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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금 살금 들어온 타협 – 머리말

저자: 죠 크루스 목사 – 미국의 대표적인 자영선교기관 중의 하나인 Amazing Facts 기관의 설립자이며, 전도 목사로서 봉사함.
           
           그리스도인 생애에 관한 주제는 아마 현대 교회에서 가장 등한시되고 있는 신조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중요한 부분에 관한 아주 기초적인 교훈을 담고 있는 서적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다. 그저 그리스도인 생애가 이 세상 사람들의 그것과 구분되어야 한다는 기본적이고도 실제적인 원칙들을 다루려고 시도한 몇몇 소책자와 전단들만이 있을 따름이다.

           그리스도인 생활양식에 관한 이 특별한 주제에 대해 저술하기를 머뭇거리는 이유는 아마 두 가지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첫째, 성경이 가르치는 수준과는 아주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는 대다수의 교인들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우려로 인한 두려움이며, 둘째, 저자를 보고 남을 판단 잘 한다느니, 율법주의적이라느니, 자기가 우리보다 더 거룩한 줄로 안다느니, 그리스도와의 개인적이고 진정한 사랑의 관계가 미흡하다느니 하는 딱지가 붙을 것 같은 두려움이다.

           우리는 이러한 두려움이 종종 정당한 것이라고 인정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 바리새주의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글들이 난무해오고 있다. 사단은 몇몇 소수의 극단적이고도 신경질적인 견해를 이용하여 이 주제에 대해 온유한 정신으로 글을 쓰려는 사람들을 위협해 왔다. 그리고 이 진리에 대한 사단의 특별한 적의는 종종 교회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인 생애의 표준에 대해 말하려는 사람들을 극단주의자나 격에 맞지 않는 사람들로 취급하도록 선동해왔다.

           이러한 요소들이 이 주제에 대해 논한 자료들의 결핍을 초래해 왔으며, 다른 이유가 없다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아름다운 개념과 상반됨 없이 그리스도인 행동양식에 대한 잘 균형진 성서적 원리들을 교인들에게 가르쳐야 할 어마어마한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우리도 또한 이 주제에 관하여 조금이라도 말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물론. 우리는 믿음을 통한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지, 우리 인간 편의 어떤 행위나 순종, 혹은 외적 행위의 공로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외형적인 것들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쉽게 오해될 수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교회에 일반적으로 주어지지 않은 것이 분명하며, 이 주제에 관해 말하는 고독한 목소리들만이 때때로 들릴 뿐이다. 반면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교리가 마땅히 그래야 되는 것처럼 극적으로 소생되어 전해지고 있다. 오늘날 교회에 가장 필요되는 진리로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진정한 의미가 전해질 때 그것은 칭의와 성화의 경험인 관련성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구원에 관한 그러한 깊은 영적 진리를 제시할 때 순종의 중요성을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된다. 어떤 사람들은 믿음과 행위 사이의 아름다운 균형을 유지하는 일을 거의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일은 너무나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은혜나 행위에 대해서 오해하는 것은 그에 대한 경험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이며, 개인적인 증거의 능력을 망쳐버리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책이 필요하지 않다고 반대 할 텐데, 그것은 외부로 나타나는 행동은 그리스도께 마음을 바칠 때 자연히 일어나는 자연스런 산물이며, 그런고로 생애에 나타나는 행동은 진정한 순종과 의의 열매를 자동적으로 산출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이 완전히 다 맞는 말일까? 행동은 회개가 가져오는 내적인 태도로부터 자연히 표현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을 위해서는 교훈이 필요 된다.

           그리스도께 마음을 바친 많은 사람들은 일요일을 지키고 담배를 피우는데, 그것은 아무도 그러한 행위가 성경과 상치된다고 하는 설명을 그들에게 해주지 않았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그들의 행위가 고쳐지도록 하기 위해 그들을 가르침으로 율법주의자들이 되고 있는가? 그러면 성경과 조화되는 다른 부분의 외부적 행위에 관해 말하는 것도 잘못된 것일 수 있을까?

           그대가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들을 읽기 전에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그리스도인 생활의 표준에 관한 신조는 단지 영적인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다. 이 책은 개심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세상적인 표준에 준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단지 웃기는 이야기로 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 제시된 것들을 가지고 그대의 개심하지 않은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일은 제발 하지 마시기 바란다. 특별히 우리는 개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옷을 입는 표준에 관해 강요하는 것을 금하라는 권고를 받고 있다. 이 경고에 귀를 기울여보라.

           “그대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대 마음대로 변하게 할 수 없다. 다른 차림의 옷을 입는 것이 마음을 변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려운 점은, 교회가 날마다 회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영감의 글이 아주 명백하게 지시하는 것을 감히 불순종하는 사람들은 단순하고, 깔끔하며, 장식을 하지 않은, 격에 맞는 옷을 입도록 하는 인간의 어떠한 노력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자아를 우상으로 삼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인간을 시험하는 어떤 것이라도 제시되어서는 안되는 데,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반역으로 뛰어드는 마지막 결단에 대한 변명을 하도록 할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건강기별, 429,430).

           여기에 제시된 원칙들을 그대 자신의 생애에 적용시키도록 하라. 어떤 것들은 전에 다른 책들에서는 거의 취급되지 않은 것들이다. 그대가 이 책 전체를 다 읽고 이제 이 가련한 지구의 마지막 황혼이 지려는 때에 하나님께 그대 자신이 그 원칙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는지 가르쳐 달라고 할 때까지는 그 원칙들을 극단적이라고 부르고 싶은 충동을 제어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