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휴업령과 도시 생활
저자: 강병국 목사
어떤 분이 비꼬는 어투로 말했듯이, 저는 예언의 신을 이용하는데 이골이 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저는 앞으로도 그렇게 하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무엇이 진리이며 무엇이 오류인지, 또한 무엇이 빛이며 무엇이 어두움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며, 오히려 어두움을 빛이라고 부르고 빛을 어두움이라고 부르는 때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에, 저는 그 어느 누구의 의견보다도 하나님께서 마지막을 사는 백성들을 위하여 특별히 보내주신 영감의 글을 신뢰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20장 20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해 주고 있습니다.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 하리라.”
저는 자주 이러한 질문을 받습니다. “목사님, 일요일 휴업령이 난 후에 도시를 떠나도 늦지 않겠지요?” 그렇게 물어오는 분들의 눈망울 속에서 저는 두가지 부류의 교인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는, 남편이나 혹은 부인의 극성스러운 반대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아니면 도무지 형편상 어찌할 수 없는 입장이 되어 버린, 연약하지만 정직한 교인들을 보게 되고, 두번째로는, 아직도 도시의 편리함이나 물질의 애착, 그리고 세속적인 욕심을 채 포기 하지 못해서, 아니면 포기하기 싫어서, 어떤 가느다란 핑계의 여지를 찾기 위하여, 더 나아가서는 좀 더 오래 죄를 품고 사는 재미를 연장시킬 수 있는지의 가능성을 체크해 보기 위하여 애를 쓰는 부류의 사람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12절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합니다.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위의 말씀 가운데 “침노”한다는 뜻은 우리의 지식과 마음과 의지가 다 동원된 적극적인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받은 빛에 따라서 온 마음과 뜻과 정성과 목숨을 다 하여서 순종하고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머뭇거리는 태도가 우리의 마지 못해 하려고 하는 어리석은 처녀들의 정신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태도는 우리의 주님을 향한 사랑의 정신에 비례하게 되어 있습니다. 가려 뽑은 기별 2권 452, 453페이지에서 선지자께서 우리에게 호소하시는 애절한 말씀들을 잠간 읽어 봅시다.
“나는 새벽 2시까지 잠을 이를 수 없었다. 밤 시간에 계시 가운데서 나는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 나는 몇 가족들에게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방법들을 이용하여 저희 자녀들을 구원하려면 도회지를 떠나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늦장을 부리면서 결정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
“자비의 천사들은 롯과 그의 아내와 딸들을 저희 손으로 붙잡고 황급히 서둘러 도성을 빠져 나왔다. 만약 롯이 주님께서 그에게 요청한 만큼 서둘렀다면 그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롯에게는 지나치게 우물 쭈물하는 기질이 있었다. 우리들은 그와 같이 되어서는 안된다. 롯에게 소돔을 떠나라고 경고하신 같은 음성은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고후 6:17절)고 명령하신다. 이 경고에 순종하는 자들은 피난처를 찾게 될 것이다. 각자는 스스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기 가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각자는 사업을 위하여 대기하는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단계적으로 다음에 행할 일을 나타내 보여 주실 것이다.
“사도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워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2,13). 롯은 원치 않는 마음으로 마지 못해 발걸음을 옮기면서 길을 행하였다. 그는 너무나 오랫동안 악한 자들과 사귀어 왔으므로 자기의 아내가 영원한 소금 기둥으로 들판에 서게 되는 것을 보기까지 자기의 위기를 깨달을 수 없었다.
“자녀들이 멸망 받기에 알맞는 도시의 유혹에 이 이상 더 노출되지 않게 하라.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도시를 떠나라는 경고와 권면의 말씀을 주셨다. 그러므로 이러한 때에 도시에 아무런 투자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비하신 음성을 우리 귀로 직접 듣는듯한 말씀이 아닙니까? 같은 책 454페이지에서는 다음과 같은 호소의 말씀을 접하게 됩니다.
“누구에게 경고 할 것인가? 우리들은 또 다시 ‘도시들을 떠나라’는 말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대들이 산과 계곡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해서 그것을 큰 손실인 것처럼 생각지 말라. 그대들이 하나님과 홀로 있을 수 있는 은거지를 찾아 거룩한 섭리와 길을 배우도록 하라….
“나는 우리 신자들이 영성을 구하는 것을 저희의 필생의 사업으로 삼도록 권고하는 바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문앞에 서 계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리 신자들에게 ‘그대들이 도시들을 떠나 시골로 이사하라는 부르심을 받을 때에 그것을 큰 손실로 여기지 말라. 축복을 붙잡으려는 자들을 위하여 여기 저기에 풍성한 축복들이 기다리고 있다. 자연계의 광경과 창조주의 역사하심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연구함으로써 그대들은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과 같은 거룩한 형상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458, 459페이지에서는 주의 종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존경하지 않는 자들과 억지로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될 위치에 우리 자신이 처해 있지 않게 해야 한다 … 일요일 준수에 관한 위기가 불원간에 임할 것이다….
“일요일을 지키는 무리들은 저들 스스로 강경하게 거짓된 주장을 고집하고 있으며 이것은 곧 주님의 안식일을 지키기로 결심한 자들에게 대하여 압박이 가해질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안식일 계명을 철저히 지킬 수 있는 위치에 우리들 자신을 두어야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우리 자녀들이 안식일을 지키기에 힘든 입장에 놓여있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다.
“만약 우리들이 하나님의 섭리들을 따라서 도시에서 떨어진 위치에 거처를 마련 할 수 있다면 주님께서 우리가 이 일을 하기에 가능 하도록 도우실 것이다. 우리 앞에 환란의 때가 놓여 있다.”
시골 생활의 목적이 품성 교육과 건강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위에서 읽은 바대로, 곧 닥아오는 환란을 위한 준비 과정으로서 반드시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청사진 입니다. 우리들은 벌써 도시들을 떠났어야 합니다. “일요일 휴업령이 내릴 때 도시를 떠나도 되지요?” 는 재림 교인들의 입에서 나와야 할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시골에서 도시를 향한 전도의 문을 속히 열도록 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