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주의인가 아니면 사랑인가
저자: 죠 크루스 목사 – 미국의 대표적인 자영선교기관 중의 하나인 Amazing Facts 기관의 설립자이며, 전도 목사로서 봉사함.
이 책의 초점은 작은 것들에 관한 것이며, 사단이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들의 높은 영적 표준을 갉아 먹는지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진리의 능력과 효력이 약해짐으로 오는 점차적인 타협의 심리학적인 양상을 분석해 보았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그런 사소한 것들에 그렇게 큰 우려를 표명하는 것은 더 중요한 것들을 다루지 못하도록 한다고 제안한다. 그들은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각 개인의 자질구레한 행위들에 그토록 관심을 기울이실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표명한다. 그들은 그 같은 우려를 율법주의라고 불러 버린다. 그러나 그것이 율법주의인가 아니면 사랑인가?
비록 표준을 아주 조금씩 낮추는 것이 진리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지도록 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하나님의 뜻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멀어지는 것에 대해서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리스도교는 금지와 규칙 위에 건설된 것이 아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하신 십계명에 명시된 참으로 높임을 받아야 할 규칙들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그리스도교는 한 사람이신 예수님과의 사랑의 관계 위에 건설되는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생애의 기초를 이루는 원칙은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22:37-40 에 주신 두 가지 위대한 계명속에 요약되어 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성경의 모든 기자들은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교가 의미하는 모든 것이라는 것을 매우 분명히 한다. 사랑의 주제가 신구약 전체를 통하여 짜여 있으며, 그 사랑의 결과는 순종의 역사이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한복음 I4:35). 사랑받는 제자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라고 기록하였다.
심지어 인간의 사랑도 사랑의 대상을 기쁘게 하는데 별 압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신부와 신랑은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그렇게 무거운 책임이라 생각지 않으며, 그들이 결혼 서약을 따르지 않으면 정부의 법이 벌금과 징역에 처한다는 것 때문에 그 서약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들은 법이 요구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서로를 깊이 사랑하기 때문에 서로를 기쁘게 해주려 애쓰는 것이다. 상대방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어떤 작은 일이라도 수행하는 것은 기쁨이 된다.
참된 사랑을 시험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작은 관심이 주어지는 부분이다. 어떤 아내라도 그 사실에는 동의할 것이다. 심지어 몇 개의 시드는 꽃들이라도 아내가 남편이 자기를 위하여 그 꽃들을 꺾으러 나갔다는 것을 알 때에 그녀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감동할 것이다. 사실, 가장 값진 선물일지라도 벼랑에 피어있는 가냘픈 들국화를 자연스레 꺾어 아내의 손에 들려주는 것보다는 덜 인상적일 것이다. 왜? 그 답은 명백하다. 그것은 그 남편이 단지 한 가지 이유, 즉 자기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한 것 때문에 그렇게 하기로 선택하였기 때문에 1OOO배 이상이나 가치있는 사랑의 시험인 것이다.
부디 이것이 그리스도와의 참된 사랑의 관계에 의한 것이어야 함을 유의하도록 하라. 요한은 말한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 3:22). 그리스도인은 단지 십계명의 명백한 요구들을 순종할 뿐만 아니라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 할 것이다. 이것은 그분의 뜻을 알기 위해 성경을 상고하고, 그분을 불쾌하게 해드리는 것은 어떤 것도 하지 않는 것을 포함한다. 진정한 사랑은 늘 그렇게 하려고 애를 쓸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이 사랑을 나타내는데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면 그분은 큰 관심으로 그들이 당신의 계시된 모든 작은 뜻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지켜보실 것임이 틀림없다.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헌신의 가장 큰 시금석은 성경을 통해서 그분을 기쁘시게 할 모든 작은 것들의 흩뿌려진 암시들을 즐겨 따르려는 정도에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율법주의로 취급되는 대신에 심판 때에 가장 이기심 없는 사랑의 형태로 여겨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고, 말하고, 보는 것에 있어서 그분의 뜻을 알기 위해 매일 성경을 상고하게 하시기를 기도 드린다. 그럴 때에 우리는 우리의 매일의 그리스도인 생애에 그분의 뜻을 즐거이 적용시킬 사랑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대 무슨 생각 하든
하나님 보시면 얼굴 붉어질 것 결코 생각 말게
그대 무슨 말 속삭이든 말하든
예수님 듣기 원치 않으시는 것 한마디도 말하지 말게.
그대의 넘기려는 책장이 아무리 그대 꾀여도
하나님께서 엄숙하게 “그 책 나 좀 보자”하실 때
당황한 표정 지을 것 확실 하거든
그 책 치워 버리게.
그대 급히 혹은 주의깊이 무엇을 쓰든
예수께서 읽기를 원치 않으시는 것이면 그대 붓을 놓게.
그대 들떠서 무슨 노래 부르든
그분의 들으시는 귀 언짢게 하는 노래걸랑 입도 벌리지 말게.
그대 어디를 가든 크신 하나님이
“그대 어찌 여기 왔느뇨”란 말 듣는 것 두려우면
그런데는 한 발자국도 들이지 말게.
그대 추구하는 쾌락이 무엇이든 하나님이
“너 무엇하고 있니” 란 말 들을 때
깜짝 놀라 움츠러드는 곳이걸랑 그 쾌락에서 돌아서게.
그대 무엇을 입든 트집잡힐 때 없고
순결하다는 느낌 가짐을 확신할 수 있는지?
예수님이 그대의 열린 옷장 보실 때
얼굴 붉힘 없고 양심 깨끗함으로 기뻐할 수 있는지?
그대가 생각하고
말하고, 읽고, 쓰고, 노래하고, 걷고,
기쁨을 구할 때
그것이 집 안이건 집 밖이건 모든 그릇됨 없이하고
주님의 눈 아래있는 것처럼 언제나 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