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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와 뜨지 않은 세 방주
데이빗 리

 무엇이든지 건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롬 15:4).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눅 17:26).
 우리가 “오늘날에 되는 것과 같이 노아의 때에도 그러했느니라”고 말할 수도 있을까? 그 말을 명심하면서 다음의 비유를 들어보자:

황금의 기선
 노아가 주님으로부터 큰 생명선의 건축을 위한 청사진을 받은 후 얼마 되지 않아 몇 명의 투자가들과 건축가들이 노아에게 왔다.

 그들은 말했다. “노아,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큰 홍수가 이 사악한 세상을 정결케 하기 위해 임한다는 것을 경고해 준 것으로 인해 참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당신이 방주 짓는 것을 돕기 원합니다. 그리고 많은 부유한 사람들도 당신을 돕기 원한다는 것과 홍수가 내리면 방주 안에서 피난처를 갖고 싶어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당신이 지으려는 방주가 너무 작고, 무서운 폭풍을 견뎌내기엔 너무 단순하다고 느낍니다. 잣나무로 지은 당신의 배는 곧 산산조각이 날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노아의 배는 들쥐들이나 살아야 할 배’라고 말하면서 당신의 계획을 비웃기조차 하고 있습니다. 노아,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더 크고 더 복잡한 배를 만드는 것입니다. 스테인레스와 금으로 도금하고, 양탄자를 깔고 냉방장치를 하며, 오락실에는 텔레비전을 들여다 놓아 아주 튼튼하고 멋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노아는 깊은 생각에 잠겨 연장과 청사진을 내려놓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여기 청사진을 보십시오. 당신네들이 말한 것과 같은 것이 이 청사진에 있습니까?”

 “정신 차리시오, 노아! 당신은 당신의 배가 너무 작아 구원받기 위해 오는 수천만의 사람들을 다 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오? 만일 당신이 상류계급의 미각에 맞도록 방주를 꾸민다면 굉장히 많은 경제적 도움도 받을 수 있을텐데 말이오.”

 “상당히 그럴 듯한 말이오”하며 노아가 대답했다. “그러나 만일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라면 그분이 왜 내게 말하지 않았겠고?”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당신이 너무 겸손하고 한가지 밖에 몰라서 더 큰 계획은 달라붙어 하질 못할 것을 아셨기 때문이오. 그렇지만 노아, 많은 사람들이 세련된 것을 원한다는 것을 잘 알잖소. 우리는 ‘만인을 위한 모든 것’이 되어야만 하오. 상류계급의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들이 있는 곳에서 그들을 만나는’ 것이오. 당신은 너무 ‘율법주의적’이 되어서는 안되오. 중요한 것은 ‘원칙’이지 세세한 세부사항이 아니오. 당신의 그 청사진은 몇십년 전에는 괜찮았는지 모르지만 상황이 이젠 변했소. 당신은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만 하오. 당신은 더 크게 생각하고 더 많은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소.”

  노아는 조용히 물었다. “만일 하나님께서 홍수가 올 때 어떤 종류의 배가 필요 되는지를 미리 알지 못하셨다면 내가 어떻게 홍수가 참으로 올 것이라는 그분의 예언을 믿을 수가 있겠소? 만일 하나님께서 홍수가 올 것을 미리 예언하시고 미리 계획하실 수 있으시다면 분명 그분은 진정으로 도움을 원하는 자들을 구하는데 필요 될 배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미리 아실 수 있으시오.”

 “아 노아!”하며 그들은 화를 확 냈다. “당신은 당신이 옳다는 것을 너무 확신하고 있어. 아무도 당신의 마음을 돌이키지 못 할거야! 우린 당신을 홀로 내버려 둘 거야. 그리고 가서 돈 많은 상류계급의 투자가들을 모아서 수천의 사람들을 구할 황금기선을 건축할거야.”

 슬픈 마음으로 노아는 떠나가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굉장한 캠페인을 벌이면서 연설을 하고 자금을 모으며, 자선 오락회도 하여 그들은 상류계급의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여 황금으로 도금한 기선을 건축하였다.

 “그렇지만”하고 여러분들은 내게 말한다. “우린 황금 기선에 대해서는 한 번도 못들었는데요”
 물론, 여러분은 들어보지 못했다. 왜 그런지 여러분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배는 물에 잠겼기 때문에!

구명선들

 여러 해가 지나갔다. 노아는 충실히 배 짓는 일을 계속했다. 숲 속에서 큰 나무들을 잘라서 톱질을 하여 목재로 만드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노아를 돕던 어떤 이들은 지쳐서 마침내 그에게 달려왔다.

 “노아, 우리가 이 배를 100년 이상이나 함께 만들었소. 그런데 결코 완성되지 않을 것처럼 보이오. 이젠 이 보기 싫은 배 건축은 포기하고 그저 구명선들이나 만들면 어떻겠소. 당신은 당신 가족을 위해 구명선 하나를 만들고, 셈, 함, 야벳도 자기 가족을 위해 구명선을 만들면 되고, 우리도 우리 가족들을 위해 각기 검소한 구명선을 만들며 되지 않소. 구명선은 훨씬 간단하게 지을 수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 만들 수 있는 재간과 돈도 가지고 있소. 이 배는 너무 크고 복잡해요. 홍수가 곧 닥치면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이 배는 완성 도중에 끝나버릴거요.”
 그러면 우리가 돌봐야 할 모든 동물들은 어떻게 하면 좋겠소? 당신네들이 만드는 구명선은 동물들은 못 싣게 만들 것 아니오?“

 “아 노아! 동물들은 염려하지 마시오. 그것들은 놔둬도 살아요. 떠다니는 동물원 안에 갇혀있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얼마 없단 말이오. ‘시대가 변했소’ 우리는 ‘사람들이 있는 그곳에서 그들을 만나야’만 하오. 그들은 더러운 동물들을 돌보기를 원치 않는단 말이오. 솔직히 말해서 노아, 많은 상류계급 사람들은 당신의 이동 동물원에 꼭 갇혀서 떠다닌다는 사상을 생각하면 웃어요. 그들은 자기 가족들을 위한 프라이버시를 원하고, 우리도 그래요. 우리 아내들은 자신들만의 아늑한 ‘보금자리’를 원하고, 우리도 그들에게 그렇게 해주고 싶은 거요. 우리는 우리 자신의 피난처를 원한단 말이오. 여러 가족들끼리 서로 부딪히고, 배 멀미하는 동물원에서 북적대는 세월이 얼마나 길지도 모르는데, 그것 참 못 참을거요! 분명 하나님께서는 승객들에게 그 같은 희생을 하도록 요구하지 않을거요. 분명 우리가 제시하는 약간 변경된 계획을 승인하실거요. 그분께서는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하며 노아가 말을 이었다. “회개, 그것이 이 배를 짓는 일의 전부요. 나는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배를 짓는데 이미 100년 이상을 기다려 오셨다면 우리가 그분의 명령대로 이 방주를 완성할 때까지 계속 기다리실 것이라고 믿소”

 “그래요? 아마 당신 가족에게는 그 방주가 적합할지 모르지만 많은 가족들은 프라이버시를 원해요. 그들은 당신의 그 떠다니는 이동 동물원이 당신에게 가져다 줄 온갖 불규칙적인 의무와 시끄러운 문제들에 가담하기를 원치 않아요. 우린 가서 우리 자신의 구명선들을 짓겠소.”

 노아는 슬픈 마음으로 떠나는 그들을 보았다. 그러나 목재는 비싸고 그들의 구명선을 지어 놓을 땅도 비쌌다. 집세, 음식비, 생계비용, 교회학교 보내는 학비 등이 자신들이 버는 적은 봉급을 다 털게 했다. 아주 소수의 가족들만이 구명선을 짓기 위한 충분한 재료들을 쌓아놓을 수 있었고, 구명선을 다 지은 운 좋은 극소수의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게 하느라고 화평을 잃게 되었다. 다른 이들은 등한히 한 그들의 가족이 산산이 흩어지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렇지만”하고 여러분들은 내게 말한다. “우린 구명선에 대해선 들어본 적이 없는걸요.”
 물론! 왜 그런지 아마 짐작은 할 것이다. 다 물에 빠졌기 때문에.

“방주가 필요 없다”고 하는 신학자들

 120년간의 고된 수고 끝에 마침내 노아의 방주는 완성되었다. 기쁨으로 봉헌식 할 날짜가 계획되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오해를 했다.

 그들은 질책하기를 “노아, 당신은 하나님을 신뢰하오? 당신은 그분께서만이 다가오는 폭풍우로부터 당신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믿소?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당신이 지은 배를 어느 정도 믿고 있소? 노아, 당신은 하나님 대신 당신의 손으로 지은 것을 신뢰하는 듯이 보이오. 나무로 만든 이 배가 당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니잖소. 당신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만 하오. 배가 작으면 작을수록 당신을 구하신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리 수 있을거요. 그렇지 않소?”

 “당신네 신학이 무척 논리적인 것처럼 들립니다. 그렇지만 만일 당신네들이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왜 하나님께서 120년 전에 내게 이 청사진을 주셨겠습니까?”

 “노아,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이 청사진을 주신 것은 당신이 너무 교만하고 자아만족에 심취되어 있었기 때문이오. 그분께서 당신에게 이처럼 어려운 숙제를 내주신 것은 당신이 당신 자신의 결점을 보고 포기하여 당신 자신의 속절없는 영혼을 그분께 내던지도록 하기 위함이었소. 그렇지만 당신은 이 배를 짓는다고 고집스럽게 주장했고, 이제는 굉장한 기만가운데 빠져 있소. 만일 당신의 배가 다가오는 폭풍우에 안전히 견딘다면 당신은 생존자들에게 영광을 돌릴 것이고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말거요. 당신이 해야 할 것은 봉헌식을 취소하고, 당신이 지은 배를 내버려두고 우리와 함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전하며 다니는 것이오. 만일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작은 구명선을 지은 자들을 구원하신다면 이 큰 방주에 있는 당신을 구원하는 것보다 더 큰 영광을 얻을 수 있을 것이오. 또 만일 당신이 이 방주를 불태워버리고 그저 맨 땅에 선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구원하심으로 구명선을 만든 자들과 함께 있을 때보다 더 큰 영광을 받으실거요. 당신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하지 않소? 노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그것이 우리가 전해야 할 기별이오.”

 “당신네 신학이 논리적이고 인기 있는 것일지 모르지만 만일 그것이 맞다면 왜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청사진을 주셨겠소? 내가 이 오랜 세월동안 우리 가족과 이 배를 지울 때에 우린 많은 문제들과 싸워야했고, 종종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부르짖어야 했소. 그대에 그분은 우리를 도우셨고, 그것이 우리와 그분의 관계를 두텁게 만들었소.

또한 그것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서 함께 잘 일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었소. 우리가 우리 자신의 행위가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동안 우리는 만일 우리가 그분의 청사진을 따라 배를 만드는데 거장이신 주님과의 관계를 두텁게 하지 않는다면 구원받지 못할 것을 알게 되었소. 만일 우리가 이기적인 품성을 지니고 홍수를 안전하게 통과한다면 우리는 우리 후손들에게도 이 세대의 동일한 악한 관습을 물려주게 될거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기 전에 우리를 변화시키셔야만 하오. 방주를 짓는 이 과정은 그분의 품성을 우리에게 나눠주시기 위해 선택하신 그분의 방법이오. 이 방주를 짓는 바로 그 과정을 통하여 우리의 몸과 마음이 강화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믿음과 신뢰가 강화된 것이오. 믿음은 무지와 게으름과 불순종에 의해 계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열렬하고도 사랑스러운 협력을 이룸으로 계발되는 것이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약 2:17)이며,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약 2:22)는 것이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기만은 진리에 동의만 하면 의가 성립된다는 생각’(시대의 소망 II, 23; 시대의 소망II, 77도 참조; 마 7:21-27)이오.

 “우리 생각은 당신의 생각과 틀리오, 노아, 당신은 바리새주의적 율법주의자요. 우리는 당신을 떠나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전파할테요.”

 그러나 성경은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히 11:7)고 말한다.

 친구들이여, 이 세상이 이전엔 보지 못하던 가장 무시무시한 문제의 폭풍이 바로 우리 앞에 있다. 만일 우리가 아직 “방주 짓기”에 해당하는 이 세 부류의 일꾼들에 대한 얘기를 듣지 못하였다면 우리 자신의 마음을 살펴야만 한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우리는 이미 뜨지 않은 세 가지 “방주 건설”에 가담하고 있든지 아니면 활동적으로, 또한 지성적으로 오늘날의 노아의 가족들과 함께 그리스도께서 기다리고 계시는 현대 “피난할 방주들” 짓는 일을 돕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