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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지어야 할 방주
W. D. 후레이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 24:37)고 하십니다. 그는 오늘날 이 세계에 노아의 기별과 같은 기별을 주셨습니까? 세계가 멸망하게 될 것입니까?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노아의 기별을 전하도록 이 세상에 어떤 사람들을 보내셨습니까? 그들 중에 누가 오늘밤 이곳에 있습니까? 나는 하나님께서 노아를 보내셨던 것처럼 보냄을 받은 자들이 있다면 손을 들어 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중에 이것을 알고 있는 자들이 있음을 인하여 기뻐합니다. 나는 여러분 모두가 동일한 부르심을 받고 이 사업에 참여하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일을 위하여 태어난 것이요, 노아가 전한 기별과 다름없는 기별을 분명한 목소리로 전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밤 나의 설교 제목은 노아의 기별전파가 아니요 노아의 방주 건설입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히 11:7)

 노아는 기별을 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는 또한 일하였습니다. 그는 그의 손으로 일하였습니다. 그는 거목들을 작업장으로 운반하여 재목으로 만들고 그것들을 조립하여 거대한 배를 지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건축 사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신 목적은 다가올 폭풍을 피할 은신처를 마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느 누가 방주 건설의 결과로 도피하였습니까? 물론 있었습니다. 사실 홍수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를 건설한 결과로 구조된 자들이었습니다!

 오, 친구들이시여, 지금이야말로 노아의 때와 같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세계는 다가오는 사건을 위하여 준비하고 있지 않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그들은 먹고 마시며, 심고 집을 지으며, 시집가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이 나라는 사상 유래 없는 거대한 술잔치에 빠져 있습니다. 느낌으로는 사람들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라고 생각될 것입니다. 그것이 노아의 때와 같은 것이라는 모습입니다.

 오늘날 노동조합은 점점 더 거대해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두 개의 조합분소들이 하나의 큰 조합으로 연합 체제를 갖추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에 우리는 예언을 살피며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아메리카와 세계의 역사적 사건을 뜻할 것이다. 여기에는 1,300만 명의 남녀 노동자들을 하나의 거대한 운동으로 결합시키는 정치세력 – 엄청난 새로운 요인이 있다. 이 전에 일어날 수 없었던 일들이 지금 일어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미래의 일들을 예고할만한 심오한 사색가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나는 하늘이 주시는 특별한 빛을 받았는데 그것은 핍박, 일요일 법령, 그리고 계시록 13장의 불매동맹 등이 주로 노동조합들을 통하여 성취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거대한 신진세력인 미국 노동총연맹 산업별회의(AFL-CIO)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았으며 그리고 우리는 결과들을 보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들 중의 어떤 것은 벌써 나타나는데 정치적, 입법적, 산업적, 그리고 재정적인 것들입니다.

 60여 년 전 주님의 사자는 우리의 모든 대도시에서 동맹과 연합체의 형성으로 말미암아 다발로 묶어지게 될 때가 올 것이라고 미리 지적하였습니다. 이러한 조합들과 연합하기를 거절하는 자들의 생명은 위태롭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하기를 오늘날 존재하는 조합으로 묶는 동일한 일들이 노아의 시대에도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노아도 이와 똑같은 문제에 부딪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시들을 따르는 일은 그에게 모든 문제를 안전하게 피하도록 해주었습니다.

 지금 물어 볼 것이 있습니다. 오늘날 방주가 필요하겠습니까? 우리는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우리가 모든 위험에서 벗어나 하늘에 올라가게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를 떠나려고 합니다. 우리는 그런 경험을 위하여 어떤 방주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일이 일어나기 바로 전에 대 환란이 있는데 그 때 재앙들이 내리게 되고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동굴과 산의 요새지에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 어떻게 지낼 것입니까? 그때는 천사들이 우리를 먹이게 될 것입니다! 초기문집, 58에서 이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세상에서 피하여 나가게 될 것인가를 우리 모두가 이해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 두려운 환란의 때를 통과하여 살 것인가는 의심할 것 없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짧은 환란”이라고 불리는 때가 있는데 그것은 시련 끝 이전에 있는 것으로 국가적 일요일 휴업령이 통과된 뒤에 신속하게 뒤따르는 위기와 핍박의 때를 말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때를 통과할 것입니까?

 그때에 관하여 요한계시록 13장의 말씀을 살펴봅시다. 16절은 미국에 대한 상징인 두 뿔 가진 짐승에 대하여 말합니다.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로운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여러분은 그 표를 받으시겠습니까?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계 13:17)

 여러분은 그 표를 받지 않으시겠지요. 그렇지요. 왜냐하면 계시록 14장에 나타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임에 틀림없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계시록 15:2에는 하늘에서 성도의 무리가 노래를 부르는데 그들은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입니다. 그들은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자들입니다.

 친구들이시여, 여기에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은혜의 시기가 끝나기 전에 그대가 식료품은 아무것도 살 수 없는 때가 다가오고 있다면 여러분은 어떠한 도움을 받아 천사들이 동굴 속에 여러분에게 먹을 것을 공급할 약속을 받기까지 생계를 지탱해 나가겠습니까? 여러분은 그 전에 굶어 죽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실제적인 질문입니다.

 홍수 다른 편에는 무지개가 있었지만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어떻게 이 홍수를 지나갈까 하는 것입니다! 머지않아 곧 폭풍우가 몰아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어떻게 이를 대처해 나갈 것인가에 대하여 거의 생각이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어떤 이들이 품는 다음과 같은 태도에 우려가 됩니다. “글쎄, 주님께서 어떻게 해서라도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환언하면 그들은 짧은 환란을 통과하는 것을 재앙들이 내리고 있을 때인 큰 환란의 때를 통과하는 것과 하등 다름없이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그가 나가 기별을 전하며 말하기를 “홍수가 곧 임합니다! 속히 준비하십시오!”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반문하기를 “만일 홍수가 임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노아의 답변을 상상해 보십시오. “오, 주님께서 여하간 우리를 돌보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는 것을 상상해 봅시다. “우리는 배를 지을만한 시간이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나아가 홍수가 임박한 사실을 그들에게 전하는 것이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것은 또한 순종하는 행동도 아니지요.

 누가 노아에게 다가오는 홍수를 이야기하였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노아에게 기별을 전하라고 하셨으며 아울러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는 그가 전파한 것을 실천하였으며 그가 실천하고 있는 것을 전파하였습니다. 이것은 모두 함께 결속되었습니다.

 여기에 아주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노아는 그의 설교와 방주를 실지로 만드는 것으로써 세상을 책망하였다. … 방주를 만들기 위하여 두드릴 때마다 울리는 소리도 사람들에게는 설교가 되었다. 백성들은 놀란 눈초리로 구경하며 그를 광신자로 여기는데도 노아는 방주를 만드는 일을 지도하고 전도하며 일하였다.” (살아남는 이들, 75) 보시는 것과 같이 노아는 그의 목소리로 기별을 저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이 망치를 통하여도 기별을 전하였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임박한 핍박의 폭풍에 대하여 백성들에게 전파하고 경고함과 동시에 우리에게 망치를 가지고 해야 할 일을 주시지 않았나 하고 생각해봅시다. 수천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짐승의 표를 받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될 때에 매매를 금지하는 그 두려운 사건을 위하여 준비하는 일에 어떤 실제적 사업이 포함되지 않을 것인가요? 나는 그것에 대한 대답이 있다고 믿습니다. 나는 그 답의 일부를 주의 종을 통하여 주신 글에서 발견합니다. “노동조합의 지배하는 세력이 매우 강압적인 성격을 띨 그 시기가 급속히 다가오고 있다. 주님께서는 거듭거듭 우리 신자들이 가족들을 거느리고 도시를 떠나 저들이 먹을 양식을 재배할 수 있는 시골로 옮기도록 지시해 주셨다. 그 이유는 장차 물건을 사고파는 문제가 매우 심각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가려 2권, 173)

 저는 어느 누구라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된 것을 기뻐합니다. 마지막 문구부터 살펴봅시다. “장차 물건을 사고파는 문제가 매우 심각해질 것이다.” 우리가 짐승의 표를 받지 않는 한 우리는 매매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리고 174페이지에는 노동조합들이 이 일에 크게 관여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견해 때문에 영감의 글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까? 도시에서 나오십시오. 시골로 들어가십시오. 이사하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시골에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는 자급자족을 위하여 우리 자신의 식량을 위해 경작해야 합니다.

 “도시에 살고 있는 부모들에게 주님께서는 경고의 기별을 보내시고 계신다. 그대의 자녀들을 그대 자신의 가정으로 모아들이라. … 가능한 한 신속하게 도시에서 나오라. 부모들은 시골에서 그들이 과수원을 가질 수 있고 채소나 작은 과일을 재배할 수 있는 경작지가 딸린 작은 집들을 구할 수 있다.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도우셔서 도시 밖에서 그런 집들을 찾게 하실 것이다. 할 수 있는 대로 빨리 우리 기관들은 도시에서 떨어진 곳에 자리 잡아야 한다. … 하나님의 백성들이 도시에 이주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시골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그들이 땅을 개척하며 그들이 먹을 과일과 채소를 재배할 수 있기를 바라신다.” (MM, 310)

 친구들이시여, 이것이 짧은 환란의 때를 통과하도록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계획하신 방법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생활이 도시에서 위협을 받을 때에 피난처를 주시며, 우리가 매매를 할 수 없을 때에 먹을 것을 공급해 주시기 위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방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최후의 사건들의 세 가지 단계에 있어서 우리를 돌보시는 세  가지 방법들을 가지고 계십니다. 최후의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에서 아주 데려가실 것이 분명합니다. 바로 조금 전 곧 큰 환란의 때에 천사들이 우리에게 먹을 것을 공급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짧은 환란의 때에는 우리가 스스로 경작하여 재배한 음식물들을 얻어야 합니다.

 여기에 매디슨 학교에 관한 소책자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윌리 화잇 목사에게서 구한 것입니다. 머갠 교수의 진술이 여기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학교 농장이 너무 크다고 느꼈다. 우리는 우리의 의중에 작고도 깨끗하며 질서정연한 하나의 모델이 될 이상적인 학교 농장을 계획했었다. … 우리가 화잇 부인에게 농장의 크기에 대한 우리의 이의를 제의했을 때 그는 말하기를 지금 도시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따라 살기 위하여 도시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올 것인데 우리는 피난처(도피성)가 될 농장을 준비하여 그곳에서 사람들이 잠시 동안 머물며 토양을 경작하여 생계를 유지할 방법을 배우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시골에 들어갈 용기를 얻어 그곳에서 경작지를 찾아 집을 지으며 하나님의 율법에 조화되게 그들의 자녀들을 교육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NANI, 11, 1908)

 친구들이시여, 그것이 “방주”입니다. 폭풍이 몰아치고 국가적 일요일 휴업령이 통과될 때에, 노동조합들이 강압적이고 억압적인 그들의 일을 추진시킬 때에, 그리고 큰 외침이 시작되면서 성도들이 소돔에서부터 급히 빠져나올 때에 그들은 “도피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 이 사랑스런 백성들을 위하여 방주를 짓도록 합시다.

 질문을 좀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짧은 환락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며칠 또는 몇 주 이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왜 그럴까요? 여러분은 불과 며칠 만에 당근을 심어 수확할 수 없습니다. 토마토가 자라는데도 여러 달이 걸립니다. 딸기나 다른 과채류들을 가꾸는데 생각보다 긴 시간이 요합니다.
 노아의 기별은 실제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사 그 사실을 보게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또 다른 손에는 망치나 또는 괭이를 들고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그것들을 모두 잘 사용하는 법을 아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성경, 괭이 그리고 망치. 그것이 바로 우리가 “도피성이 될 농장을 준비하여 그곳에서 사람들이 잠시 동안 머물며 토양을 경작하여 생계를 유지할 방법을 배우도록 할”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피난처” 주님께서는 만일 찾아 올 도피자들이 없었던들 피난처를 만들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친구들이시여, 우리는 우리가 행하는 모든 사업에서 도피자들이 찾아온다는 이런 생각을 염두에 두고 일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들은 찾아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들을 위해 준비된 상태의 여하에 상관없이 그들이 찾아오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다.

 셈과 함과 야벳이 코끼리 한 쌍이 건 널판 위로 걸어오는 것을 보았을 때 그들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요? 노아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얘들아 여기 코끼리들이 온다.” 아들들이 대답하기를 “이리로 보내십시오. 여기에 코끼리 부부를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곳은 어떤 상태에 있었습니까? 준비된 모습으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건초가 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방주에는 음식물들이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도피자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도피자들이 찾아올 때 여러분들은 그들을 위한 은신처를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은 “오, 죄송합니다. 나는 아무라도 받아들일만한 거처를 마련하지 못했고 식량도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하였습니다.” 라고 말하겠습니까? 우리는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를 아시는 분께서 도피자들이 찾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단순히 시골에 산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 도피자들은 도시에서 나와 심각한 문제 때문에 시골에 있는 이런 농장으로 찾아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살 수 없습니다. 또한 아무것도 팔 수 없습니다. 식료품을 구입하기 위해 시장을 드나드는 우리의 작은 트럭을 생각해 봅시다. 빈 트럭으로 들어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것이 우리가 직면할 문제입니다. 부양해야 할 사람들은 더욱 많아질 것이나 작은 트럭으로 우리를 위해 식품을 구입하는 자가 아무 곳도 갈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답변이 우리의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한 푼의 물건도 주문하지 못할 것입니다.” 환란의 때가 아직 여기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나 우리가 구매 목록을 작성할 때 이것은 현실 문제로 대두되지 않겠습니까? 구매 목록을 작성한들 “내가 더 이상 아무 것도 살 수 없을 때 이 목록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것이 방주 건설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도피자들의 주택을 짓는 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땅을 경작하여 딸기 밭을 가꾸고 옥수수나 고구마 밭을 가꾸는 일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음식을 확보하는 일 뿐만 아니라 찾아 온 사람들에게 식량을 생산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들 중에 이런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는 자들이 있을까요?

 어느 날 아침 총무가 말하기를 “형제여, 지난 밤 몇 명의 도피자들이 시카고에서 왔는데 형제가 스미스 형제를 모시고 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공장에서 일하던 자인데 농사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습니다. 형제가 그에게 땅의 소산으로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였다면 참으로 놀라운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오, 그를 농장 책임자에게 보내시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그를 농장에서 일하는 청년들 중 하나에게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나는 식품 생산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습니다. 나는 그저 음식을 먹는 것, 그것이 전부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까?

 방주를 짓도록 합시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재재소를 가동시키고 언덕 위에 단순하고 편리하면서도 한두 가족을 더 수용할 수 있는 방을 구비한 집을 짓도록 합시다. 그리고 우리가 건축할 때마다 도피자들이 찾아오고 있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우리가 밭을 일구고 과수원을 가꿀 때에도 도피자들을 생각하십시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들이 오고 있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이시여, 만일 여러분이나 내가 오늘밤 우리가 듣고 있는 이 교훈을 따라 언제나 행동한다면 우리는 믿음으로 폭풍이 임하기 전에 이를 실천할 것입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너무 늦어버린 때에 노아의 지혜를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성령께서 우리를 감동하시므로 우리가 너무 늦기 전에 이 방주를 짓도록 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짓고 있는 방주는 어떤 종류의 것입니까? 우리는 어디에서 그 청사진이나 규칙들을 구합니까? 우리가 착수한 그 일은 어떤 모양의 것이 될까요? 여러분은 의료 봉사(Medical Ministry, 308, 309)에서 그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방주”란 하나님께서 우리 백성들에게 모든 도시의 주변에 세우도록 분부하신 완전하고도 작은 규모의 설비들입니다. 농장, 농장에 있는 학교, 그것과 관련된 작은 요양소, 그리고 전도 센터 등이 모두 포함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소규모의 기관들만을 요구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가정들이 도피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치료봉사, 192-194를 읽어보십시오. 여러분 농부들이시여, 여러분들이 할 일이 있습니다. 건축에 종사하는 자, 기계를 다루는 자, 요리나 바느질이나 간호하는 일에 익숙한 여인들이시여, 여러분들이 할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결정하는 힘을 주셔서 다가오는 위기를 위하여 여러분이 여러분의 가정을 피난처(도피성)로 만들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적군이 모든 퇴진 통로를 차단해 버린 듯이 보일 대에 연합군들이 극적으로 필사적 철수를 단행했던 던커크(Dunkirk) 해전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큰 군함들이 화염에 휩싸이고 수천의 사람들의 운명이 일각에 놓인 듯이 생각되지 않았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구원의 방주 곧 영국의 작은 쾌속 어선들을 보내 주셨습니다! 어떤 배는 열 사람을, 다른 배는 50명 또는 그 이상을 태울 수 있었습니다. 크기나 속도나 능력이 제각기 다른 것들이 활동하였습니다. 작은 배들이 안개 속을 왕래하면서 큰 군대를 이동시켰습니다. 보잘 것 없는 작은 배들이 거대한 군대의 생명을 건졌습니다.

 수백 명의 인명이 구조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방주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 배들은 위기가 닥쳤을 때 거기 있어야만 하였습니다. 그들은 항해를 위하여 준비를 갖추고 주유를 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들은 구조를 위한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준비는 어떤 대가가 치러집니다. 그렇지 않았겠습니까?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 어떤 희생을 하였을까요? 부조와 선지자 상권, 106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노아가 세상에 그의 경고의 기별을 전하고 있는 동안 그의 업적이 그의 성실성을 증명하였다. 그의 신앙이 완전하게 되고 분명하게 된 것은 이렇게 함으로서 이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믿는 모본을 세상에 보였다. 그가 소유했던 모든 것을 그는 방주를 짓는데 바쳤다.”

 얼마나 많이 바쳤습니까? “그가 소유했던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언젠가 그가 그의 온 가족들을 불러 모아놓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할 때가 있었겠습니까? “자, 이제 우리는 한 통의 못을 구입하기 위하여 통장에서 나머지 돈을 다 찾아 사용하려고 한다.” 라고 그는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을 투자했습니다.

 가구, 카펫, 주택 그리고 토지 등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방주 건설에 투자하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틀림없이 그를 미치광이라고 하며 “신앙이 그의 넋을 빼앗았다.”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가 내리고 물이 차오르고 또한 사람들이 물이 불어나는 것을 보고 그들의 돈을 황야의 아무 곳에나 내동댕이치는 것을 보았을 때 노아는 큰 물결 위에 떠오르는 그에게 속한 지폐들을 보면서 섭섭해 하지 않았습니다. 홍수에 휩쓸리는 것들은 노아에게 속한 것이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의 재산 중의 하나라도 잃어버린 것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아마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아십니까?”라고 말하시겠지요. 나는 이런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가 소유했던 모든 것을 그는 방주를 짓는데 바쳤다.” (상동) 그의 소유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방주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노아가 있었던 곳입니다. 노아는 바로 그의 모든 소유물과 함께 거기에 있었습니다. 바로 방주 안에 있었습니다!

 오, 우리는 방주를 짓는데 심혈을 기울입시다. 만일 그것이 우리의 모든 소유를 필요로 한다고 할지라도 즐겨 응해야 합니다. 계획을 따라 모든 힘을 합치도록 합시다. 만일 여러분이 돕기를 바란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받으십니다.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하십시오. “나는 방주 건설을 돕고자 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제일 관심 있는 일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내가 그것에서 무엇을 얻겠는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방주와 그리고 잠시 후에 피난처를 찾아 올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겠는가 하는 것이 옵니다.” 하고

 만일 여러분이 그렇게 기도하고 그렇게 행동한다면 여러분은 노아의 경우와 같이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건설한 방주가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을 구원하여 안전하게 폭풍우를 통과하게 하실 방주가 될 것임을 발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