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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섹스(Unisex)

저자: 죠 크루스 목사 – 미국의 대표적인 자영선교기관 중의 하나인 Amazing Facts 기관의 설립자이며, 전도 목사로서 봉사함.
             
유니섹스에 관한 문제를 고려해보지 않고 오늘날의 복장문제를 넘겨버리는 것은 아무래도 좀 깨름직하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 할 수 없는 비슷비슷하게 생긴 옷과 머리 형태가 오늘날 여기저기서 보인다. 남자와 여자에게 똑같은 형태의 옷과 머리 형태를 갖추게 해준다고 하는 유니섹스 상점과 간판들이 거리마다 나붙어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런식으로 증가되어 오는 경향이 어떤 영적인 위험을 몰고 오고 있는 것일까?

      첫째로 우리는 지난 몇년간 기하학적인 증가를 보인 동성연애를 잘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동성연애 운동으로 가득 채워진 신문과 잡지에 실린 이야기들이 유행성 독감처럼 파다하게 퍼져서 이제 그 말이 안방에서부터 거리로 그 권리를 주장하면서 자랑스럽게 활보하는 나라가 되었다. 동성연애 자들의 행진과 데모가 수많은 대중을 끌고 있으며. 대중에게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텔레비젼에서 하는 공청회는 동성연애 자들을 등장시켜 그 문제를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일을 수백만의 시청자들 앞에서 감행한다.

    정신의학은 동성연애를 정상적인 성행위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까지에 이르렀다. 거대한 개신주의 교회 조직들은 동성연애 자들을 교인으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동성연애 자라고 자칭하는 사람을 목사로 안수하는 일까지 있는 형편이다. 동성연애 자들만을 위한 교회들이 세워지는가 하면 같은 성을 가진 두 사람 사이의 결혼이 법적으로 공인되어 교회에서 거행되고 있다.

    옛날에 있었던 이 타락의 광범위한 만연의 원인에 대해서는 많은 기록들이 있어왔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왜 그렇게 갑작스럽게 동성연애가 다시 부활하게 되었는 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우리가 동성연애 운동을 노골적으로 발전시켜 왔던 몇몇 유사한 사회적 발전과정을 살펴봄으로 그 이유들을 발견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여러 세기들을 통하여 같은 상황은 유사한 결과를 낳아왔다.

    모든 성경학도들은 구약과 신약 전반에 걸쳐 동성연애를 반대하는 강한 구절들을 익히 잘 알고 있다.하나님께서는 동성연애를 가장 가증한 것 중 하나로서 완전히 없어져야 할 죄로 명명하신다. 고대의 이교 세계는 악과 함께 놀아났다. 동성연애라는 소도미(Sodomy)라는 말은 수많은 호전적인 동성연애 자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소돔 성에서부터 유래되었다.  바울은 로마서 1:26.27에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으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바울은 32절에 그같이 불량한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유하게 될 가나안 땅은 동성연애의 죄로 만연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들로 그 땅의 주민들과 섞이거나 결혼하지 말도록 아주 명백한 지시를 하신 이유들 중 하나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들은 가나안 땅의 저속한 관습에 휘말려들 어떠한 접촉도 피하여야 하였다. 거기다가 그들은 그와 같은 죄를 지을 만한 분위기를 조장할 수 있는 복장을 입는 것에 대해 특별한 금지의 지시를 받았다.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니라”(신명기 22:5).

    동성연애는 반대의 성을 가진 사람처럼 입고 행동하는 것으로 인하여 뒤따르는 성적역활의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문제에 있어서 당신의 백성들이 그 유혹에 대해 어떤 문도 열지 말아야 할 것을 경고하셨다. 그들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분명한 구분을 지켜야 하였다. 신약성경은 외모에 있어서 분명한 구분이 지어져야 한다는 것을 다시 강조한다. 바울은, “만일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 에게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되나니”(고린도전서1I:14.15)라고 기록했다.

    자, 이제 우리는 왜 우리가 동성연애가 그렇게 놀랄 정도로 판을 치고 있는지 설명될 수 있는 현대사회의 장면에 대해 좀 살펴 볼 준비가 되었다. 만일 하나님이 성적구분이 뚜렷하지 않은 것이 문제를 초래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보셨다면 우리는 그 커다란 문제가 우리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전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세가지 유행의 요소들이 동시에 작동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데, 하나씩 살펴보면 이 셋 중 하나도 그리 인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들이 합쳐서 그 영향력을 발휘할 때 그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조차 깜짝 놀랄만한 것이다. 그 세가지 요소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 그 목적이 우리의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종교적 생활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서로 바뀔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여성 자유화 운동.
(2) 대다수의 여성들이 자신들의 전통적인 여성용 복장 형태를 버리도록 한 바지유행 혁명.
(3) 남성들이 주름장식을 한 복장, 여성과 같은 머리형태, 여성화가 되려고 하는 경향의 증가.

    이 세가지 요소의 조합된 상황이 동성연애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로 행동에 옮기도록 하는 자극제가 되어 왔을 것이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단지 그 세가지 인기있는 운동과 유행들이 자신들에게 덮쳐오는 약간의 정신과적 혼란만을 필요로 했다.

    뉴욕 시립대학의 사회학 교수인 찰스 위닉(Dr. Charles winick) 박사는 현재 유행하고 있는 남녀공용의 옷이 우리 사회에 궁극적인 파멸을 가져오고 있다고 느끼는 지도적 권위자이다. 획기적인 그의 책 ‘새로운 사람들(The New People)’에서 그는 유니섹스가 미국인들의 성적 분별력과 역할을 하락시킨다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윤곽을 그리고 있다. 심지어 30대가 넘은 사람들이 그들 주위에서 일어나는 근본적인 변화에 의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인식하지도 못하면서 아주 심한 영향을 받고 있다고 그는 믿는다.

    위닉 박사는 심지어 성실한 사업가들 조차 난잡한 그림을 그린 셔-츠와 바지와 잘못 유행되는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남성들을 위한 보석류, 향수가 섞인 몸 치장용 화장품들, 메니큐어, 얼굴에 바르는 크림, 화장수, 머리 장식품들이 남성용품점에서 날개가 돋친듯 팔리고 있다. 머리에 쓰는 망사와 파마 머리가 “ 트래이너(조련사)”와 “헤어 프로쎄씽(머리 공정 과정)”이라는 용어로 조심스럽게 이름 붙여진다. 위닉 박사는 우리의 풍습속으로 들어와 중성화되고, 얼빠지게 만든 다음, 결과적으로는 싫증나게 만드는 항목들을 그의 책에 수백 페이지에 달해 그 목록을 들었다. 예를 들면,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에게 킴, 크리스, 레슬리, 진, 리,그리고 대나와 같은 남녀공용의 이름 들을 붙여주는 경향이 농후해지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구분을 희미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 사회에 큰 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이라고 그는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사람들이 자신들의 성에 대한 확실한 개념이 설 때까지는 중요한 생애의 상황들을 처리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유니섹스 복장은 많은 사람들을 혼돈시키고 있으며, 심각한 정서적 위기를 조장하게 하고 있다. 사회학자인 위닉 박사는 남성과 여성이 어떻게 정의되는지에 관해서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는데 의사들을 위한 잡지인 “의학적 의견과 고찰(Medical Opinion and Review)”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했다. “거의 대부분의 남성과 여성의 역할과 관계의 구성은 그 어느 한쪽의 역할이 희미해지지 않는 한 건강하고 효율적이 될 수 있다.”

    성경 기자들과 사회학 전문가들은 유니섹스 복장이 성적인 문란을 초래하는 요소라고 입을 모아 말하는데, 이렇게 널리 전파되는 유행에 관한 우리 자신의 개인적 태도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할까? 우리는 남은 교회의 일원들로서 이 문제에 관한 지침을 받지 못한 것이 아니다. 엘렌 지 화잇은 다음과 같은 말로 성서적 입장을 주석했다.

      “나는 신명기 22:5에 관한 언급을 들었다.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니라’여성들이 그들의 복장과 용모를 가능한 한 다른 성인 남자들의 것과 매우 흡사하게 하려고 하는 경향이 증가되고 있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가증한 것이라고 선언하신다”(교회 증언 1권, 457).

    여자들이 그들의 복장을 남성들의 복장과 아주 흡사하게 유행시키려고 하는 것을 엘렌 지 화잇이 가증한 것이라고 부른 것을 부디 잘 명심하라.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복장이 실제로 반대의 성을 가진 사람들의 복장에 관한 것이 아니다. 복장이 오직 한 성(남성이면 남성, 여성이면 여성)을 위해 만들어 졌을지도 모르나 반대편 성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그 영향력은 이미 동성연애 자로 만연된 진영 안으로 양성이나 동성연애의 흐물거리는 유행의 물결이 쏟아져 들어 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제시되는 의문은 남성과 여성의 복장의 구분을 어디다 두어야 하는가 이다. 반대편 성의 옷을 입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대도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하게 금지된 행위이다. 거기에는 가증한 것이 되지 않을 수 있는 유사한 점의 정도에 대한 대단한 불일치도 있음이 분명하다.

    많은 사람들은 이미 남성의 바지와 유사한 형태의 바지가 유행되어 왔다고 말들을 한다. 그러나 만일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작은 변화들이 그런 식으로 유행한다는 명목 아래 우리 사회 가운데 도입이 되겠는지? 그 점을 가리켜 화잇부인은 그것이 가증한 것이 된다고 말한 것이다. 바지 가랑이가 넓어지고 코우트의 형태가 점점 더 남성의 것과 비슷해 질때 그러한 변형의 형태가 가증한 것으로 되는 것을 탐지해 내는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매 달마다 인기있는 바지의 형태가 조금씩 유니섹스의 형태로 변형되어 가고 있고, 재림교회 여성들은 변형되어 가는 형태의 바지를 계속 사고 있다. 마침내 하나의 작은 변화가 다른 성의 남자들의 것과 매우 흡사하게 변형될 수 있다. 조금씩 조금씩 갉아먹는 사단의 마지막 시대의 전술은 많은 사람들을 미니스커트의 추문 속으로 몰아 넣었던 것처럼 유니섹스의 진영 안으로 남은교회의 무리들을 이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살짝 그의 발을 들여 놓았을 때 그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거의 없도록 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 시키는 것이다. A 자매의 작은 버팀대를 기억하고 있는지? 똑같이 무해한 듯이 보이는 방법으로 여성들의 바지와 남성들의 사내답지 못한 복장을 통하여 사단은 남은 교회 안으로 연약함과 수치를 몰고 들어 올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신실한 재림교인들은 예언의 신이 바지가 유행되는 것을 너그럽게 봐준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와 반대이다. 화잇 부인은 그와 반대되는 입장을 취했다. 그녀는 그러한 복장에 대해 정죄했다. 화잇 부인 당시 인기있는 미국의 의상을 그녀는 이런 말로 묘사했다. “그러한 의상은 조끼, 바지, 궁둥이에서 무릎 절반쯤 오는 코우트와 유사한 의복을 이야기한다. 그러한 의상을 나는 반대하는데, 내게 보여진 바에 의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조화되지 않는 의상이다”(교회증언 1권, 465).

    그 복장이 어떤 점에서 현대의 유행하는 바지와 다른가? 그녀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대다수의 여성들이 입고 있는 복장을 거의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단지 코우트와 유사한 의복이 오늘날 더 짧아졌다는 것만을 제외하고. 후일에 화잇부인은 용납될 수 없는 특별한 복장을 반대하는 말을 했다

    그녀는 계시 가운데서 세 부류의 여성들이 그녀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두번째 부류는 그녀가 미국의 의상으로서 묘사한 의복을 입고 있었다. 여기 그녀가 한 설명을 들어보자.     “두번째 부류가 내 앞을 지나 갈 때 입은 옷은 많은 점에 있어서 마땅히 그래야 할만한 복장이었다. 그들의 사지는 적당히 잘 가려졌다. 그들은 첫번째 부류를 짓눌러왔던 유행이라는 폭군이 지워주는 짐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첫째 부류는 훌륭한 사람들이 편견을 강게 하고 염증을 느낄 정도로 아주 짧은 옷을 입었으며 자기 자신들의 감화력을 아주 크게 손상시키고 있었다. 그 복장과 ‘미국 의상’의 감화력이 뉴욕주 단스빌에 있는 ‘아워 홈(Our Home)’에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가르쳐 지고 입는 옷이 되었다. 그것은 무릎에까지 닿지 않았다. 나는 내게 보여진 이런 형태의 옷이 너무 짧은 것이라고 이야기 할 필요가 없다”(현대진리와 리뷰 앤 헤랄드 기사, 73).

    이제 우리는 무엇이 요점인지 분명히 그려볼 수가 있다. 여성복의 브이자형 앞장식(블라우스 혹은 조끼), 바지, 궁둥이에서 무릎 절반까지에 미치는 코우트와 유사한 의복은 용납될 수 없는 의복으로 묘사되었는데 그것은 그러한 의복이 무릎에까지 닿지 않는 때문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바지가 적어도 무릎까지 내려오는 치마에 의해 가려진다면 바지를 입는 것이 반대받을 만한 복장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바지를 입는 것은 무릎을 내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녀가 오늘날의 미국 의상인 바지를 인정한다는 결론을 내릴 이유를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그녀는 명백히 말했다. “나는 미국의상을 착용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질서가 뒤집혔으며, 그분의 특별하신 지침이 무시되는 것을 보았다. 나는 신명기 22:3에 관한 언급을 들었다”(교회증언 1권, 457).

    바지와 블라우스들을 제단한 것과 그 형태를 보면 남자가 입는 것과 같은 것도 있지만 여성의 것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는 있다고 하는 말은 사실이다. 많은 훌륭한 그리스도인 여성들이 여성다운 복장을 지지하는 한편 똑같이 헌신적인 다른 여성들은 남성과 같은 복장을 입는 것이 무엇이 해롭느냐고 반박한다. 여기서 어떤 것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어떤 선을 긋는 것이 우리가 공부하는 목적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아무도 그러한 선을 어디서 그어야 할지를 알지 못한다. 모든 재림교회 여성들은 첫번째 들여놓는 발걸음이 유니섹스의 경향을 고무시킬 위험이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사단이 함정 속으로 집어 넣으려고 사용하는 그 작은 발걸음들은 종종 너무 천진한 발걸음이어서 그 발걸음들은 의로운 열정으로 지지될 수 있다.

    바지가 현재 유행하는 수많은 의상보다 더 정숙한 복장인지에 대한 것을 토의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사단의 능란한 전술과 덫에 채인 참새의 교훈을 아는 빛에 비추어 봐서 우리는 우리가 딛고 있는 발걸음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할 것인지를 물어봐야 한다. 그 발걸음이 화잇 부인이 언급한 가증한 것으로 더욱 가까이 이끌리고 있는가? 그러한 발걸음이 B 자매로 하여금 그녀의 바지가 조금 더 남성의 것과 비슷해져야겠다는 생각을 갖도록 할 것인가? B 자매의 것보다 더 남성의 것과 가까워져야겠다고 나가는 C 자매는 또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러면서도 그들 모두는 그렇게 입는 다른 여자들처럼 자신들이 남성형의 복장을 하지 않았다고 우기게 되는 그런 일이 있게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