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시골생활 이야기
저자: 김현범 : 생애의 빛 한국 지부 책임자
한국 남동쪽의 어떤 시골에 살고 있는 한 청년의 시골 생활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도시의 세속적이고 경쟁적인 삶에 지쳐있는 재림 교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생활 간증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찬란하고 눈부신 성공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조용하고 확실한 한가지 음성을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 입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어쩌면 광신처럼 들릴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리고 어쩌면 균형을 잃은듯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 들어있는 사랑과 희생과 헌신의 진주들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시골 골짜기에서 들려오는 작고 초라한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편집실
저의 아버지께서는 시골 생활을 하기 전에는, 작은 도시에서 자급 사역자로 일하셨습니다. 그 당시 형과 저는 무언가 보고 듣는 대로 배우고 깨닫기 시작하는 어린 나이였습니다. 저희가 살았던 교회 사택도 저희 형제의 교육을 위한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에, 형과 저는 그 도시의 질이 나쁜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지 말아야 할 것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형과 저를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일꾼으로 교육시키기를 원하셨던 부모님께서는 저희들의 교육 문제로 인해서 매우 고심하면서 많은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계셨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우리 형제를 이 땅에서 유명한 사람이나, 이 세상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만 인정받을 수 있는 사람 즉, 엘리야나 모세나 침례 요한과 같은 하늘의 기별자로 준비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가장 중요한 시기인 유년 시절에, 저희들의 순진한 마음과 깨끗한 머리 속에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과 하늘의 품성이 가득 채워지기를 원하셨습니다. 부모님께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중요한 것이며, 하나님의 품성을 닮는 것이 교육의 목표이고, 이것을 성취하기에 가장 알맞은 장소는 바로 조용한 시골이라는 말씀을 깨닫게 되셨습니다. 그러나 저희에게는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으며, 아버지께서 막노동으로 벌어오시는 품삯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서는 성경의 귀한 약속들을 주장하시면서, 우리 가정의 앞길을 열어주기를 간절히 구하면서 주님께 매달리셨습니다. 예,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간구하는 저희 부모님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당신의 길을 따르고자 선택하며 믿음으로 구하고 나아갈 때에 반드시 길을 열어 주십니다. 길이 열릴 때까지 가만이 앉아서 기다리지 말고 믿음으로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의 설교를 들으신 후, 깊은 감동을 받았던 어떤 분이 계셨는데, 그분께서 우리 가정이 시골 생활을 하기를 원한다는 말을 듣고서 시골에 조그만 땅을 구입할 수 있는 자금을 주셨습니다. 얼마 후, 저희 가정은 1톤 트럭에 이삿짐을 싣고, 먹을 양식으로는 오직 쌀 다섯 말을 가지고 충북 단양의 깊은 산골로 내려가서 시골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형과 제가 처음으로 한글을 배운 곳은 이곳 이었습니다. 저희가 제일 처음으로 배운 첫 단어는 “하나님”이었는데, 아버지께서 누런 종이에 글씨를 크게 써 놓으시고 “이것이 하나님이라는 글자다”라고 가르쳐 주셔서, 형과 저는 하나님이란 말을 되풀이 하면서 글씨 연습을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이라는 글자를 배우게 되었는데, 처음에 “하나님”이라는 글자를 배울 때보다는 쉬웠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에서 “님” 자는 앞서 “하나님” 에서 이미 배웠던 글자이기 때문이죠. (하 하 하) 그 다음에 “성령님”, “천사” … 등등의 단어를 배울 때에는 각 단어의 뜻을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특히 “천사”라는 말의 뜻을 알려주실 때에 저희에게 해주셨던 말씀은 어린 형과 제가 깊은 산속의 오솔길을 다닐 때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형과 저는 넓고 자유로운 곳에서 인공적이거나 죄악적인 것이 전혀 없는 천연계 속에서, 부모님을 도우면서 건강하게 성장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숙제로 내주신 성경절을 외우면서 목청 높이 찬미 부르던 일과, 비가 올 때에만 물이 흐르는 넓은 강가의 바위 틈에서 놀던 것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재미있는 성경 이야기”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멀리서 밭을 매시는 부모님께 달려 가서 이것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던 때도 많이 있었죠….
그런데 추수할 때는 아직 멀었는데, 가지고 온 쌀 다섯 말은 바닥이 났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부모님께서 내일 아침 밥이 없어서 염려하시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아버지께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니까 아버지께서, “뭐, 하나님께서 다 아시니까, 하나님의 자녀를 굶기시지는 않으시겠지. 염려하지 맙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날이 어두어졌을 때, 어느 할머님이 머리 위에 어떤 작은 것을 이신 채 저희 집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안에 무엇이 있었을까요? 네, 쌀, 쌀이었습니다. 저희는 아무에게도 쌀이 떨어졌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시고 저희 집에 쌀이 떨어진 그 시간에 쌀을 가져다 주도록 명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와 사정을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농한기가 되면,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등에 자루를 매고서 산으로 약초를 캐러 다니셨습니다. 추수를 거두어서 먹을 양식은 있었지만, 생활에 사용할 돈이 없었습니다. (추운 겨울에 꼭 그렇게 고생해야만 하는가? 도시에 잠깐 나가서 돈을 벌어서 오면 되는데 …. 그러나 말씀으로 생애의 원칙을 삼기를 원하셨던 부모님께서는 참기가 어렵고 힘들 때에 더욱 간절히 기도하고 말씀을 연구하셨습니다. 특히 저희들의 교육에 조금이라도 손실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셨습니다. 때때로 원칙은 가혹한 듯이 보였지만, 말씀을 순종하시는 부모님의 마음은 기쁜 것 같았습니다. 찬바람이 술술 들어오고, 연기가 새어나오는 부엌에서 밥을 지으시면서 부르시던 어머니의 노래가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내 영혼 주의 은혜로 죄짐을 벗어버리고 …. 나 비록 산과 들이나 초막 속에 거해도 내 주를 모신 곳이면 그곳이 천국되도다” 어머니께서 좋아하셔서 자주 부르시던 이 찬미는 제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겨 놓았습니다.) 다시 약초 캐던 이야기로 돌아 가겠습니다. 하루는 어머니께서 깊은 산골짜기로 약초를 캐러 들어 가셨는데, 갈대들이 우거진 숲 속에서 산돼지들이 꿀꿀거리는 소리를 들으셨답니다. 조금 겁이 나서, 큰 소리로 아버지를 불러 보았지만, 대답이 없어서 기도하시면서 얼른 그 골짜기를 빠져 나오셨다고 합니다. 산등성이까지 올라가 쉬면서 앞을 바라보니, 저 멀리까지 길게 뻗은 산맥들과 그 아래로 첩첩이 싸여 있는 작은 산들이 보였습니다. 큰 골짜기에서 빠져 나간 작은 골짜기들…. 그러한 경치를 바라보면서, 어머니께서는 이런 생각에 잠겼다고 합니다. 저기 저 멀리 길게 뻗어있는 산맥들과 첩첩이 놓인 산들, 그리고 수 많은 골짜기들, 그 아래서 살고 있는 수많은 짐승들과 새들과 곤충들….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서 입히시고 먹이시며 돌보시는데, 하물며 그분께서 극진히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얼마나 잘 돌보아 주시겠는가! 라는 생각. 그곳에서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의 사랑을 생각하니까 감사의 정신이 다시 솟구쳐 나왔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당시, 많은 교우님들이 저희 부모님을 극단자요 율법주의자라고 부르셨는데, 특히 저희 형제를 학교에 보내지 않은 것에 대해서 많은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부모님께서는 그러한 말을 들으실 때마다 말씀으로 돌아가서 오직 말씀을 통해 위로와 확신을 얻으셨습니다. (여러분께서도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에, 많은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는지를 보십시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나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할까를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만을 바라보시면서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그 길만이 안전한 길입니다.)
그런데 저희가 그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먼저 답사를 다녀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우리가 이사 갈 곳은 아주 경치가 좋고 한적하며, 집도 통나무로 지은 아주 훌륭한 곳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저희 형제는 마음 속으로 큰 기대를 하면서 아름다운 공상을 해보았습니다. 드디어 이사가는 날이 되어서,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친구들이 준 선물을 가슴에 안고 그 아름다운 곳을 향하여 떠났습니다.
큰 길에다 짐을 내리고 우리 집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데, 그 길은 옛날에 나무를 베던 산판 길이라 울퉁불퉁하고 경사져서 한번 올라가면 땀이 뻘뻘 났습니다. 한참 올라가니, 통나무로 얼기설기 걸쳐놓은 정말 못생긴 집이 나타났습니다. 허리를 굽혀서 문안으로 들어가니 컴컴한 천장 위로 푸른 하늘이 보였습니다. 벽은 쑥 튀어나온 곳이 많아서 등을 기대면 아팠으며, 바닥은 울퉁불퉁해서 누우면 허리가 아팠습니다. 윗목에서 자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아랫목으로 내려와 있었습니다. 화장실이라는 곳을 가보니, 돌로 동그랗게 담을 쌓았고, 그 가운데에 길쭉한 돌 두개가 나란히 놓여져 있었습니다. 형과 저는 생전 처음 그런 화장실을 보았던 터라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런 집과 돌서렁 쑥대밭을 보시면서 한참 우셨다고 합니다. 겨울에는 물이 없어서, 얼음을 깨뜨려서 가마솥에 녹인 다음, 물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아궁이 앞에서 불을 피우시다가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저희는 언제나 일할 때에 기도로 시작했으며, 기도로 끝을 맺었습니다. 저희 형제의 교과서는 성경과 예언의 신이었으며, 천연계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저희들의 교사는 성령님이셨고, 부교사는 부모님이셨습니다. 저희는 숲속에 조그만 보금자리를 만들어 놓고, 이른 아침이면 그곳으로 기도하러 갔습니다. 그리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찬미를 부르면, 그것처럼 제게 기분좋은 것은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는 제가 참 착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제가 결코 잊을 수 없는 대 홍수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이사를 (약간) 많이 다녔습니다. 저희가 살던 곳에 가기 위해서는, 두 강이 합류되어 흐르는 아주 큰 강을 건너야 되었는데, 그곳에는 집이 딱 한채 뿐이었습니다. 그곳의 이름은 “선여울”이라고 불려졌습니다. 외딴 저희 집에서 강을 건너서 조금 올라가면 “양지말”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거기서 계속해서 올라가면(약 20리) “미산교회”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교회를 안식일 마다 걸어서 다녔습니다. 초 겨울, 살얼음이 얼 때에 그 강을 맨발로 건너려면 얼마나 발이 시렸는지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강이 넓고 물살이 세어서 부모님의 손을 잡고 건너갈 때에, 저는 참을 수가 없어서 눈물을 흘렸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 얼마나 제 발이 시렸는지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은 이해하시지 못할 겁니다. 저희는 연금 낼 돈이 없어서 설교 예배 때에 헌금 바구니를 옆 사람에게 그냥 넘겨 주는 것이 조금 창피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그곳에 살 때에 몇 십년 만에 한번씩 온다는 대홍수가 왔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듯이 오더니 뻘건 강물이 몰려오기 시작했으며, 큰 바위들이 몇분 내에 물에 잠기었고, 통나무들, 벌통들, 기름통들, 별별 물건들이 떠내려 가는 것을 볼 수 있었으며, 큰 소가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 날에 일어나 밖을 나가보니, 강물이 그 넓고 깊은 강둑을 넘어서 저희 집으로부터 불과 몇 미터되는 곳까지 넘실거리면서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때 아버지께서 밭을 둘러보시고 오시더니 아주 낙심한 표정으로 방에 들어가셔서 이불 속에 다시 누우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물사태로 인해서 옥수수 밭과 감자 밭이 다 떠내려 갔다고 해서 달려가 보았더니, 옥수수는 완전히 땅바닥에 깔려서 모래가 그 위를 덮었으며, 밭둑도 다 떠내려가서 없어졌습니다. 감자 밭에도 사태가 나서 감자가 모두 땅 속으로 묻혀 버렸습니다. 애써 가꾸어 놓은 곡식이었는데…. 이제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제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어이가 없고 힘이 빠져서 누워 있는 아버지를 보려고 방문을 열었는데, 거기서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무릎을 맞대고 열렬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를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옛날 광야에서 식탁을 베푸셨던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광야에서 식탁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고 놓지 않는 한, 예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고 훈련시키셔서 우리를 향한 주님의 뜻을 이루시고, 우리 앞에 있는 절망과 패배를 소망과 승리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예수님은 얼마나 감사한 분이신지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발걸음을 움직이는 자들을 하늘 천사들은 책임지고 인도하실 것이다” 가려뽑은기별 2권, 영문 164.
그곳에서 살 때에 저희는 소 사료용으로 쓰이는 황옥수수와 흰밀가루를 주식으로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철저한 건강 개혁자이셨지만, 그 당시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흰밀가루였습니다.) 한번은 밀가루가 떨어졌는데, 그것을 살 돈이 없었습니다. 그때 어떤 분이 저희 집에 오셨다가 가시면서 정확하게 밀가루 한포 값을 주셨습니다. 또 한번은 강건너 “양지말”에 사시는 김집사님댁 따님이신 정 o o 누님께서 강건너 편에서 저를 부르셔서, 강을 건너갔더니 작은 비닐 봉지에 쌀을 담아 주셨습니다. 쌀봉지를 집으로 가지고 들어와서 보니, 그 봉지 안에는 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돈이 2000원이나(저희에게는 큰 돈이었음) 들어 있었습니다. 오래 간만에 밥을 먹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요….
지금 와서 뒤를 돌아보면, 모든 길 위에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가 넘쳤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희는 단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하라고 명하신 주님의 말씀을 순종했을 뿐입니다. 저희가 주님을 위해서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주님께서는 너무도 많이 축복해 주셨습니다. 저희가 구하면 가장 필요 적절한 때에 응답해 주시고, 모든 고난과 역경을 통해서 온전히 주님만 의지하도록 이끄셨습니다. 주님을 믿고 따를 때에만 평안이 있습니다. 저희는 가난했지만, 하늘의 풍요가 저희의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생애 속에서 주님의 손길을 느끼며, 주님이 어떤 분이심을 아는 것만큼 기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시골생활은 그리스도의 학교 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주님과의 깊은 교제로 초청하고 계십니다. 물론 순종에는 희생과 고난이 따릅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바치셨던 희생과 고난을….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우리가 가야 할 최선의 길을 아시는 주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감사하며 따라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이라는 진리를 우리 모두가 이해하기만 한다면….
저희 부모님의 소원은, 형과 제가 하늘 유리 바닷가에서 금 거문고를 가지고 주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예, 형과 저는 부모님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또한 부모님의 노력과 고생을 주님께서 많은 보상으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저희 집 시골생활 이야기는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하늘 나라에 갈 때까지…. 하늘에 가면 저희를 염려해 주시고 사랑해 주셨던 모든 분들을 위해서, 은식탁 위에 잔치를 배설하겠습니다. 그때 여러분께서도 그 자리에 꼭 오시기 바랍니다. 환영합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이 있지만,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나이다.” 아멘! (누가복음 22:35).