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락과 원칙
저자: 죠 크루스 목사 – 미국의 대표적인 자영선교기관 중의 하나인 Amazing Facts 기관의 설립자이며, 전도 목사로서 봉사함.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는 그저 또 다른 한 종파가 아니다. 이 교회는 개혁을 완성시키기 위해 예언에 반응하여 일어난 한 운동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생애의 거의 모든 부면에 관련돼 있는 “개혁”에 있어서 어떤 문제가 있어 왔는가? 식생활의 개혁은 이 남은 교회가 처음 시작될 때부터 남은 교회의 한 상표처렴 되어 왔으나, 개혁의 그 오른 팔은 점차 육체적인 입맛에 동화됨으로 그 모양이 서서히 일그러지게 되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천연법칙과 조화된 그 위대한 자제의 원칙들이 서서히 허물어져 없어져 왔다. 재림교인들의 파트락(안식일에 각자가 음식을 준비해 와서 함께 먹는 점심)은 과도한 식욕의 방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되어왔다. 고기만 빠졌지 설교가 끝난 후에 갖는 파트락 상 위에는 이 세상 사람들을 게걸스럽게 만든 똑같은 종류의 건강에 해로운 단 것, 매운 것들이 듬뿍 쌓여 있다.
그리스도의 능력을 통하여 식욕을 조절하는 것이 우리의 첫번째 조상들의 그 비참한 상태에서 벗어나 반드시 우리가 얻어야 할 승리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광야에서 그 문제에 단호히 맞서셨다. 기도와 말씀에 의지하여 그분께서는 첫째 아담이 비참하게도 실패했던 동일한 시험에서 시험하는 자를 이기셨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아담의 자녀들이 구원받기 위해서 꼭 얻어야 할 승리이다.
건강개혁에 관한 그 원래의 개념이 얼마나 잘못 전해져 왔는지 비재림교인들은 우리가 고기를 먹지 않는 것만 기억하고 있다. 운동, 적절한 배합, 정제되지 않은 식품. 적은 양의 설탕과 소금, 간식을 안하는 것, 통곡류, 약을 사용 하지않는 것, 다량의 물을 마시는 것, 과식하지 않는 것 등의 원칙들은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수십만명이 안식일을 믿고 지키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이로 자신들의 무덤을 파고 있다.
거의 모르는 사이에 우리 백성들 간에 몸을 돌보는 일에 있어서 변화가 일어났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는 성경절을 잊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도 돼지고기와 해물들을 먹지않고 있는 우리 자신들에 대해 긍지를 가지고 있으며. 아마도 5O%의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이 육식을 완전히 포기해 온 것으로 안다. 그러나 그것이 건강개혁 기별의 전부는 아니다. 작은 것에 대해 펴오는 사단의 전술처럼 아주 성공적인 전술은 없다. 작은 범죄들을 합리화 시킴으로 식욕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의 신체를 점령하는 일을 강화시켜 왔다. 비만증은 이 세상 사람들에게만 편만한 것이 아니라 우리 백성들 간에도 똑같이 편만하다.
극기에 관한 한 설문지를 흘려 반응을 검토해 보는 것도 참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우리 교인들 중 얼마나 많은 교인들이 자신들의 식욕을 극기할 수 있을까? 대부분이 아무 제약이나 제한 없이 자신들의 식욕이 원하는 데로 먹고자 하는 사람들의 부류에 들지 않을까? 아마 그대 자신이 이 책을 읽는 것을 잠시 멈추고 그대 자신에게 그 질문을 해봐야 할 것이다. 그대는 그대가 필요로 하는 양보다 더 많이 먹고자 하는 그대의 욕망을 필사적으로 제어 하는가? 그대는 설탕이 듬뿍 묻어있는 패이스트리의 위험한 후식이 얹혀져 있는 상을 그냥 지나갈 수 있는가? 그대는 얼마나 자주 식간에 무언가 입에 넣고 싶은 유혹에 굴복하는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문제들을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서 섣불리 취급하지만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이 교회에 주신 영감있는 권면들 중 큰 부분을 이루는 것들이다. 수백 페이지나 되는 많은 책들이 하나님의 율법과 마찬가지로 우리 인체의 법칙도 철저하고 주의깊이 따르도록 권고하고 있다. 우리 건강에 기초되는 법칙을 고의적으로 범하는 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데 부적합하게 만들 수 있다. 그 말이 너무 심한 말일까? 우리 좀 더 자세히 살펴 보자.
우리는 왜 담배와 술을 사용하는 것을 죄로 여기는가? 그것은 담배와 술의 사용이 몸에 해롭고 수명을 단축시키는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자신의 몸을 더럽히면 그 사람을 멸하실 것이라고 말한다(고전 3:16,17).
질문: 그대는 운동을 충분히 하지 안으므로 그대의 수명을 단축 시킬 수 있는가? 그렇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예방할 수도 있었을 심장마비로 인해 조기사망을 한다는 과학적 통계가 보고되었다. 흡연이 심장마비와 조기사망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이것은 운동을 충분히 하지 않는 것이 담배를 피우는 것처럼 나쁘다는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의심할 것도 없이 그것은 사실이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이 이렇게 명백히 드러난 원칙들을 합리화시키는 일을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가 범하는 죄의 무력케하는 영향을 피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
우리가 선물로 받은 생명을 연장 시키는 것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영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반드시 이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식간에는 한 조각의 음식물도 결코 입술을 통과하게 해서는 안된다”(건강에 관한 권면, 118)는 영감받은 권면을 들을 때 그저 픽 웃으며 지나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좋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아주 중요한 원칙이다. 우리가 섬세한 소화기관을 보호하기 위한 어떤 선을 긋지 않는다면 우리도 아담의 타락한 후예들에게 내렸던 재앙과 같은 좋지 않은 건강과 질병의 경험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산발적으로 한 두번 하는 순종으로는 불충분하다. 결심하는 능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자신과 하는 심각한 전쟁이 틀림없이 동반될 것이나 하늘의 지시하심을 습관적으로 따름으로 커다란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이 주제에 관해 주어진 매우 많은 권면의 빛을 보면서 우리는 왜 우리 백성들 중 아직도 반수가 동물의 죽은 사체를 먹고 있는 지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화잇 부인은 식생활과 음식물에 관한 권면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약간의 고기도 우리의 위장에 들어가지 않게 할 것이다”(441쪽).
”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 문제에 관하여 주신 모든 경고를 무시한다. 그들은 안전한 길을 걷고 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445쪽). “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들 중 어떤 이는 언젠가 육식을 끊게 될 것이다. 고기가 더 이상 그들의 음식으로 구성되지 않을 것이다”(441,442쪽).
버섯구름처럼 증가하는 오염과 화학적 독성을 생각할 때 우리에게는 육식을 하지 말도록 권고하는 특별한 지시를 하는 그런 책들이 없더라도 육식을 끊을 수 있다. 몇몇 가장 잘 먹히는 고기들을 검사한 결과 최저의 건강표준에도 미치지 못함으로 거절돼 온 것을 우리는 안다. 소비자 보고(Consumer Reports) 잡지는 1971년 8월에 햄버거에 관한 광범위한 연구를 해서 그 결과를 보고했다. “우리가 사먹는 햄버거의 깜짝 놀랄만큼 높은 비율이 이미 잘 썩어가고 있었다.”
랄프 네이더(Ralph Nader)는 포장공장에서 더 면밀한 조사를 한 후 1971년 11월 7일자 플로리다(Florida) 잡지에 햄버거와 핫 도그에서 발견한 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 발표했다
”이 모든 공정된 고기들은 대개 어떤 상상력으로 가공된 식품에 속한다. 그것들은 포장하는 사람들이 그 고기의 부스러기와 표준 미달이나 병든 고기, 그리고 좀 꺼림칙한 부분을 잘라내어 솜씨 좋게 가공한 것이다. 그들이 하는 모든 것은 그 모든 하치의 찌꺼기들을 물에 담궜다가 색소와 양념을 적당히 해서 의심하지 않는 소비자들이 사먹도록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재판정에서 드러난 증거에 의하면 원래는 개나 고양이들을 위한 음식으로 주어지는 오염된 고기, 말고기, 질병에 걸린 동물에서 나온 고기를 햄버거나 쏘세지로 잘 위장을 하는 데 그 동물들의 눈알, 돼지의 피가 핫 도그와 점심 도시락용 고기 안에 잘 다져져서 섞인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 고기들은 악취나 나쁜 맛을 없애기 위해 자주 오래되고 썩어가는 고기에 건강한 분홍빛 색을 내게 하는 불법적 첨가물인 아황산염에 푹 담근다. 고기가 너무 더럽기 때문에 더러운 것을 씻어내기 위해 중성세제를 사용하고 고기 부스러기들을 한데 뭉쳐놓기 위해 일반적으로 시리얼(Cereal)이나, 가끔은 톱밥을 사용하기도 한다”
아마 재림교인들의 설탕 소비에 대해서 한마디 하는 것이 옳을 듯 하다. 최근의 의학적 발견은 설탕이 인체에 해롭다고 하는 예언의 신의 증언에 동의 한다. 그러나 한백성으로서 우리는 일년에 일인당 국내 소비량인 102 파운드보다 더 적은 양의 설탕을 먹는가? 안식일에 파트락상에 차려진 음식들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일인당 일일 평균 설탕의 소비량은 32 찻숟갈인데, 사과파이 한 조각은 8 찻숟갈, 룻 비어〔Root Bear) 한 병은 1O 찻숟갈의 설탕을 함유하고 있다. 그것은 일일 평균 소비량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양이다. 바나나 스플릿(Banana Sp1it) 하나는 잘 못 믿으시겠지만 25 찻숟갈의 설탕을 함유하고 있다. 아, 우리는 아마 대부분의 비재림 신자들보다 더욱 결사적으로 우리의 신체를 꼭 막히게 하고 있는 듯 하다. 여러 종류의 단 음식에 든 과도한 설탕은 종종 비만, 당뇨, 저혈당, 관상심장질환, 관절염과 관련이 있다.
재림교인들에게 카페인이 든 음료수를 사용하는 것이 그릇되다는 것에 대해 주의를 주는 것은 참으로 불필요한 것처럼 보이나 우리는 살며시 침투해 온 타협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참 이상하게 보일는지 모르나 니코틴의 가장 가까운 사촌인 이 카페인이 많은 재림교인들의 선반 위로 슬금슬금 기어 올라가 있다. 옛날 롯이 가졌던 철학인 “이것은 작은 것 아닙니까?”가 조금씩 조금씩 더 사용하는 것에 대한 핑계가 되어 왔다. 3%의 카페인이 섞인 것에서 시작하여 카페인에 대한 맛의 탐익은 습관적으로 카페인을 마시게 되기까지 방치되어 온 것이다.
그에 대한 하나님의 권면은 어떤 것인가? ”차와 커피를 마시는 것은 일종의 죄이며 해로운 방종이다. 그러므로 그것 역시 다른 악과 같이 영혼에게 상처를 입힌다”(식생활과 음식물에 관한 권면, 497). 이 증언으로부터 어떤 이는 카페인을 제거한 커피(Decaffeinated Coffee)는 단지 3%의 죄를 짓는 것이라고 추론할지 모르나 그것은 그 이상이다. 만일 모든 카페인이 제거된다 할지라도 역시 그것은 몸에 너무나 해로운 것이다. 카페인을 제쳐놓고 생각해 볼 때 커피는 독특한 맛과 향취를 주는 휘발성 기름인 카페올〔Caffeo1)을 함유하고 있다. 위장에 더 많은 손상을 주는 것은 카페인보다 카페올이 더 그러하다. U.S. News & Word Report 지에 장 기능 부전의 권위자인 죠셉 몬타그 박사(Dr. Josoeph F. Mowtague)가 카페올에 관해 실은 면담기사에는 이 같은 기록이 있다.
“만일 당신이 커피 한 잔에 우유나 설탕을 첨가하기 전에 약 1분간 그대로 두면 당신은 그 커피의 표면으로 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보게 된다. 이 기름들은 위장과 십이지장, 그리고 두뇌에 사람들이 먹는 어떤 다른 것보다도 더 큰 자극을 주어 궤양상태에 이르도록 한다
사람이 아침에 이러한 커피를 마시면 그는 기운이 펄쩍 나게 된다. 그러나 사실상 그는 신경의 긴장 줄을 당기고 있는 나사못을 더욱 조이는 것에 불과하다”(USN & WR, 1968.2,26).
콜라는 법적으로 1O 온스들이 병에 50미리그램 이상의 카페인을 함유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다른 콜라들은 콜라 넛(Ko1a Nut)을 가지고 제조하지만 코카 콜라는 코카 잎으로 그 맛을 낸다. 코카 잎은 의학적으로 엄격히 규제받는 가장 효능이 뛰어난 약품중 하나인 코카인〔Cocaine)이 그 주요 원료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코카 콜라 회사는 모든 코카인이 다 제거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제조 과정상 그렇게 하려는 노력은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
많은 사람들은 닥터 페퍼(Dr. Pepper)가 코카 콜라보다 더 많은 카페인을 함유하고 있는 카페인 함유 음료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식품 의약 협회(Food and Drug Administration)만이 그 사실에 동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에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많은 숫자의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 중 어떤 이들은 알고, 또 어떤 이들은 모르고 가장 독한 콜라보다 더 해로울지 모르는 탐익성 닥터 페퍼를 계속 마셔대고 있다.
참으로 이제는 이런 타협의 외투를 벗어서 쓰레기통에 집어 쳐넣고 이 교회에 위임된 위대한 진리를 따라야 할 때이다. 부흥과 늦은 비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깊고도 영적이며 개인적인 헌신에 뿌리박은 나뉘지 않는 순종의 편에 굳게 선자들에게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