과 사도)들의 짐을 분담하여 현명한 지도자의 임무를 위한 준비를 갖추었어야 할 젊은 일꾼들 중 어떤 이들은 반복된 진리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다. 열두 제자들과 사도들로부터 진리를 들으면서 자랐던 젊은이들 중 어떤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반복해서 들었던 진리에 대해서 싫증을 느끼는 일이 발생하였다. 오늘날 우리의 자녀들은 어떤가?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라난 우리의 자녀들은 어떤가? 진리의 중요성을 가슴 깊이 새기고 그것을 위하여 자신의 생애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가? 아니면 계속해서 반복되는 설교와 말씀에 싫증을 느끼고 뭔가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하여 세상을 찾아 나가는가? 우리는 초대 기독교회의 경험 속에서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 이제는 진리를 분명하게 들고 일어서는 젊은 종들의 모습을 거의 찾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반복된 진리에 싫증을 느낀 사람들은 결국 무엇을 하게 되는가? 다음에 이어지는 그들의 경험을 살펴보도록 하자.

다섯 번째 단계: 신기하고 놀라운 어떤 것들에 대한 갈망으로 그들은 많은 사람의 마음을 더욱 기쁘게 하는, 그러나 복음의 근본 원칙에 일치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교리를 도입하고자 하였다. 자기 과신과 영적 맹목으로 그들은 이 궤변들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과거의 경험들을 의심하게 하고 혼란과 불신으로 인도하리라는 것을 분별하지 못하였다. 왜 초대 기독교회의 젊은이들은 무엇으로 그리고 어떻게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새로운 형태의 거짓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하였는가? 그것은 자기 과신과 영적 맹목으로 인하여 거짓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들은 새로운 형태의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옛 신앙을 불신하는 지경에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젊은 청년들과 젊은 목사들 중의 어떤 이들은 옛 신앙을 버리고 새롭고 신기한 것을 추구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예수께서 가르치셨고 제자들이 전파했던 옛 진리를 회복하고 고수하기보다는 새 것을 가지고 교회를 채우느라고 전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은 지금 그런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지금은 위기의 시간이다. 지금은 정말로 깨어 있어야 할 때이다.

여섯 번째 단계: 이 거짓 교리들이 주장되자 분열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눈을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에게서 돌이켰다. 중요하지 않은 교리의 부분들에 대하여 토론하고 사람이 고안한 즐겁게 하는 우화들을 깊이 생각하는 일로 복음을 선포하는 데 사용되어야 할 시간이 소비되었다. 충실하게 제시된 진리로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었던 많은 무리는 경고를 받지 못하였다. 경건은 신속히 쇠하여지고 사단은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공언하는 자들을 곧 지배할 것처럼 보였다.중요하지도 않고 성서적이지도 않지만, 사람들의 육적인 마음을 즐겁게 하고 만족시키는 복음이 들어오자 성경에 대한 깊은 지식과 신앙을 소유하지 못한 교인들은 심하게 흔들리게 되었고, 이로써 교회 안에 존재하는 알곡과 가라지들 사이에 투쟁과 분열이 생기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믿기만 하면 쉽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거짓 복음이 소개되자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과 순수한 성서적 복음을 믿는 소수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치열한 영적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거짓 복음이 교회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 기독교회는 참된 경건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마치 사단이 온 교회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지금까지 에베소 교회가 진리에 대한 그들의 첫 사랑을 잃어버리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바로 이런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을 밧모섬으로 유배당하도록 허용하셨던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그런 결정을 내리셨을까? 계속해서 에베소 교회의 경험을 읽어보도록 하자.

교회의 역사에서 이와 같은 위기의 때에 요한은 추방 선고를 받고 밧모섬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지금처럼 그의 음성이 교회에 필요한 때는 결코 없었다. 목회 사업에서의 그의 이전 동료들은 거의 모두 순교를 당하였다. 남은 신도들은 격렬한 반대에 직면하고 있었다. 모든 외관상으로 볼 때에 그리스도 교회의 원수들이 승리를 얻을 날이 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주님의 손길은 어두움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나님의 섭리로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에 대한 그리고 교회를 위한 거룩하고 놀라운 계시를 그에게 주실 수 있는 곳에 있게 되었다. 진리의 원수들은 요한을 유배시킴으로 하나님의 충실한 증인의 음성을 영원히 침묵시키고자 하였으나 밧모에서 요한은 그 감화가 세상 끝날까지 교회를 계속 강화시켜 줄 한 기별을 받았다.

 교회는 가장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었고, 신실한 교인들과 사도 요한의 눈으로 볼 때 도무지 가망이 없어 보였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을 밧모섬으로 옮기셔서 그에게 계시를 보여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결국에 기독교회가 환난과 투쟁을 통하여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심으로써 사도 요한과 초대 기독교인들에게 끝까지 견딜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주셨다.

 근세기에 새롭게 출발한 개신교회의 각 교파 역시 1세기에 출발했던 사도 시대 교회의 역사를 답습하고 있다. 종교개혁자들은 뜨거운 열정과 성경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지고 개혁 운동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후예들은 선구자들의 개혁 운동을 이어가지 못하고 교파를 만들어 놓음으로써 각 교단 사이에 높은 장벽을 세워놓았고 이로 인하여 교인들은 교단이라는 울타리에 갇혀서 우물 안의 개구리로 성장하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이 가졌던 첫 사랑이 식어갔고 냉담함이 교회에 들어오게 되었다. 개신교회를 세운 초기의 선구자들이 하나씩 죽어가자 교회들은 심하게 흔들렸다. 새롭게 성장한 젊은 세대는 오랫동안 반복해온 단순한 진리의 말씀에 싫증을 느끼고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서 방황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각 교회들은 선구자들이 세워놓은 진리의 기둥들을 하나씩 허물어뜨리기 시작하였다.

 각 교파의 교회가 새롭게 세워졌다가 타락하고 망해가는 모습은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되풀이된다. 루터의 후계자들이 루터교회를 세울 때 루터교회는 자신들만의 분명한 가르침을 가지고 있었으며 매우 경건하고 영성이 있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루터교의 목사들과 신학자들 중에 자신의 가르침이 루터의 가르침과 신앙보다 새롭고 높은 경지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하여 교회는 심하게 흔들리게 되었는데, 그 결과 루터교회는 서서히 가르침을 바꾸기 시작하였고 결과적으로 그들은 세속화되고 타락하고 말았다. 그들은 구원에 대한 루터의 교리를 바꾸었고,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지목한 루터의 예언 해석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서 종교개혁의 선봉이었던 루터교는 더 이상 교황을 적그리스도의 세력으로 가르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천주교회와 손을 잡고 종교 연합운동의 최선두에서 뛰고 있다.

 감리교회 역시 마찬가지이다. 요한 웨슬리는 놀라운 부흥 운동을 일으켰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그의 신앙과 놀라운 성경 해석은 기독교회가 가지고 있는 성서적 구원론의 초석이 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감리교회의 후예들 역시 반복되는 단순한 진리에 싫증을 느끼고 새로운 것을 추구하게 됨으로써 교회는 심하게 흔들리게 되었다. 그 결과 감리교회는 여러 분파로 나뉘게 되었고 더 이상 요한 웨슬리가 가르쳤던 것처럼 교황을 적그리스도 세력으로 지목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개신교회 중에서 가장 자유주의적이고, 종교 연합운동에 가장 적극적인 교단 중의 하나로 변질되고 말았다. 오늘날의 감리교회는 더 이상 요한 웨슬리가 세운 감리교회가 아니다.

 지금은 알곡과 가라지가 분리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기의 시간이다. 알곡과 가라지는 어떻게 분리되는가? 성경은 바람에 흔들고 체질함으로 알곡과 가라지가 분리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흔들림의 과정을 통과하는 동안 우리는 매우 힘든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지루하고 긴 광야 여행 속에서 성경에 대한 분명한 지식과 신앙을 가지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뜨거운 사막 속에서 쓰러져 죽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