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차 대총회 대표자들을 향한 진지한 호소
저자: 프레스톤 몬테레이
이제 삼개월정도 있으면, 여러분들께서는 이미 아시는대로 네덜란드 유트렉에서 열리는 재림교회 56차 세계 대총회에 참석하시게 됩니다. 저는 존경심을 가지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번 회집에 참석하게 되는 여러분의 직분의 엄숙함과 신성함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도록 초청하는 바입니다. 꿈과 기대들을 가지시는 동시에 지금까지 역사적인 재림교회의 신앙을 고수해 온 많은 재림교인들의 염려와 두려움들도 같이 고려해 주시기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교회의 높은 위치에 계신 어떤 몇몇 분의 지도자들께서 확실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우리들의 의도와 동기들을 아주 부정적으로 그것도 조직적으로, 열심을 가지고 곡해시켜 왔지마는 실상 견고한 토대의 편집인들은 지금까지 계속 “성경상 예언의 남은 교회(재림교회)는 주님께서 존재하도록 불러내신 교회요, 또한 이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바로 직전에 순결함 가운데서 마지막 승리를 거두게 될 날을 고대하여 왔”습니다.
여러분들의 사업과, 우리 교회(지도자들과 평신도들), 그리고 교회의 번영과 영생을 위하여 우리 영혼의 절규를 제발 몇분 동안만이라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의 의도를 선의로 해석해 주시며, 편견과 적의심과 무관심의 벽을 헐고 경청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리 다같이 니고데모의 권면을 따르십시다.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요 7:51. 다음의 현명한 조언을 듣도록 하십시다.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 잠언 18:13.
대총회가 앞으로 몇 차례나 더 있을까요?
같은 믿음을 가진 동료 성도들이시여, 우리가 인디아나 폴리스에서 오년 전에 만났을 때에 우리는 모두 이번 총회가 마지막 총회가 되었으면하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시몬 처럼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려 왔습니다. 눅 2:25. 우리는 말씀하신 약속의 영광스러운 성취를 고대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초림 때 약속의 구세주를 직접 대면했던 그들과는 달리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가 계신 그대로 볼” (요일 2:1) 것이라는 기대에도 불구하고, 자기 일생을 끝마치기 전에 그 복스러운 소망이 언젠가는 현실화 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무덤속으로 사라져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늦은비를 위하여 준비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완전하게 반사하며, 큰소리로 주의 오심을 힘있게 전할 수 있게 되어 우리의 교단의 대총회 회집을 영원히 끝내버리는 책임이 우리에게 넘어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의 형제들과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해오고 있습니다.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벧후 3:4. 지금은 또한 하나님의 남은 교회에 있는 성도들이 우리들 가운데 팽배하는 여러가지 종류의 세속들과 불신 그리고 배도적인 태도들 때문에 슬퍼하고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의 뒤로 물러간 형편과, 주님의 재림을 촉진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성품을 반사하려고 애쓰는 일에 열성이 없었던 사실에 대하여 솔직히 인정하기 보다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100년이상이나 넘도록 지연시켜 온 우리의 역사를 정당화 시키는 기별들을 설교하고 가르치고 저술하여 왔습니다.
어떤 때는 부당함과 편견과, 그리고 우리의 독특한 깃발을 분명하게 높이 들자고 호소하는 자들을 향한 제거 운동의 세력이 우리 교단의 어떤 부서들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많은 신실하고 염려하는 재림교인들이 다음과 같이 부르짖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슥 1:12. 그러나 하나님께 찬송을 돌리는 것은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 이르기를 원하시” 기 때문입니다 (벧후 3:9).
우리는, 교회가 정치적으로 규정들을 정하여 꽤 많은 숫자의 신실한 교인들을 점점 더 분리시키려고 애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남은 교회인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를 인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 교회의 어떤 규정들은, 행정, 의료 선교사업, 복음사업, 출판사업, 교육사업에 대한 분명하고도 명료한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의 신의 원칙들에 반대하고 있는 형편을 우리는 슬픔의 눈으로 보고 있지만 이제 곧 주께서 남은 교회안에 숨어 있는 남은 무리들을 들어 올리실 때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년전에 (1990년 5월), 우리는 이러한 분야들에 있어서 긴급하게 필요되는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어 특집을 만들었었습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여러가지 종류의 기사들과 책자들과 소책자들을 만들어 우리의 잘못들과 실패들을 시정하여 하나님의 청사진을 따르도록 하자는 의도에서 하늘의 원칙들에 대한 지식들을 소개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배도와 불순종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글을 통하여 보면 (렘 3:1-3), 이러한 경로가 우리 창조주 하나님으로 하여금 당신의 반역적인 교회를 향하여 측량할 수 없는 능력(늦은비) 의 원천을 닫으시도록 강요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서약없이 바라는 축복들과 특권들
지금 교회는 교회에 성령의 선물과 늦은비를 부어 달라고 세계적으로 오전 6시 15분에 시간을 맞추어 놓고 하나님께 헛되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식으로 기도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바람직한 일입니다(슥 10:1; 마 7:7; 눅 11:13). 그러나 그러한 일은 항상 확고한 결심과 주님의 명령을 온전히 순종하겠다는 열렬한 헌신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성령을 받는 선제 조건을 다음과 같이 증거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행 5:32. 우리는 이 순종이란, 사랑으로 역사하며 영혼을 순결하게 하는 믿음의 관계에서(갈 5:6) 발생하는 것이며, 믿는 자에게 구세주께서 행하신 일에 대한 감사함에서 발로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 순종(행함) 은 구원에 필수적인 것이며 (마 19:16-17; 사 26:12; 살전 5:23-24; 히 13:20-21), 이것은 하나님의 종들이 매일 온전하게 주의 성령의 주장에 그들의 의지를 굴복할 때에 생기는 일입니다(약 4:6; 롬 8:14 참조).
이와 다르게 행하는 것은 영적으로 위험한 일로서,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듣지 않으시고”(요 9:31),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잠 28:9) 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언의 신은 하나님의 성령을 간구하는 한 무리가 먼저 어린양을 따라 지성소에 들어가는 선제 조건을 행하지 않고, 그들의 예복을 흠없이 보전하지 않으면서 기도하고 있는 무리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보좌 앞에서 아직도 머리를 숙이고 있는 무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 예수께서 그곳을 떠난 것을 몰랐다. 사단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하려고 보좌 곁에 나타났다. 그들은 보좌를 쳐다보며 ‘아버지여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부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였다. 사단이 그들에게 거룩하지 못한 영향력을 불어 넣었는데, 그 안에는 빛과 능력은 있었지만 자비로운 사랑과 기쁨 그리고 평안이 없었다. 사단의 목적은 그들을 속여서 꾀어내어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혹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초기문집, 57,58.
여러분들은 왜 이 무리들에게 사랑과 기쁨과 화평이 없었을까라고 의아해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덕성들은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과, 하나님의 율법을 통하여 나타난 그분의 성품의 원칙들과 조화된 그들의 생애와 밀접히 관계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자면,
1. 사랑.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롬 13:10; 시편 119:97,113,163.
2. 기쁨.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시 40:8 (시 119:77, 174 참조).
3. 평화.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시 119:165 (말 2:6 참조).
사단이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오게 하는 능력이 있어도 (욥 1:16; 계 13:13); 또한 “공중의 권세 잡은자”라고 할지라도, 또한 일기를 바꾸어 죄없는 자들을 괴롭히기 위하여 파괴하는 힘을 행사하는 능력이 있을지라도 (욥 1:18-19), 마귀와 그의 악한 천사들과 악인들은 결단코 주님을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성령의 열매들을 순전하게 나타낼 수가 없습니다. 행 5:32 참조. 우리가 주님의 명령을 온전하게 따르기로 헌신했을 때에만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축복을 측량할 수 없도록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들어감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임재인 쉐키나 영광 앞으로 즉, 그리스도께서 들어가셔서 현재 봉사하고 계시는 곳으로 들어가는 엄숙함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시온의 죄인들이 두려워하며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 떨며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 우리 중에 누가 영영히 타는 것과 함께 거하리요 하도다 오직 의롭게 행하는 자, 정직히 말하는 자, 토색한 재물을 가증히 여기는 자, 손을 흔들어 뇌물을 받지 아니하는 자, 귀를 막아 피 흘리려는 꾀를 듣지 아니하는 자, 눈을 감아 악을 보지 아니하는 자, 그는 높은 곳에 거하리니” (사 33:14,15).
사랑하는 대표자 여러분, 여러분들은 거룩한 길에서 의롭게 행하며, 복음전도, 출판 사업, 의료 사업, 건강개혁, 행정, 그리고 교육 사업에 대한 하나님의 청사진을 따라 가기를 원치 않으십니까? 여러분들은 어떠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아니 여러분의 봉급이 떨어지더라도, 우리의 교회 안에서의 직위가 내려갈지라도, 초대 교회의 경건함으로 되돌아가며, 하늘의 안내서를 따라가기를 원치 않으십니까? 여러분들은 정직하고 곧바르게 말할 거룩한 용기를 가지고 있습니까? 죄를 죄라고 부르며, 주께로부터 오지 않은 것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말입니다.
“오늘날도 단호한 책망의 음성이 필요하니 이는 한탄할 만한 죄악으로 인하여 백성들이 하나님에게서 떠난 까닭이다. 불신은 신속히 유행하고 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됨을 원치 아니하나이다’라고 무수한 사람들이 말한다. 너무도 흔히 행하여지고 있는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 설교들은 오래 지속하는 감화를 끼치지 않는다. 나팔이 분명한 소리를 내지 않는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분명하고 똑똑한 진리에도 마음 아프게 여기지 않는다. 그들이 진정한 감정을 표현해야 할 때에, 그처럼 분명히 말하는 필요가 어디 있는가?라고 말할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또한 왜 침례 요한이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고 말할 필요가 있었는가? 라고 말하였을 것이다. 왜 그는 동생의 아내와 사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헤롯에게 고하여 헤로디아의 분노를 일으킬 필요가 있었는가? 그리스도의 전주자는 분명히 말함으로 자신의 생명을 잃었다. 왜 그는 죄 중에 사는 자들의 불쾌를 사지 않고 행동할 수 없었을까?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충실한 수호자로서 서야 할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하였고 드디어 정책이 충실을 대신하였으며 죄는 책망을 받지 않고 지나게 된다. 언제 충실한 견책의 음성이 다시 한번 교회 중에서 들리게 될 것인가?
‘당신이 그 사람이라’ 삼하 12:7. 나단이 다윗에게 말한 이 의심할 여지없이 명백한 말은 오늘날 설교단에서 거의 들을 수 없고 공공의 정기 간행물에서 볼 수 없다. 이런 말이 그처럼 드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을 더욱 많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주의 사자들은 인정을 받으려는 욕망과 인간을 즐겁게 하려는 야망을 가짐으로서 스스로 진리를 감추고 있음을 회개하기 전에는 그들의 노력의 결과가 없다고 불평하지 말 것이다. 하나님께서 평안을 말씀하시지 않으신 때에 평안하다, 평안하다고 부르짖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이런 목사들은 참으로 하나님 앞에 저희 마음을 겸비하게 하고 저들의 불성실과 도덕적 용기의 부족에 대하여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저희에게 맡겨진 기별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이웃을 사랑함이 아니요, 저희가 방종과 안일을 사랑하는 까닭이다. 참 사랑은 첫째로 하나님의 영광과 영혼의 구원을 추구한다. 이 사랑을 가진 자들은 명백하게 말함으로 초래되는 불유쾌한 결과를 피하려고 진리를 회피하지 아니할 것이다. 영혼들이 위험에 빠져 있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들은 자신을 생각하지 말고 그들에게 말하도록 주신 말씀을 말하고 악을 변명하거나 핑계하지 말 것이다.” 선지자와 왕, 131-133.
같은 진리 안에 있는 동료들이시여, 여러분들은 이사야 33장이 권면하고 있는 것처럼 학대하는 일을 미워하시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은, 왕권과 독단적인 권위를 행사하는 일에 굴복하기를 거절하였다는 죄명밖에는 없는 역사적인 재림 신앙을 소유한 “염려하는 형제”들을 향하여 학대하고 분리시키며 대적하는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얻어지는 지위와 명성, 그리고 “충성스럽다”는 평판등을 미워하지 않으십니까? 총회의 대표자들이, 잘못된 충성과 이기적인 야망들을 가진 결과로 얻게되는 더 높은 지위나 더 높은 봉급, 더 나은 특권들을 얻게 될지 모르지마는 그럼으로 그들의 사업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해 본다면 그러한 것들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너희는 다 형제라” (마 23:8) 는 말씀을 기억하도록 하십시다. 하나님의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로 하지 말고 오직 경건함과 온유함으로 본을 보이도록 합시다 (벧전 5:3 참조).
만일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거룩하신 부르심에 신실하게 행한다면, 여러분들은 높은 곳에 거하시게 되실 것입니다. 꼭 교단 안에서의 높은 위치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말입니다. 반석들이 여러분의 피할 곳이 되며, 사람들이 여러분의 신임서를 빼앗으려고 애를 쓸 지라도 여러분의 전도사업은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양식이 공급될 것이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여러분의 필요들이 공급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사도의 임무들을 신실히 마친 다음에 여러분들의 눈은 영광 중에 왕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 33:16-17참조).
호소 – 하나님 편에 표를 던지시기 바랍니다
“모든 목사들은 자신의 직무의 신성함과 자신의 사업의 거룩함을 깨닫고 엘리야가 나타낸 용기를 보여야 할 것이 아닌가! 목사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임명받은 사자로서 무거운 책임의 지위에 있다. 그들은 ‘오래 참음…으로 경책하며 경계하고 권하’여야 한다 (딤후 4:2). 그들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하늘의 오묘의 청지기로서, 힘써 순종하는 자들을 격려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을 경고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세속적 정책이 아무 가치가 없다. 그들은 예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도록 명하신 길에서 결코 빗나가지 말 것이다. 그들은 구름같은 증인들에게 둘리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전진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말을 하지 말고 세상 군주들보다 더 크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하도록 명하신 말을 할 것이다. 그들의 기별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와 나단과 침례 요한 같은 사람-결과를 돌아보지 않고 당신의 기별을 충실히 전할 사람, 그것이 비록 저희가 가진 바를 모두 희생하도록 요구할 지라도 진리를 담대히 말할 사람을 부르신다. 하나님께서는 위기 중에, 힘과 용기와 모든 감화가 필요되는 때에 의를 위하여 굳게 서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쓰실 수 없으시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대항하여 충실히 싸우고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대적할 자들을 부르신다. 이와 같은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마 25:23).” (선지자와 왕, 133-134).
사랑하는 대표자들이시여, 옳은 일을 위하여서 확고하게 서십시요. 그것은 때때로 여러분을 혼자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금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마음에 진리이며 옳다고 느끼는 바로 그 일을 하는 일에 있어서의 결심과 노력이 변하도록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과거 역사를 바라볼 때에 한 표는 커다란 변화와 개혁과 불행을 결정짓도록 하였습니다. 여기에 몇가지 예증들이 있습니다.
1. 왕 촬스 1세는 법원의 67대 66의 판결로 목 베임을 당하였습니다.
2. 불란서가 1875년에 왕정에서 민주주의로 바뀔 때에 그 투표 결과가 353대 352였습니다.
3. 미국 혁명 당시에, 반 영국적 분위기가 많은 지역들에서 강하였었습니다. 그당시 초기 국회에 영어를 미국의 국어로 사용하는 일을 폐지하고 독일어를 쓰자는 제안이 상기되었을 때에 그 제출안은 한 표 차이로 부결되었습니다.
4. 1845년도에 미국 상원은 26대 25로 텍사스주를 미 연방에 포함시킬 것을 통과 시켰습니다. 하니간 상원의원이 마음을 바꾸어서 일이 성사되게 되었는데, 하니간 의원 자신도 한표 차이로 승리하여 상원의원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5. 1868년에 앤드류 쟌슨 대통령이 한표 차이로 탄핵을 면하였습니다.
6. 187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롸더포드 비 헤이 대통령이 선거인단 투표에서 185대 184로 승리 하였습니다.
끝으로 여러분들 기억 하십시요. 1923년 11월 8일 단 하나의 표 차이가 엄숙하고 중요하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었습니다. 나치 정당이 독일 뮨헨에서 모여 그들의 지도자를 뽑는 마당에서 그들은 한표 차이로 아돌프 힛틀러를 자기들의 지도자로 뽑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한표는 큰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절대로 여러분의 마음을 신성함과 정직함과 진실함에서 떠나게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가장 큰 결핍은 인물의 부족이다. 그 인물이란 매매되지 않는 사람, 저희의 심령 속이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 죄를 죄라고 부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마치 나침반의 바늘이 틀림없이 남북을 가리키듯이 양심이 그 의무에 충실한 사람, 비록 하늘이 무너질지라도 옳은 일을 위하여 굳게 서는 그런 사람들이다.” 교육, 74.
“하나님께서는 단호한 충성심을 가진 사람들을 요구하신다. 당신께서는 위기에 처하여 두 마음을 가진자를 쓰실 수가 없으시다. 주님께서는 그릇된 일에 손을 가리키며, ‘이것은 주님의 뜻에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원하신다.” 가려뽑은 기별, 2권, 186.
한 사람, 예수께서는 인간의 역사의 경로를 바꾸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대표자들이시여, 한사람이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역시 한 사람이 교회의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남녀는 하나님의 뜻에 거슬려 행하는 어떤 위원회나 이사회, 또는 조직체의 회의보다 하나님의 권위를 더 높이며 거기에 굴복하는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증을 엘리야의 생애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을 그 어느 인간의 권위보다 더 높이 받아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의 통치자보다 더 크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하도록 임명하셨으므로 엘리야는 손을 하늘로 쳐들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형벌이 이스라엘에게 내리려 한다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단언하였다…엘리야가 그의 기별을 전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확실한 능력에 대한 굳센 믿음의 활용에 불과하였다. 그가 섬기는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엘리야는 결코 아합의 앞에 나타날 수 없었을 것이다.” 선지자와 왕, 111.
사랑하는 대표자들 여러분, 한 사람, 경건하고 의로운 엘리야가 하나님의 성령께 완전히 굴복하고 주의 진리와 명예를 옹호하기로 결심하였을 때에, 종교적인 위기 가운데서도 중도의 입장을 취하며 결정치 않는 군중 속에서도, 갈멜산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번에 열리는 세계 대총회에서도 정의와 진리와 순결과 거룩함을 위한 여러분의 한 표가 의미 심장한 차이를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도전을 받으십시오!
끝으로 대표자 여러분, “대다수가 우리를 버리고, 주님을 위한 전쟁에 장군들의 수가 적을 때에 진리와 의를 옹호하기 위해 싸우기 위하여 일어서는 것이 바로 우리의 시험일 것이요, 이 때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냉냉함에서 열을 취하고 다른 이들의 비겁함에서 용기를 취하며 그들의 배반에서 충성을 취여야 한”(하나님의 아들과 딸들, 201) 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시험을 직면하기로 선택하십니까? 여러분들은 혹시 혼자가 될지라도 소수에 속하여 서기 위하여 준비되어 있습니까?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이해하지 못할 바로 그 때에라도 진리를 위한 싸움을 싸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사랑하는 1995년도 대표자 여러분들, 특별히 선거위원 여러분들이시여, 저는 지난 1990년도의 대총회를 위하여 호소한 글귀 중에서, 오히려 오늘날 더욱 더 의미깊게 적용되는 말씀을 반복하면서 이 글을 끝내려고 합니다.
“세계 각국의 교인들의 열망적인 눈들이 여러분의 집회 장소들에 집중되어 있으며, 현재 저희들이 사랑하는 교회안의 형편들을 보고 깊이 염려하는 마음들이 여러분의 선택들과 결정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모세에게서 보여졌던 그러한 온유함과 원칙에 단호하였던 결단력을 가진 그러한 지도자를 우리들에게 뽑아 주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우리에게, 남북을 가르키는 나침반의 바늘처럼 의무에 충실한 지도자들, 신성한 의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지혜나 세상적인 방법들로서 실패를 불러오지 않을, 하나님의 권면의 말씀의 빛에 양심적으로 조심스럽게 나아갈 그러한 지도자들을 뽑어 주시겠습니까? 만일 그렇게 해 주신다면 약속된 초대 교회의 경건의 부흥이 여러분들의 결정을 뒤따라 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선택과 결정 과정에서 하나님의 원칙들을 여러분 스스로가 조심스럽게 적용할 때에 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미국 견고한 토대 지 1990년 5월호).
이번 56차 대총회가 그야말로 우리의 “마지막 총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저 말로만 하는 전통으로서가 아니라 참된 의미에서 말입니다. 여러분의 진리와 의를 위한 입장이 현실화 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본향으로 속히 가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기도할 것입니다. 거룩한 과감성을 가지고, 또한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함을 가지고 가십시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