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커 목사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분석 (예수님의 인성에 대한 베이커 목사의 오해)
저자: 랄프 랄슨 박사
편집실에서
베이커 목사는 예수님께서 마치 거듭나지 못한 인간의 타락함을 지닌 것으로 경솔하게 다루는 잘못을 범하였다. 화잇부인은 그러한 베이커 목사에게 권면의 편지를 보냈다. 오늘날 신신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화잇부인의 편지 구절을 인용하여 마치 화잇부인이 예수님을 우리와는 전혀 다른 인성을 취하셨던 것처럼 오용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오해에 대해서 살펴 보고자 한다. “조심하라. 그대가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하여 어떻게 다루는지에 있어서 극히 조심하라. 백성들 앞에서 그분을 죄의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서 제시하기 말라…. 그분은 타락하실 수 있으셨으나 단 한 순간도 그분 안에는 악한 성향이 (propensity) 없으셨다…. 베이커 형제여, 그리스도의 인성과 관련하여 오해될 소지가 있는 모든 질문들을 피하라….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우리와 같은 완전한 인간으로 취급하는 일에서 멀어지도록 하라” (Manuscript Release, 414)는 엘렌 화잇의 편지 내용의 일부는 어떤 이들로 하여금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인성이 아담의 타락 이전과 이후의 인성 모두라는 빈약한 결론을 내리게 한였다.
“베이커는 10세 때 부모들과 함께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24세 때에 그는 태평양 출판사에 (Pacific Press)채용되었고, 5년후 호주로 파견되어 출판사업에 종사하게 되었다. 몇년 후 그는 전도사업에 부르심을 받게 되었다. 엘렌 화잇이 19페이지에 달하는 이 편지를 그에게 썼을 때인 1895년에 그는 타스마니아에서 일하고 있었다. 2년후 그는 뉴 싸우스 웨일즈 대회장으로서 부대회장인 W.C. 화잇과 함께 일했다. 1893년 이래로 W.C. 화잇은 책임감있는 일꾼인 베이커와 교신하고 있었다.
“베이커는 여러 대회를 거치며 대회장으로서 뉴 질랜드, 빅토리아, 타스마니아, 서부 호주 등지에서 봉사하고 있었다. 그후 1914년에 아본데일 대학의 성경 교사로 임명 받았다. 1922년에 베이커 부부는 미국으로 돌아와 대학의 성경 교사요, 요양원의 원목으로서 일하였고, 1933년 2월 5일에 잠들었다.
“베이커는 1895년에 받은 증언으로 인해 많은 유익을 받았음이 틀림없다. 그 편지를 받은지 2년후에 엘렌 화잇은 그를 신중하고도 유익한 일꾼이라고 언급했다. 1900년에 그녀는 한 젊은 일꾼에게 그에게 가서 충고를 구하도록 권면하였고, 그를 ‘강철처럼 원칙에 진실한’ 일꾼으로 언급했다” (Manuscript Release, 414 에 대한 A.L. 화잇의 소개문에서 발췌함). 독자들은 다음에 이어지는 랄프 랄슨 박사님의 분석을 통하여 그 배경과 화잇 부인의 편지 내용의 참 의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편집실
엘렌 화잇이 베이커 목사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 알 수 있는 문제점들은 무엇인가?
그 편지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한 실제적인 권면에 관하여 우리는 아무렇게나 추리해서는 안된다. “그대는 짓눌려 있어서 낙담 가운데 있다…. 그대는 그대의 사업을 거의 실패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엘렌 화잇의 이 글에 대한 해석자들은 그녀가 베이커 목사에게 보낸 그리스도 신학에 관한 두 페이지 반에 달하는 권면이 문제에 대한 충분한 진술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어떤 해석을 첨가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 말을 그들은 이렇게 풀이한다: “그대는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사람의 본성을 취하고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과오를 범해오고 있다”고.
나는 그 문제에 대한 엘렌 화잇 자신의 진술이 아주 명백하고도 만족스러운 것임을 발견한다. 그녀는 기록했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우리와 같은 완전한 인간으로 취급하는 일에서 멀어지도록 하라.”
우리의 해석을 저자의 의도에 첨가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이 문장을 분석해 보자. 의심할 것 없이 다음의 요점들이 강조되었다:
1 이 기별은 경고하려는 의도로 쓰여진 것이다.
2 그 경고는 일차적으로는 베이커 목사에게 쓰여진 것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확대되어 쓰여진 것이다.
3 그 경고가 포함하는 주된 주제는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이다.
4 그 경고는 그리스도의 인성 아니면 그리스도의 신성, 둘 중 어느 하나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저자는 (엘렌 화잇) 그리스도의 전체, 완전하신 그리스도, 즉 하나님이신 동시에 사람이신 완전한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 문장과 문맥 자체가 이것을 우리에게 증명해주고 있다. “신성과 연합된 것으로서의 그분의 인성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잃거나 흐리지 않게 하라.”
5 그 경고에는 특정한 내용이 담겨져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백성들에게 제시할 때 1. 완전한 인간으로서나, 2. 우리와 똑같은 분으로서 제시하지 않도록 하라는 주의가 담겨져 있다.
이 경고에는 그리스도의 탄생이 하나님의 이적이며,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성경의 묘사는 그리스도 외에 다른 어떤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없다는 내용이 그 뒤를 따른다.
그리스도를 완전한 인간으로 제시할 때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오해를 일으킬만한 여지가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께서 그 전체가 우리와 꼭같은 사람이라고 할 때도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오해의 여지를 남기게 된다.
베이커 목사에게 보낸 엘렌 화잇의 경고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베이커 목사의 강력한 강조가 듣는 자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신성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여서 그리스도께서도 그분의 생애 가운데서 죄를 지을 수 있으셨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될까봐 경고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그리도 어려울까? (그리스도께서는 전혀, 단 한번도 죄를 짓지 않으셨다고 하는 강력한 주장을 같은 편지에 적어도 열번 이상 했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하자).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의 생애 가운데 죄가 있으셨을 것이라 믿는 굉장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존재해 왔다. 그들은 대개 두 그룹으로 나뉘어진다:
I.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의 소위 현대주의자들 (Modernists) — 이 말은 잘 사용이 안되고 일반적으로 자유주의자 (Liberal) 란 말로 대치됨. 그들은 과학의 진보는 그리스도의 기적적인 탄생에 대한 성경의 기록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결론짓고,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단순히 위대하고 좋은 사람으로서 보도록 가르쳤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생애 가운데 죄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주저함 없이 동의한다. 이 사람들은 당시의 재림교회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보수적인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열렬한 반대를 받았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복음의 가장 큰 원수들 중 하나로서 보여지게 되었다. 베이커 목사가 현대주의자들의 교리를 채택했는데도 재림교회에서 계속 목회를 하였을 것이라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II. 교회 역사 초기에 있었던 양자로 삼았다고 주장하는 이들 (Adoptionists).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초기의 생애를 시작하실 때 우리와 꼭같은 완전한 인간으로서 시작하셨으나 결국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로 채택되었다고 믿는 특별한 그리스도인들의 무리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양자로 택함받기 이전의 기간 동안에 그리스도의 생애에 죄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았다.
베이커 목사에게 보낸 편지에 대한 나의 분석 결과는 엘렌 화잇이 그에게 보낸 경고의 편지는 양자주의가 (Adoptionism) 오류라는 것을 밝히는 내용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하였다. 이 편지에 대해서 신신학자들이 내린 해석들은 완전히 인공적이고, 적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엘렌 화잇 자신이 그 문제에 대해 내린 명백한 진술들을 무시함으로써만 얻을 수 있는 해석들임을 나는 보게 된다.
재림교회의 개척자들이 서로 다른 여러 종교적 및 신학적 배경을 가진 곳으로부터 나와서 1844년의 대실망 후에 많은 시간을 그들이 연합할 수 있는 성경 진리의 토대를 위해 연구하는데 바쳤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잘 알려진 바이다. 초기에 있었던 그들의 성경 연구회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속성, 인간의 속성, 안식일,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 등등에 있어서 공통적인 이해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한 그들의 서로 다른 이해 모두를 성공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했다.
아리안 주의 (Arianism)
19세기 말에 우리 가운데는 아직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여러가지 제한된 견해를 옹호하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말할 때 이런 견해들은 신학자들이 4세기에 있었던 그리스도에 관한 신학에 있어서 큰 쟁론이 있을 때 강력하게 옹호했던 아리우스라는 사람의 의견을 따라 아리안 주의라 부르는 견해와 유사한 것이었다.2
아리우스와, 그의 사고를 따르던 자들에 의하면 그리스도께서는 영원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존재하신 것이 아니라 이세상 역사가 시작되기 전 어떤 싯점에서 아버지에 의해 창조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창조물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고상한 존재였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 중의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보다는 조금 못한 존재였다. 엘렌 화잇은 아리안 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그리스도 신학에 관한 아리안 주의의 특정한 오류를 명백하게 반박하는 말을 그 위대한 시대의 소망에 기록하면서 그리스도의 영원한 신성을 증거하였다. “영원한 시대로부터 주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일체이셨다” (시대의 소망 1권, 13). “나사렛에서 오신 이 랍비는 모세를 통해서 영원한 존재라는 관념을 표시하게 한 하나님의 이름을 자기 자신의 이름이라고 주장하셨다” (시대의 소망 2권, 262, 263). “그리스도에게는 최초부터 있고 빌려오지 않고 다른 곳에서 파생되지 않은 생명이 있다” (상동, 344).
이 명백한 증언의 빛 가운데서 아리안 주의의 그리스도 신학에 관한 오류는 점차로 사라졌고, 지금은 그리스도가 피조물이라고 믿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의 성경학도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양자로 삼았다고 하는 주의
(Adoptionism)
엘렌 화잇은 양자주의와 같은 특정한 신학적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양자로 삼았다는 주의에는 철저히 반대하였다. 이 주의는 그리스도께서 탄생시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셨지만 양자로 택함받은 것으로 인해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는 견해였다. 이 사상은 비쟌티움 (Byzantium) 에서부터 온 띠오도터스 (Theodotus) 라는 가죽 상인에 의해 주후 189-199년 사이에 로마에서 가르쳐진 것이었다. 이 사상은 주후 260-269년 사이에 안티옥의 (Antioch) 감독으로 일했던 사모사타 (Samosata) 의 풀 (Paul) 에 의해 그 견해는 동방 교회들과 알미니안 교회들에서 (Armenian) 꽤 인기있는 것이 되었으며, 여러 세기 동안 지지되는바 되었다.5 8세기에 이르러서는 스페인의 엘리판더스에 (Elipandus) 의해 유럽의 교회들에서도 옹호되는 견해가 되었다.6
양자주의자들 중에도 여러가지 서로 다른 견해들이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공통된 세가지 기본 견해가 있었다. 이 견해들에 대한 엘렌 화잇의 반응과 반박은 시대의 소망 뿐 아니라 엘렌 화잇이 호주에 살면서 시대의 소망을 기록하고 있는 동안 타스마니아 지역에서 수고하고 있던 베이커 목사에게 보냈던 개인적인 증언에서도 발견된다.7
이 흥미로운 편지에서 우리는 1 베이커 목사가 너무나 많은 시간을 독서하는데 보내는 것에 대한 경고와, 2 부조들의 잘못된 전통을 받아들이지 말라는 경고와 3 교인들에게 유익을 주지 못할 추상적인 이론들을 가르치는데 대한 경고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녀는 또한 양자로 삼았다고 하는 주의의 (Adoptionism) 오류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하나 하나 짚어가면서 반박을 한다.
I. 양자주의자의 견해: 예수님께서는 탄생시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셨다. 그는 모든 사람들처럼 한 여인에게서 태어나셨다. 그분이 처녀에게서 태어나셨을지라도 그 사실이 아무 신학적인 중대성을 지니지는 않는 것이다. 그분은 사람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지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아니다.
베이커 목사에게 한 엘렌 화잇의 편지: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셨다…. 그분의 탄생은 하나님께서 하신 기적이었다: 이는 천사가 다음과 같이 말했기 때문이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입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눅 1:31-35).
“이 말씀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이외의 어떤 인간에게도 적용되지 않는다.” 서신 8, 1895
II. 양자주의자의 견해: 예수님은 그분의 지상 생애의 초기 동안에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셨다. 그분은 순결과 거룩함에 대한 높은 개념을 가지고 영웅적으로 투쟁했던 정상적인 인간이셨으나 신은 아니셨다. 그분의 초기 생애 동안에 그분은 완전히, 철저하게 인간이셨기 때문에 모든 인간이 가진 죄에 대한 동일한 성향과 부패의 혼적을 가지셨음에 틀림없다. 그분은 심지어 유혹에 정복당하여 실제로 죄를 지으실 수도 있으셨다. 거룩함에 달하려는 그의 영웅적이고도 계속적인 투쟁을 볼 때 이런 것들 중 아무 것도 그분으로 하여금 그분의 영적 발전의 정점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채택되는 것이 부적합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사모사타의 폴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마리아는 말씀을 낳지 않았다. 이는 마리아가 영원한 시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은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우리 자신들과 같은 계층에 있는 한 사람을 낳았다.”8
베이커 목사에게 한 엘렌 화잇의 편지: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우리와 같은 완전한 인간으로 취급하는 일에서 멀어지도록 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절대로, 아니 어떻게 해서든 사람의 마음에 그리스도에게 부패의 오점이나 성향이 있어서 어쨌든 그분이 부패에 굴복했다는 조금의 인상도 남기지 말라.”
` “백성들 앞에 그분을 죄의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서 제시하지 말라.”
“그분은 죄를 지으실 수 있으셨으며, 타락하실 수도 있으셨으나 단 한 순간도 그분에게는 악한 성향이 없으셨다.” (상동)
“단 한 순간도”라는 흥미로운 표현은 엘렌 화잇이 위에 인용한 양자주의자들의 견해를 치를 떨며 돌아서게 했던 것을 가리키는 듯 하다. 아마 그들은 평온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초기 생애 동안에 그분이 악한 성향이나 부패한 마음이나, 심지어는 죄를 지으셨을 가능성도 있었겠다고 생각해 볼 수 있었을지 모르나 그녀는 그런 것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것이 베이커 목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녀가 주로 우려한 것이었다. 그 편지에서 그녀는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짓지 않으셨다고 거듭 말하는데, 전부 열번을 거듭하면서 그분의 편에서 유혹에 단 한번이라도 굴복할 가능성을 주의깊이 배제해 버렸다.”
“단 한번도 사단의 여러가지 시험에 반응하지 않으셨다.” (상동)
III. 양자주의자의 견해: 거룩함에 달하려는 그분의 영웅적인 투쟁의 결과로 예수님은 결국 하나님의 아들로 양자가 되셨다. 이 일이 언제 있었느냐에 관해 여러가지 의견들이 있다. 어떤 이는 그것이 점차적으로 된 것이며, 다른 이들은 예수님의 침례시에, 또 다른 이들은 그분의 부활시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그분이 양자로 택함을 입은 후에 인성은 신성과 결합되었다.
베이커 목사에게 보낸 엘렌 화잇의 편지: “인성이 신성과 결합된 정확한 때는 우리가 알 필요가 없는 것이다.” (상동)
베이커 목사에게 보낸 엘렌 화잇의 편지에서 양자주의의 오류에 대한 이 정확하고도 특정한 반박에 덧붙여서 그녀는 시대의 소망에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선재하심에 관한 주제와 더불어 그분의 전 생애를 통해 완전히 죄없으심에 대해서도 기록하였다.
베이커 목사에게 보낸 엘렌 화잇의 편지를 보고 어떤 이들은 그녀가 그렇게도 완강하게 반박한 그리스도 신학에 관한 양자주의의 특정한 오류들에 대해서 잘 모르는 때문에 “그분에게는 단 한 순간도 악한 성향이 없으셨다”는 표현으로 인해서 당황해 한다.
어떤 이들은 이것을 그녀가 그리스도께서 성육신으로 오실 때 아담의 타락 이전의 본성을 취하시고 오신 것으로 믿었다는 증거로 단정한다. 다른 이들은 시대의 소망에서 그 주제에 대한 그녀의 설명과 비교해 보고 그녀가 그 특정한 주제에 관해서 두가지 면을 다 이야기 했다는 불행한 결론에 도달한다. 베이커 목사에게 보낸 편지가 베이커 목사가 교부들의 글을 읽음으로 빠지게 된 양자주의에 대해 하나 하나 짚어가면서 한 반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녀의 편지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주 명백해진다. 또한 우리는 타스마니아의 한 목사에게 보낸 개인적인 서신의 한 문장 때문에 엘렌 화잇이 전 세계에 말하려고 하는 그리스도 신학에 관한 의도적인 입장이 명백히 명시된 책인 시대의 소망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그녀의 진술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는 것은 불분명하고도 의심스러운 해석법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해서 엘렌 화잇은 스위스의 신학자인 칼 바르뜨 (Karl Barth) 가 취한 동일한 입장을 취한다. 비교해 보라:
칼 바르뜨: “(말씀이 육신이 되신) 육신은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명확하게 구분지어진 인성의 형태를 취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두신 본성은 타락한 우리의 본성과 동일한 것으로서 그 구원하는 진리를 약화시키거나 애매하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우리처럼 될 수 있으셨을까? 우리가 그분에 대해 어떤 우려를 가져야 할까?
“예수님께서는 타락한 사람의 상태와 상황으로부터 도망치지 않으시고, 스스로 타락한 사람의 상태를 취하시고 사시면서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로서 사셨다.”9
엘렌 화잇: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본성을 취하신다는 것은 거의 무한한 굴욕이 될 것이었다. 심지어 아담이 에덴에서 무죄한 상태로 있는 그 입장을 취하셨다 해도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인류가 4,000년간의 죄로 인해 약화되었을 때 인성을 받아들이셨다.”10
“또한 타락한 사람을 높이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도달하셔야만 하셨다. 그분은 인간 본성을 취하셨고, 인류의 연약함과 타락을 지시었다.”11
“사람의 타락한 상태 가운데서 사람의 본성을 그분 자신이 취하심에 있어서 그분은 사람의 죄에 조금도 가담하지 않으셨다.”12
이상과 같은 그리스도 신학 및 인성에 관한 고찰을 통해 볼 때, 베이커 목사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 시대의 소망의 내용과 상치된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임을 나는 결론짓게 된다. 그리스도의 인성을 아담의 타락 이전의 본성과 아담의 타락 이후의 본성으로 나누어 비교하는 것이 베이커 목사에게 보내는 편지의 목적이 아니였다. 그녀는 아주 완전히 다른 문제의 필요에 대해 대답하고 있었다. 그 문제는 베이커 목사가 그리스도 신학에 있어서 양자주의의 오류에 불행하게도 가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또한 우리는 엘렌 화잇이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해 양면을 다 말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에 대해서 충분히 답변해 줄 수 있다. 적절한 해석 원칙이 적용될 때 그 주제에 관한 그녀의 기록들은 명백하고 일관성 있으며, 아주 뚜렷하다. 그리스도의 인성과 우리의 인성 사이의 한계를 설정하려는 어떠한 모든 시도도 다음의 단순하지만 심오한 의미의 진술에 의해 떨려 나가야만 한다:
“그대가 무엇을 믿든지 그분은 인성을 취하신 분이셨다.”13
1. LeRoy Edwin Froom. Movement of Destiny. Washington D.C., 1971. 148-166
2. Phil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Grand Rapids, 1953. Vol.III, 618-621
3. Ellen G. White. The Desire of Ages. Mountain View, 1940.
4. Phillip Carrington. The Early Christian Church. Cambridge, 1957. Vol.II, 415
5. Albert Henry Newman. A Manual of Church History. Philadelphia, 1933. Vol.II, 415
6. H.R. Macintosh. The Person of Jesus Christ. New York, 1962. 223ff
7. Ellen G. White. Letter 8, 1895: Unpublished, Heritage Room of Loma Linda University Library: Loma Linda, California.
8. Newman. op. cit., Vol. K.199
9. Karl Barth. Church Dogmatics. Edinburgh, 1963, 151-158
10. White. op. cit., 49
11. White. Review and Herald, 1884년 7월 28일
12. White. Seventh-day Adventist Bible Commentary, Vol. 5, 1131.
13. White. op. cit., 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