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종류의 아버지
저자: 짐 혼버거 장로 – 필자 (Jim Hohnberger)와 그의 아내 샐리 (Sally) 는 가정들을 영적 회복시키는 자급 선교 사업을 하고 있다.
구약성경의 마지막 장에서 선지자 말라기는 주님께서 오시기 직전에 있어야 될 특별한 사업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말라기 4:6
내가 두장의 그림을 그린다면, 첫번째 그림에는 오늘날 재림교회를 다니고 있는 아버지들을 그리고, 두번째 그림에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재림교회의 아버지들을 그릴 것이다.
첫번째 그림에서 나는 한 손은 세상을 향해 뻗쳐 있고, 다른 한 손은 힘없이 그의 가족에게 뻗쳐 있는 그림을 그릴 것이다. 이 아버지는 오늘날 재림교회 내에 있는 세 종류의 아버지들을 상징한다.
첫번째 부류는 재림교회의 많은 기별들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활동적으로 전도사업을 하나 그들 자신의 집에서 날마다 하는 실제적인 대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등한히 하는 아버지들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가정 선교지에서의 사업을 도외시한 채 세상을 위한 그들의 사업을 필수적인 것으로 여긴다. 구약시대의 엘리 제사장처럼 그들은 양심적으로 그들의 사업을 수행하려고 애쓰지만 그들 자신의 가족을 주님의 길을 따라서 질서 있고 잘 훈련된 그리스도 중심의 가정으로 만들어 세상에 복음의 실제적인 감화가 가정 안에서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제시할 수 있는 그들의 첫번째 사업을 등한히 하고 있다.
첫번째 그림에서 보이는 두번째 부류의 아버지들은 부자 청년 법관의 비유에서 볼 수 있는 아버지들이다. 그 사람은 예수님보다 그의 부를 선택했다. 이런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들의 경력을 그들 가족의 진정한 필요보다 더 우위에 두었다. 젊은 법관은 존경의 눈으로 그리스도를 우러러 보았고, 실제로 그의 마음은 구세주께로 이끌렸다. 그러나 그는 구세주의 자아희생의 원칙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좋은 직업은 가지고 있는 가장들은 그 가족들의 실제적인 영적 필요와 대제사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내버려두고 세상적 경력을 선택한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고린도전서 6:19의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는 말씀을 기억해 두면 좋을 것이다. 가족들은 가정 안에서의 아버지의 임무와 책임을 기대하지만, 아버지는 돈과 명예를 위해 세상 일에만 골몰한다.
세번째 부류의 아버지들은 그들의 어린 양떼들의 진정한 영적 필요에 대해 단순히 눈감아 버리는 자들이다. 그들은 스포츠, 뉴우스, 읽을 거리,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 혹은 안이한 생활과 자유로 인해 그들 가정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아버지가 가진 책임을 잃고 만다. 에서가 이런 부류의 아버지를 가장 잘 대표한다고 여겨진다. 에서는 자기만족에 도취되었고, 현재의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만을 했다. 그는 야성적인 스포츠를 즐기고,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렸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아버지들이 그 아들 딸들의 영광스러운 영적 유산을 어떤 오용된 자유, 방종, 혹은 순간적 쾌락과 맞바꾸고 있는가? 에서가 그의 성급한 교환의 어리석음을 보기 위해 깼을 때는 그의 손실을 회복하기에는 너무나 늦은 때였다. 나는 그들의 가족들의 영생을 이기적인 만족과 바꾸어 버리는 아버지들이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보기 위해 깰 때 너무 늦지 않게 되기를 기도드릴 것이다.
이제 두번째 그림을 보도록 하자. 그 그림에서 나는 한 아버지가 한 손으로 그의 아내와 자녀들을 단호하고도 확실하게 휩싸 안고, 다른 손은 그의 가족들의 손과 합하여 생애를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진 복음을 얻기 위해 굶주려 있는 세상을 향하여 길게 뻗쳐진 장면을 그릴 것이다. 그의 사업은 재림신도의 가정, 29페이지에 묘사된 것과 같이 널리 미치는 감화력을 가진 진정으로 확고한 사업이다:
“질서 정연하고 잘 훈련된 가정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설교들보다 더욱 많이 그리스도교를 위하여 증언한다. 그런 가정은 그 부모들이 하나님의 교훈을 따르는 데 성공적이었다는 것과 또한 그 자녀들이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길 것이라는 증거를 보여준다. 저희의 감화는 자라날 것이니 대개 저희가 남에게 나눠 주면 그 받은 이들이 또한 남에게 나눠주는 까닭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저희가 가정에서 받은 교훈을 남에게 전하여 줄 조력자들을 그들의 자녀들 중에서 찾아낸다 … 그 온 가족은 주를 섬기는 일에 종사한다. 그리하여 그들의 경건한 모본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들은 하나님의 양 무리, 하나님의 아름다운 양 무리와 함께 살면서 하나님께 신실하고 참되게 살도록 감명을 받는다.”
“세상에 소개할 수 있는 그리스도교의 능력의 가장 큰 증거는 질서 정연하고 잘 훈련된 가정이다. 무엇보다도 이것이 진리를 사람들의 마음에 들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니 대개 이것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에 끼치는 실제적인 힘에 대한 산 증거이기 때문이다.”
에녹과 노아가 이런 아버지들일 것이다. 그들의 팔로 그 가족들만을 두른 것이 아니라 죄 가운데 죽어가는 세상에 경고의 기별을 주는 아버지들 말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재림신앙이 세상에서 사업을 마칠 수 있기 전에 먼저 재림교인들 가정에서의 사업을 해야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재림교회의 아버지들은 가정에서의 사업에는 손끝도 까딱하지 않는 실정이다. 만일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들이 질서가 잘 잡히고 잘 훈련되었으며, 그 생각과 말과 행동이 그리스도께 잘 복종된 가정들로서의 복음을 보여줄 수 있다면 복음에는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첫번째 그림에서 발견한 아버지들이여, 여러분들이 안수 받은 목사든 평신도 전도자든 간에 여러분들을 향해서는 가장 큰 죄가 선고될 것인데, 왜냐하면 여러분들과 여러분들의 가족들의 생애가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고전 2:4) 하지 않고 다만 이론과 진리의 교리들을 전했기 때문이다. 교회증언 5권, 214페이지에 나오는 권면을 엄숙하게 숙고해 보라: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자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진리의 빛을 가졌고, 주님의 뜻을 알았고, 우리의 신앙의 모든 이치를 다 이해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거기에 일치되는 행위가 없었다. 예언과 하나님의 지혜의 보화를 그처럼 잘 알고 있는 그들은 마땅히 믿음대로 실천했어야 했다. 그들은 가족들에게 그들의 본을 받도록 명령하고, 잘 정돈된 가정 생활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인간의 마음에 역사하는 진리의 감화력을 보여 주었어야 할 것이었다.”
주님의 종은 설교하는 것은 최소한도의 자기 희생을 요구하는 분야의 봉사이며, 우리의 개인적 수고가 없이는 하나님께 가납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가정뿐만 아니라 분명히 우리 자신의 가정도 포함되는 말이다 (사도행적, 517, 518 참조).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당신의 백성을 포로된 땅에서 이끌어 내도록 부르셨다. 모세는 자신이 할 사업을 위해 40년간의 특별한 훈련을 받으며 준비했다. 그러나 애굽으로 가는 길에 “모세는 여호와의 불쾌히 여기심에 대한 놀랍고 무서운 경고를 받았다. 그를 당장 죽일 것처럼 한 천사가 그에게 위협하는 몸짓으로 나타났다. 아무 설명은 없었으나 모세는 그가 하나님의 요구 중 하나를 무시한 것을 기억하였다. 아내의 권유에 못 이겨 그는 막내 아들에게 할례식 거행하는 일을 등한히 하였다. 모세는 그의 아들이 이스라엘로 더불어 세우신 하나님의 언약의 축복을 받을 자격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가 알려진 의무를 등한히 하는 생활을 하는 이상 그는 하나님의 천사들의 보호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안전하지 못할 것이었다.” 부조와 선지자, 상권, 332
아버지들이여, 우리는 자문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수고를 한다고 하면서 알고 있는 어떤 의무를 게을리하며 살지는 않는가? 우리의 자녀들은 어떤가? 그들에게 엘리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느하스의 성격 같은 것은 없는가? 우리가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따르도록 우리의 가족들을 명하는데 있어서 어딘가 실패하지 않았는가? 우리 자녀들은 어리석음 가운데 버려져 있지는 않은가? 그들은 가장 작은 잘못의 시정에 대해서도 불평하며 투덜거리는가? 우리 가정의 일은 게을리하면서 주님의 사업을 하러 나갈 수 있겠는가? 만일 그렇게 한다면 사업은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지금 하나님의 천사들의 보호가 결여되어 있지는 않는가?
그들의 직업을 가족들보다 우위에 두는 아버지들은 다음의 말씀을 잘 숙고해 보라:
“우리는 너무나 쉽게 우리가 얻은 것으로 만족한다. 우리는 부유하고 선한 것이 가득하다고 느끼면서 우리가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지금이야말로 참된 증인의 권면에 유의해야 할 때이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시록 3:17,18.” 5T 214, 215.
8년 전 하나님께서는 필자의 눈을 여셔서 나로 하여금 번영 중에 있는 사업과 집과 땅을 팔도록 감명을 주시고, 주님의 첫번째 사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조용한 산골로 이사하도록 하셨다. 필자에게 있어서 그 일은 아주 어렵고 진보적이며 자아부정을 요하는 것이었지만 내가 해봤던 사업 중에 가장 큰 보상을 주는 사업이 되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 섬기며, 쉽사리 어리석음이나 유혹에 굴하지 않고, 다른 이들을 섬기는 데서 기쁨을 발견하며 날마다 그리스도인 품성을 건설하는 아내와 두 아들을 갖는 것은 정금보다 더 가치 있는 부이다. 내가 나의 첫번째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과 협력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족의 필요를 잘 공급해 주셨고, 세상을 향한 효과적인 복음전도에서 만이 아니라 가정에서 하는 사업에도 축복을 주셨다.
아버지들이여, 절대로 이런 말은 하지 말도록 하자: “시간이 없다. 우리 가족들을 훈련시킬 시간이 없다”라는. 우리의 자녀들의 영생을 위해서 아버지와 어머니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연합하여 할 일이 분명히 있다. 우리 모두가 누가복음 11장 42절에 나오는 말씀을 유의하도록 하자: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지니라.”
세번째 부류의 아버지들이 갖는 무관심의 결과는 전도서 10장 18절에 잘 묘사되어 있다: “게으른즉 석가래가 퇴락하고 손이 풀어진즉 집이 새느니라.” 너무나 많은 아버지들이 곧 가정의 석가래가 무너져 내릴 것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안일과 편의만을 만족시킨 채 가정 제사장의 직무를 등한히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자신들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다.
한번은 나의 절친한 친구와 내가, 가족들과 떨어져서 3일간을 금식과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며 보낼 계획을 세웠다. 우리는 둘 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일을 우리에게 보여 주실 것인가를 알려고 노심초사했다. 3일중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집으로 가서 우리 가족들의 실제적이고도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이전에 전혀 해보지 않은 노력을 기울이도록 우리에게 너무나도 큰 감명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지금이야말로 이 사업을 해야 할 때이며, 지금보다 더 적합한 때는 없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이며, 우리가 기대하고 예상하는 것과 같은 내일은 결코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들이 오지 못하도록 막아서 그리스도께서 더욱 중요한 일을 하실 수 있도록 했던 성실한 제자들에게 하신 그분의 말씀에 유의하도록 하자: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마태복음 19:14. 그리스도의 이러한 말씀이 우리의 행동으로 옮겨지도록 하자.
내가 과거를 되돌아 볼 때 나는 세 부류의 아버지 모두에 속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내게 늘 하시던 말씀처럼 이웃 집 마당을 청소하는 것이 우리 집 마당을 청소하는 것보다 더 쉽다고 한 말이 정말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몇 십만 불의 수입을 얻는 것이 잘못 빗나간 자녀들을 돌이키는 것보다 훨씬 쉽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자신의 이기적인 관심에 몰두하기 위해서 아내로 하여금 아버지와 어머니의 책임을 모두 부담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얼마나 부당하고 이기적인 일인지…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들을 하늘 왕국까지 인도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하자. 심지어 우리가 그 길이 좁고 험하며 늘 올라가기만 하는 어려운 길인 것을 발견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길이 가장 힘겹게 느껴질 때라도 실망하지 말자. 우리 눈을 늘 위로 고정시키고, 우리 손으로는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들을 꼭 붙잡고 좀 더 높은 곳으로 그들과 함께 발자국을 옮겨 놓도록 하자.
하늘을 위해 가족을 연합시키는 일은 지속적인 노력과 자아희생을 요구할 것이지만 상급은 참으로 가치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이제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고 한 말라기의 예언이 여러분들의 가정 안에서 성취되도록 하지 않겠는가? 먼저 우리의 팔로 우리의 보배로운 가족들을 안전하게 두르고, 그 다음에 죽어가는 세상을 향해 손을 뻗치도록 하자.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우리는 사업을 마치고 우리의 하늘 아버지가 계신 가정으로 돌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