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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구세주께서 타고 나신 인성

강병국

“하나님의 아들의 인성문제는 우리에게 있어서 모든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묶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묶는 금사슬이다”(E.G. White, Youth Instructor, 10-13, 1898).

 흔히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문제를 건드리면 마치 큰 혼란이라도 야기시키려는 듯한 인상을 끼치게 되는 것이 요즈음 우리 교회들의 형편이다. 어떻게 하다가 우리가 이렇게도 미숙한 입장까지 전락하게 되었는지 모르지마는, 하나님의 마지막 선지자는 하나님의 아들의 인성문제는 우리에게 있어서 모든 것을 의미한다고 말하였다. 마귀는 처음부터,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다고 고소하였고 지금까지 그 비난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 구세주께서는 인간의 죄악을 구속하시는 대속제물로서는 물론, 사단의 그러한 고소를 반증하시기 위하여 인간이 입고서 싸우고 있는 바로 그 타락한 본성을 입으시고 오셔서 죄를 완전히 이기고 승리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시고, 온 우주 앞에 하나님의 계명은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실증하여 보여 주셔야만 하게 되었다.

 그런데 예수의 인성문제를 이야기하면 반드시 등장하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개신교회에서 배워온) 세 가지 질문들이 있는데 그것은 첫째, 타락한 인성을 쓰셨으면 예수를 죄인 만드는 것이 아니요? 라는 질문인데, 다시 말해서 죄의 경향을 타고 나는 그 자체가 죄가 아닌가 라는 원죄설에 대한 질문이요(죄에 대한 정의), 둘째로는, 예수께서 인성을 쓰시고 오신 것은 사실인데 그러면 아담이 범죄하기 이전의 본성이요 아니면 타락한 이후의 본성이란 말이요? 라는 질문이고, 세 번째로는 어린 아이들이 태어날 때, 그 아이가 죄인입니까? 아닙니까? 라고 묻는 것이다. 필자도 고리타분한 신학적 논쟁을 좋아하지 않으나, 올바른 성경의 이해위에 올바른 신앙이 싹틀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먼저 죄의 정의부터 내려보자! 영감의 글은 우리에게 인간들의 이론들을 타파하는 간단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죄란 무엇인가? 율법을 범하는 것이다”(가려 뽑은 기별 1권, 428). “우리가 성경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죄에 대한 유일한 정의는 죄는 불법이라(요일 3:4)는 말씀이다” (가려뽑은 기별 1권 401). 야고보서 1장 15절은 우리에게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라고 말씀하고 있어서 죄의 경향 즉, 죄의 본성 그 자체가 죄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화잇 부인께서는 죄에 대하여 명확하게 다음과 같이 설명하여 주셨다. “어느 누구도 죄를 짓도록 강요 될 수 없다. 그의 자신의 동의가 먼저 있어야 하며, 정욕이 이성을 정복하고 죄악이 양심을 이기기전에 반드시 그 영혼이 그 죄악적인 행동을 하려고 의도해야만 한다(물론 생각의 죄도 마찬가지임-필자 주). 유혹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결코 죄의 핑계가 될 수 없다”(5T, 177).

 그러므로 우리가 죄의 본성, 즉 아담의 타락한 죄의 결과를 가지고 태어나는 그 자체가 벌써 죄라고 하는 원죄설은 천주교가 가지고 들어온 오류인 것을 우리는 반드시 명심하여야 하겠다. 아담의 죄가 우리에게 전가되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죄가 자식에게 전가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지은 우리 자신들의 죄 때문에 죽는 것이다. 아담이 우리에게 죄 짓게 하는 선택가지 전가해 준 것이 아니지 않는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어린 아이는 죄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지마는, 다시 말해서, 죄의 속성 즉 죄의 결과를 가지고 태어나지마는 아직 정죄 받은 죄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세상에 타의에 의하여 태어난 그 자체가 죄란 말인가? 예언의 신의 정의처럼 죄는 우리의 의지가 동의 할 때만이 성립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받지 못한 빛이나 지식에 순종치 않았다고 정죄받을 자가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5 SDABC, 1145).

그러므로 화잇 부인께서는 “짐승처럼 다루어지고 타락하여 하나님을 배우지 못한 노예들은 그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취급하실 것”이라고 초기문집 283페이지에서 말씀하였다. 또한 리뷰엔 헤랄드 vol 1, 15페이지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말씀을 찾게 된다. “그대들의 자녀들을 그대에게 순종하도록 가르치라 그리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그 아이들이 주의 교훈으로 키움을 받으면 그 부모들의 인과 표가 그들을 보호(cover)해 줄 것이다.”

 첫째와 셋째 질문들은 한꺼번에 다루었으니 이제는 예수님의 본성이 아담이 타락한 이전의 본성인지 타락한 이후의 본성인지를 알아보기로 하자. 한 가지 염두에 둘 사실은 우리는 지금 예수의 인성을 다루고 있는 것이지 예수의 신성이 어떠했는지를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셨고 우리는 피조물들이다. 그러나 그 예수께서 우리에게 모본을 보이기 위하여 타고 나신 인성은 과연 어떠한 것이었는가를 말씀에 비추어 우리가 알려고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지식은 우리에게 있어서 모든 것이다. 우리가 죄와 투쟁하는데 있어서, 또한 죄를 완전히 이겨야 한다는 의미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 개념은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2장 11절부터 18절까지의 말씀은 의지할 여지없이 예수께서 천사의 본성을 타고 내어나신 것이 아니라(16절의 천사를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는- 천사의 본성을 취하신 것이 아니라는 뜻임- King James Version 참조)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나셨다고 말씀하시었다. 천사는 죄의 본성이 없다. 아담도 타락하기 정에는 죄의 본성(Sinful Nature)가 없었다. 그런데 예언의 신은 우리에게 예수께서 죗된 본성(Sinful Nature)을 타고 태어나셨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MM, 181; R&H, 12-15, 1896; ST, 6-9, 1898; R&H, vol 4, 201 등등).

그러나 그분께는 죄의 Propensity는 없으셨다. 왜냐하면 그것은 죄를 이미 지은 자에게만 나타나는 죄성을 말하기 때문이다. 화잇 여사께서는 그것을 자아방종, 자기를 기쁘게 하는 일, 교만, 사치 등으로 묘사하셨고(R&H, 5-16, 1893) “우리는 단 하나의 죗된 Propensity도 남겨둘 필요가 없다.”(7 SDABC, 943)라고 말씀하였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예수께서 아담이 타락하기 이전의 본성으로 오셨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담은 타락하기 전에 죄의 경향이 전혀 없었다. 그는 완전하였었다. 그러나 둘째 아담이신 예수께서는 첫째 아담의 실패를 회복하시기 위하여 범죄 후 4,000년이나 타락한 모습으로 오셔야했다. 이 얼마나 큰 사랑과 희생인가!

 혹자는 예수께서 “살과 피”만 타락한 상태를 타고 나신 것이지 그분의 영혼은 타락 전 상태로 오셨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자들은 영혼과 몸을 분리 할 수 있다는 영혼 불멸설을 믿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유혹을 받을 때 살과 피로, 즉 살갗으로 시험을 받는가? 육신의 정욕을 말할 때, 살과 핏속에 있는 정욕을 말하는가 아니면 우리의 마음을 말하는가? 대답은 너무도 분명하다. 예수께서는 4,000년간 인류가 육체적, 정신적, 도덕적 힘이 저하된 본성을 그대로 가지시고 태어나시었다(시대의 소망1권, 140). 그분께서는 인간 유전의 법칙을 받고 태어나시었다(시대의 소망 1권 40).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아담이 타락한 이후의 본성을 타고 태어났다. 이것은 굉장한 복음이 아닐 수 없다. 우리도 더 이상 죄에게 노예 된 상태로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이 예수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우리도 승리할 수 있으며, 뿐만 아니라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엄청난 구원의 능력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끝으로 1946년도에 본 교회 대총회가 발행한 Bible Readings for the Home에 있는 예수님의 인성에 대한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인성에 우리의 타락한 본성을 취하셨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면 주께서는 그 형제들과 같이 되실 수도, 우리와 같이 모든 일에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실 수도 없으셨을 것이다. 또한 우리가 이기는 것처럼 이기신 것도 아니었을 것이요 인간이 필요한 그러한 온전하신 구세주가 아니셨을 것이다……그리스도께서는 인성으로서, 아담의 모든 자손들처럼 죗된 본성을 물려 받으셨다. 신성의 편에서는 잉태되실 때부터 성령으로 탄생하시었다. 이일로 인간으로 하여금 더 나은 고지에 올려놓아서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같은 방법으로 자기의 죗된 본성으로도 죄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으로,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하여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 위에 죄없는 사람이 아니라 죗된 인간의 육체를 취하셨는데 그것은 즉, 타락한 본성의 사람이 가진 모든 연약성들과 죄의 경향들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육체를 따라 다윗의 혈통으로 나시고’라는 말씀에서 보여지는데 다윗은 인간의 모든 본성을 가지고 있었다.”(E. J 와그너, Christ and His Righteousness 25-27).

 “주께서 인간의 모양을 취하셨다는 것은 인간이 원래의 죄없는 상태에 있었을 때의 본성이 아니라 인간이 타락한 죗된 본성을 취하신 사실이 확실시 되었다.”(A. T. 죤스, The Consecrated Way to Christian Perfection 21).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지 자마다 그의(예수님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예수님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요일 3:3, 7).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요일 4:1-2). **이 “육체”는 원어상으로나 신학적 해석상으로나 다 우리와 같은 타락한 육체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믿지 않는 자들은 적 그리스도의 영을 가지고 있다는 사도 요한의 경고의 말씀에 유의하자. 이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기 위하여 천주교회는 “무염시태설”을 만들게 된 것임.

 영원토록 주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릴 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